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8. 01:26

음악평론가 강헌씨가 재즈를 설명하면서 ‘흑인 특유의 폐활량과 두툼한 입술’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이에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인종주의적 표현이 아닌가’ 하고 우려한 적 있다. 물론 강헌씨는 재즈를 신체적 특징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19세기 노예 무역과 남북전쟁, 철도와 시카고, 2차 세계대전과 뉴욕, 1960년대 정체성의 미학과 민권운동 등을 두루 언급하였다. 서정민갑씨의 우려도 조잡한 비난은 아니다. 신체적 특징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복합적인 음악 세계를 일거에 덮어버릴 수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며칠 전 유튜브로 현존 최고의 재즈 아티스트 허비 행콕을 위한 헌정 공연을 보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한 기념비적인 공연이다. 평생의 ‘지음’인 웨인 쇼터를 비롯하여 칙 코리아, 잭 디조넷, 마커스 밀러 등이 무대를 채웠으며 힙합의 절대지존 스눕 독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특정 예술 분야를 그 인종적이고 신체적인 특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그러나 거부하기 어려운 심미적 풍경도 있다.


나는 한쪽 눈으로는 온갖 악기들을 윷놀이 하듯 다루는 최고 명인들의 공연을 보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았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관중들의 몸짓은, 그루브를 타고 비트를 즐기는 것이었고 그에 비하여 백인 관중들의 몸짓은 간소했다. 이때, 약간의 인종적 특성과 문화적 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차이’다. 특정 예술이 특정 피부색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쇼미더머니 6>의 ‘N분의 1’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조우찬은 13살, 초등학생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사인 볼트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레이스를 펼쳤다. 100m 마지막 기록은 9초95로 3위. 하지만 그의 위업은 찬란하다. 그가 이룩한 기록과 성적을 일일이 적는다면 이 지면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니 개틀린처럼, 볼트라는 이름 앞에 경의를 표할 뿐, 나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볼트를 말하면서 대개 자메이카를 동시에 언급한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대구광역시 정도로 260만여명이며 국내총생산(GDP)은 143억달러로 세계 118위의 가난한 나라다. 볼트를 비롯하여 아사다 파웰, 일레인 톰슨 같은 선수들이 성장기만이 아니라 전성기 시절에도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는 트랙에서 훈련할 정도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작고 가난한 나라가 육상의 강자가 되었을까.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벤 존슨(캐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린퍼드 크리스티(영국),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도노반 베일리(캐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멀린 오티(슬로베니아) 등이 자메이카 출신이다. 


자메이카의 육상을 설명하면서 쉽게 떠올리는 것이 그 유전자와 토종 음식이다. 글래스고대학과 서인도대학이 200명 이상 자메이카 육상 선수들을 조사했더니 ‘액티넨 A’라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근육 수축와 이완을 빨리 일으키는 유전자라고 한다. 자메이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참마가 선수들의 스피드를 배가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는 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은 재즈와 흑인의 폐활량처럼, 물리적인 요인으로는 충분히 거론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유전자적 특징과 풍토적인 속성이 절대적인 이유처럼 표현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국내 방송사는 줄곧 아프리카 선수들을 ‘흑인 특유의 파워’라는 말로 묘사했다.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전략이나 전술 없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준다. 그 밖의 더 중요한 요인들은 이러한 오해와 편견 아래 묻혀 버린다. 나아가 제3세계의 당대적 삶 자체가 소멸된다.


다시 자메이카 얘기를 해보자. ‘타고난 기질’ 말고 그들이 이뤄낸 20세기적 성취 말이다. 자메이카 출신의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 올란도 패터슨은 특정 종목과 인종의 관련성을 의심한다. 오래전 자메이카인들은 서아프리카에서 건너왔다. 오늘날 서아프리카는 케냐 같은 동아프리카에 비해 육상을 잘하지는 않는다. 산악지대가 많은 자연 환경에서 ‘거침없이’ 달리다 보니 잘 달리게 되었다는 원시적인 해석도 거부한다. 


대신 패터슨 교수는 공중보건과 사회체육을 거론한다. 20세기 초엽,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 같은 곳의 원조를 받으면서 자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위생 개선을 시도했다. 이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의료봉사단의 능력과 헌신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재원이 필요하다. 재정이 열악한 자메이카는 주거환경의 개선과 사회 체육의 확산을 통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려 했다. 상대적으로 재원이 덜 드는 달리기는 최고의 사회 재생과 활력의 수단이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 자메이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극대화되는 ‘라스파타리아니즘’의 분위기 속에서, 자메이카는 달리기를 통한 개인 건강 도모와 사회적 활력 신장에 집중하게 된다. 동네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렸고 정기적으로 대회가 열렸으며 그 탄탄한 저변 속에서 곳곳에서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속출했다. 이런 자메이카 육상의 핵심이 자메이카 공과대학이다. 이 학교는 ‘육상학교’를 모태로 출발하여 1960년대에 선진적인 스포츠과학을 접목하였으며 오늘날 세계 육상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자메이카 육상은 타고난 인종적 특징이나 신토불이 음식의 성과가 아니라, 가난과 비위생의 생존 조건을 벗어나려는 자메이카의 ‘현대적 삶’의 성취다.



솔직히 여기에 밥 말리의 저항적인 레게 문화 운동까지 덧붙이고 싶으나 그 또한 과잉 해석인 듯하여 자제한다. 다만 2012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울려 퍼졌던 밥 말리의 노래들 그리고 2006년에 맨체스터에서 직접 보았던 수많은 자메이카 축구팬들의 레게 응원이 단순히 그들의 신체적 특징이 넘실댔던 장면이 아니라, 식민과 가난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저항하고 극복하려는 몸짓이었음을 기억하고 싶다. 우사인 볼트의 달리기 그리고 그의 유쾌하고도 의미 있는 세리머니 또한 그러하다. 그는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사람이 아니다. 



정윤수 스포츠 평론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072058015&code=990100#csidx90474c591318edaa7b329d8aefa9994 

Posted by 겟업
2018. 1. 7. 23:47

가끔 여행을 함께 하는 최 선생님의 여행 습관은 뭔가 좀 다르다. 여행전문가는 아니지만 남들과 함께 다니는 여행에서도 틈틈이 자신만의 행복하고 좀 특별한 여행을 만들 줄 안다.


한번은 라오스 루앙프라방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가기 전부터 열심히 라오스 관련 프로그램과 책도 보더니 몽족 야시장에 꼭 가야겠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몽족 야시장에서 옷가지 등을 파는 어린 소녀 이야기가 안타까워서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을 거쳐서 오후에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700만명의 인구에서 1%, 약 7만명이 사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연간 외국관광객 약 400여만명이 라오스를 방문하는데 이들 중에 대부분은 세계문화유산 도시 루앙프라방을 꼭 찾는다. 한국 관광객들도 라오스 직항이 생기면서 한해 약 10여만명이 방문한다. 최근에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여행기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는 2층 높이의 아담한 숙소에 짐을 풀고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거리로 나섰다. 이 마을에서 3층 이상 높이의 건물을 찾기 힘들다. 마치 동화의 나라처럼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메콩강 줄기를 따라 수줍은 듯 작은 30여개의 사원들이 있다. 뜰에는 자기 키를 넘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붉은 가사를 입은 동자들이 장난처럼 눈에 들어온다. 마을 한가운데 망루처럼 솟아 있는 푸시산에서 바라보는 노을과 소박한 마을의 밥 짓는 연기가 정겹다. 그렇게 여행자들은 욕망의 날개를 접고 어느새 라오 사람들 품에 스며든다.


우리는 해가 산 너머로 지고 가로등이 어스름해질 때 장이 들어서는 몽족 전통시장을 찾았다. 몽족은 중국의 묘족 원주민들로서 라오스에 약 70여만명이 살고 있는데 라오스 정부와 역사적으로 갈등관계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밤이 되면 주홍빛 천막을 치고 수많은 몽족 사람들이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한다. 최 선생은 몇 바퀴를 돌고 돌아 어렵사리 방송에 나왔다는 소녀를 찾았다. 처음에는 뭔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 선물로 물건 몇 개 사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선물 될 만한 것들을 몇 개 사더니, 소녀의 양해를 구하고 직접 지나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물건을 함께 팔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아웃도어 지점장을 하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작은 수고지만 함께 노동을 하고 제법 물건을 팔고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돌자 자리에 일어섰다. 그와 여행할 때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짐을 나르는 사람들의 신발이 해어진 것을 보고 신던 신을 내주었고, 지진이 났을 때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버마에서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서 대접하기도 했고, 캄보디아 아이들을 위해서는 책을 구입하는 데 돈을 보태기도 했다. 결코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했고 결코 우쭐대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처럼 사람들과 어울렸고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그가 여행을 그 사람들의 삶에 젖어들고 스며드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어느 곳에 가든지 자연에 순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지긋한 마음으로 다가설 때 여행의 즐거움과 행복이 다가선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0034.html#csidx9ab34cb4e099cefa92ea053492ecdac 

Posted by 겟업
2018. 1. 6. 17:55

적폐 청산이란 무엇을 하는 것일까? 청산해야 할 적폐들은 수없이 많지만, 최근 며칠 동안 선거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유신헌법의 잔향이었다. 1972년에 제정되어 유신체제의 근간이 된 유신헌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조 2항에 나온 주권자에 대한 규정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이후 대통령 긴급조치를 통해 이 헌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규정된 것처럼, 주권자인 국민은 직접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오직 투표나 청탁을 통해서만 정치에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누구를 지지하느냐, 어느 줄에 서느냐가 ‘정치’가 된 셈이다.


지난주, 문재인 후보가 4차 토론회에서 한 혐오발언에 대해 성소수자들이 직접 항의행동에 나서자 일부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예의가 없다’부터 ‘테러’까지 다양한 수준의 막말이 난무했다. 문재인의 연설을 방해하지 않도록 끝까지 기다렸다가 무지개깃발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몇 마디 외친 것을 두고 마치 난동을 부린 것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절감했다.


성소수자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오냐오냐하니까 기어오른다’는 의식이다. ‘불쌍한 약자’로서 ‘훌륭한 지도자’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어야 할 존재가, 자신들도 오르지 않는 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지닌 위계의식은, 성소수자들이 홍준표가 아니라 문재인을 ‘공격’한 이유가 그가 만만해 보여서였다는 인식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런 가정 자체가 망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은 더 잘 보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누군가 만만하게 봤다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만만해 보이는 게 그렇게 나쁜 것일까?


