2012. 12. 26. 12:02

역사상 최고의 천재는 누구일까.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2007년 11월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 10명을 선정해 순위를 매겼다. 과학자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2위 셰익스피어, 3위 괴테, 4위 피라미드 설계자들, 5위 미켈란젤로였다. 의외로 문호 괴테와 셰익스피어가 상위권이고, 낯익은 과학자 이름은 뉴턴(6위)·아인슈타인(10위) 정도다. 천재 발명가 에디슨은 순위에 끼지도 못했다.

네이처가 선정 기준으로 삼은 것은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사실 괴테는 문학가이면서 정치가·교육자이자 식물학·해부학·광물학·색채론에 해박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제퍼슨은 변호사·건축가·언어학자·농학자였다. 셰익스피어는 인간과 삶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수많은 인간형(型)을 창조한 원조 심리학자였다. 10명의 천재를 아우르는 키워드를 꼽자면 ‘문화적 창조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박은실(문화예술경영학) 추계예대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미래사회 인재를 기르는 교육의 핵심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보고 있다”며 “사회성·정서능력 등 삶에 필요한 ‘관계역량’은 체험형 문화예술 교육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박 교수가 예로 드는 것은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가 발표한 올해 청소년 핵심역량지수. 36개국 중 우리나라는 지적 역량에서는 2위였으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35위로 바닥권이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교육 수준이 아직 중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긴, 대통령선거 후보들 입에서 문화의 ‘문’자(字)조차 들어보기 힘들긴 하다.

오늘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예술나무-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이름의 큰 행사가 열린다. 대한민국예술원·예총·민예총·메세나협의회·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행사이니, 진보·보수에 원로·재계 인사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셈이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1천인 선언’이 발표된다. 선언문은 ‘문화예술이 경제생활과 무관한 사치이거나 소수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무지와 편견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문화예술에 관한 선언은 1973년 10월의 ‘문예중흥선언’과 2006년 5월의 ‘문화헌장’에 이어 세 번째인 듯하다. 문예중흥선언은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우리는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같은 표현에서 관치(官治) 냄새가 좀 풍긴다. 민간 주도로 만든 13개 항의 문화헌장은 문화예술이 지향해야 할 요소를 거의 다 반영해 노작(勞作)이라 평가할 만하다. 오늘 발표될 선언문은 불과 A4 용지 한 장 분량이다. 하긴 길고 짧음이 문제일까. 실천하기에 달린 것이지. 그나저나 오늘 행사에 대선 후보들 중 과연 몇 분이나 올지 궁금하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35929&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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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2

우리는 세계에 팔아먹고 살 자산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외국 민간단체들에서 원조받았던 경험도 그런 자산 중 하나다. 이를 깨달은 건 지난주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선생과 오랜만에 했던 통화에서였다. 선생이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 남수단에 망고나무를 심어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희망고’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들어 수시로 바자회도 하고, 매년 수익금을 들고 아프리카에 다녀오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남수단에 방문했을 때,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한 엄마가 “망고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매년 두 차례씩 열매를 따서 팔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하기에 시작했던 일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심어준 망고나무는 모두 3만 그루. 매년 가다 보니 농업교육과 재봉기술 같은 직업교육을 시키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복합교육문화센터인 ‘희망고 빌리지’ 조성사업을 벌였다는 얘기도 지난해에 들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한국청소년연맹과 함께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상대로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주민 돕기 교육과 훈련을 시키려고 계획 중이라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세계시민 교육, 가난한 이웃의 자립을 이끄는 리더 교육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가 이런 사업을 시작한 건 과거 ‘원조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목사였던 선친을 따라 미국인 선교사들의 봉사현장을 보고 자란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난한 나라 주민들의 자립을 도우며 세계에 친구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아봤기에 돕는 방법도 알고,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 느끼는 고마움도 알기에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산은 또 있다. 우리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회복하느라 애를 먹었던 경험도 알고 보니 자산이었다. 최근 신부남 외교통상부 녹색성장대사를 만났다. 신 대사는 요즘 비영리재단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국제기구로 출범시키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GGGI는 개발도상국에 환경을 보전하면서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구다. 우리나라가 주도해 만든 이 기구를 이미 18개국이 국제기구로 설립하는 협정에 서명했고, 23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 비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이 기구가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슬로건에 따라 정부 예비비를 털어 설립됐던 터라 최근 열렸던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총체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개도국에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는 것을 삐딱하게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삐딱하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이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지금도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건 선진국이다. 그런데 이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나라들에 저탄소형 환경보호부터 하라니…. 참, 할 말이 아니긴 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할 일이 있단다. 선진국들이 아무리 개도국에 얘기해 봐야 바늘도 안 들어가는 녹색성장을 한국이 얘기하면 확 먹힌단다. 경제성장 과정에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치러야 했던 대가와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가 개도국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개도국들의 경제발전 롤 모델이고, 저개발국들은 지금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니 미래형 먹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이 자산을 MB가 시작했다고 국회에서 용심을 부릴 일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원조받던 가난의 역사, 비약적인 경제개발의 노하우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까지…. 우리는 반도체·휴대전화·선박 말고도 정말로 세계에 팔 게 많다. 찾아보면 우리의 자산은 더 있을 거다. 이런 틈새시장을 잘 찾아내 좁은 한국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가 뻗어나갈 시장은 무한정 넓어질 거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번 더 외칠 때가 됐다.

 

 

양선희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35933&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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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0

미국 플로리다의 지역신문인 '템파베이 타임즈'. 이 신문은 자신만의 핵심역량을 찾아내 2009년 언론계 최고 권위의 '퓰리처상'(전국보도부문)을 받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성공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거나 다른 정당의 평판을 망가뜨리기 위해 던지는 발언 하나 하나를 꼼꼼히 분석해 사실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폴리티팩트' 서비스 덕분이었다.

폴리티팩트는 지역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후보와 전국무대 정치인의 발언들까지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서비스 웹사이트에는 정치인 발언의 사실 여부에 따라 자동차 속도계를 닮은 '사실여부 계기판'에 '사실', '거의 사실', '절반만 사실', '거의 거짓', '거짓', '터무니 없음' 이라고 표시해준다. 전 현직 기자와 전문가 수십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은 정치인들의 발언을 24시간 모니터하며 발언의 배경과 관련 통계를 분석하는 등 탐사보도를 방불케 하는 인력과 정보를 동원해 사실 여부를 판정해낸다.

최근 미국 언론은 이러한 '팩트체크'(사실확인) 보도를 중시하는 추세다. 지난주 '타임'지에도 오바마 캠프와 롬니 캠프가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남발했던 발언을 꼼꼼히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우리는 해외인력 아웃소싱의 선구자를 백악관에 들일 수 없다'며 미트 롬니를 공격한 오바마의 발언은 왜곡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롬니가 직접 관여하지 않은 일을 그의 책임으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경제 침체 이후 미국은 5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새로 얻었다'던 오바마의 발언은 알고 보니 2009년 이후 없어진 100만개의 일자리는 쏙 빼놓고 한 말이었다. 당선 되면 1,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롬니의 호기로운 약속도 알고 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향후 4년간 창출될 일자리수라고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해온 터였다.

이렇듯 발언의 정확성을 체크하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는가도 정치인의 신뢰성에 핵심적인 요소다. 앞서 언급한 '폴리티팩트'의 경우 정치인의 말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바뀌었는지 여부를 '전면 말바꿈', '절반 바꿈', '말바꿈 없음'으로 표시해준다. 독자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 숨김없이 까발리는 것이다.

이런 예에 비하면 우리 언론의 현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하다. 일부 언론은 수십년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 매체'라고 자부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측의 폭로를 검증하기는커녕 거기에 온갖 억측과 '카더라 통신'으로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달아주기까지 한다. 단지 투표 없이 편하게 금배지를 달았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장에 나가 당이 마련해준 카더라 폭로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어느 국회의원의 모습은 그 내용을 열심히 받아다 대서특필해주는 기자의 모습과 닮았다. 저질스러운 정치판에 잘 어울린다는 면에서.

정도를 걷는 언론사나 그렇지 않은 언론사나 요즘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듣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근본적인 기능이 꾸준히 망가져 왔음을 고려한다면 제 역할을 못하는 언론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태풍 볼라벤이 북상할 때 창문에 신문을 붙이면서 그 유용성을 처음 느꼈다는 시중의 우스개는 단순한 우스개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언론이 포털 사이트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기사 제목을 살짝 비틀어 선정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안 언론의 소비자들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제대로 된 언론'과 '사이비 언론'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낀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비록 부수나 시청률은 좀 떨어지더라도 '사실여부 계기판'같은 걸로 사람들의 판단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언론이 우리에겐 정말 필요하다. 그런 계기판 같은 언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지도층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소비자들에게 색깔 없는 돋보기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는, 작지만 소중한 희망.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난 그 희망을 결코 버릴 수 없다.

 


김장현 미국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7210104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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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9

오래된 이야기지만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 방일 때 쇼와(昭和) 천황과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한국 대통령의 첫 공식방문, 더구나 국빈으로서의 방일이었다. 쇼와 천황은 과거 식민지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만큼 어떤 말로 대통령을 맞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희망은 잘 알지만, 전후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은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은 머리를 쥐어짰다.

당시 외교 취재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어떤 발언이 나올지 동료들과 그 내용을 추적하고 있었고 ‘유감’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는 확실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말도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 더구나 천황의 발언이라면 무게감이 달랐다. 아사히신문은 대통령 방일 전날, 과감히 ‘천황이 유감 표명하기로’라고 보도했다.



조마조마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당일 만찬회 환영사에서 천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특종이 확인됐다.

