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의 피해 지역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마저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피해 주민들이 갈증을 참지 못해 오염된 물이라도 마시게 된다면 전염병은 더욱 창궐할 수 있다.
지난달 말 환경산업기술원은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市)를 방문해 빗물을 활용해 깨끗한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설비를 제공했다. 민다나오섬은 필리핀에서 가장 빈곤한 20개 주(州) 중 14개 주가 위치한 대표적 빈민 지역이다. 우리가 방문한 다바오시 역시 식수가 부족하고 오염이 심각했다. 특히 수도요금이 t(톤)당 약 3200원대로 가난한 주민에게는 금값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이에 빈민 지역 주변의 아나윔 초등학교에 우리 기술원이 연구개발한 '저(低)전력 소규모 정수 처리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제공했다. 다바오 지역은 다행히 강우량이 풍부해 빗물을 활용한 환경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통해 비싼 수도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800여 지역민에게 매일 생활용수 10t, 식수 2t씩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개발도상국의 생존과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현지 정치, 문화, 환경을 고려해 개발하는 기술을 '적정환경기술(Appropriate Environmental Technology)'이라고 한다. 필리핀처럼 갑자기 태풍 피해를 본 나라는 적정환경기술이 더욱 절실하다.
'소외된 90%(other 90%)'라는 말이 있다. 전 세계에서 환경기술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적정환경기술이 이들 90%를 위해 쓰이기를 기대한다. 해외 원조를 받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제는 환경기술을 개도국에 전파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9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환경기술 연구개발과 성과 확산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환경산업기술원의 설립 취지 중 하나도 한국의 환경기술을 통해 개도국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새 정부 국정 과제인 '과학기술의 국제화'의 일환으로 개도국에 한국의 환경기술을 보급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9개국에 적정환경기술을 보급할 계획이다.
한류는 대중문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 분야에서도 신(新)한류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윤승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3726.html
'교양있는삶 > 좋은 정책&사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탈레반 움직인 '‘아버지의 수염' (0) | 2014.09.14 |
---|---|
[분수대] 난 별, 넌 별, 빛나는 별 (0) | 2014.08.18 |
[분수대] 규제만 규제하면 정말 대박이 날까 (0) | 2014.08.18 |
[칼럼 36.5°]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복지 (0) | 2014.08.18 |
[특파원 리포트] 위기 후 새 국가 모델 고민하는 유럽 (0) | 2013.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