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청년 시민’이 생겨나고 있다. 텀블벅 같은 스토리 펀딩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활기차고 기발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될 공간과 활동수당이다.
스톡홀름, 헬싱키, 뮌헨을 거쳐서 베를린에 다녀왔다. “치매, 국가 책임”, “청년 실업, 국가 책임” 등의 단어를 접하면서 국가 단위가 건재한 곳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였다. 뮌헨의 청년들은 이자르 강변에서 떨어지지 않는 해를 벌거벗은 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파도가 생기는 다리 밑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곡예 같은 서핑을 즐기는 무리가 도시를 관광지로 만들고 있었다. 급류에 몸을 맡긴 채 떼 지어 보디서핑을 하는 청년들도 있었는데 여행객 사망 사건으로 얼마간 금지했다가 시민들의 저항으로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헬싱키에서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청년과 아주머니가 만든 단체가 주최하는 ‘하늘 아래서의 저녁 식사’라는 행사가 벌어졌다. 도심부 4차선 거리를 막고 끝없이 이어진 8인용 테이블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길을 막은 불편함을 시민들은 기꺼이 감수했다. 할머니의 숄을 꺼내 입은 듯한 아주머니팀은 홈메이드 케이크를 나누어주었다.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이 행사를 세계 각 도시에서 벌이기로 했다는데, 서울시도 개장한 서울역 고가에서 함께하면 어떨까 싶다. 주최 측을 만나보았는데 이들은 시의 허락을 받는 것이 어려웠지 실제로는 의자 빌리고 테이블 예약을 받고 협찬받은 물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팀은 또 ‘청소의 날’을 정해서 집 청소를 하고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벼룩시장을 시작하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발레하기, 사우나를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공공건물 뒤편에 이동 사우나 설치하기, 부엌과 응접실을 공개해서 전시장을 만들고 파티하기 등 시민들이 서로 엮여서 행복해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마술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이 작업을 주도하는 야아코라는 청년은 행정당국에 신청한 후 소식이 없으면 통보하고 실행한다면서 시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으니 시민들이 지지자가 되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자본, 반관료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야 한다며 “창조하는 것 자체, 사람들과 동네가 바뀌는 것을 보면 얼마나 즐거운가?”라고 말했다. 새로운 발상, 협업 가능한 동료, 그리고 펀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이런 공유 공간과 소셜 미디어로 인해 가능해졌다.
북유럽의 특징은 무엇보다 공터가 많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다음 7세대’를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인디언 추장의 말을 이곳 주민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지 곳곳에서는 날마다 채식 그린 마켓 등이 펼쳐지고 임시 텐트극장과 수리하여 고친 놀이기차가 다니는 임시놀이터가 차려졌다. 버려진 옥상 주차장을 텃밭으로 가꾸어 독특한 자신들만의 쉼터로 만든 곳은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세계 유명 클럽으로 변한다. 청년들의 실험장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방황과 실업으로 고민이 많다는데 막상 이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시민’처럼 살고 있다. 널널한 시간 속에서 의논하면서 사는 삶 말이다.
공유 작업장(coworking space)에서 청년들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합작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이들은 “그냥 한번 해보자”는 모토로 가볍게 움직이고 “서로 좀 방해를 하자”면서 서로 연결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을 보면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곧 로봇에 의해 대체될 ‘2등 국민’이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일등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유하고 발명할 여유가 있는 시민’ 말이다. 4차 산업 운운하는 시대에 자발성과 자치에 따른 시민의 이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취준생에게 한달에 30만원씩 3개월간 구직촉진수당. 하반기 6개월간 약 11만6000명이 지원. 취업성공패키지 규모 36만6000명” 등의 청년정책 발표를 들으면 갑갑해진다. 실은 한국에서도 ‘청년 시민’이 생겨나고 있다. 텀블벅 같은 스토리 펀딩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활기차고 기발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될 공간과 활동수당이다. 취업 성공 신화와 수치화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처럼의 시민혁명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 것이다. 고도기술관리 시대의 국가발전은 오로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시민들의 활동에 의해서 추동된다. 청년들이 공화국의 시민으로, 동네의 주민으로,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어 자기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1453.html#csidxdb59b7ff5bf3b2bac1f6b3c47c11a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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