한국 대통령 맞을때마다 ‘과거’ 언급

당시 일본으로서는 최대한의 발언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딘지 부족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대통령은 답례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라고 답했지만 한국 언론에는 ‘부족하다’ ‘애매모호하다’ 등의 불만스러운 평가가 많았다.

그로부터 6년 후 지금 아키히토 천황은 노태우 대통령을 만찬회에서 맞았다. ‘쇼와 천황의 발언보다 일보 진전된 표현을’이라는 한국 측의 강한 요망도 있어 일본 측은 숙고 끝에 발언을 준비했다.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당한 괴로움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잘 보면 알 수 있듯이 쇼와 천황이 말한 유감의 뜻보다 마음이 상당히 담겨 있고, 키워드는 ‘통석의 염’이었다.

사실 초안에는 ‘불행한 과거에 가슴 아픈 생각’이라는 조금 다른 표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방일 조금 전에 이 내용이 일본에서 보도되자 한국의 한 신문이 천황이 ‘가슴 아프게’라는 가요를 연습하고 있는 시사만평을 게재했다. 일본 가라오케에서도 자주 불리던 유명한 노래였지만 이건 곤란하다며 당황한 일본 정부가 재검토에 나서 최종적으로 ‘통석의 염’으로 귀착됐던 것이다.

올해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사례로 거론한 천황의 발언은 이 ‘통석의 염’이었다. 하지만 그전 천황이 맞았던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질문 받고 “나도 국민도 한일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이것으로 일단 결말을 봤다고 생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랬던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나도 매우 놀랐다.

천황은 그 후로도 한국 대통령을 맞을 때마다 과거를 언급해왔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깊은 슬픔의 마음’을 나타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깊은 슬픔은 늘 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천황의 발언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명확한 사죄의 말은 총리가 그 책임하에 하고 있다.

원래 천황에게는 자유가 없다. 국회 소집과 총리대신 임명이라는 큰 직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형식상의 권한이다. 일반 국민에게 주어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없다. 평화를 강력히 바라는 마음에서 때때로 일본의 과오를 입에 담지만 안보 정책은 말할 수 없다.

지금 천황은 자신의 근본이 한반도에 있다고 스스로 명확히 밝히기도 했고,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죄의 자유가 없고, 스스로의 발언을 비판받아도 반론할 자유가 없다. 일본에서 천황 비판이 금기시되고 있는 것은 천황이 신성한 존재여서라기보다 비판에 대해 반론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반론의 자유’ 없어 표현에 한계

그래도 많은 일본인은 천황과 황후를 경애하고 있다. 많은 부자유와 중압감을 감수하면서도, 예컨대 재해 피해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외국과의 우호를 바라면서 빈객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황이 한국 땅을 밟으면, 말로 전달하는 이상의 마음을 한국 여러분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79세가 되는 노구에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192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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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9

#10여 년 전 몽골을 방문했다. 한 목동이 내게 “저기에 말을 탄 사람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평선 끝까지 샅샅이 훑어봤지만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두 시간쯤 흘렀을까. 그가 말했던 사람이 정말로 나타났다. 몽골인의 시력은 2.0이 넘는다더니 과연 대단했다. 그는 단순히 지평선 끝에서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을 알아본 것이 아니라 두 시간 뒤의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말을 탄 사람이 칭기즈칸 시대의 전사였다면 나는 꼼짝없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속도가 공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거꾸로 공간을 장악하면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SBS ‘런닝맨’에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 ‘공간을 지배하는 자’와 같은 초능력 캐릭터가 나온다. 문화 분야에도 이런 도구가 있다. 바로 번역이다. 국내에는 번역사업을 지원하는 두 개의 공공기관이 있다. 한국문학을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문학번역원(KLTI)과 우리의 고전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ITKC)이다. 전자가 우리 문학의 ‘공간적 확장’을 지원한다면, 후자는 우리 고전의 ‘시간적 영속성’을 가능케 하는 기관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중국 작가 모옌으로 발표되자 일부 미국 언론은 “번역가 하워드 골드블랫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썼다. 미국 노터데임대 중문과 교수인 골드블랫은 1970년대부터 모옌의 ‘붉은 수수밭’, ‘술의 나라’, ‘생사피로’ 등을 비롯해 중국 현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서방에 소개해 온 독보적 존재였다. 그는 번역에서 양보다 질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다. 그는 “중국어는 잘 모르면 작가에게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영어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는 “번역가가 최우선시할 대상은 작가가 아닌 독자”라고 선을 그었고, 모옌도 “번역된 작품은 더는 작가가 아닌 번역자의 것”이라고 화답했다.



#요즘 나는 한국고전번역원이 한글로 번역한 ‘고전종합DB’의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가을, 한강 등 관심 키워드만 치면 역사 문헌이 줄줄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계기로 찾아보니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강남녀(江南女)’란 시가 튀어나왔다. “강남의 풍속은 예의범절이 없어서/딸을 기를 때도 오냐오냐 귀엽게만/화장하고는 둥둥 퉁기는 가야금 줄/배우는 노래도 남녀의 사랑을 읊은 유행가가 대부분/(중략)/그러고는 하루 종일 베틀과 씨름하는/이웃집 여인을 비웃으면서 하는 말/베를 짜느라고 죽을 고생한다마는/정작 비단옷은 너에게 가지 않는다고,” 이 시에서 강남은 중국 양쯔 강 남쪽 지방이지만, 강남 여자에 대한 풍자는 요즘과 통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또한 가난한 여자가 자신이 짠 비단옷을 입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카를 마르크스보다 1000년이나 앞서 ‘노동소외론’(생산물로부터의 소외)를 설파한 것 같아 흥미롭다.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우선 좋은 콘텐츠를 창작하고, 해외에 적극 알려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수천 년간 쌓아 온 지식문화의 보고인 고전이 한문으로 돼 있어 제대로 창작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선왕조실록은 완역했지만 승정원일기는 9.6%, 일성록은 14.6%밖에 번역해 내지 못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지원한 문학작품은 800여 종에 불과하다. 일본의 2만250종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두 기관의 올해 예산은 각각 127억 원, 78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에 4조 원대에 육박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1929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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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8

“선생님, 우리 애는 꿈이 없어요. 어떡하죠?”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다. CF에도 나온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부턴가 같은 꿈만 꾸게 되었다’고.

학기 초에 6학년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을 적어 내게 했다. 영화 ‘버킷리스트’ 내용을 얘기해 주면서 열심히 독려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수 되기, 여행하기’ 등으로 ‘짤막하게’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없다’고 쓴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겐 ‘이야기의 힘’ 필요

그러던 차에 수련회를 가 저녁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선생님, 저는 스무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그래?”

“첫 번째로 클럽에 가고 싶어요. 어른들이 그러는데 꽤 재밌는 곳이라고 했어요. 자전거 국토순례도 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읽어주신 ‘불량한 자전거 여행’에 나온 것처럼 자전거 타고 고생하며 여행해 보고 싶어요.”

“와! 멋지다! 선생님도 같이 갈까? 자전거 여행!”

“그럴까요? 마음 맞는 친구 몇 명이랑 스무 살 되면 꼭 해봐요, 우리.”

“저도 할래요!” “저도요 저도!”

그때 내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졌다. 아이들을 꿈꾸게 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이야기’였다. 입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든, 책에서 본 이야기든 아이들에겐 ‘이야기의 힘’이 필요했다. “엄마가 싫어하지만 축구선수 하고 싶어요. 박지성 골 넣은 것 보셨어요?” “엄마는 의사 하라는데 저는 마술사 하고 싶어요. 마술사 최현우 아세요?” “가수도 하고 싶고, 스무 살이 되면 배낭 메고 캠핑도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꿈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 꿈이 있었고 그런 꿈을 꾸는 이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들은 누군가와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 부모님과는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부모님이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로 돌아와 내가 그동안 여행했던 곳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이 쓴 글에서 ‘선생님처럼 스페인에 가 보고 싶다. 바르셀로나에 꼭 가 볼 것이다’, ‘선생님처럼 올레길을 꼭 걸어 보고 싶다’와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대학에 가면 재미있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 ‘밴드나 연극을 해보고 싶다’와 같은 이야기도 나왔다.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회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평야에 대한 설명을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데 호남평야에 가 본 적이 있거든. 엄청 넓고 큰 바둑판같이 생겼어. 끝없이 논이 이어져 있지. 그 호남평야 가운데로 선생님이 걸어 들어가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있었던 게 생각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호남평야에서 팔 벌리고 서 있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요즘 아이들은 이야기 들을 시간도, 책 읽을 시간도 없다. 영어학원, 운동학원, 음악학원을 전전하고 학원 숙제와 학습지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간다. 논술학원에서 독서토론논술이라며 억지로 읽히는 지문 속에서 겨우 글을 대한다. 책을 읽는 것은 간접경험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학원에서 보여 주고 읽어 주는 책은 긍정적인 역할도 하겠지만 즐거움을 생산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즐겁지 않은 활동 가운데 얻은 소재는 지식으로서의 역할은 하지만 이야깃거리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런 책들에서 본 것, 들은 것들은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오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 말하면서도 어떤 꿈을 꿀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직업은 한정적이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도 거의 없다. 그런데 꿈이 없다고 아이들을 탓하기만 한다.

내 꿈은 가난한 나라에 작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 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의 후원으로 학교에 다니는 인도네시아 학생의 사진과 편지를 보여 준다. 그러면서 지금은 비록 소박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을 돕는 것으로 꿈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는데 언젠가는 진짜 학교를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나중에 그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며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어른들의 이야기부터 들려주자

최근 수년간 ‘스토리텔링’이 유행이었다. 광고에도, 취업에도, 상품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아이들이야말로 이야기가 필요하다.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야기, 해보고 싶게 만드는 간접경험들. 나는 수업을 특별히 잘하는 교사도 아니고, 남보다 뛰어난 인성을 가진 교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동력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더하고 싶은 마음과 다들 주저하는 모험을 실행하고자 하는 용기였다.

