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인턴 면접시험에 면접 위원으로 참여했다. 서류 전형과 논술 시험을 거쳐 선발된 젊은이 100명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온종일 회사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다. 새로 산 양복 입고 면접 보러 다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면접 위원 중 한 분이 물었다. "우스갯소리를 잘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쓴 것을 두고 물은 것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를 이끌어가는 편이고 곧잘 웃긴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주문이 돌아왔다. "한번 웃겨보시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개그맨 면접도 아니고 신문사 높은 분들을 어떻게 웃긴단 말인가. 음담패설 몇 개가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자멸(自滅)할 것이 뻔했다. 웃긴다고 해놓고 못 웃기면 정말 웃기는 친구가 될 판이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빳빳하게 다려주신 셔츠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5초쯤 지나 뭔가 생각났다. 그러곤 면접을 통과해 이 회사에서 20년을 일하고 있다.
다섯 명씩 스무 조의 응시자들이 차례로 면접장에 들어왔다. 다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고 토익 점수도 높았다. 여러 가지 인턴과 자원봉사 경험을 했다. 떨어뜨릴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 80명을 떨어뜨려야 했다. 면접 위원이란 가혹한 자리였다. 그래서 비상임(非常任)인 것이다.
자연스레 인상(人相)을 보게 됐다. "수험생이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분명한 건 외모가 인상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남 미녀는 시선을 먼저 잡아끈다. 그 유효기간은 첫 질문에 대답하기 직전까지다. 특기란에 '자전거 타기'라고 써놓고 자기 자전거가 로드바이크인지 MTB인지 모른다든가, 취미가 고전 영화 감상인데 영화 제목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대면 장동건·고소영도 떨어진다.
면접(面接)은 말 그대로 대면하여 만나보는 일이다. 자기소개서에 서술한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많은 취업 준비생이 잘생기고 예쁘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면접 위원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잘생긴 '곰바우'와 예쁜 무능력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응시자에게 특이한 경험이나 스토리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하게 된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 질문에 대답할 때 불덩어리가 이글거리면 합격이다. 그저 육하(六何)원칙에 맞춰 답하면 사막 횡단을 했거나 독도까지 헤엄쳐 갔다 해도 '취직하려고 애썼구나' 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인상(人相)이요, 결국 좋은 인상(印象)을 남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 일이 무엇이냐와 상관없이 좋은 인상을 준다. 남이 좋다니까 한 일,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러기 힘들다.
한 취업 관련 사이트가 20대 취업 준비생 807명에게 물어보니 20.8%가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취업 성형에 300만원까지 쓰겠다고 했다. 그 돈을 성형 말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 투자하는 게 백번 낫다. 그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써라. 반드시 그에 대해 물을 것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면 끝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한현우 문화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0/2014071004349.html
'교양있는삶 > keep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향기] 한류의 위기와 기회 (0) | 2014.12.23 |
---|---|
[서소문 포럼] 징병제·모병제 입씨름에 앞서 군 혁신부터 (0) | 2014.12.04 |
뻐꾸기와 뱁새 (0) | 2014.12.03 |
[Cover Story] 맨손으로 패션왕국 세운 랄프 로렌을 만나다 (0) | 2014.09.14 |
'내가 즐거운 일' 찾는 것… 그게 성공 아닐까요 (0) | 2014.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