노무현이 대통령이었을 때, 나에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가 만만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도 많지만,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도 탈권위주의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평가될 만하다. 보수 세력이 노무현이 한때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가 대통령의 권위를 실추시켰다고, 즉 민주화시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권위를 바라는 마음은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4·19혁명 이후 쏟아져 나온 다양한 목소리들 앞에서 적지 않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오직 ‘혼란’만을 보고 불안해했다. 위계의 붕괴는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그들의 존립기반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불안은 ‘혼란을 수습한’ 군사쿠데타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우리가 그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지 여부는 우리가 ‘광장’에서 무엇을 배웠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시민들이 검찰 개혁에 이어 두 번째로 꼽은 것이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였다. 이는 꼭 대의제를 부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거 과정을 통해 더 다양한 의견들이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직접 정치 참여의 한 방법이며, 성소수자들의 행동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투표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유신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2898.html#csidx18376b5908ed0c28021c52846495ea8 

Posted by 겟업
2018. 1. 6. 16:48

몇 해 전 명절이었다. 집안 어른 한 분이 딸과 며느리들에게 신문을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이 사람 어머니가 자식들을 방으로 매일 한 명씩 따로 불렀다는 거야. 아이와 두 눈을 꼭 맞추고선 ‘넌 정말 특별하단다’, ‘넌 진짜 대단한 아이야’ 이런 얘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줬다네. 그 덕분에 오늘날의 자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주 좋은 방법 같아.” 혼잣말의 형식을 띠었지만, 너희도 이렇게 자식들을 키워보면 좋지 않겠냐는 제언이었다. 포인트는 형제자매들을 한꺼번에 칭찬하는 게 아니라 한 명씩 따로 몰래 칭찬하는 것. 어머니의 일상제의 덕분에 훌륭해진 사람이 빌 게이츠였는지 마크 저커버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저 연배의 어른에게도 부모에게 인정 받는다는 느낌이 자존감의 깊은 뿌리가 되는구나, 혼자 웃으며 며칠간 열심히 실행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우리는 아이를 특별하게 키우라는 많은 메시지에 노출돼 있다. 분유 하나를 사도 ‘우리 아이는 특별하니까’ 더 비싼 것을 사 먹여야 하고, 학원 하나를 보내도 특별한 아이들만 다닐 수 있다는 ‘영재학원’에 보내고 싶어 한다. 특별한 아이로 키우라는 메시지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자본의 상술일 뿐이지만,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믿음과 염원이 우리 마음 속에 창궐하므로 언제나 이 전략은 번성한다. 내면적인 것과 외형적인 것은 다르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생각보다 그렇게 분리돼 있지 않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설령 내면에서만 꽃핀다 해도 별로 건강한 일이 아니다. 특별하다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남과의 비교, 외부의 시선을 전제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 받는다는 확고부동한 감정은 한 인간의 존립근거이며, 이것이 심하게 결핍될 때 아이는 훼손된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나는 특별하다는 자의식이 너도 특별하다는 평등의식과 병립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특별한 나’라는 선민의식은 한 인간의 정신에 그저 독약으로 작용할 뿐이다. 너무 특별하게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괴물 같은 어른이 되는지 오늘날 우리는 충격적으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보일러 작동법을 몰라 삼성동 자택에서 떨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해야 한다. 9세에 청와대에 들어가 27세에 나올 때까지 공주마마로만 살았던 그는 너무도 특별한 아이였던 나머지 온전한 삶을 살 기회를 박탈당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그저 그런 일상을 지루하게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한다. 일찍이 소설가 마르케스가 털어놓았듯 명성은 그 본질이 파괴적인 것이어서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킨다”. 그러니까 보통사람으로 산다는 건 진짜 세계에서 온전하게 전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올 초 백악관을 떠난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8년은 평범함과 정상성을 고수하기 위한 피나는 투쟁이었다. 외부의 시선에 노출된 공적 삶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이 ‘평범하기에 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매섭게 규칙을 세우고 지켰다. 백악관 직원들이라고 왜 퍼스트도터(first daughter)들에게 찬탄의 언어를 쏟아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미셸은 즉각 이들의 찬사를 제지하며 경계선을 설정했다. 백악관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처음 했던 말이 “아이들 이부자리 펴주지 마세요. 청소도 스스로 하게 하세요”였다. 최저임금 직종에서 일해봐야 한다며 둘째 딸 사샤를 새벽 식당 아르바이트에 보내고, 아이들 학교 행사는 백악관 달력에 가장 먼저 표시한 후 반드시 참석했다. 보통사람으로서 누리는 온전한 삶의 경험과 감각은 제 아무리 탁월한 홍보 전략과 이미지 조작으로도 재현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그는 몸소 보여줬다. 


덴마크 사람들이 신봉하는 얀테의 법칙(보통사람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남보다 더 똑똑하다고 착각하지 마라’, ‘네가 다른 이들보다 중요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등으로 이뤄진 겸손의 10계명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너는 특별하라’는 정언명령이 아니다. 바로 이 보통사람의 법칙이다. 그토록 특별한 삶을 살아왔던 박 전 대통령이 새 매트리스의 비닐커버를 지금쯤은 뜯었을지 어쩔지 궁금해 하다, 내가 왜 이런 걸 궁금해 하고 있어야 하는지 마음이 답답해진다. 오늘 집에 가면 아이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 말해줘야겠다. ‘넌 정말 특별하지 않아.’ 

박선영 기획취재부 기자



http://www.hankookilbo.com/m/v/f1c35ea72e614b9aa178aa0e56d702d5


Posted by 겟업
2015. 3. 8. 00:37

갑의 못된 횡포를 ‘갑질’이라고 한다. 갑의 갑질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열한지는 당해본 을만이 안다. 그런데 갑을관계의 진짜 비극은 갑의 갑질에 있다기보다는 갑질을 당한 을이 자신보다 약한 병에게 갑질과 다를 바 없는 을질을 한다는 데에 있다. 병은 또 자신보다 약한 정에게 갑질·을질과 다를 바 없는 병질을 한다.

이런 먹이사슬 관계를 온몸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이들이 놀랍게도 아직 갑을관계의 본격적인 현장에 뛰어들지 않은 대학생들이다. 미리 연습을 하려는 걸까?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가 출간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은 대학생들의 ‘대학서열 중독증’을 실감나게 고발하고 있다. 대학생들과의 자유로운 대화에 근거한 애정 어린 고발인지라 분노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오 박사는 대학의 수능점수 배치표 순위가 대학생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전국의 200개 대학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대학 간 서열을 따지는 건 단지 재미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인정투쟁이자 생존투쟁이다. 서열이 한두개 차이 나는 대학을 ‘비슷한 대학’으로 엮기라도 할라치면 그 순간 서열이 앞선다는 대학의 학생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흥분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본인이 당한 인격적 수모를 보상받기 위해 본인 역시도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스스로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그렇게 멸시는 합리화된다.”

대학생들의 이런 정신상태는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와 비정규직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 박사 말마따나, 오늘날 이십대는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게 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편한 시절을 살았던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대학생들의 ‘대학서열 중독증’은 미국에서 벌어진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늘날 미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데올로기가 바로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하는 능력주의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 학력과 학벌의 세습은 능력주의 사회가 사실상 이전의 귀족주의 사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이런 한국형 ‘세습 자본주의’를 바꾸는 것이 제1의 개혁의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갖고 있는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수능점수 몇점이나 정규직·비정규직의 능력 차이는 사소한 것임에도 우리는 그런 차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에 따른 차별에 찬성하는 것을 정당한 능력주의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곤 하지만, 평등주의는 위를 향해서만 발휘될 뿐이다. 밑을 향해선 차별주의를 외치는 이중적 평등주의를 진정한 평등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이중적 평등주의는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의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 체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50년 전 시인 김수영이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물었듯이, 이제 우리도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우리가 사소한 차이에만 집착하고 그 차이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에 분개하는 동안 세상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건 아닐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9002.html



Posted by 겟업
2015. 3. 7. 23:14

정도전, 장영실, 김구, 노무현.

올해 하반기 현대자동차 입사시험에 출제된 에세이 문제의 답으로 많이 거론된 인물들이다. 시험 문제는 ‘본인의 관점에서 역사상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에 대해 쓰시오’였다. 특히 수험생의 절반 정도는 정도전에 대해 썼다고 한다. 상반기 내내 안방극장을 달궜던 TV 사극 ‘정도전’의 영향일 것이다.

과거 에세이를 채점했던 경험을 떠올려 ‘내가 만약 현대차 채점위원이라면 어떻게 점수를 매길까’ 하는 상상에 빠져봤다. 에세이를 채점할 때는 대개 질문 취지에 충실한 답을 하는지, 주제와 소재는 참신한지, 일관성과 설득력은 있는지, 표현력은 좋은지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시험 채점이라는 게 비슷비슷한 내용의 답안지를 수십 장씩 읽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참신성이 없거나 질문의 취지에서 벗어난 답안지에는 아예 눈길이 가지 않게 된다.

이런 연유로 정도전이나 노무현이라는 답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정도전의 경우, 채점위원이라면 누구나 ‘책을 얼마나 안 읽었기에 TV 드라마 이야기로 답안지를 채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고인이기는 하지만 측근과 추종자들이 현실정치의 최대 세력 가운데 하나다. 그를 역사라고 하기에는 일러도 너무 이르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 고평가, 저평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장영실과 김구도 참신한 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모 기업 면접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낸 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6·29선언’이라는 대답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나름 준수한 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 대기업들이 인문학 비중을 크게 늘리고 난도(難度)를 높인 것은 올 하반기 채용에서 처음 시작된 현상이 아니다.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확고한 경향이다. 대응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취업준비생들이 내놓는 답은 기대치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가뜩이나 ‘스펙’ 쌓기에 바쁜 취업준비생들을 두고 기업들이 역사다 인문학이다 해서 괴롭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7월 신한은행이 고졸 고객들에 대해 대졸 고객들보다 비싼 이자를 물리는 등 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인 적이 있다. 당시 신한은행의 한 임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하소연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예금과 대출 등 금융상품을 설계할 때는 수학 통계학 전공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융권도 이공계 출신 채용을 크게 늘리고 있다. 물론 이공계 출신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들이 인문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보니 큰 문제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들이 상품을 개발했다면 학력에 따라 대출을 차별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겠느냐.”

이런 종류의 고민은 비단 금융권만의 몫이 아니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빠른 추격자’에서 벗어나 ‘시장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함께 ‘인간’을 이해하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기업들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기술력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역사 중시 추세는 결코 일시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문제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난도 또한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평소 책이나 신문기사를 꼼꼼히 읽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스펙이 있어도 대기업 문턱을 밟아보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천광암 산업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41021/67319439/1

Posted by 겟업
2015. 3. 7. 23:09

과거를 왜곡하고 국방력을 키워가는 일본. 마치 또다시 냉전시대라도 온 듯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러시아. 미국과 맞먹는 인공지능 무인정찰기와 스텔스 기능의 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며 동시에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중국. 주변국들의 행동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매우 편하고 단순한 설명이 하나 있다. 일본인들은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더러운 중국' '무식한 러시아' 역시 믿을 만한 나라들이 아니라고! 이렇게 우리는 그냥 우리에게 '편리한' 설명 하나 던지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 준비 없이 살아볼 수 있겠다.

물론 단순히 우리에게 쉽고 편하다고 진실일 필요는 없다. 크리스마스에 사주겠다던 자전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사줄 수 없다고 한다. 화나고 분한 아이는 쉽게 말할 수 있겠다. 약속도 안 지키는 아빠는 나쁘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얼마 전 직장을 잃었고, 대기업 하도급업체였던 회사는 문을 닫았다. 대기업은 해외 바이어들의 주문 80%를 잃었고, 빼앗긴 주문량은 중국 경쟁사가 고스란히 가져갔다. 미국과 경쟁할 전략적 산업을 만들기 위해 경쟁사에 천문학적 혜택과 지원을 퍼붓고 있는 중국 정부….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인과관계들의 꼬리 물기다.