‘왜 꿈이 없느냐’고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기억에 남는 책, 영화,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그 이야기 끝에 아이가 “나도 그거 해보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성공이다. 그리고 함께 예쁜 공책에 혹은 파일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바로 지금 말이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193028/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56

5년 전인 2007년 11월 중순쯤이었을 게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이 식은 죽 먹기로 여겨지던 시점에 대학 교수 100여명이 한꺼번에 언론에 등장했다.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발전을 업그레이드 할 인물이 이 후보 밖에 없어 그를 돕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대학도, 전공도 다른 교수들이 집단으로 특정 대선 후보를 밀겠다는 '찬양가'는 그전까진 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이런 희한한 풍경을 주도한 사람이 현직 총장임을 확인했을 때 나는 요즘말로 '멘붕'이었다.

지지 선언의 열매는 아주 달콤했다. 정년 퇴임을 앞둔 총장은 MB가 취임한 직후에 해외 공관장으로 나갔다. 외교의 'ㅇ'자도 모르는 문학 전공 교수가 외교관이 됐으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교수 경력은 다소 처지지만 MB 지지 대열 선두에 있던 다른 폴리페서 몇몇도 한 자리씩 가져갔으나, 대부분 '실패한 외도'로 막을 내렸다. 전공과 별 관련이 없고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학자들이 엉뚱한 데 둥지를 틀었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겠나.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다 스스로 그만두거나 거의 낙제점 수준의 기관장 평가를 받고 물러난 경우가 수두룩하다.

다시 대선 시즌이다. 폴리페서에게는 그야말로 '대목'이다. 그런데 5년 전과 엇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들이 목도되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 '빅3' 대선 후보 옆엔 어김없이 지식인을 대표한다는 교수들이 포진해 있다. 대선 캠프에 간여하는 걸로 파악된 숫자만 500명이 넘고, 간접 참여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의 계절이면 몸이 근질거려 캠퍼스를 뛰쳐나갈 수 밖에 없는 폴리페서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뻔한 결말로 싱겁게 승부가 난 지난 대선과 달리 박빙의 승부가 일찌감치 예고되고 있는 탓에 전문성 면에서 검증된 교수들이 '빅3'에 밀착해 있는 게 두드러진다. 이름이 꽤 알려진 교수들이 대선판을 후끈 달구는 것도 지난 선거 보다 강도가 훨씬 세 보인다. '떡고물' 욕심에 일단 발을 밀어넣고 보자는 교수들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게 대선 캠프 진영에서 들리는 얘기다.

교수 같은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는 것은 후진국적 발상이라는 판단이다. 어떤 고루한 이는 정권 참여를 거절했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을 들먹이며 교수들의 현실 정치 개입을 비판하지만 이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군사 정권의 요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사학의 총장 입장에선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강의와 연구를 내팽개쳤다고 흥분하는 이도 있지만, 이것도 작금의 대학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데서 나온 무지다. 교수 개인에 대한 평가가 정착된 지는 한참됐다. 강의 빼먹고 연구 소홀히 했다가는 당장 '문제 교수'로 낙인 찍히고 승진에서도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다.

폴리페서를 긍정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올해 대선 처럼 교수들의 전문성이 절실한 적은 없다고 여겨진다. 대선 후보들은 우리한테도 바짝 다가와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묘안이나 국가 발전을 견인할 정책 아이디어들을 교수들로부터 도출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뒤집으면 대선 캠프에 간여하는 교수들의 책임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다른 직업 처럼 교수들의 성향 또한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모르긴해도 대학에 사표를 던지면서까지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교수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전문적 식견을 새로운 정치권력 창출에 반영하고 싶은 욕망은 폴리페서라면 누구나 갖는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여러 문제가 잉태된다. 교수냐, 정치인이냐의 정체성 논란도 여기서 비롯된다.

학자로서 살아가려면 '조커'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자신들의 정치 참여를 '공적 봉사'로 인식한다면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선거가 끝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걸로 그들의 임무는 종료된다. '착한 폴리페서'를 보고 싶다.

 

김진각 여론독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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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5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년 전 첫 대선 도전 때 미 국민에게 ‘담대한 희망(audacious hope)’을 전파했다. 미국 역사에서 조국이 분열과 침체, 도전과 위기에 직면할 때 나라를 구한 건 정치였으며, 정치만이 다른 분야가 해낼 수 없는 국가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깊은 정치 불신의 시대에 ‘정치의 고유 업무가 국가전략을 수행하는 일’이라는 긍정적이고 담대한 정치관은 당시 세계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12년 한국의 대선 후보들에게 국가발전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 비위를 맞추는 방법론은 차고 넘친다. 국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유기체적인 성질이 있다. 대한민국 64년은 건국과 체제방어, 산업화와 민주화, 북방외교와 남북화해, 시민참여의 국가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진화했는데 한복판엔 어김없이 그 시대의 대통령들이 있었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는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 세 가지 공약을 반복해 외칠 뿐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국가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 가지 공약은 다수 국민이 현재 느끼는 결핍감을 해소하는 방법론이다.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환심을 사는 방법론에 집중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나 국민의 결핍감을 해소해 어떤 국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유감이다.

그나마 이들 방법론은 세 후보 ‘공통 공약’처럼 인식될 정도로 차별성이 없어 상상력 빈곤한 후보들이 서로 베끼기를 한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재벌개혁을 하기 위한 순환출자를 앞으로만 못하게 할 것이냐, 기존의 것도 못하게 할 것이냐 하는 정도 갖고 ‘내가 더 현실적이다’ ‘내가 더 개혁적이다’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대(大)전략은 없고 소(小)전술에만 의존하는 도토리 키 재기식 후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차별성 없는 방법론, 전술에 집착하다 보니 유권자의 거대한 이동을 겨냥한 창조적 전략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자기 쪽 유권자를 지키기 위한 네거티브 정치공방에 몰두하는 이번 대선의 특징을 낳았다.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 문제, 문재인 후보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슈는 과거사·안보관을 검증하는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공허한 정쟁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선은 후보들이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는 집권 과정이자 향후 5년간 국가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통치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후보들은 답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다음 진화단계는 무엇인가. 미국·중국·일본·북한의 리더십이 새로 정비돼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격변이 예상되고, 누구의 눈에도 환히 보이는 장기 불황의 복합 위기가 한국이 맞이할 향후 5년의 객관적 정세다. 후보들은 차별성 없는 국내 이슈로 국민의 환심만 살 게 아니라 국가 자체가 어떻게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겠는지 선명한 국가전략을 유권자에게 제시해야 한다. 정책공약의 정점에 국가전략을 위치시키고, 그 밑에 국민을 위한 정책과 그것들을 수행할 사람을 제시하는 완성도 높은 통치 청사진을 하루바삐 내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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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4

유엔 가입국보다 더 많은 나라에서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아 보았다는 전세계적 열풍에도 불구하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국내 음원 저작권료 수입이 고작 3,600만원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 국민들이 300만번쯤 내려받고, 3,000만번쯤 들은 초대박의 수입이 이 정도다. 싸이야 대신 CF 모델 수입으로 40억~50억원을 거둔다지만, 웬만한 성공에 그치는 다른 뮤지션들은 고작 몇십 만원을 손에 쥐고 헛웃음을 짓는다.

우리나라의 음원수입 분배구조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왜곡돼 있다. 미국 음원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애플 아이튠즈는 보통 한 곡 다운로드에 1,000~1,500원을 받아 이중 30%를 챙긴다. 나머지가 작사·작곡자와 제작자 등 노래를 생산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가격 형성부터 엉망이다. 국내 음원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멜론은 월 3,000원에 무제한 듣기 같은 정액제 상품을 팔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은 곡을 들을수록 음악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단가는 낮아진다. 한 곡 스트리밍에 평균 0.2원, 다운로드에 10.7원이라는 계산이 이렇게 나온다. 애초에 유통사가 챙기는 몫도 미국보다 높은 57.5~40%다. 부가상품인 벨소리나 컬러링은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의 몫이 일반적으로 더 높다. IT 강국을 외쳐온 정부가 컨텐츠 보호에는 손을 놓은 결과다.

소비자들은 값싸게 음악을 즐긴다고 볼지 모르나 사실은 왜곡된 시장의 피해자다. 음악생태계가 더 빈약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중심엔 연기도 하고 개그도 하는 아이돌을 키우는 몇몇 대형 제작사들이 있고, 외곽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인디 뮤지션들이 남았다. 그러나 과거 우리 대중음악을 풍부하게 했던 많은 실력파 뮤지션들은 종적을 감췄다. 1980~90년대 음반 몇 만장만 팔아도 음악생산이 지속가능했던 시절이 막을 내린 탓이다.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재즈보컬그룹 낯선사람들을 사랑했던 나 같은 소비자는, 아이돌과 인디만 남은 음악시장에서 점점 멀어졌다.

