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1. 13:27

섬 두고 대립하는 中·日 패권싸움 청일전쟁과 비슷… 自衛 능력 없이
'중립'만 믿은 조선 험난한 국제정세 지금 대선 주자들 어떻게 헤쳐갈까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직후 중국과 일본이 충돌 직전까지 갔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우리 영토에서 반보(半步)도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아베 자민당 총재는 "1㎜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120년 전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고 동아시아를 뒤흔든 청일전쟁 전야(前夜)도 이랬을 것이다. 청일전쟁은 동학농민혁명 발발을 빌미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했던 중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방에게 한발씩 물러나라고 티격태격하다가 불붙은 전쟁이었다.

베이징대의 한 동아시아 전문가는 댜오위다오 분쟁을 "장기판의 졸(卒)과 같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작은 섬을 둘러싼 싸움 같지만 그 뒤에는 동아시아 정치라는 큰 판이 있다는 것이다. 청일전쟁도 바탕에는 한반도 지배를 둘러싼 중·일 간 패권싸움이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 것인가. 그때는 신흥(新興) 일본이 먼저 도발하고 중국이 몰리는 입장이더니 지금은 대국(大國)으로 떠오른 중국이 일본을 닦아세우는 모양새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뒤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해 한국을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이란 나라는 열강들이 한반도 운명을 놓고 벌인 장기판의 판세를 얼마나 읽고 있었던가.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한창 험악했던 달포 전 '세계 속 한국근대사'라는 책이 서점에 나왔다. 여기에 러일전쟁 무렵 방한한 영국 기자 맥켄지와 조선 조정의 실력자인 탁지부 대신 이용익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맥켄지가 "조선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이용익이 대꾸한다. "미국·유럽 등과 조약을 맺고 있고 그들이 독립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맥켄지가 다시 말한다. "아니 모르시오?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조약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당신들이 그 조약들을 지키도록 하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도 이용익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중립이라는 걸 천명했고, 우리의 중립을 존중하라고 당부했소."

러일전쟁 때 일본 전쟁 비용의 60%는 영국의 로스차일드, 미국의 JP모간 같은 국제 금융자본이 일본이 발행한 전쟁 국채를 매입해서 댄 것이었다. 이 나라들이 전쟁에서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일이었다.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을 짜고 있는데 조선의 위정자들만 이를 모르고 '조약' '중립' 운운했던 것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전사자는 8400명, 청군(淸軍) 전사자는 3만5000명이었다. 그런데 조선군 병력은 모두 합해 40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왕비가 궁 안에서 외국군에 시해당하자 임금이 살기 위해 이곳저곳 외국 공사관을 기웃거렸던 게 당시 조선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갈 무렵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敵)을 단 한 대라도 때릴 능력이 없는 나라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를 아무런 이익 없이 도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력이나 국가적 위상이 120년 전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동아시아 판세도 당시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도 교과서에 안 나오는 100여년 전 역사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대선 주자들에게서 중국의 굴기로 출렁대는 동아시아의 험난한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해 우선 듣고 싶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세계사의 큰 틀에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2/2012102202795.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