대한민국에는 제국적 마인드가 절실하다.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로마·영국·일본식 제국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 그리고 나의 감정이라는 우연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백만개 역사·종교·정치·경제·과학적 변수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제국적 마인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아픔을 컨트롤할 수 있는 냉철함. '내가 만약 북한·일본·중국·러시아라면?' 하고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는 인지적 객관성.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진실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쿨'한 태도. 이런 제국적 마인드 없는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계속 국제사회라는 서치라이트 앞에 눈부셔 얼어버리는 나약한 사슴 한 마리에 불과할 것이다.

김대식 KAIST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18/2014111804431.html



Posted by 겟업
2015. 3. 7. 22:59

기술은 환경 파괴 아닌 환경 保全을 이끈다는 '에코 모더니즘' 확산
히말라야 계곡 입구에 수력발전소 세운다면 경제·생태 이득 아닐까
自然 그대로가 옳다는 근본주의서 벗어나야



어제로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가 끝났다. 164개국 2만여명이 모였다.

자연(自然)을 더 풍성하게 만들자는 국제회의가 국내에서 열린 걸 계기로 자연이란 우리한테 뭔가 하는 문제를 한번 생각해봄 직하다. 1990년대 후반 뉴욕에 갔다가 '지구상의 한순간(A Moment on the Earth)'이라는 책을 샀다. 환경 저널리스트가 쓴 두께 10㎝쯤의 책인데, 읽어 보니 자료 축적이 대단했고 관점도 의표를 찔렀다. 저자는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은 환경 파괴가 아니라 환경 보전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폈다. 예를 들어 농약은 환경 파괴를 막아주고 있다. 농약이 없다면 농지 생산성은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숲을 더 베어내야 한다.

저자는 '뉴욕과 방글라데시 중 어느 쪽 환경이 더 잘 보전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뉴욕이 방글라데시보다 수십 배를 소비하고 에너지도 많이 쓴다. 그러나 뉴욕은 공원이 넓고 하수 처리 시설이 잘 돼 있다. 방글라데시는 공장이 없는데도 강은 더럽고 도시는 쓰레기 천지다. 산은 땔감용 나무를 베어내는 바람에 헐벗었다. 자연에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뉴욕과 방글라데시 가운데 어느 쪽을 원하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유럽엔 '에코 모더니즘' 또는 '에코 리얼리즘'이라고 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늘고 있다. '나무 껴안기(tree hug)' 방식의 환경 운동이나, 인간을 '지구의 저주'로 보는 관점은 한계에 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시에 밀집해 사는 것도 자연엔 이롭다고 평가한다. 에너지 사용 효율이 높아서다. 그래야 땅이 남아돌고 그 '해방(解放)된 토지'를 생태 보호에 활용할 수 있다. 원자력·유전자조작 같은 기술에도 호의적이다. 지구의 지속 가능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술(technology)은 문제(problem)가 아니라 해결책(solution)이라는 관점이다.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취할 부분이 꽤 있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공상(空想)을 해봤다. 히말라야 짐꾼들은 외국인 트레커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산길을 올랐다. 그러고서 하루 10달러씩 받는다. 같이 다니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하나 더 안타까웠던 것은 히말라야 산을 덮은 계단식 밭이다. 고립된 자급자족 생활을 하는 현지인들은 산비탈 나무를 베어내고 계단밭을 조성해 먹고산다. 방글라데시의 잦은 홍수도 히말라야에 계단식 밭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산속에 수력발전소를 몇 개 세우면 네팔 경제도 일으켜 세우고 히말라야 생태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계곡 경사가 급해 좁은 입구만 막아도 낙차 큰 수력발전소가 가능할 것이다. 대량 전기 공급이 가능해지면 별 몇 개짜리 호텔이 들어가는 산악 휴양도시도 세울 수 있다. 호텔까지는 전기로 움직이는 로프웨이 구간을 몇 곳 만들어 이동하면 된다. 현재의 히말라야 숙박 시설은 사람 몸 하나 누울 정도의 나무 침상이 고작이고 숙박료는 우리 돈 2000원이다.

그럴듯한 휴양 단지가 생기면 선진국 부자들이 모여들 것이다. 현지인들에겐 짐을 지지 않고도 생계를 꾸릴 일자리가 생겨난다. 계단식 밭을 일구는 사람도 산악 도시에 모여 살면서 여러 형태의 경제적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댐으로 인한 생태 파괴도 무시할 순 없다. 그래도 가난을 해결하면서 계단식 경작도 없애는 플러스 효과가 훨씬 클 것 같다. 공상 차원이라서 검증을 하고 들면 허점이 많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그렇지만 자연은 여하튼 손 안 대고 내버려두는 게 맞는다는 천성산 도롱뇽류(類)의 근본주의에선 벗어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시 떠올려봤다.


한삼희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7/2014101704075.html


Posted by 겟업
2015. 3. 7. 21:23

속도위반. 적어도 결혼에선 더 이상 책잡힐 일이 아닌 듯하다. 한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의 단어였지만, 이제는 수줍게 고백하면 당당한 축하로 되돌아올 정도로 호감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어느덧 속도위반에 대한 경계심은 이제 도로 위에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속도위반은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도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생각의 내용에 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폭력적 영화나 게임이 폭력성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담은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 흡연이나 음주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흡연과 음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자살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 보도가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주목하고, 각종 규제와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다. 생각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에 우리 사회가 동의한 결과이다.

그러나 생각은 내용뿐만 아니라 속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평상시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제시되는 문장을 읽은 사람이 평상시 속도보다 천천히 제시되는 문장을 읽은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한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읽게 되면 생각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빨라진 생각은 성급한 의사 결정을 유도하게 되고, 성급한 의사 결정은 잠재적 위험 요인들을 차분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일을 가로막게 된다. 도로 위 속도위반이 자동차 사고 원인이 되듯이 생각의 속도위반이 인생의 사고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이 다리 떠는 행동을 그렇게 말렸던 이유도, 사실은 너무 빠른 생각의 속도를 경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천천히 여유 있게 다리를 떠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는 가만두어도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활자는 쏜살같다. 운전 중 읽어내려 가는 이메일 속도는 가히 혁명적이다. 수시로 제시되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읽기만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어떤 장면이 빠르게 제시되는 영상을 본 사람이 느리게 제시되는 영상을 본 사람보다 일상의 많은 장면에서 더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빨라졌다. 특히 '속도'라는 단어가 붙는 영역이 그렇다. 자동차 속도, 인터넷 속도, 배달 속도, 충전 속도….

그러나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생각에는 뚝심이 중요하다. 비록 느려 보이지만 어떤 문제에 대하여 뚝심 있게 천천히 오랫동안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몇 달째, 몇 년째 천착하는 생각의 주제가 있는가?

우리의 생각이 심각한 속도위반을 범하고 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고은 선생 시처럼,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 스님 책 제목처럼 이제 생각의 폭주를 멈춰야 한다. 인생은 한 곳에서 빨리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서둘러 이동해서 또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는 단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천천히 가면 볼만한 것이 많지만 서둘러 가면 별 볼일 없기 마련이다.

고무적인 것은 생각의 속도를 늦추려는 자발적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걷기이고, 다른 하나가 인문학 열풍이다. 가을, 이 두 가지를 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디지털 기기를 끄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멈추고 들여다보는 인문 정신을 실천해 볼 시간이다. 느리게 생각하기, 천천히 걷기, 하루의 아침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맞이하기, 바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의 조건들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2/2014101202205.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23. 01:03

유튜브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 동영상이 십억 번 이상 클릭된 것에 한국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할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대단한 역동성과 창의성이다. 하지만 싸이의 최근 비디오 ‘젠틀맨’을 보고 나는 분명 한류가 올바른 길을 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인 친구들은 싸이의 동영상이 강남의 물질주의 풍조에 대한 풍자라고 설명한다. 사실 싸이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외국인으로서 그 동영상을 본 나의 솔직한 느낌은 소비문화에 대한 찬양과 여성에 대한 모욕적인 취급이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절박한 이슈는 속도나 양이 아닌 방향성이다. 한국문화가 아무리 역동적이라도 분명한 윤리적 메시지를 담지 못한다면, 즉 한류를 즐기는 세계인들에게 단순한 수동적 소비를 넘어 무엇인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없다면 종국적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류의 융성에 기뻐하기 이전에 역사적으로 경제·문화대국들의 영고성쇠(榮枯盛衰)와, 비전이 없어서 아예 사라져 버린 문화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17세기 청나라를 이끈 만주족은 강력했다. 한족(漢族)마저 만주족 문화에 압도돼 변발 풍습까지 모방했다. 당시 만주족의 대중문화[滿流]와 행정 제도는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만주족의 문화는 어디에 있나? 17세기 중국인들은 필사적으로 만주어를 배우려 했으나 지금은 만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없다. 만주족 후예(後裔)들도 문화적 정체성을 잃은 채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만류(滿流)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주된 원인은 그 문화가 철학과 문학, 그리고 가치를 스스로 창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주족의 뛰어난 통치 노하우도 그들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만류의 몰락을 한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작금의 한류에 대한 엄중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신체적 장애우들이 케이팝 밴드(K-Pop bands)를 보면서 자신감과 영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거기서 매혹적인 외양보다 더 강력한 공헌, 믿음, 비전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여성들이 한국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리더로 자라날 수 있을까? 오히려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패션과 외모만을 추종하게 되지 않을까? 해외 청소년들이 한국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사회봉사나 평화와 환경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기적인 환상이나 종속성만 키워지는 게 아닐까?

한국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문화적 엘리트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세계적 강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은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에 그 어떤 나라도 줄 수 없는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류의 방향이 잘못된다면 전 세계가 그 비극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가령 한국 청소년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일회용 컵만 쓴다면 동남아·중앙아시아·중동 등지의 청소년들도 이를 모방할 것이다. 한류가 부모와 친구들을 배려하지 않고 개인의 이기적인 삶만 추구하는 풍조를 퍼날라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환경적·사회적 재난(災難)을 부채질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잃어버린 한국 문화는 어떠한가? 한국 어머니들이 쌀 한 톨이라도 아끼며 살았던 때가 진정 먼 옛날 이야기인가?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의 시대에 그런 절약의 미덕이 다시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런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한류의 핵심이 될 순 없을까?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면서도 안분지족(安分知足)했던 옛 선비들의 친환경적인 삶이 더욱 강력하고 영감적인 한류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순 없을까?