한 대중음악 제작자는 "정부가 K팝 지원한다며 헛돈 쓰지 말고, 음악생산자가 생존 가능하도록 시장을 살려야 한다. 음악을 팔아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이라면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뮤지션들이 몰려 다양한 음악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사의 분배율을 낮추고, 덤핑 정액제를 금지하는 등 음악생산자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애플이 당장 손해를 보면서도 음원판매액의 70%를 음악생산자에 돌려주는 것도, 궁극적으로 음악 생산자와 공존하고 번창해야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여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똑같은 논리를 요즘 화두인 경제민주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경제민주화 논의를 선거철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데, 이는 대기업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문제 있는 시각이다. 음악시장을 개혁하자고 하면 SK텔레콤의 자회사인 멜론을 적대시하는, 대기업 때리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앞으로도 세계 경쟁에서 눈부실 성과를 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버팀목이 될 중소기업이 고사하고, 중산층의 자리를 빈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대체해버리면 내수시장도, 성장잠재력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지금 경제민주화 논의를 하지 않는다면 걱정해야 할 것은 대기업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다. 싸이는 있지만 업계는 피폐한 대중음악계가 우리나라 전체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5200838244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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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41

누구나 자신의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한다. 그 탁월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나 오묘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북송 시대의 진요자(陳堯咨)는 활쏘기의 명수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주 먼 거리에서도 동전 구멍을 맞힐 만큼 실력을 갖춰 당대에는 겨룰 자가 없었다. 자부심도 대단했다. 어느 날 진요자가 자기 집 뜰에서 활을 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그의 활 솜씨에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유독 한 기름장수 노인만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요자가 의아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대는 나보다 더 활을 잘 쏘는가? 아니면 내 활 솜씨가 훌륭하지 않단 말인가?”



노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활쏘기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요. 단지 손에 익었을 뿐 아닌가요?”

진요자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은 땅바닥에 호로병을 내려놓은 뒤 병 입구에 구멍이 뚫린 동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름을 호로병에 따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름을 다 따를 때까지 동전에는 단 한 방울의 기름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은 말했다. “저도 특별한 재주는 없습니다. 단지 손에 익었을 뿐입니다.”

‘탁월함’을 뜻하는 영어 ‘엑설런트(excellent)’는 고대 그리스어인 ‘아레테(aret´e)’에서 나왔다. 당시 그리스인은 이런 탁월함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아레테를 갖추는 방법 자체는 간단하다. 특정 분야에서 남들은 도저히 못할 것 같은 일들을 해내는 이들에게 그 비결을 물어보면, 대부분 ‘그냥 열심히 했을 뿐’이라거나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등 비교적 싱거운 대답을 하곤 한다.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건 반복과 훈련이 아레테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손에 익었을 뿐’이라고 표현한 것은 결국 끊임없이 반복하고 훈련하면 궁극의 아레테에 접근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창의성조차도 끊임없는 훈련과 반복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아레테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당신이 반복과 훈련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http://news.donga.com/3/all/20121016/50132689/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41

요즘 전력 수급이 빠듯한 여름과 겨울이면 웃기는 일이 벌어진다. 한전이 포스코·GS·SK처럼 자체 발전회사를 갖춘 기업을 독려해 비싼 값에 전기를 사들인다. 대신 이들은 한전의 싼 산업용 전기를 쓴다. 이런 기형적 구조를 틈타 세 그룹은 최근 3년간 3007억~1690억원씩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한전은 거액의 적자를 뒤집어쓰면서 서민들에게 전기료를 거둬 대기업에 보조금을 준 셈이다. 하루 빨리 대형 발전소를 지어도 모자랄 판이다.

남동발전의 장도수 사장은 지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간신히 여름을 넘기니 영흥도의 7, 8호기 건설이 기다린다. 값싼 유연탄을 때는 80만㎾짜리 2기의 이 대형 발전소가 세워져야 4~5년 뒤 전력난에 버틸 수 있다. LNG발전보다 연간 1조200억원을 아껴 전기요금을 2.6% 인하하는 효과는 덤이다. 하지만 아무리 섬에 세워도 수도권 대기배출총량 규제와 사용 연료 협의가 순탄하지 않다. 영흥도의 행정구역이 경기도 옹진군에서 인천시로 바뀌면서 협상이 한층 까다로워졌다.

여름철 영흥도에는 중국을 향하는 남동풍이 분다. 겨울의 북서풍에는 인천이 아니라 경기 남부로 연기가 흩어진다. 하지만 남동발전이 가장 신경쓰는 쪽은 인천시다. 인천시의 재정상태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천의 수많은 단체까지 은근히 눈치를 준다. 장 사장은 “협의를 이달 말까지 끝내야 2014년 착공하는데 우군(友軍)이 없다”며 쓴맛을 다셨다. 한국 전력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그콘서트다.

우리 사회는 재래시장·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게 정의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난 5월 시작된 대형마트·SSM(기업형 수퍼마켓)의 강제휴무의 중간 성적표를 보자. 국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대형마트 매출은 두 자릿수 감소했다. 그렇다면 재래시장은 되살아났을까. 오히려 매출액이 0.7~1.6% 뒷걸음쳤다. 대신 대형마트에서 2933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중 93.5%가 비정규직이었다. 유탄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튄 것이다.

반사이익은 엉뚱한 쪽이 챙겼다. 우선 1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 수퍼마켓들이 풍선효과를 독식했다. 온라인 쇼핑도 수혜자다. 이마트·롯데마트 등은 올해 규제가 덜한 온라인 매출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울 계획이다. 배송 차량을 늘리고 배송 최저 금액은 1만원으로 낮추었다. 신용카드 번호 대신 원(one) 클릭 결제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최근 대형 할인점 온라인 방문자가 급증하고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런데도 서울시의 코스트코 때려잡기가 한창이다. 정치권·정부·지자체가 합동으로 개그콘서트를 하는 셈이다.

낡은 대립구도로 우리 경제를 재단하면 부작용만 낳는다. 조명산업의 쓰라린 경험을 되새겼으면 한다. 전두환 정부는 형광등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했다. 그 후 30여 년간 국내 시장은 필립스·GE·오스람 등 외국 기업이 독차지했다. 정책 실패라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넘어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구분까지 모호해진 세상이다. 한때 토종 강자였던 번개표 형광등은 전량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다. 반면에 외국 기업인 오스람은 안산공장에 300여 명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형광등을 만든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일까.

어느새 우리 경제의 생태계는 매우 다원화되고 복잡해졌다. 더 이상 ‘자동판매기식 대응’은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만 잡으면 학생들이 자동으로 공부하고, 야한 동영상만 막으면 성범죄가 줄고, 교실 창문을 작게 하면 학생 자살이 사라질 것이란 환상은 착각이다. 뉴욕대의 요시노 겐지 교수는 “정의를 꿈꾸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현실을 망각한 정의는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시대 흐름과 시장 원리에 벗어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일요일 밤에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언제까지 편을 갈라 “브라우니, 석탄 발전소 물어! 대형마트 물어! 외국 기업 물어!”만 반복할 것인지….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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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40

파출소 공격했던 중장비 기사, '내 차만 불법주차 딱지 끊었다'
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지만 법 집행 과정 불공정해 보이면
사람들은 결코 승복하지 못해… 관청 일처리 불만, 이것뿐일까

 

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경남 진주시에서 만취한 40대 중장비 기사가 굴착기를 몰고 파출소로 돌진해 와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람은 굴착기 삽으로 경찰 순찰차를 내리찍은 뒤 거꾸로 들어올려 파출소 건물 벽면에 여러 차례 내던졌다. 순찰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났고 파출소 벽도 파손됐다. 이 사람의 난동으로 파출소 현관문과 파출소 옆 가로등, 가로수, 버스 정류장 표시대, 도로 표지판도 부서졌다. 40여분간의 난동은 이 사람이 경찰이 쏜 총알에 허벅지를 맞고서야 끝났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된 이 광경을 보면서 "그 양반 참 성질 한번 대단하군"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파출소에 얼마나 억울한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고 의아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했다. 이 사람의 가족이 방송기자에게 한 말 한마디가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진주시에서 나온 불법주차 단속원이) 우리 차만 (딱지) 끊었어요. 다른 사람들 것은 안 끊고, 다 빼고…."

경찰에 따르면 이 사람은 진주시청 주차 단속원의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 딱지를 떼였다. 그는 시청으로 찾아가 항의하다 주차 단속원을 폭행하고 이를 제지하던 청원경찰의 팔을 물어뜯었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파출소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풀려난 그 사람은 몇 시간 뒤 조사받은 파출소로 찾아와 난동을 부린 것이다. 이 사람은 다른 차들도 불법주차돼 있었는데 그것들은 놔두고 자기 차만 단속해서 불공정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또 관청의 불공정에 항의하다 시비가 붙어서 일이 터졌는데 시비가 벌어진 원인은 놔두고 그 결과만 문제 삼는 경찰 역시 불공정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단속 공무원이 정말로 불공정하게 주차 단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이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단속이 불공정했다고 하더라도 단속 공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경찰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파출소를 때려 부수는 걸 용납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관청의 법 집행 과정이 공정하게 보이지 않으면 당사자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미국 교수들이 1984년 경찰 조사를 받았거나 법원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 시카고 시민 1575명을 상대로 어떤 경우에 경찰이나 법원의 조치에 승복하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결과가 나한테 유리하게 나왔을 때'보다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됐을 때'라고 답한 사람이 두 배나 됐다. 어떤 때 절차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묻자 '경찰관이나 판사가 내게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을 때'와 '경찰관이나 판사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 하고, 나의 권리와 인격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일 때'라고 답했다. 교수들은 조사 결과에 이런 해석을 달았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법 집행자의 행동이 이 감각에 맞는다고 느껴야 법과 법 집행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승복한다."

주차 단속반원들이 굴착기 기사가 '왜 다른 차는 놔두고 내 차만 단속하느냐'고 항의했을 때 그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줬다면, 파출소 경찰관이 이 사람을 조사하면서 왜 단속 공무원을 폭행하게 됐는지, 무얼 억울해하는지 충분히 듣고 그럼에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걸 납득시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시청·경찰·검찰·법원·국세청 등 관청의 일처리 방식에 불만을 느꼈던 사람은 이 굴착기 기사만이 아닐 것이다.

 

 

김낭기 논설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5/2012101502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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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9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을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읽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구독한다." WSJ가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만큼 이 신문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주(主)독자층이라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문이다.

