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복지 사각지대의 결식아동 지원 사업 방식을 놓고 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식권 형태의 바우처를 줘 식당에서 밥을 먹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도시락 배달 등을 통해 급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우처 방식에서 나타난 부작용 때문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바우처를 현금화해 PC방으로 달려갔고, 심지어 일부 부모는 술값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바우처는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정크푸드로 몰려 성장기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우처를 줘도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시락 급식은 아동의 집에 찾아가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전용(轉用)을 막을 수 있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락 제작ㆍ배달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배달 과정에서의 변질 우려 등 위생문제, 메뉴에 대한 아동들의 선택권이 없는 점 등 단점도 있었다.
편의성과 효과 등에서 두 방식의 장단점은 명확했지만 분명한 점은 바우처라는 물질적 지원만으로 아동의 끼니 해결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결식아동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다. "복지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굶는 이유는 집에 돈과 쌀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부모가 맞벌이거나 조손 가정이어서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밥만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시락 배달의 또다른 장점은 대면접촉으로 인한 관계 형성이다. 배달원들은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어려움이 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먹지 않은 도시락이 쌓이는 것은 결식 아동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였고, 아동의 위기 상황에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배달은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선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돼 번거로운 일이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눠주는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는 바우처 방식이 훨씬 편한 선택이다.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복지 사업 참여다. 장애인, 실직자, 경력단절 여성 등 취약계층을 고용해 친환경 식재료로 도시락을 만들고, 노인들이 배달하도록 하면 적잖은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의 자원봉사 인력을 배달원으로 활용하면 아동들에 대한 상담도 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우리 복지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질해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맞는 말이지만 금전적 지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고민을 들어줄 이웃,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돈 못지 않게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결식 아동들처럼 바우처보다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하진 않았을까.
우리 복지 시스템은 비효율투성이다.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로 여전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22.1%)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복지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물론 그들의 업무가 복지 대상자들을 발굴하는 대신 소득과 재산을 조회해 수급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데 몰려 있는 게 문제다)에 시달리는 게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다.
늘어나는 복지 예산과 목숨 바쳐 일하는 공무원. 그런데도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취약계층의 극단적인 선택이 끊이지 않는다면 비정상도 이만저만 비정상이 아니다.
한계에 부딪혔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국가 관료시스템이 복지를 틀어쥐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하게 민간 부문이 복지서비스 영역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물질적 지원 외에 이웃과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단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게 아니라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7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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