우리는 상업화된 성과 소비문화를 넘어서야 한다. 화장을 하지 않은 채 공공의 이익과 환경,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소녀시대’를 떠올려 보자.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한류에 영감을 받은 한 청년이 분연히 일어나 “나는 케냐의 세종대왕이다”고 외치는 날을 상상해 보자. 그런 장면이야말로 한국 문화에 내재하는 보편적 위대성을 상징한다. 비로소 그때에야 한류가 진정한 한류가 될 것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이만열)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약력 : 1964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출생, 예일대 학사, 도쿄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조지워싱턴대 교수, 우송대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7397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2. 4. 00:28

소련이 무너지던 1990년 내에 나돌았던 풍자 우화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새로 만든 다리를 지나던 고위층이 ‘ 경비 군인도 없나’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군에서 병사를 한 명 보내 다리를 지키게 했다. 곧 교대병이 필요해졌고 야간근무병과 주말근무병이 추가됐다. 규모가 커지자 아예 부대 막사가 별도로 세워졌으며 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질 취사·피복·건물관리 담당이 보충됐다. 부대를 지원할 통신·병참·수송·정비 관련 부대가 더해지고 의무대도 생겼다. 그러는 동안 경비병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속 다리를 지켰다. 근무를 서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이제는 고전이 된 이 우화는 소련 붕괴의 원인이 됐던 비효율적 관료주의, 조직 비대의 타성, 혁신의 지체 등에서 찾았다. 기업에서는 이런 진단을 경영활동에 적극 참조했다. 불필요한 인력, 불합리한 구조,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있는지를 항상 살피고 비용 대비 효과를 따졌으며 혁신을 강조했다. 군이 ‘졸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외칠 때 기업에서는 ‘혁신을 중단하면 망한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문제는 지금 우리 군이 처한 현실이 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 출신의 한 군사전문가는 “지금 군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근본적인 이유는 그동안 혁신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이 위기에 처한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혁신적인 조치로 정예강군으로 가는 로드맵을 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전을 전공한 다른 군사전문가는 “특히 군의 병력 수요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한 민·군 전문가 집단의 연구와 이를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7세기 수나라가 113만3800의 병력과 그 두 배나 되는 군량미 운반 민간인을 동원하고도 살수대첩 등 고구려에 패한 것, 당나라가 안시성을 포위하고도 3분의 1에서 10분의 1로 추정되는 고구려의 성민들에게 호되게 당한 것은 전투병력과 지원병력의 비율에 비밀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투병력과 지원병력의 비율이 수나라나 당나라가 2대 8이었던 것에 비해 고구려는 8대 2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등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 군이 당시 수나라나 당나라 수준인 2대 8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전투 분야 업무 중 취사·피복 등 민간에게 위탁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웃소싱하고 시스템을 개혁하면서 필요 병력을 다시 계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지금 군은 위기다. 10여 년 만에 구타 사망 희생자가 나오면서 군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군이 노력한 다른 사례는 무시되고 실수한 상황만 증폭돼 여론이 악화하는 위기 상황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대해 모병제로는 병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으며 천문학적인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현재로도 의무복무 기간이 줄면서 병력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징병검사 대상자의 대다수가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병력 자원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그러니 아웃소싱과 전투 분야 병력 집중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군 개혁을 위한 국회의 이해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마 전 군의 PX조직을 민간기업에 아웃소싱하고 수천 명의 인적자원을 전투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국회는 PX 납품 중소업자들의 생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이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민간의 이익을 핑계로 군 개혁을 유보하고 희생을 요구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한때 군이 민간의 잉여물자 처리장이 된 적도 있었다. 민간에서 양파가 남아돌면 양파를, 구제역으로 돼지고기가 안 팔리면 돼지고기를,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 남아도는 닭고기를 군에서 대량으로 먹어줘야 했다. 군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대량급식 대상자로 여기는 일부 정치인도 군의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개혁하지 않은 군은 허리 살만 찔 뿐이다. 그러면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가 어려워진다. 


채인택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53005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17

얼마 전 회사 인턴 면접시험에 면접 위원으로 참여했다. 서류 전형과 논술 시험을 거쳐 선발된 젊은이 100명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온종일 회사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다. 새로 산 양복 입고 면접 보러 다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면접 위원 중 한 분이 물었다. "우스갯소리를 잘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쓴 것을 두고 물은 것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를 이끌어가는 편이고 곧잘 웃긴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주문이 돌아왔다. "한번 웃겨보시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개그맨 면접도 아니고 신문사 높은 분들을 어떻게 웃긴단 말인가. 음담패설 몇 개가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자멸(自滅)할 것이 뻔했다. 웃긴다고 해놓고 못 웃기면 정말 웃기는 친구가 될 판이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빳빳하게 다려주신 셔츠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5초쯤 지나 뭔가 생각났다. 그러곤 면접을 통과해 이 회사에서 20년을 일하고 있다.

다섯 명씩 스무 조의 응시자들이 차례로 면접장에 들어왔다. 다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고 토익 점수도 높았다. 여러 가지 인턴과 자원봉사 경험을 했다. 떨어뜨릴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 80명을 떨어뜨려야 했다. 면접 위원이란 가혹한 자리였다. 그래서 비상임(非常任)인 것이다.

자연스레 인상(人相)을 보게 됐다. "수험생이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분명한 건 외모가 인상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남 미녀는 시선을 먼저 잡아끈다. 그 유효기간은 첫 질문에 대답하기 직전까지다. 특기란에 '자전거 타기'라고 써놓고 자기 자전거가 로드바이크인지 MTB인지 모른다든가, 취미가 고전 영화 감상인데 영화 제목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대면 장동건·고소영도 떨어진다.

면접(面接)은 말 그대로 대면하여 만나보는 일이다. 자기소개서에 서술한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많은 취업 준비생이 잘생기고 예쁘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면접 위원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잘생긴 '곰바우'와 예쁜 무능력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응시자에게 특이한 경험이나 스토리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하게 된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 질문에 대답할 때 불덩어리가 이글거리면 합격이다. 그저 육하(六何)원칙에 맞춰 답하면 사막 횡단을 했거나 독도까지 헤엄쳐 갔다 해도 '취직하려고 애썼구나' 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인상(人相)이요, 결국 좋은 인상(印象)을 남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 일이 무엇이냐와 상관없이 좋은 인상을 준다. 남이 좋다니까 한 일,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러기 힘들다.

한 취업 관련 사이트가 20대 취업 준비생 807명에게 물어보니 20.8%가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취업 성형에 300만원까지 쓰겠다고 했다. 그 돈을 성형 말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 투자하는 게 백번 낫다. 그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써라. 반드시 그에 대해 물을 것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면 끝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한현우 문화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0/2014071004349.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48



Posted by 겟업
2014. 9. 14. 10:49

어디가서도 성공했을 사람. DNA 가 다르다.


人生은 한걸음씩, 革新은 반걸음씩 

"새로운 게 늘 좋은 건 아니야… 10년 뒤에도 통하는 클래식 추구" 

꿈을 현실로… 3박자가 맞았다 
運, 기회의 땅 미국에 태어나… 
타이밍, 내가 자란 60년대는 세계가 패션에 막 투자하던 때 
사람, 나를 알아봐준 사람들… 열광과 격려로 성공 뒷받침 

유행은 너무 짧아 
제품이 時流에 맞으면서도… 시대 초월해 통용 가능해야 

17세 때 패션에 눈떠 
환불 처리 점원으로 일하다, 사람들의 好不好 알게 돼 

당신 곁의 트렌드를 읽어라 
직관은 특별한 재능 아니다… 열망 강하면 깨어 있게 돼


까치발을 한 꼬마는 잡화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파란색 스웨이드 구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세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물건은 없는 것 같았다. 밤마다 꿈을 꿨다. 그 신발을 신은 아이는 왕자가 됐다가 거인도 됐다가 수퍼맨도 됐다.

하지만 소년의 발엔 언제나 형이 신다 물려준 낡은 운동화가 전부였다. 옷은 물론이고, 야구 글러브 하나 제대로 된 걸 가져본 적도 없다. 뉴욕 브롱크스에서 가난한 유대계 러시아인 이민자의 넷째로 태어난 그에게 '풍족'이나 '풍요'는 요원한 단어였다.

"그래도 항상 매일이 즐거웠던 소년이었어요. 상상 속에서 언제나 난 매끈하게 멋있는 녀석이었으니까요. 매일 꿈꿀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진짜 재밌는 게 뭔지 알아요? 모든 걸 상상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그 모든 것이 현실이 될 거라곤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무일푼으로 시작해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왕국'으로 68억달러(약 7조원·2014년 포브스 추정)의 부(富)를 쌓아 올린 랄프 로렌(Lauren·74·개명한 이름·공식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랠프 로런)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다. 그는 고등학교 앨범에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꿈을 완벽히 이룬 셈이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유리창으로 덮인 초현대적 마천루의 건물 외관과는 딴판이었다. 마치 19세기 런던의 비밀스러운 사교 클럽이나 18세기 프랑스 궁전 내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고급스러운 마호가니로 된 가구와 장식물들이 눈에 띄었고, 고풍스러운 유화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문을 열고 나니 눈에 띈 건 의외로 작고 귀여운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까다롭고 제왕적이며 고집 센'이라고 표현됐던 일부 책자의 설명과는 딴판이었다. 양옆으로 술(tassel)이 잔뜩 달린 카우보이 바지에 은색 징이 박힌 커다란 벨트를 매고 회색 꽈배기 니트, 흰색 셔츠를 받쳐 입은 그는 마치 파란색 스웨이드 슈즈를 바라봤던 그 눈처럼 천진한 표정으로 환영 인사를 건넸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공식으로 밝힌 바는 없지만 168㎝ 내외다),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체격이었다. "멋지다"는 말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 말 또 해줄 순 없나요? 당신이 여기 계속 머물렀으면 좋겠네요"라며 크게 웃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Weekly BIZ] [Cover Story]
가난한 이민자 아들로 태어나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디자이너 겸 CEO 랄프 로렌. “꿈을 디자인한 다”며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 그의 의상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을 사로잡았고, 랄프 로렌 자신 역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게 됐다. 아래 왼쪽 사진은 유방암 퇴치 지원을 위한 ‘핑크포니’라인. 수익금 일부를 관련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 랄프 로렌 제공



―어린 시절 진짜 꿈은 뭐였나.

"스포츠를 좋아해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키가 안 컸다(웃음). 영화를 좋아해 영화배우도 되고 싶었다. 조지 클루니 같은. 난 어릴 때 친구들의 패션에 대해 조언을 해주던 인기 소년이었다. 옷만 잘 입어도, 비록 그게 새 옷이나 비싼 옷은 아닐지라도, 남들과 차별되게 스타일을 잘 맞춰 입은 날이면 내 기분이 달라졌다. 옷이 날 표현해 준다고 느꼈다."

―언제부터 디자인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나.

"초등학생 때 구제 의상을 고쳐 입었는데 사람들이 '멋지다'며 난리였다. 으쓱했다. 디자인에 대한 재능이라기보다는 패션 전체,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져 보일까, 이런 삶 전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거 같다."

옷 이야기를 하면서 호흡이 빨라지고 행복해하는 그의 눈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디자이너라기보단 타고난 마케터"라고 비판한 패션 평론가들 때문에 생겼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일부 유명 디자인 스쿨 출신과 '게이'라는 정체성이 업계를 지배하는 폐쇄성 강한 패션업계에서 대학 교육도 거의 받지 않고 패션계에선 굉장히 드문 '스트레이트'라는 점이 그의 디자인을 "평범하다"고 폄하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구두는 샀나?

"가난한 화가의 아들이 무얼 많이 가졌겠는가. 때론 그런 건 영원한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바랄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게 있을까? 부족했기에, 결핍이 있었기에 그만큼 갈망하고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난 행복한 아이였다."

―이렇게 성공한 비결은?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일하고, 일하는 걸 즐기는 것."

―너무 평범한 답 아닌가?