지난달 말 WSJ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인터뷰가 실렸다.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시작된 한일 외교 갈등이 비등점을 찍을 때였다. 노다는 당시 "일본군위안부(성노예)에 대한 배상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새로운 배상(new compensation)'을 요구했다는 표현도 세 번 등장한다. 마치 한국이 배상금을 받은 후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노다의 이 '망언(妄言) 인터뷰'에 우리 정부가 대응한 것이라곤 딱 한 가지였다. 외교부 당국자가 청사 1층 기자실로 내려와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당시에 이 사안은 토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WSJ의 노다 인터뷰를 읽은 외국 독자들이 이 브리핑을 접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반박 브리핑을 한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분위기였다.

2년 전에는 NYT 지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그해 11월 NYT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남북한 간의) 경계선(서해북방한계선·NLL을 의미)을 다시 그을 직권(職權)이 있다"고 주장하는 칼럼이 실렸다. 한국의 좌파가 자주 인용해 온 셀리그 해리슨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글이었다. 같은 해 8월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NYT를 통해 천안함 폭침(爆沈)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외교부는 당시 "이 매체에 반론(反論) 게재를 요청하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외국의 주요 언론 매체가 또 한국과 관련한 왜곡 보도를 하고 우리 정부는 '뒷북'을 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정부 내에서 외국 언론에 대응하는 주체는 외교부와 문화부 산하의 해외문화홍보원으로 이원화돼 있다. 외국 언론 논조 분석은 해외문화홍보원이, 중요한 정무 사안은 외교부가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감한 현안과 관련한 유기적인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한일 갈등처럼 폭발력이 큰 사안이 튀어나올 때 우리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기능은 말할 수 없이 취약하다. 최근엔 해외 공관이 한국 홍보를 문화 행사 개최와 동일시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일부 공관장은 한류(韓流) 관련 행사 개최에 주력해 인사 고과(考課)를 높이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문화 외교도 좋지만 해외 홍보 정책의 기본은 외국의 정부와 국민에게 우리나라의 입장과 정책을 정확하고 빠르게 알리는 것이다. 해외 홍보 담당 부서를 통합하고 관련 정책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 다른 어떤 정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18대 대선주자들은 알고 있을까.

 

 

이하원 정치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5/20121015028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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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8

선거철이 다가오니 다시 ‘폴리페서’가 언론의 도마에 오른다. 본분인 강의나 연구는 소홀히 하면서 특정 후보를 따라 무리 지어 다닌다는 게 언론에 비친 이들의 모습인 듯하다. 세 대통령 후보 진영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수가 무려 500명을 넘어섰다니 그런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필자도 한 후보의 정책을 조언하고 있다 보니 일부 언론사 기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찾아와 강의와 연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취재를 하고 간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듯 대선후보들의 정책 조언에 참여하는 이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상아탑의 순수성을 폄훼하는 ‘망국’과 ‘망학’의 원흉일까. 물론 무릇 학자의 존재 이유는 자연과학이든 인문사회과학이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진리 탐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결과로 얻은 지식을 통해 보다 나은 삶과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려는 의지일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공감대를 구축해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수 있다.

폴리페서들이 선거 기간에 강의와 연구를 소홀히 해 “상아탑의 순수성에 먹칠을 하고 교육을 뒤튼다”는 비판 역시 요즘의 대학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훨씬 엄격해진 강의평가와 연구업적 관리 덕분에 본업을 소홀히 하는 교수는 승진은커녕 아예 퇴출위기에 직면하게 된 지 오래다.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원로교수들은 그런 평가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의도 부실하고 연구업적도 없는 퇴물 학자를 어느 대선 캠프에서 끌어들이려 하겠는가.

더욱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정책연구 인력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한국적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 개발을 위해 대학교수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그리 간단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폴리페서가 나서지 않으면 한국의 개혁은 요원하고 희망이 없다. 개혁적 학자들이 책을 일시 물리고 나랏일을 걱정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필자도 동의한다. 경영학자가 기업을 컨설팅하고 공학자가 기술개발을 자문하듯 사회과학자가 정책개발을 돕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폴리페서의 역할과 관련하여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이들의 역할은 정책을 생산하고 조언하는 것이지 정·관계 고위직을 차지해 직접 집행에 나서는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해 장·차관 자리를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선 교수들에게 그러한 직책을 수행할 만한 능력과 전문성이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정부부처는 해당업무에 수십 년간 종사해온 엘리트 관료들로 이뤄진 고밀도 조직체다. 학교에서의 행정 경험밖에 없는 이들, 학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이 전부인 이들이 이러한 조직을 관리할 만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경우란 상상하기 어렵다. 정·관계 연줄이 없는 이들이 정부부처 간 정책 조율을 원만히 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학자 시절의 지론에 얽매여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하거나 국정을 자기 지론의 실험장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더욱이 국가안보 문제를 다루는 자리라면 한층 더 그렇다. 학교에서의 행정 경험밖에 없는 이들이 방대한 조직을 관리할 수 있을지, 상아탑의 담론이나 자문교수 경험만으로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결정을 내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대통령을 위해 국회와 언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이들을 설득해낼 헌신과 배포가 있을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긍지와 명예로 살아온 학자들이 오로지 ‘대통령을 위해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무릅쓰고 자존심을 죽이는 일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필자가 참여정부 당시 제의 받았던 정보기관장이나 청와대 고위직을 끝내 고사하고 비상근직을 고집했던 것도 이런 생각이 한 이유였다. 필자에게는 불행히도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험을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교수가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자들의 선거 참여는 어쩌면 공적 봉사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정책 아이디어가 한국 사회를 더욱 건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자리 할 욕심’으로 선거에 매달린다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혹시라도 정책을 집행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교수는 차라리 지금 당장 대학을 떠나 ‘생즉사 사즉생’의 자세로 후보를 위해 뛰어라.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자리 욕심은 버려야 한다. 폴리페서가 나쁜 게 아니다. 분수를 모르는 폴리페서가 위험할 뿐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86494&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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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7

짐 오닐은 골드만삭스 자금투자관리의 회장이다. 그의 발언은 막강한 영향력이 있으며, 그는 브릭스(BRICs)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넥스트(NEXT)-11(N-11)”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브릭스 다음으로 성장잠재력이 있는 11개 나라로 한국, 멕시코, 터키 등을 뽑았다.

 

그가 지난 5월, 한국을 “전세계가 열망하는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른바 ‘골드만삭스의 성장환경점수’에 따르면 한국이 183개국 중에서 4위를 차지한 것. 오닐은 브릭스와 N-11 국가들은 한국을 열심히 연구하고 특히 한국의 G7에 근접하는 소득수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언론 및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고 꽤 회자되었다. 음, 그로 인해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이 A+로 상승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정부가 알면 희희낙락했을 이 인터뷰는, 그러나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여기엔 다음 얘기가 있다.

 

짐 오닐은 한 달 뒤 참석한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후한 평가와 관련해 신랄한 비판에 직면한다. 한 참석자는 한국은 아주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오닐은 이후 자신의 글에 이 대화를 거론하면서, “이 말에 이견을 달기는 어려웠다”며, 하지만 “물론 모든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들이 열망할 만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폈다.

 

근데 의문이 든다. 과연 그가 말하는 그 모든 성과들과 높은 자살률은 과연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자살률만은 닮지 않고, 다른 모든 성과만 카피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사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패키지’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한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수가 매일 42.6명인 나라(2010년 통계).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그중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단연 자살(13%)이며,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노인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17.9명), 미국(14.5명)과 비교가 안 된다. 입시지옥과 경쟁사회에 지친 청소년들은 죽음을 택하고, 고립과 가난에 지친 노인들도 자살을 택한다.

 

나아가 빈곤과 정리해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는 나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부른 스물세명의 죽음. 정리해고는 ‘사회적 학살’이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람이 죽어나가도 여전히 정리해고 조항의 철폐는 요원하다. 또한 빈곤의 문제. 서울 시내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100일 동안 6명이 죽는 자살 행렬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부양의무제’라는 장애인 복지의 최대 독소조항 때문에, 아들의 장애인 혜택을 위해 그 아버지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

 

결국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제도가 부른 참극이다. 이 사회의 형상과 분리될 수 없다. 높은 경제성장률, 높은 성장 잠재력, 가장 빠른 경제성장 속도 등 오닐의 ‘성장환경점수’의 항목들은 모두 한국인들을 자살로 몰아붙이는 ‘죽음의 환경’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수출이 1600억달러에서 3700억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배가되고, 주가가 3배 올라도 자살률은 줄지 않았다. 이 화려한 숫자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음흉한지 우리는 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 딱 한 가지인 높은 자살률은 바로 이런 성장일변도 경제개발전략의 패키지 중 일부다. 우리는 계속 이런 허위의 숫자 공화국에서 살고 싶은가? 이렇게 자살을 부르는 사회정치경제체제를 용인할 것인가?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56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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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7

치킨이 위대한 이유는 영웅설화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탄생(계란에서 태어남)

조력자(양계업자)

고난과 역경(도살당해 토막나 튀겨짐)

이겨냄(치킨으로 부활)



 이 과정을 끝내고 인류의 주린 배를 구원하셨도다.


영웅의 서사구조 다 가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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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36

# 훗날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된 어린 김씨는 오흥부원군 김한구의 딸로 15세 나이에 영조의 계비로 간택됐다. 간택 당시 영조의 춘추 66세였으니 자그마치 51세의 나이 차이가 났던 것이다. 심지어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보다도 열 살이 어렸다. 한마디로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나이 차가 큰 왕과 왕후였다.

