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이란 게 있다. 관광학에서 ‘초소형 국가체’라 번역한다. 국가가 아니고 국가체인 건, 국가가 아닌 것이 국가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국가를 흉내 낸 공동체, 즉 국가체제를 빌린 테마파크가 마이크로네이션이다. 애들 장난 같지만 전 세계에는 현재 120개가 넘는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헌법·애국가·화폐·여권·문자는 물론이고 군대도 갖췄다(남이섬 여객선 직원이 ‘해군’이다).
남이섬의 국가 흉내는 마케팅 전략에서 출발했다. 2004년 이후 일본인 입장객이 부쩍 늘었지만 남이섬은 ‘겨울연가’ 바람이 3년이면 잦아들 것으로 내다봤다. 궁리 끝에 찾아낸 활로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상상 나라’였다. 독립은 불가피했다.
하나 속사정은 복잡하다. 남이섬 국립호텔 ‘정관루’에 단서가 있다. 객실 44개가 전부인 호텔 정문에 별 6개가 그려져 있다. 6성호텔의 상징인 듯싶지만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호텔등급을 무궁화로 표시한다. 그러니까 정관루의 별은 장식인 셈이다. 강우현 대표의 설명이다.
“호텔등급을 신청했더니 공무원들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계속 시간을 끄는 거야. 2년을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별을 붙여버렸어. 우리는 6성급 서비스를 하고 손님은 6성급에 묵고. 진짜 등급? 여관이지.”
지난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대통령의 “죄악” 발언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저희도 정말 미치겠습니다” 발언을 모두 끌어낸 문제가 학교보건법에 막힌 관광호텔 설립 건이었다. 초등학교에서 170m 떨어진 장소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다 1년째 애를 먹었다는 호텔업자의 사연에는 분명 딱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규제만 탓하기도 그렇다. 학부모에게 호텔은 아직도 유해시설이어서다. 요즘엔 특급호텔도 밸런타인데이에 커플 패키지상품을 판다. 처음에는 부부 패키지였는데 언제부턴가 커플로 바뀌었다. 국내 호텔이 문화공간 대우를 못 받는 데는 호텔 잘못도 있다.
남이섬에는 대만 국기가 펄럭인다. 중국하고만 국교를 맺은 한국의 공공기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한국 땅에 휘날리는 제 국기 아래에서 대만인은 감격한다. 누가 대만 국기에 딴죽을 걸면 강우현 대표는 “여기는 한국이 아닙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지난해 남이섬에는 대만인 10만 명이 입장했다.
별 6개짜리 여관 정관루는 객실마다 다르게 생겼다. 예술가들이 각자 색깔을 입혀 방을 꾸민 결과다. 남이섬의 독립선언은, 규제에 맞서는 남이섬만의 대처방식이다. 규제만 규제하면 정말 대박이 날까. 지금의 관광 타령에서 문화가 안 보여 하는 소리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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