"무슨 소리. 당신을 바라봐라.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글 쓰는 것 좋아하고,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은가? 당신은 단어로 글을 쓰지만, 난 옷을 통해 글을 쓴다. 그리고 그걸 즐긴다. 당신이 즐기는 일을 하면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되고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게 쌓이면 위대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위대함을 원한다면 그 위대함 속에 시간을 담으면 된다. 위대함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고, 마법처럼 손짓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즐기는 일을 열심히 하면 상대방이 반응하고, 그걸 보고 만족을 느끼고, 더 책임감 있게 잘하게 된다. 위대한 것은 결국 작은 것들이 축적돼 완성되는 것이다."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많은 사람이 똑같이 답한다. 열심히 일하고 네가 하는 걸 즐기고. 한국에 워커홀릭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건….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그렇다. 그러면 뭐가 차이일까? 생각의 출발점을 바꿔야 한다. 보통 그런 이들은 '돈을 벌자'고 목표를 설정한 뒤 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지치게 되고 '내가 지금 누굴 위해, 무얼 위해 하고 있는가' 하며 정신적 혼돈에 휩싸이기도 한다. 난 처음부터 돈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꿈을 완성하기 위해 일했다. 디자인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삶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명확한 꿈이 있었다."

―꿈꾸긴 쉬운 거 아닌가.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게 어렵지.

"물론 운도 좋았다. 부인할 수 없다. 인생에서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꼽자면 '타이밍과 운,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다.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 태어나 운이 좋았고, 내가 자랄 시기인 1960년대는 전 세계가 이제 막 패션에 눈을 떠 투자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타이밍도 좋았다. 내가 만약 10년 일찍 태어났다면 랄프 로렌 같은 거대 기업은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를 인정해준 사람을 만난 것이 행운이자 성공의 뒷받침이 됐다."

 [Weekly BIZ] [Cover Story]
랄프 로렌이 영국 윌리엄 왕세손 초청으로 14일(현지 시각) 윈저 캐슬에서 열린 ‘로열 마스덴 자선 행사’에 참석했다. 로렌은 최근 유방암 예방과 퇴치를 위해 영국 유명 암센터인 로열 마스덴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사위 폴 아루 엣(헤지 펀드 매니저), 딸인 딜런(캔디 사업가), 랄프 로렌, 아내 리키, 큰아들 앤드루(영화 제작자₩모델), 둘째 며느리 로렌 부시(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조카), 둘째 아들 데이비드(랄프 로렌 그룹 광고마케팅부 수석부사장). / 사진가 데이비드 하틀리 제공


―당신을 인정해준 사람이 누구인가?

"너무나 많다. 굳이 한 명을 꼽자면 마빈 트라웁(블루밍데일 백화점 전 CEO)이다. 내 넥타이에 대해 모두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 당시 블루밍데일 백화점 바이어였던 그는 내 작품에 열광하며 백화점 내에 숍인숍(매장 안에 작은 매장)을 두고 팔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뿐만 아니라 '랄프, 당신의 재능은 뛰어나군! 넥타이 말고 또 무얼 만들 수 있지? 뭐든지 만들어 보게'라며 격려해줬다. 난 사람을 알아봐 주고 격려한다는 게 얼마나 젊은이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는지 그를 통해 배웠다."

―어릴 때 매장 재고 관리원으로 일하면서 패션에 눈떴다고 들었다.

"17세 때다. 재고 관리라기보다는 교환 환불 처리 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반환한 옷을 옷걸이에 걸어 창고로 가져다 놓는 일 같은 걸 했다."

―그래도 배운 게 있을 텐데.

"환불하는 걸 보면서 '아 저런 걸 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 경험이 도움 됐나?

"그때 진짜 느낀 건 내가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16세 때 이름을 랄프 리프시츠에서 랄프 로렌으로 바꿨다. 유대인의 느낌을 지우기 위해 일부러 바꾼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그는 "발음이 어렵다며 어린 시절 계속됐던 놀림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렌'은 '로렌스'라는 사촌 이름에서 따왔다('런던'도 유력했다고 한다).

"직관은 강한 열망에서 나온다"

패션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넥타이를 내놓으면서다. 야간 대학을 다니며 브룩스 브러더스의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개별적이고 고급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은 그에 맞게 지갑을 열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는 점'을 깨달은 뒤였다. 대학을 중퇴하고 자신의 회사를 차려 기존에 유행하던 폭 좁은 넥타이 대신 그의 두 배는 되는 4인치 폭(약 11㎝)의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다. 값도 일반 타이 가격이 3~4달러였던 1967년 당시 7.5~15달러로 높여 승부수를 걸었다.

―넥타이는 특별했지만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좌절을 어떻게 극복했나.

"나 자신을 믿었다. 내 직관을 믿었고,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세대'를 이끌 것이라 생각했고, 새로운 걸 추구하는 그들의 욕구를 폭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건 아니었다. 무일푼 젊은이를 믿고 투자하려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능성을 본 한 사업가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 작은 좌판을 내줬다. 5만달러를 대출받아 회사를 세우고 생산을 시작했다. 그의 넥타이와 이듬해 시작한 남성복은 젊고 부유한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곧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다. 드라마 같은 출발이었다.

―'패밀리 브랜드(남성·여성·아동 등 가족을 모두 아우르는 브랜드)'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당신이 처음이고,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 매장)도 당신이 1986년 뉴욕에 선보인 라인맨더 매장이 원형이 됐다. 패션계에서 당신은 모든 걸 앞서갔다.

"아까 말했듯 내 직관을 믿었다. 직관이란 건 일부만 가진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흐름이란 게 나한테만 보였을까? 아니다. 분명 당신 곁도 스쳐 지나갔다. 간과했을 뿐이다. 언제나 깨어 있어라. 트렌드라는 건 당신 곁에 항상 있다."

―알아보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만큼 내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난 항상 사람들이 '나은 삶'에 대해 갈구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난 그저 옷을 디자인한 게 아니다. 삶을 디자인했고 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대학 졸업장 같은 게 당신이란 사람을 결정해 주진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밀고 나가라. 내가 산 증인 아닌가."

"내가 가장 중시하는 건 일관성"

랄프 로렌 디자인 팀에서 일했고, 지금은 몽클레르 디자이너인 톰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디자인은 하기 쉽다. 하지만 그걸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런 점에서 랄프 로렌은 위대하다."

―실패란 건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무슨 소리. 나도 실수 많이 했다. 초기엔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뤘다. 부도 일보 직전이어서 은행에선 전화가 계속 오고. 내 평생 최악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이겨냈나.

"비밀을 알고 싶나? 위대한 팀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적시 적소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 그들의 능력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좋은 디자이너, 좋은 사업가가 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위대한 디자이너, 위대한 사업가가 되는 건 굉장히 어렵다. 그 차이가 바로 '위대한 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한다는 것이 무조건 혼자 하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당신만의 '군대(army)'를 가져야 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도 자주 비교된다. 일부에선 그의 회사를 일컬어 '랄프교(敎)'라는 이도 있다. 그를 교주처럼 떠받친다는 것이다.

"직원과 한몸이라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 2만50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아 우리 회사로 모이지 않았는가. 직원이 성장하는 것이 결국 회사가 성장하는 것이다. 난 성장을 즐긴다. 난 그들이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골드버거는 당신을 가리켜 루스벨트나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그들 모두 내가 존경하는 이들이다. 제대로 된 리더, 그러니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위기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그런 이들이 얼마나 세상을 바꿔주는지 생애를 통해 절실히 배웠다. 그들이 한 일은 나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여주는 세계를 통해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 패션계에선 당신이 대통령 아닌가. 당신만의 비전이 있다면?

"하하. 내가 가장 중시하는 건 일관성이다. 기업의 철학이나 CEO의 철학이 일관성이 없다면, 직원들이 얼마나 그 회사를 어떻게 믿고 자신을 투자하겠는가. 기업을 떠올릴 때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난 내 회사를 믿었고, 사람들에게 신뢰할 만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품질에 대한 집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신이란 딱 반 보 앞서는 것"

―당신에게 혁신이란 무언가.

"기존보다 반 보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나의 목소리가 모이면 트렌드가 된다."

―2017년이면 50년이 된다. 자칫하면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게 패션계인데. 어떻게 매일 새로워지면서 지속 가능할 수 있는가.

"새로움(newness)이 언제나 항상 좋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새로운 건 좋지만, 그저 새롭기만 해서는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다. 시류에 맞으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항상성 같은 걸 가져야 한다. 10년, 20년 전에 샀던 것도 현재에 통용될 수 있는 것, 클래식하면서도 구식이 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너무나 트렌디해서 돈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뢰받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건 장수(longevity)할 수 있느냐다. 유행이란 너무나 짧고,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길다. 당신이 꼭 경계할 것은 '나도 이거 할 수 있어'라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경쟁사가 무얼 한다고 해서 따라 하는 순간 영속성은 깨진다. 또 작은 디테일도 놓치면 안 된다. 남들 눈에 안 보일 수 있어도 누군가는 그 흠을 발견할 수 있다."

―신뢰받으면서 동시에 트렌드를 주도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 '이걸 사야 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랄프 로렌적 삶'이라는 걸 이미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광고 투자도 필요했다. 난 시각화의 힘을 믿는다."

1970년대 '광고'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장장 20쪽에 달하는 이미지 광고를 실었다. '옷 자체보다는 옷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내세웠다.

―당신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

"매스(mass·대량 생산) 시대에 럭셔리는 특별한 걸 의미한다. 장인(匠人) 정신과 좀 더 나은 삶, 남과 차별화되는 것이다. 기계가 지배하는 매스 시대가 되면 될수록 질이 더 중요해진다. 처음에 매스가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에 눌려서 구분하기 어렵다가 시간이 가서 경험이 쌓이고 좋은 걸 볼 줄 아는 눈이 떠지면 질(quality)이 있는 것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이 게임의 최후의 승자는 품질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좋은 가정을 일궈 올해 결혼 5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게 무척 행복하다. 생각해 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무 일도 없을 때, 단순한 평화(just peace)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매 순간에 감사하고 즐기려 한다. 난 언제나 상기한다. 파란색 스웨이드 슈즈를 바라봤던 그 시절 모습을. 나는 언제나 설레고 언제나 꿈꾼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16/2014051602167.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10:23

어느날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앞에 '전(前)' 이 붙길래 도대체 어느 한국 회사에서 스카웃 했을까, 이제 뭐하나 싶었는데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맥주집이었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해서 자꾸 웃음이 난다. 대단하다.




[서울에 手製맥주 체인 낸 영국인 대니얼 튜더]


옥스퍼드 나와 스위스은행 근무한 이코노미스트誌 서울특파원 출신

재미로 개업해 대박… 1년만에 6호점 "한국은 밍밍한 대기업 맥주 일색"
'기적 이루고 기쁨 잃은 한국' 책도 내


이 집은 맥주로 승부한다. 대기업이 대량생산한 맥주가 아니라, 이 집만의 제조법으로 만든 수제 맥주다. 종류가 두 가지다. 우선 흰 거품 아래 황금빛 액체가 찰랑대는 '빌스페일에일(Bill's Pale Ale)'이 있다. 키 큰 컵에 꽉 차게 따라주고 5000원 받는다. 더운 날 꿀꺽꿀꺽 들이켜면 혀끝부터 목젖까지 고소한 향이 사르르 번진다.