 # 1757년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3년상을 치르고 영조는 아버지 숙종이 남긴 뜻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새로 왕비를 간택했다. 후궁 희빈 장씨를 중전 자리에 앉혔다가 말로 다 못할 곡절을 치른 숙종으로서는 당연한 유지(有旨)였으리라. 일단 간택령이 내려지면 전국의 15~20세의 양반집 규수들은 일체의 혼사를 멈추고 사주단자를 올려야 했다. 대개는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간택의 최종 권한을 갖지만 임금이 직접 간택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 영조가 그랬다.

 # 1759년 66세의 영조가 직접 간택에 나선 것은 늙은 남자의 엉뚱한 호기심의 발로는 아니었을 듯싶다. 그는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의 지위에서 곡절 끝에 30세가 돼서야 왕위에 올라 52년간 재위하면서 조선왕조 사상 가장 오랜 치세를 누린 왕이었다. 들어온 사주단자로 미뤄 보아 어차피 새 왕비와는 45~50세의 나이 차가 날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니 그가 굳이 직접 왕비 간택에 나선 것은 여색을 밝힌 경망된 처신이었다기보다 오히려 최소한 말이 통하는 사람을 직접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 영조는 간택 면접에서 규수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냐?”고. 대체로 규수들은 “산이 깊다” “물이 깊다”는 식의 교과서적인 답을 했다. 그러나 유독 훗날 정순왕후로 간택받은 어린 김씨만이 “인심이 가장 깊다”고 답했다. 물론 그 물음에 정답이 따로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이 대답이 영조를 사로잡았다. 이에 영조는 다시 물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고. 이에 어린 김씨는 ‘목화꽃’이라고 답한 후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목화꽃은 비록 멋과 향기는 빼어나지 않으나 실을 짜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꽃이니 가장 아름답다”고 말이다. 할아버지 나이뻘 되던 영조가 이 말을 듣고 어찌 감탄하지 않았으랴! 말이 통하는 정도를 넘어 그 한마디 한마디에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이와 너비가 있음을 영조인들 왜 느끼지 못했으랴. 결국 어린 김씨는 왕비로 간택돼 같은 해 음력 6월 22일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 혼례의 전모를 담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를 보면 영조가 정순왕후를 데리고 궁으로 가는 50면에 달하는 ‘친영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379필의 말과 1299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만큼 영조는 계비 정순왕후를 맞이하는 데 정성을 들였다.

 # 1776년 영조가 83세를 일기로 승하했다. 정순왕후는 영조와 17년 남짓 산 셈이다. 그사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희대의 사건도 있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정순왕후 역시 세파에 시달렸다. 그녀에 대한 역사의 평가도 갈린다. 하지만 그녀가 열다섯 어리고 앳된 나이에 국모가 되는 간택의 순간에 했던 한마디는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울린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은 인심(人心) 곧 사람의 마음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하지 않던가.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깊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얕은 수로는 안 된다. 천근, 만근 같은 무게가 있어야 하고 태풍처럼 바닷속 깊은 심저까지 뒤집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뽐내는 겉멋과 향취가 아니라 목화꽃처럼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철저한 자기희생의 자세다! 이것을 작금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동분서주하는 이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귀에 담고 눈에 넣고 마음 깊이 새겼으면 한다.

정진홍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77248&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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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6

정교한 DB 통해 여행 상품 개발… 영화 관람객 파악, 빵 주문도 예측…
방대한 분량의 정부기관 DB는 상업 활용 못해서 쌓아놓고 방치돼

 
지난 5월 웹 트래픽 동향과 전화 상담 내용을 분석하는 롯데관광 IT 지원팀은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주로 법인의 골프 여행이 많았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섬에 대해 개인의 리조트 문의가 부쩍 늘어난 것이었다. 이 회사는 바로 6~8월의 이 지역 여행 상품을 대거 개발해서 출시했고, 개인 여행자를 위한 여객기 좌석을 대량 확보했다. 이 회사는 또 2003년부터 쌓아놓은 조회·예약 수천만 건의 데이터베이스(DB) 분석을 통해서 출발 1개월 전쯤 관심 여행지를 웹사이트에서 반복 검색하고, 2주 전쯤 전화로 상담하며, 출발 10~7일 전에 계약하는 국내 여행객들의 패턴을 알고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상담객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었기에 전화 문의가 몰릴 시점엔 이미 상품 안내 문구까지 새로 마련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잘 갖춰진 DB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12일 경기도 구리시는 섭씨 7~23도의 기온에 아주 맑은 날씨가 예상된다. 이곳 파리바게뜨 가게의 11일 모니터엔 '내일' 최근 2주치 평균보다 판매 변동 폭이 제일 큰 제품군(群)으로 케이크 종류(+34%)가 떴고, 이 중 치즈·고구마·블루베리 요거트 케이크 등 세 제품이 추천됐다. 이 지역 빵집 주인들은 이 '예측'을 참고해 본사에 제품을 주문한다. 파리바게뜨는 기상 정보 제공 업체인 케이웨더와 전국 169개 지역의 5년치(4월 말 기준) 제품 판매량과 날씨의 관계를 분석한 DB를 구축해, 6월부터 가맹점에 '날씨판매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한 달 뒤인 7월 매출을 보니, 2010년보다 가게당 평균 30%가 늘었다고 한다. 5년치 DB는 이달 말 다시 업데이트된다.

경기도와 인천 일부의 200만 가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삼천리는 전체 사용량을 99% 정확도로 예측한다. 최근 5년간 도시가스 사용량을 요일, 공휴일 여부, 경기(景氣), 체감기온 등으로 세밀히 분석한 DB를 구축한 덕분이다.

'야한 영화는 남성이 많이 본다'는 속설(俗說)은 최소한 극장에서는 이제 안 통한다. 온라인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에 따르면, 지난 4월 영화 '은교'의 예매자 중 여성이 71%였다. 2008년 11월 '미인도'도 66%가 여성이었다. 연간 1500만명인 이 사이트의 고객 DB를 분석한 결과다. 이 회사는 어떤 유형의 영화가 어느 나이대, 어느 성별(性別)에서 인기가 있을지 미리 안다.

하지만 이는 자체적으로 DB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분석할 능력을 갖춘 기업에나 통하는 얘기다.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정부 기관의 공공 DB는 그 막대한 양(量)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기상·특허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민간 기업에 이를 제공할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한 의료 정보 사이트 운영자는 "복지부와 식약청, 병원 등에 어마어마한 약품·의료 정보가 있지만 접근이 안 돼 자료 수집에 수천만~수억원씩 이중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미 2008년 국가 자본(capital)에 DB 자산을 추가하도록 권고했다. EU(유럽연합)·미국·영국·호주 등은 공공 DB를 민간에 개방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수년 전에 정비했다. 국내에서도 공공 DB를 민간에 개방하면 부가가치가 약 11조원 발생하고, 15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의 한 DB 분석가는 "업데이트 관리가 부실해 활용은커녕 쌓아놓고 방치하는 공공 DB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국회엔 뒤늦게 지난 7월, 김을동 의원의 발의로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우리 공공 DB는 '잠자는 공룡' 신세다.

 

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27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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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5

美 차기 대통령과 中 시진핑, 본격 패권 경쟁 초석 놓을 것
'美 밀어내기'와 '中 묶어두기'… 동아시아서 치열한 싸움 예상
역사 얽힌 영토 분쟁도 연결돼… 한국, 수평적 네트워크 지향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과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2010년대 중반을 장식할 세계사의 새 라이벌이 결정될 것이다. 세계 1위 미국과 2위 중국의 격차가 점차 좁혀져 가는 가운데 최종 승부까지 10년 남짓 남았다는 것이 관측의 대세이다. 부상하는 중국의 오르막 그래프와 약화되는 미국의 하강 궤적이 교차하는 접점은 지금 추세라면 2020년대 중반쯤일 것이다. 구매력평가지수 기준 양국의 GDP, 그리고 동아시아에 사용되는 양국의 군사비는 2020년대 중반쯤 비슷해질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고, 중국은 여전히 9%대를 유지하고 있다. 막중한 재정 적자로 미국의 군사비는 줄어드는 반면, 중국은 매년 15%를 넘는 군사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가진 힘만큼 원하게 되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은 '핵심 이익(core interest)'을 더욱 확장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 이상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은 재활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에 핵심 이익이던 것들을 이제는 주변 이익으로 놓아버려야 하는 처지이다. 중동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역내 지정학적 변화에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새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차기 주석은 역사 속 화려한 주인공으로 기억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覇權)이 부활한다면 오바마는 그 밑거름이 된 인물로,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한다면 시진핑은 그 초석을 놓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양국 모두 국제경쟁력 저하, 국내 불안정 등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지도자가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소용돌이의 눈, 미·중 경쟁의 핵심 무대는 동아시아다. 가난해져가는 유럽, 혼란한 중동과 달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미국에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매력적인 디딤돌이다. 부시 전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 제2의 테러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었다면 오바마와 차기 대통령의 소명은 동아시아에 집중하여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고 패권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회귀(回歸) 전략'은 설사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변함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경쟁은 복합적이다. 군사 부문에서 양보란 없다. 중국은 소위 '반(反)접근·지역 거부 전략'으로 미국 밀어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거점을 연결하여 중국이라는 큰 고기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새로운 어망(漁網)을 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의 신무기 개발 소식은 속속 들어올 것이다. 여전히 군사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짠다는 소식도 계속 들릴 것이다. '미국 밀어내기'와 '중국 묶어두기' 간의 치열한 싸움이다.