흑맥주 애호가는 한 잔에 6500원인 '서울크림스타우트(Seoul Cream Stout)'를 찾는다. 보리밭의 흙처럼 검은빛이 감도는데, 쌉쌀하고 향긋하다.

옥호는 '더 부스'. 영국 출신 주인장 대니얼 튜더(Tudor·31)가 작년 5월 한국 친구 두 명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처음 열었다. 보름 만에 손님이 꽉 찼다. 강남역에 2호점을 차렸다. 그 집도 히트 쳤다. 내친김에 3·4·5·6호점을 잇달아 냈다. 전부 붐빈다. 올여름 판교에 7호점을 차리려고 준비 중이다.

‘더 부스’주인장 튜더씨가 각종 수제 맥주를 따라 보이고 있다.

‘더 부스’주인장 튜더씨가 각종 수제 맥주를 따라 보이고 있다. 어린 시절 튜더는 공부를 잘했는데 학교는 싫어했다. 눈앞의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궁금했다. 그는 스위스은행 다니다 기자가 됐고, 한국에서 기자 하다 맥주 가게를 냈다. 울릉도점까지 여는 게 꿈이다. /이명원 기자



튜더는 2010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 특파원으로 서울에 왔다. 왜 돌연 맥주집 주인장으로 돌아섰을까? 튜더가 "저한텐 맥주가 김치"라고 했다. "한국은 어딜 가나 카스 아니면 하이트예요. 전국에 김치가 딱 두 종류뿐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야, 담가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것이다.

"한국 맥주에 불만 있다"

그는 2012년 겨울 이코노미스트에 '먹을거리는 화끈한데 맥주는 따분하다'는 기사를 썼다. 해외에선 동네마다 가게마다 고유 맥주를 만들어 판다. 한국은 규제가 많아 중소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기 힘들다. "그러니 맥주가 밍밍해요. 북한 대동강맥주만큼도 맛이 없어요." 맥주 회사들은 열 받았겠지만 맥주 동호회 회원들은 "옳소!" 하고 박수 쳤다. 동업하자는 한국 친구가 생겼다. 맥주에 조예 깊은 미국 친구는 공짜로 제조법을 내놨다. 기사 쓰고 반년 뒤 첫 가게를 열었다.

인생 전환점, 2002 월드컵

그때만 해도 '반쯤은 재미'였다. "근데 재미로 계속하기엔 장사가 너무 잘됐어요." 3호점 내면서 이코노미스트에 사표를 냈다. 창업 석 달 만이다.

꼭 돈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보러 처음 한국에 왔다. 옥스퍼드 대학 1학년이었다. "한국 친구가 '아버지가 월드컵 표 사놨다'고 했어요. 독일과 미국 경기를 보려고 친구 4명이 인천공항을 찍고 김해공항에 내려서 울산으로 갔어요. 숙소에 체크인하려는데, TV에서 안정환이 반지에 입 맞추며 잔디밭을 질주했어요. 우와, 로비 전체가…!"

그는 "인생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한국 오기 전까지 '졸업하고 회계사가 될까, 은행에 갈까' 생각했어요. 갑자기 '꼭 그런 식으로 살 필요 없잖아?' 싶었어요." 인생 최고의 시절을 더 재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8년 뒤 한국 특파원이 될 기회가 찾아왔다.

마법이 가신 한국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스위스 유명 투자은행에 1년쯤 근무했다. 재미없었다. 한참 좀이 쑤실 때, 대학원 시절 인턴으로 일했던 이코노미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 특파원이 관뒀는데 가겠느냐?"고 했다. 두말없이 짐 싸서 한국에 왔다.

이후 한국 생활이 꼭 매력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튜더는 지난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2002년 처음 겪은 한국은 나라 전체가 활기차고 따뜻했다. "마법 같았죠." 한·일 월드컵이라는 마법은 풀린 지 오래됐다. 깊이 들여다본 한국은 "만사에 경쟁이 심해 승자(勝者)조차 녹초가 되는 나라"였다.

누가 진짜 승자일까

튜더가 "제가 만난 한국인 중에 정말 행복한 사람은 서울대 나와서 삼성전자 다니는 분들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나운서 관두고 여행 다니는 사람, 홍대 앞 인디 뮤지션, 경리단길에 타이 음식점 차려서 '맛집' 소리 듣는 사람…. 요컨대 "남들이 가라는 길로 안 가고 역주행한 사람들"이 신나 보였다. "금융 상품 거래할 땐 내가 뭔가를 사고판다는 실감이 없었어요. 맥줏집은 달라요.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요. 대기업이 못하는 장사가 반드시 있어요. 제 가게도 그중 하나죠."

영국에서 어머니 크리스틴(66)이 전화로 "외아들이 한국에 가겠다고 하길래 울었지만, 자주 못 보는 게 섭섭할 뿐 '명문대 나왔으니 큰 회사 다니지…' 소리는 안 해봤다"고 했다. "남이야 뭐라건 스스로 '잘 살았다'고 느끼면 성공 아니겠어요? 그리고 걘 어른이에요."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4/2014061400213.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10:17

곡절과 드라마로 대통령 된 이들
'내가 결국 옳았다'는 강한 확신 갖게 돼
확신이 강할수록 해저드는 깊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서 과거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사람의 얘기가 생각났다. "프레지던트 해저드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대통령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이나 함정이다. 대통령은 오랜 기간 온갖 곡절을 겪은 끝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렇게 대통령이라는 최고위직에 오르고 나면 자기가 살아오면서 내렸던 수많은 결정이 전부 옳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 착각에 빠지게 되면 그다음부터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이 우습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란 위세 때문에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이 대통령 해저드 때문에 잘못되거나 곤란을 겪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 해저드가 가장 심각했던 경우는 극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이 그랬다. 이들에게 '결국 내가 맞았고, 내가 옳았다'는 이 확신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정신적 기둥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한 여당 의원이 '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이뤄질 것이란 중요한 정보를 보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정치 9단이다. 턱도 없는 얘기다. 절대 안 되니 걱정 말라"고 했다. 채 한 달도 안 돼 김대중·김종필 연대가 발표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해에서 북의 기습으로 우리 참수리정이 침몰하고 장병들이 전사한 다음 날 일본으로 월드컵 축구 구경을 가는 정말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이 역시 전형적인 대통령 해저드 사례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관료들에게 "당신이 경제에 대해 뭘 알아"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이들의 이런 확신이 결국 임기 후반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정통성이 없거나 약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이런 확신이 크지 않았다. 전 대통령 시절에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물가 안정을 이룩하고, 노 대통령이 북방 정책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이들이 대통령 해저드에 덜 빠져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내가 다 옳았다'는 확신을 가질 경험 자체가 적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해저드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인사다. '내가 했던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국 옳았다'는 생각이, 대통령도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대통령 해저드에 빠진 사람들의 인사를 보면 중소기업 경영자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있다.

박 대통령이 당선 후 처음 한 조각(組閣) 인사는 뭐라고 평가하기도 어려웠다. 저 사람이 대체 누구고, 왜 저 자리에 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었다. 여당 의원 상당수가 비슷한 생각을 토로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그래도 대통령 생각은 달랐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내가 내린 많은 결정에 대해 얼마나 반대가 많았나. 이렇게 하면 진다고 난리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한 선거에서 전부 다 이겼다. 이번에도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말 몇 마디를 갖고, 그것도 전체 배경을 무시한 채 무조건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본뜻이 우리나라가 잘돼야 한다는 충정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문 후보의 과거 언사보다는 인선 자체가 시의적절했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인물을 발탁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국민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이다. 이번에 그런 신선한 충격이 일었을까. 발표된 뒤 사람들이 보내온 질문 대다수는 "이분이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극적 사건 이후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할 때다. 더구나 행정 조직의 대대적 개편을 앞두고 있다. 이런 때에 국민 대부분이 잘 모르고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하는 인선을 해야 했느냐는 생각이 든다. 연이어 청와대를 친박 인물들로 채우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해저드다'고 믿게 됐다. '받아쓰기'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도 대통령이 받아쓰기를 중단시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 지시를 받아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확신을 느꼈다. 모두 대통령 해저드의 현상이다.

박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란 일반적 예상과 달리 여당이 그런대로 선전한 결과를 보고 또 한 번 자신의 확신을 다졌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많은 경우 옳은 판단을 해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과 대통령이 된 후의 판단 기준이 같을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은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대통령까지 됐다. 이런 사람의 자기 확신은 스스로 거의 '운명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강력할 수 있다. 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해저드는 더 깊어진다. 대통령이 해저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모두가 보게 되는 그때를 '레임덕'이라고 부른다.

양상훈 논설주간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2/2014061204390.html


Posted by 겟업
2014. 9. 14. 08:33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유알아트’ 김영현 대표


고기 잡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물이 부족해 샤워시설도 없는 섬마을 작은 부두에는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보다 민박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더 많았다. 일 없는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다툼이 잦았다. 유일한 낙이 있다면 바닷가에 떠내려오는 낚싯대를 건져 손질을 해서 멀쩡한 낚싯대로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고친 낚싯대를 들고 나가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물때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고 사시사철 어떤 고기가 어디에 몰리는지, 어떤 미끼를 쓸지 훤하게 꿰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 집 담벼락에 운치 있는 간판들이 내걸렸다. 헌 빨래판에 고기잡이 모빌을 덧대어 만든 ‘고기 잡는 집’이란 문패 뒤로 집 안팎에 ‘숭어떼 기다리는 곳’, ‘물고기 말리는 곳’ 같은 팻말도 붙었다.


“할아버지가 주는 낚싯대와 미끼만 있으면 절대로 꽝 치는 일이 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물도 부족하고 시설도 낡았지만 “실제 섬사람처럼 하루라도 지내보자”는 슬로건에 육지 사람들은 매료되었다. 대박이었다. 할머니에게도 이제 할아버지는 예전의 일 없는 노인네가 아니다. 노부부 요즘 깨가 쏟아진다.


이들에게 동화 같은 반전을 선사한 사람은 동양화를 전공한 예술가다. 그는 화선지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이야기’(스토리텔링)와 ‘디자인’으로 채색해낸다. 한 달 동안 섬 주민과 먹고 자고 부대끼면서, 변방으로 밀쳐진 그들의 삶에 이름표를 달아준다. 통영시 매물도의 ‘꽃 짓는 할머니집’, ‘바다마당을 가진 집’, ‘마을을 한눈에 담는 집’들도 그렇게 탄생했다. 문화기획집단 ‘유알아트’의 김영현(49) 대표,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 가치와 정체성을 되살리는 작업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3월21일 찾아간 유알아트 사무실은 서울 정릉천변 시장통 건물 4층에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시계 만들었는데 아침부터 저녁 7시까지가 2/3였다 잠자는 시간은 좁게 만든 거다 이분들은 오히려 학습받지 않은 예술적 감성들을 갖고 계셨다” 

통영시 매물도의 작은 부둣가, 하동의 시골 골목길 빗자루가 멋진 예술작품으로 변신한다 
동양화 전공자로 시작한 그는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모신다 


수천명이 만든 아기장승, 20억 조각보다 빛나


-‘유알아트’란 무슨 뜻인가? ‘당신이 예술’이란 뜻인가?