경제 부문에서 미·중 간 협력은 구조적 필연이다. 미국에 중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수출시장이고, 중국에 미국은 무역 흑자 창출의 보고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시장이 평화를 온전히 보장할지는 미지수다. 환율, 지적재산권, FTA 네트워크 등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시장이 정치적 대결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중 경쟁은 동아시아 특유의 분쟁과 연결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례로 동아시아 영토 분쟁은 근대적 주권 영역 확보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상처받은 과거의 아픔을 건드리는 마음의 분쟁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민족 간 자존심 싸움에서 섬 하나에 걸린 이익은 핵심 이익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지도자는 국력에 걸맞은 지위를 요구하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 속에 더욱 공격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센카쿠 분쟁에서 보이듯이 미국의 개입도 용납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미국은 일본의 기대와는 달리 도서 분쟁을 주권 문제로 규정하고 불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새 지도자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특수성을 더욱 절감해야만 중동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한일 갈등과 같은 동맹국 간 분쟁은 미국에 특히 치명적이다.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는 군사·경제에 이은 마음의 경쟁에서 패권 발판의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불개입과 수수방관만이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인들은 일방주의(一方主義)를 행사하는 미국이나 패권적인 중국 모두를 원하지 않는다. 21세기 동아시아인들은 수평적 네트워크가 강화된 다차원적이고 민주적인 동아시아를 원한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한국이 강대국 외교를 지향하지 않는다 해서 덜 야심적인 것은 아니다. 대다수 동아시아인이 원하는 새로운 지역을 꿈꾼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중보다 더욱 야심적일 수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를 위한 전략적 외교 문화에 젖어갈 때 미·중 간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0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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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3

며칠 전 경기 동두천에 강의를 하러 갈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탔다. 동두천에 닿으려면 종로 3가역에서 족히 한 시간은 넘게 가야한다. 다행히 두어 정거장 지났을 때 내 앞에 앉아있던 분이 일어서기에 내가 거기 앉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일산에서부터 전철을 타고 내려온 터라 다리가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다행이다 생각하며 앉아 갖고 있던 책을 펼쳐 읽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나이는 어림잡아 예순 정도 돼 보였다. 내가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박힌 문고본 책을 읽고 있으니까 신기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작은 책을 읽느냐, 글씨가 보이기는 하느냐 물어오기에 글씨 보기는 좀 힘들지만 책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늘 갖고 다니기 좋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그러냐고 하면서 수긍하는가 싶더니 이내 뭣이 맘에 안 드는 것인 양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책도 아닌 거 같은데 뭘 그리 열심히 보냐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까 아주머니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자기는 아들과 딸이 각각 몇 씩 있는데 다들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잘해,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며 돈도 많이 번다는 말이다. 말을 하다 보니, 지금 이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이 모두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 자유를 줬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무척 황당하게도, 아주머니 말씀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젊은이들이 자꾸만 개성을 찾다보니 사회가 제멋대로 흘러간다는 것.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봐도 다 함께 한길로 가면 더 빨리, 아무 문제없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파업이나 시위를 하는 것도 다 나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겁나는 말인가. 동두천까지 가는 동안 끊어지다 이어지다 하면서 아주머니와 이런 얘길 나누고 나서 강의 시간에 방금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며 책 한 권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윤구병 선생님이 지은 <꼭 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고 2004년에 표지를 새로이 만들어 나왔을 때도 다시 구해서 읽었지만 여전히 큰 울림으로 남는 글이다. 내용은 윤구병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짧은 글들로 엮은 것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진지하게 읽어야 될 책이다.

책 제목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우리들은 때로 한 방향만 바라보게 만드는 애꿎은 가르침 때문에, 큰 권력이나 인기를 가진 사람이 된다거나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몇 가지 목표만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며 자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본다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행동하고, 획일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으며, 개성이 무시되고, 심지어 머리모양이나 옷 입는 것마저 똑같이 맞추도록 강요된 사회를, 우리는 미래세계를 그린 책이나 영화에서 흔히 본다. 개성이 없는 세상은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연을 보면서 삶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배워야한다. 자연은 늘 똑같은 것 같지만 사실 저희들끼리 어울려 좋은 것을 배우고 닮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으스대는 사람을 보고 배우지는 않는 것 같다. 쉽게 생각하면 다 똑같은 말을 하거나 같은 길로 몰려가는 게 행복을 위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몇 사람만 잘 살도록 할 뿐이다. 모두 다 행복하려면 저마다 다 다른 것이 좋다. 한 나무에서 자라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갈색 잎사귀도 잘 보면 다 제각각으로 생긴 것처럼 행복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소중하다. 윤구병 선생님의 글을 조용히 읽어본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어. 하다못해 서울운동장의 축구장에 깔린 잔디 잎들마저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하나도 꼭 같은 것은 없어. 우리 아파트 뒷산 솔숲의 소나무 잎사귀도 자세히 견주어 볼라치면 하나도 똑같은 것은 없어. 너희들도, 너희들 가운데 일란성 쌍둥이도 모두 다르지."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12100441217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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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3

영국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흥미로운 글 하나를 게재했다. 내용인즉슨, 몇 년 전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우연히 한 비행기에 탔다. 당시 현직으로 재임하던 두 거물은 정치 성향이 워낙 상극인지라 행여 서로 불편해할까 수행원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친해졌다고 한다. 비행 내내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가장 공감했던 주제는 ‘세계의 빈곤’이었다. 이후 양국이 제3세계 에이즈와 결핵 치료제 보급을 위해 파트너십을 맺은 건 그리 머지않은 미래다.

특히 시라크는 룰라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곧장 오랜 벗이자 당시 외교장관인 필리프 두스트블라지를 불렀다.

“우리가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가난과 싸울 프로젝트를 구상해 보게.”



2006년 출범한 국제 의약품 보급단체 ‘유니타이드(Unitaid)’는 이렇게 탄생했다. 시라크 가 현직에서 물러난 뒤 열정을 쏟은 이 단체는 지금까지 22억 달러(약 2조4400억 원)어치의 약품을 가난한 나라들에 공급했다. 말라리아 치료제의 국제가를 7달러에서 0.33달러로 낮추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퇴임 후 빈곤 퇴치에 앞장선 룰라도 물심양면 지지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이 훈훈한 미담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등장한다. 두스트블라지 전 장관이 정신적 지주로 여기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유니타이드 운영 문제로 고심하던 그에게 ‘마이크로 도네이션(micro-donation)’이란 아이디어를 일러 준 게 클린턴이었다.

마이크로 도네이션은 말 그대로 ‘소액 기부’를 말한다. 자선단체 후원금을 기업이나 부자의 일시적 선행에 기대지 않고 선진국의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세금 일부를 조금씩 모아 충당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유니타이드는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여행객이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탈 때 내는 공항세 가운데 1유로(약 1440원)를 재원으로 확보했다. 클린턴이 창립한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역시 이런 방식으로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마련한다. 그는 이달 초 시사주간지 타임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활동이 세상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역설한 바 있다.

“정부와 기업, 자선단체는 오랫동안 인류의 질병에 대항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세 분야를 잇는 혁신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우리는 더 큰 진보를 이뤄 낼 수 있습니다. 이는 각자 별개로 움직여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엄청난 성취입니다. 그 때문에 함께 일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직 대통령들의 활동이 현직 행정수반 업무보다 더 숭고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한 국가를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이젠 한국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뒤 아름다운 행보를 걷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잠깐 얘기를 되돌리자면, 쿠퍼의 칼럼 제목은 ‘조용히 지구를 바꾸는 법’이다. 세간의 이목이 시들해져도 묵묵히 인류에 기여하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적이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마다 거의 매번 시끄러웠던 이 땅에선 너무 먼 얘기일까. ‘29만 원 쇼’는 이제 사절이다.

 

 



정양환 국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1012/50047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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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2

『한국의 황제 경영vs 일본의 주군 경영』이란 책을 낸 서울대 김현철 교수의 강연을 며칠 전 들었다. 그는 한국의 경영 특징을 황제 경영, 일본은 주군(主君) 경영이라 명명했다. 한국은 오너가 전권을 가지고 경영권을 행사한다. 반면 일본 경영자는 ‘존재하지만 군림하지는 않는다’며 실질적인 경영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주군은 봉건시대 영주를 뜻하는 일본식 표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은 “한국이 일본에 파는 건 소주와 김치, 여자뿐”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드라마 등 한류도 원인이었지만, ‘삼성 쇼크’가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이익이 일본 9개 전자업체의 총 이익보다 훨씬 많았던 2009년 2분기의 경영 실적 얘기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은 40년 가까이 세계를 주름잡았던 전자업체였다. 또 일본은 국내 전자업체의 스승이었다. 1950~60년대 전자산업에 처음 뛰어들 당시 일본 업체들의 자본과 기술을 도움 받았다. 게다가 일본의 전자산업에 대한 애정은 특별했다. 자신들이 패전한 건 미국의 전자산업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50년대부터 거국적으로 육성한 산업이었다. 이런 자존심에 삼성전자가 깊은 생채기를 냈으니 일본의 충격은 대단할 수밖에. ‘전자 총 붕괴’ ‘한국 경계령’이 쏟아졌던 배경이다.

일본의 원인 분석이 시작됐다. 기업 구조는 차이가 없었다. 일본도 우리처럼 그룹 경영 시스템이다. 하지만 계열사 수는 우리보다 더 많다. 일본은 웬만한 대기업도 10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지만 우리는 많아야 60~70개다. 계열사 간 출자 역시 똑같다. 오히려 일본이 더 심하다. 순환출자는 물론 우리는 진작부터 금지한 상호출자도 일본에선 예사다.

김 교수는 유일한 차이점이 황제 경영과 주군 경영이라고 설명한다. 전권을 쥐고 경영권을 행사하는 리더가 있느냐는 점이다. 한국은 오너가 그 일을 하지만, 일본은 그런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이 잘나가는 건, 그럼으로써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재빨리 극복한 건, 신속한 의사결정과 미래를 내다본 장기 투자 덕분이라는 지적이다. 바로 오너 체제 얘기다. 그런데 어쩌랴. 남들은 칭찬하는데, 우리 내부에선 개혁 대상이니 말이다.

기업 지배 구조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없다는 건 정설이다. 그룹 경영과 오너 지배 구조도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이다. 독립기업과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답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벌개혁’ 하면 오너 지배 구조부터 문제 삼는다. 1% 지분율로 100% 경영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문재인 후보가 어제 내놓은 재벌개혁안이 그 방증이다. 다른 후보들도 대동소이하다. ‘재벌개혁’ 하면 출자총액제한제 부활과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부터 들고 나온다.

현행 재벌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재벌의 지나친 탐욕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감이다. 이타(利他) 없는 이기(利己), 양심 없는 경제는 온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다. 가령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는 시정되는 게 옳다. 물론 이는 재벌 체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벌 아닌 애플도 불공정 거래가 예사다. 중국 폭스콘과의 거래가 그렇다. 근본적으로는 원청-하청업체의 영원한 숙제다. 그렇더라도 불공정 거래는 사라져야 한다. 재벌그룹이 빵집을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게 좋다. 기업 경영에도 강자가 지녀야 할 금도(襟度)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도 강화돼야 하고, 기업을 이용해 오너 가족이 사익(私益)을 챙기는 것도 막아야 한다.

재벌개혁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불공정 거래와 불공평한 법 집행, 오너 가족의 사익 편취만 규제하면 된다. 더 나가선 안 된다. 신속한 결정과 장기 투자라는 황제 경영의 강점을 우리 스스로 무너뜨려선 안 된다. 재벌개혁의 초점이 지배 구조가 돼선 안 되는 이유다. 실효도 없고, 경제민주화와도 큰 관련이 없다. 순환출자 금지가 양극화 해소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알 일이다. 이러다가 암탉의 배를 가르는 우(愚)를 범할 것 같아 그게 걱정이다.

김영욱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67533&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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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1

두바이가 다시 붐비고 있다. 두바이 국제공항의 환승 인원은 2009년 월평균 350만명에서 올해 470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컨테이너 물동량과 외국인 직접투자도 큰 폭으로 늘었다. 최근 인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타지마할을 4배 크기로 확대한 결혼식장과 고급 호텔을 짓기로 하는 등 쇼핑몰·호텔 신축 계획도 발표되고 있다. 두바이는 다음 달에 국제적인 골프대회와 럭비대회 등도 갖는다.

두바이 정부는 오페라하우스·현대미술관 건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관광·문화 중심 도시 계획도 본격화하고 있다. 두바이 중앙은행은 올해 4%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버블 붕괴로 반 토막 났던 부동산 가격도 회복세이다. '최고층 유령 건물'이라고 조롱받던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칼리파'도 대부분 분양이 이뤄졌고 일부 빌라 가격은 버블 붕괴 전 가격을 회복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일부 언론은 "두바이에 다시 버블이 발생하고 있다"는 경고까지 하고 있다.

전 세계 크레인 10대 중 3대가 몰려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개발붐이 불던 두바이는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2009년 국가 부도 위기로까지 몰렸다. '두바이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충격을 줬다. 이웃 아부다비로부터 긴급 지원을 받아 위기를 간신히 넘겼지만 '사상누각(沙上樓閣)'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의 비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물론 아직도 빈집과 빈 사무실이 남아 있는 등 '버블 붕괴'의 상흔이 완전히 아물지는 않았다. 대외 의존형 경제구조인 만큼 외부 변수에 취약한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 금융 위기, 재정 위기의 삼중고(三重苦)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이나 20여년째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두바이의 재기(再起)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두바이의 재기는 '중동의 봄'이 기여했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중동의 독재자들이 몰락하고 사회 혼란이 발생하자 이를 피해 치안이 좋은 두바이로 이주하는 부유층이 늘어난 것이다. 미군 철수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아프가니스탄의 부유층도 두바이를 선택하고 있다. 중동뿐 아니라 떠오르는 신흥시장인 아프리카의 관문(關門) 역할도 할 수 있는 도시가 두바이다. 두바이에는 세계 도시들을 연결하는 허브 공항이 있고 무역·금융센터도 있다. 아프리카 경제 발전의 수혜를 볼 수 있는 곳도 두바이이다. 중동에 진출하려는 외국 기업을 위한 인프라를 갖춘 나라도 두바이만 한 곳이 없다. 게다가 두바이는 거주 인구의 80% 이상이 외국인일 정도로 '다문화(多文化) 도시'이다.

두바이 모델은 단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국내에서 수요를 찾기 어렵다면 눈을 외국으로 돌려야 한다는 교훈을 던진다. 한국도 경기 침체로 중단된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되살리고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외국 수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과 함께 살기보다 인구 감소를 택하겠다는 일본식 모델을 따른다면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는 한국은 부동산 장기 침체는 물론 내수시장 축소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두바이로부터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초고층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부족한 내수를 극복하는 다문화·글로벌 전략이다.

 

 

차학봉 도쿄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29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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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0
11일자 신문에 10일 낮 내린 폭우로 청계천에 고립된 시민이 흙탕물이 쏟아져 나오는 수문(水門) 옆에서 바지를 걷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청계천에서 탈출하려고 제방 벽을 기어오르려 한 시민도 있었다. 이날 서울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제방 스피커를 통해 대피 안내 방송을 했다. 안전 요원들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피를 유도했다. 하지만 청계천에 걸린 다리 아래마다 비를 피하겠다며 수십명씩 시민이 모여들어 대피 안내 방송을 무시했다. 안전 요원에게 "비가 이렇게 오는데 당신 같으면 다리 밖으로 나가겠느냐"고 짜증을 낸 시민도 있었다. 일부 시민 중엔 안내 방송을 못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청계천의 249개 수문이 열리면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자 뒤늦게 대피 소동을 벌였고, 수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13명은 119 소방대에 의해 30분 만에 구조됐다.

청계천은 한번 비가 오면 빗물이 한꺼번에 청계천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구조이므로 서울시는 각 청계천 수문을 시차(時差)를 두고 여닫아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안내 방송이 잘 들리도록 스피커 음량도 키우고 비상시에 대비한 간이 피난 사다리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청계천에서 벌어진 일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압축해 보여줬다. 시민의 안전이 확보되려면 국가도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하지만 시민 개개인도 자기 할 바를 해야 한다. 야영하지 말라고 정해놓은 곳에서 야영을 하다 변을 당하거나 수심이 깊으니 수영하지 말라는 경고판을 무시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그러고는 정부가 잘못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흔하다.

농정 당국이 2009년부터 소 사육 두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며 과잉 사육을 경고했지만 농민들이 이를 듣지 않는 바람에 올해 초 송아짓값이 마리당 1만원대로 떨어지는 사태를 빚었다. 그러자 일부 축산 농민은 소의 정부 수매를 요구하며 소를 끌고 서울로 올라오는 '상경 시위'를 시도했다.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각 개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경고·설득·권유·지도할 책임이 있다. 국가가 그 임무를 소홀히 한다면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할 일을 다했는데도 개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피해가 생겼다면 국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이 성숙한 공동체가 되려면 국가와 시민 양측이 상식과 규범을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2827.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29

수확의 계절이다. 그러나 농부들의 마음은 어둡다. 태풍이 스쳐간 들판에 한숨이 무성하다. 기후변화, 어디 농부들만의 도전이겠는가? 로마의 멸망도, 몽골의 유럽 침입도 기후변화가 낳은 결과였다. 다시 기후변화의 정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중동의 정치적 격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기온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자 러시아를 비롯한 곡물수출국은 수출통제에 나섰고, 밀 가격은 폭등했다. 농업기반이 허약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권들은 결국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우리의 식량안보는 어떤가? 식량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11년 기준 자급률은 밀 2.2%, 옥수수 3.3%, 콩 22.5%에 불과하다. 쌀 자급률의 급격한 하락도 주목할 만하다. 한때 남아돌아 처리를 둘러싸고 골치를 앓았던 쌀이다. 그랬던 쌀 자급률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농지전용과 관련된 규제가 해제되면서 절대농지가 감소했다.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변화로 생산도 감소했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생산이 줄고 곡물에 대한 수출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식량민족주의 경향이다. 이 상황에 곡물의 투기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이 상승하면 국내 축산농가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사료의 수입의존율은 85% 이상으로,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는 거의 100% 수입이다.

 

농업에 대한 몰이해가 농업의 몰락을 가져왔다. 낡은 수출지상주의와 케케묵은 토건논리가 식량안보를 붕괴시켰다. 농업은 미래 산업이다.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농지전용을 막고, 유통체계를 개선하고,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백년을 바라보는 농업정책을 고민할 때다.

 

북방 농업도 대안 중 하나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작물은 81㎞ 북상한다. 사과와 포도 등 저온성 작물의 북진이 빠르다. 이제 곧 38선이다. 농부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종자개량 기술과 축적된 농업기술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북방의 농토고, 노동력이다. 남북 농업 협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도 이제 농업협력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남쪽에 쌀이 남아서 대북지원이 남쪽 쌀 수급의 가장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는 쌀이 없다. 일방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상생하고 호혜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삼일포 협동농장의 사례도 있고, 통일딸기 사업의 경험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남북의 농부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평화를 기르고 통일을 수확할 가능성이 사라졌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에서 밀농사를 추진했던 젊은 농부를 만났다. 수확한 밀을 대륙철도에 싣고, 북쪽에도 주고 남쪽으로 갖고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실현될 수 없었다. 물류 문제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의 광활한 대지도 남쪽 농부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체계적인 정책이 부재했고, 환경조성도 미흡했다. 일본은 이미 30년 전부터 해외 농업기지를 확보하여 가공용과 사료를 조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후변화,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북방 농업에서 해답을 찾자. 저온성 작물들의 월북을 허하라. 밀양의 농부들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젊은 농부들이 대륙의 광활한 대지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 보자.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5374.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