“‘모든 사람이 예술가’란 뜻이다. 1998년 뜻 맞는 친구들과 유알아트 만들고 이듬해부터 (화가) 임옥상 선생님과 ‘당신도 예술가’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처음부터 특별한 의미나 개념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 당시에 인사동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드는데 좋은 이벤트 같은 게 없을까 하다가 용감하게 시작한 거였다. 근데 하다 보니 진짜 재밌어졌다.”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길거리와 공원, 일상의 공간에서 주민들이 직접 창작에 참여하는 대규모 예술 프로그램인데 그 형식도 다양하고 기발하다. 20m 길이의 광목천 위에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참가자들이 함께 그려 넣기도 하고, 대형 그물망을 세운 뒤 오색 한지에 각자의 소망을 써서 매달기도 하고, 긴 빨랫줄 위에 매듭과 구슬을 이용해서 인형을 만들어 걸기도 한다.


-참가자들에게는 재미있는 퍼포먼스겠지만 미학적 가치를 매길 만한 예술작품은 아니잖은가?


“시민창작자들이 만드는 게 작가들 것보다 훌륭할 때도 많다.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전문작가들)이 행사 초반에 샘플 작업을 열심히 해서 걸어두는데 한 시간쯤 지나면 그걸 다 떼야 하는 상황이 온다. 사람들이 한 500명쯤 모이면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들 작품보다 훨씬 더 재밌는 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유알아트의 모든 사업을 관통하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바로 ‘상호학습’과 ‘상호작용’이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서로에게 학습되고 서로에게 작용한다는 걸,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나도 실감하게 되었다. 과거가 천재들의 창작 시대였다면 지금은 집단창작 시대다. 시민창작자들이 판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그 에너지가 진화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너무 이념적, 관념적인 의미 부여 아닌가?


“2007년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연과 미술창작 프로그램을 같이 한 적이 있다. 그때 프랑스 조각가가 만든 20억원짜리 작품이 야외에 전시되고 있었는데, 우리도 ‘당신도 예술가’에서 만든 작품을 그 곁에 쫙 늘어놨었다. ‘아기장승 만들기’ 프로그램에 몇천명이 참여해서 색깔 칠해 만든 거였는데 그걸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장승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거다. 20억짜리가 아니고.”


-상품화된 예술품의 시장가치와 그것의 문화적 가치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긴데.


“20억짜리라고 20억짜리만큼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 몇백만원짜리 예산 가지고 몇천명이 만들었던 작품의 에너지가 훨씬 엄청났던 거다.”


-이런 프로젝트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나?


“초창기인 2000년도에는 예술가 지원금을 300만원 받았다. 하루에 500명 내지 1000명 참여해서 매주 일요일마다 인사동에서 했는데….”


-한 회에 300만원?


“아니, 1년에 300만원. 그때 지원심사를 맡은 기관이 문예진흥원이었는데 심사위원들이 ‘밥 먹고 종일 그림만 그리는 사람 지원하기도 바쁜데 당신처럼 사람들하고 노닥거리는 데에 돈을 줘야 하냐?’고 하더라. 당시엔 우리가 하는 일들, 커뮤니티 아트, 사람들에게 문화 향유, 창작의 기회를 준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거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내가 하고 있던 일이 ‘참여’의 전형으로 보이게 되고 이후 지원금이 대폭 늘었다. 하루 1000만원씩. 지역에 있는 문예회관을 찾아가 프로그램을 세 개씩 돌렸다.”


-엄청난 비즈니스다.


“버스를 대절해서 한 번에 40명 정도 같이 움직였다. 프로그램 한 번 할 때. 버스 한 대, 트럭 한 대, 카니발 한 대를 가지고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할머니들은 왜 이장님을 혼내달라 했을까


-그렇게 잘나가는 일을 왜 접었나? 2008년도에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를 돌연 중단했는데.


“경남 함안에 프로그램을 하러 내려갔을 때였다. 군 전체 인구가 2만3000 정도 되는 작은 지역이었는데 다른 시골도 그렇지만 조손가정이 많았다. 엄마·아빠 서울 살고 아이만 할머니한테 맡겨놓는…. 보통 그러면 할머니는 애들 ‘밥’이다. 그때 마침 ‘한지 공책 만들기’를 하는데, 손주랑 같이 온 할머니 한 분이 너무너무 잘 만드시는 거다. 옛날 소학교 다닐 때 해보셨다면서. 그래서 아예 메인강사를 보조로 앉히고 할머니가 메인강사를 맡게 하니 꼼꼼하게 잘하시더라. 그 순간 손주의 표정이 바뀌는 걸 봤다. 자기 ‘밥’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한테 ‘선생님, 선생님’ 하니까.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선생님 얘기 잘 들으셔야 돼요, 여기 앉으시고 저기 앉으시고’ 하면서 사람들을 챙겼다. 그러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니까 애가 갑자기 시무룩해지는 거다.”


-가기 싫었나 보다. 할머니를 더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게. 나한테 다가오더니 ‘대장 선생님, 다음주에 또 오면 안 돼요?’ 하더라. 근데 나를 부르려면 1000만원이 있어야 하질 않나. 가슴이 먹먹했다. 가는 데마다 그런 아이들을 만났다. 그게 계속 누적이 되다가 ‘안 되겠다, 방식을 바꾸자’ 생각했다. 지역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면 내가 가서 교육을 해주고 그들이 지역 동아리를 꾸리는 식으로…. 어느 정도 교육을 하다 보니까 우리가 안 가도 될 정도가 되더라. 그래서 아예 그만뒀다.”


-그래서 그만뒀다고? 하루 1000만원 벌던 사업을?


“활동 영역이 자꾸 늘어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친구들도 힘들어했다. ‘유알아트에 비전맨(vision man)이 되려고 들어왔는데 하다 보니 실무를 치러내는 스태프가 되더라’는 고백들이 나오고. 그래서 참 아팠다. 일도 많아지고 지원도 대폭 확대될 시점이었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문을 닫기로 했다. 안식년이 필요하니 1년 동안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고 다시 모이자 하고….”


스스로 설정한 안식년 동안 발길 내키는 대로 전국을 유랑했다. 차 트렁크에 낚싯대 싣고 달리다가 배를 타고 돌기도 하고, 명승지 아닌 평범한 마을들을 헤집으며 동서남북 쏘다녔다. 10년간의 유알아트 활동을 반추하면서 삶이란, 예술이란 무엇일까 부단히 되묻는 여정이었다. 그렇게 얻은 해답은 ‘지역’이었다. 일상적 삶이 펼쳐지는 현장, 그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채롭게 하는 일. 2010년 유알아트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후 김영현은 서산과 매물도, 담양의 창평, 칠곡, 하동 등지에서 지역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유알아트를 설명하는 문구가 이전에는 ‘공공문화 개발센터’였다가 ‘삶의 기술 발전소’로 바뀌었다. ‘문화, 예술’과 ‘기술’은 대비되는 개념 아닌가?


“기술도 문화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삶의 현장에서 전해져 내려온 일상의 기술은 우리의 훌륭한 문화다. 우리가 담양에서 했던 달팽이학당도 동네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만든 거다.”


-달팽이학당이 뭐하는 곳인가?


“담양 창평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는데 달팽이는 슬로시티의 상징이다. 보통 지역에서 뭘 배우려면 센터에 가서 배우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센터가 아니라 동네분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할 수 있는 걸 가르치게 했다. 바느질하는 분은 바느질을, 막걸리 잘 담그는 분은 막걸리를, 자기 집에서 자기가 해왔던 대로 가르치는 거다.”


-달팽이학당 주민교사란 이런 분들을 가리키는 말인가?


“그렇다. ‘산골밥상’이라고 산동네 사시는 할머니 스무 분이 4개 조로 나뉘어서 외지인들이 단체로 오면 밥해 먹이는 걸 하고 있는데 이분들도 다 선생님이다.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몇달 있다가 할머니들이 우릴 찾아왔다. 이장님 혼내줘야 된다고.”


-무슨 일이 있었나?


“사람들이 30명 와서 밥해 먹는 프로그램을 한 뒤 재료비 빼고 할머니 한 분당 4만원씩 나눠드렸다는데 화가 나셔서….”


-왜 화가 나셨나?


“왜 그런지 맞혀보라. 다섯 분한테 4만원씩 나눠줬는데 화가 났다고, 나더러 이장님 혼내주라고 오신 이유.”


-액수가 작았나?


“그게 아니다. 우리는 이분들을 ‘달팽이학당 교사’라고 불렀고 우리가 할 때는 그 돈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그러면 할머니들이 며느리나 손주한테 신나서 전화하신다. 놀러오라고, 용돈 주시겠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드릴 때는 봉투에 ‘강사비’라고 써서 드렸거든. 할머니들은 그걸 자식들한테 보이고 싶으셨던 거다. ‘내가 여기서 번 돈이 일당이 아니라 선생님 노릇해서 번 돈이야’ 얘기하고 싶으셨던 건데….”


-아하, 그런데 이장님이 그냥 돈만 주셨으니….(웃음)


“자존심이 상하셨던 거지. 이분들이 얘기하는 게 뭐냐면, 이게 똑같은 돈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돈의 가치를 얘기할 때 액수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이 할머니들에게 돈의 가치는 액수가 아니다. ‘어떤 돈인가’가 중요했던 거다. 일당 받듯이 받는 거 말고, ‘내가 이걸 어떻게 번 돈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사회적 경제니 공유경제니 말들 하는데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니고 그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가치이다.


이분들에게 이 돈은 자존감이고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창립 이후 유알아트의 일관된 모토는 ‘사람 중심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매물도 사람들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관광자원화하고, 담양 창평의 지역 장인을 양성해서 토속 문화를 복원하고, 칠곡의 인문학마을공동체 사업을 진행할 때, 가장 근간이 되는 요소는 “당사자성, 지역성, 공동체성”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지역성, 공동체성은 알겠는데 당사자성은 무슨 뜻인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셀프 메이드(self-made). 매물도에 갔을 때도 처음 1년차는 우리랑 작가들이 같이 가서 (설치)작업을 했지만 2년차부터는 주민들이 ‘할 만하네, 만만하네’ 생각하면서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진행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북동 오리에 꽂힌 ‘동네형 영현 아씨’


-그런데 사실 이것도 어느 정도 눈썰미, 손재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내가 태어난 집도 우리 부모가 직접 지으셨다. 근데 요즘은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고 제 손으로 밥해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준다. 스스로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리는 시대다. 법 없이도 살던 세상이었다가 언젠가부터 법이 법률가들의 전문 영역이 돼버린 것처럼, 일상적이던 예술도 어느 순간 전문가의 영역이 되면서 우리 삶은 더이상 예술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돼버렸다. 시골 가서 할머니들하고 워크숍하면 되게 재밌는데, 이분들은 오히려 학습받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을 갖고 계시다. 어떤 할머니가 시계를 만들었는데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가 시계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눈금 사이 간격이 일정하지 않단 건가?


“그렇다. 할머니에게 중요한 시간은 넓게, 잠자는 시간은 좁게….”


-재미있는 발상이다.


“요즘 하동에서 ‘골목 갤러리’ 사업을 하고 있다. 거기선 집집마다 할머니들이 빗자루를 만들어 쓰시는데 그 빗자루가 크기부터 모양까지 다 다르더라. 키 작은 할머니들은 조그맣게, 키 큰 사람은 크게…. 그걸 골목에 쭉 늘어놓으니 그 자체로 작품이 되었다. 누구나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고 창작할 권리가 있다. 일상적 삶의 가치가 가장 두드러질 때, 문화가 꽃피고 그 문화를 자양분으로 살아나는 게 예술인데, 이게 권력구조가 되어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김영현은 공생과 공유의 문화를 통해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 한다. 조용하고 따뜻하지만 강력한 혁명이다. 동양화 전공자로 출발해 무대미술 감독이었다가 유알아트 설립과 함께 문화운동가, 마을운동가가 되었던 그는 요즘도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바쁘다. 햇빛온수기와 건조기, 절약형 난로와 화덕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해 ‘자연의 부엌, 마음먹기’라는 전시장 겸 카페도 최근 개점했다.


-당신의 직업은 뭔가?


“16년째 남들이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답을 못하고 있는데….(웃음) 어떤 친구가 나한테 ‘트렌드세터’(trendsetter)라고 그래서, 그런가… 하고 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특별히 홍보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없나?


“요 사무실 앞 정릉천에 오리들이 사는데, 동네 사람들이랑 그 오리도 보호하고 하천 주변도 살피자고 ‘성북오리’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계속 지방으로 다니다 보니까 내가 사는 동네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동네에서 놀고 싶다. 동네 좋은 형이 되고 싶다.”


-하하하, ‘동네 형’이 되려면 ‘추리닝’에 슬리퍼부터 장만하셔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네에서 내 닉네임도 정해졌다. ‘영현 아씨’라고….(웃음) 다들 날 그렇게 부른다.”


그의 사무실 창 너머로 석양빛을 받은 정릉천이 내려다보였다. 오리 몇마리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따스한 봄날, 헐렁한 체육복에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담고 천변을 어슬렁거릴 동네 형 영현 아씨의 모습을 조만간 저 오리들도 마주치게 될 것이다.


녹취 김혜영(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31312.html


Posted by 겟업
2014. 8. 18. 03:11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근조의 마음가짐으로 일상을 산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것조차 모래알을 삼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마치 자신이 외계인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온 국민이 애통한 심정인데도 남의 일 말하듯 툭툭 비수를 박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감 역시 배려처럼 학습되고, 연습되어야 하는 능력이다.

 중간고사를 앞둔 요즘, 외할머니 생신이나 시댁 큰집 큰형의 결혼식, 작은집 처가의 장인이 돌아가신 일 등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부모들이 입에 달고 사는 게 있다. “우리 애는 공부하느라고 못 왔어요.” 심지어 아이들에게 “너는 공부해야 하니까 가지 않아도 돼” 혹은 “가지 마라”고 한다. 부모만 혼자 열심히 자녀에게 공감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공감력을 키우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공감 역시 아이가 자라는 기간 내내 키워야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공감력은 가장 가까운 단위인 가족, 그리고 친척 등의 범위에서 하나씩 확장된다. 아이가 시험기간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중요하며, 그대로 유지된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다.

 부모에게서 공감을 받기만 하는 요즘 아이들은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예를 들어 요즘 아이들은 엄마를 수퍼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항상 건강하고, 피곤한 일도 없고, 아파도 씩씩한 기계처럼 여기는 것 같다. 공감을 받기만 한 이런 아이들은 결국 부모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성장기 자녀의 공감력을 키울 기회를 스스로 빼앗음으로 해서 결국 나이 들어 자녀에게 공감을 얻지도, 배려도 받지 못할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키우려면 작은 일에서부터 공감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훈련을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소통으로 가능한 일이다. 피곤해도, 아파도 아이를 위해서 모든 걸 다 해줄 필요는 없다.

 “오늘 엄마가 많이 아파서 피곤하단다. 너도 아프고 피곤한 날이 있지? 이런 날은 네가 엄마를 이해해주고 도와주면 좋겠어. 엄마를 쉬도록 도와줄래?” 엄마도 아플 수 있고 그러므로 누군가의 도움, 즉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고, 그런 고민이 한 자아를 성숙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소한 일부터 공감력도 학습이고 연습이어야 한다. 


이미애 국자인 대표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54810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3:06

『장화홍련전』과 진짜 ‘장화홍련전’을 함께 읽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장화홍련전』은 지은이와 지은 시기가 분명하지 않은 고대소설이다. 줄거리를 열한 문장으로 정리해봤다.

 ·평안도에 배좌수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늘그막에 장화와 홍련을 얻는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후처를 본다.

 ·후처는 간악하지만 좌수는 알지 못한다.

 ·후처는 장화의 혼수를 아까워한다.

 ·후처는 털을 뽑은 쥐를 장화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꾸민다.

 ·좌수는 후처의 흉계에 속아 장화가 낙태한 것으로 알고 딸을 못에 빠뜨린다.

 ·홍련 역시 언니를 따라 못에 몸을 던진다.

 ·둘의 영혼은 신임 사또를 찾아가지만 이를 본 사또들은 겁에 질려 죽어나간다.

 ·담이 큰 사또가 스스로 부임해 장화·홍련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계모를 처형한다.

 ·배좌수는 새 장가를 들어 잘 먹고 잘 산다.

 이 소설과 가장 가까운 역사적 기록이 ‘가재사실록’에 실려 있다. 평안도와 배좌수, 장화·홍련이라는 무대·이름이 같다. 악녀인 계모가 장화를 모함해 사지로 몰아넣는 것도 같다. 나중에 정의의 사또가 등장해 원한을 풀어주는 스토리까지 일치한다. 누군가가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다르다. 실록과 달리 소설에는 ‘미꾸라지’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배좌수는 장화·홍련을 지극히 아끼는 아버지로 묘사된다. 실록에는 없는 내용이다. 소설의 배좌수는 본의 아니게 후처의 농간에 놀아난 마음 약한 양반이지만 실록의 배좌수는 장화를 죽이라고 지시를 내린 공범 또는 종범이다. 소설의 배좌수는 뒤늦게 진실을 알고 통곡하며 후회함으로써 처벌에서 벗어난다. 새 장가를 가서 아들과 재물을 동시에 얻기까지 한다. 하지만 실록의 배좌수는 유배형을 받는다. 실제 이야기가 소설로 바뀌는 과정에서 배좌수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최근 경북 칠곡에서 현대판 『장화홍련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악독한 계모와 무능한 아버지, 장화·홍련 같은 자매가 등장한다. 계모는 8살 난 의붓딸을 끔찍하게 때려 숨지게 한 뒤 언니인 다른 의붓딸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고 한다. 언니의 고변이 없었다면 어린 자매는 ‘언니에게 맞아 죽은 동생, 동생을 숨지게 한 언니’로 남을 뻔했다. 이후 계모의 악행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은 온통 계모를 향한다. ‘악마’ ‘짐승’ ‘사이코패스’라는 표현까지 신문 사회면에 등장한다. 정작 이 사건이 소설과 흡사한 것은 배좌수같이 빠져나가려는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이다.

 칠곡의 딸들은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 학대 징후가 수차례 드러났지만 경찰과 보호기관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모의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았다”고 주장한다. “계모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서” “계모가 집에 없어서” “계모 앞에서 아이가 진술을 번복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댄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엄격한 훈육 정도라고 여겼을 뿐 후처의 악행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모두가 무능한 배좌수를 자처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능보다 무책임이다. 계모의 입만 보고 있다면 그런 직업·기구·가장은 왜 있을까.

 ‘눈은 퉁방울, 입은 메기, 두발은 돼지털, 목소리는 이리…심사는 더욱 불량해 못할 짓만 골라가며 했다.’ 소설은 배좌수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계모의 극악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이를 배좌수의 허물을 덮는 전략으로 쓴다. 칠곡 사건을 둘러싸고 나오는 숱한 증언들은 그 계모를 『장화홍련전』 계모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아이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 했던 계모처럼 계모에게 허물을 떠넘기고 자신들은 빠져나가려는 핑계성 발언이 넘쳐난다. 배좌수는 소설로 족하다. 계모의 치마폭에서 나와 죄를 청해야 할 이들이 많지 않은가. 


이규연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41714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3:06

“우리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측정할 수 없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전 최고마케팅 경영자 존 헤이스가 한 말이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숫자부터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무엇이 세상을 움직이는가? 의사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이해득실, 가치와 능력, 판단과 실행 다 중요하지만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의 ‘매력’이라는 요소다. 우리는 호감 가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고, 매력적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개인이 풍기는 매력이다.

 측정하기 곤란한 이 ‘매력’이란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작용한다. 조지타운대 경영대학원 로히트 바르가바 교수는 2012년 자신이 쓴 저서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원더박스, 2013)에서 ‘가장 중요한 세계 통화는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세계 경제가 얼핏 숫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호감이 매우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비슷한 능력이라면 이왕이면 호감 가는 사람과 일하려고 한다’가 아니라 호감이 능력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005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티지아나 카시아로와 듀크대 미겔 수자 로보 교수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은 호감도가 비즈니스 영역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했다. 실리콘밸리 테크회사, 미국의 대학교, 스페인의 세계적인 명품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호감도와 능력에 대한 선호 조사를 했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다고 가정할 경우 어떤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 물은 것이다.

 당연히 능력도 뛰어나고 호감도도 높은 사람과 일하길 다들 희망했다. 능력이 없는 데다가 호감도까지 낮은 사람과 일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흥미로운 결과는 호감도는 높으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과 업무능력은 뛰어나지만 호감도가 낮은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전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유능한 밉상보다 매력적인 바보를 선택한 것이다. 호감도와 능력 중에서 호감도를 더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맬컴 글래드웰의 『블링크』에 따르면, 의사가 의료 과실로 소송을 당할 가능성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느냐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한다. 부적절한 치료로 인해 의사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의료사고 전문변호사 앨리스 버킨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의사를 상대로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료과실을 범한 의사를 고소하라는 주위의 압력을 받을 때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 의사가 한 실수는 개의치 않습니다. 난 그 의사를 좋아하거든요. 고소할 마음이 없습니다.”

 토론토대 웬디 레빈슨 박사는 한번도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의사들보다 환자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더 잘 웃고,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우선 이렇게 해 보고 다음에는 말씀하신 대로 해봅시다” 같은 말을 통해 환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믿는다. 좋아하는 것과 믿을 만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도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말이다. 왜냐하면 비호감인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비즈니스 세계에선 관계가 중요하니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두루 처세를 잘하라는 식의 조언을 하려는 게 아니다. 호감을 풍기기 위해 실천해야 할 지침들을 외울 필요도 없다.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호감이라는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것의 역할과 효과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호감을 전하며 물건을 팔고 있는지, 우리 회사 직원들의 호감도는 어느 정도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심리학자 팀 샌더스는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이타적인가, 공감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가, 남의 말을 들어주고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가 등이 호감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호감은 소통과 배려의 결과물인 것이다.

 호감 가는 인간으로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매력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강력한 미덕이다. 함께 더불어 살기에 매력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362331&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