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10:23

어느날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앞에 '전(前)' 이 붙길래 도대체 어느 한국 회사에서 스카웃 했을까, 이제 뭐하나 싶었는데 상당히 궁금했었는데 맥주집이었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해서 자꾸 웃음이 난다. 대단하다.




[서울에 手製맥주 체인 낸 영국인 대니얼 튜더]


옥스퍼드 나와 스위스은행 근무한 이코노미스트誌 서울특파원 출신

재미로 개업해 대박… 1년만에 6호점 "한국은 밍밍한 대기업 맥주 일색"
'기적 이루고 기쁨 잃은 한국' 책도 내


이 집은 맥주로 승부한다. 대기업이 대량생산한 맥주가 아니라, 이 집만의 제조법으로 만든 수제 맥주다. 종류가 두 가지다. 우선 흰 거품 아래 황금빛 액체가 찰랑대는 '빌스페일에일(Bill's Pale Ale)'이 있다. 키 큰 컵에 꽉 차게 따라주고 5000원 받는다. 더운 날 꿀꺽꿀꺽 들이켜면 혀끝부터 목젖까지 고소한 향이 사르르 번진다.

흑맥주 애호가는 한 잔에 6500원인 '서울크림스타우트(Seoul Cream Stout)'를 찾는다. 보리밭의 흙처럼 검은빛이 감도는데, 쌉쌀하고 향긋하다.

옥호는 '더 부스'. 영국 출신 주인장 대니얼 튜더(Tudor·31)가 작년 5월 한국 친구 두 명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 처음 열었다. 보름 만에 손님이 꽉 찼다. 강남역에 2호점을 차렸다. 그 집도 히트 쳤다. 내친김에 3·4·5·6호점을 잇달아 냈다. 전부 붐빈다. 올여름 판교에 7호점을 차리려고 준비 중이다.

‘더 부스’주인장 튜더씨가 각종 수제 맥주를 따라 보이고 있다.

‘더 부스’주인장 튜더씨가 각종 수제 맥주를 따라 보이고 있다. 어린 시절 튜더는 공부를 잘했는데 학교는 싫어했다. 눈앞의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이 궁금했다. 그는 스위스은행 다니다 기자가 됐고, 한국에서 기자 하다 맥주 가게를 냈다. 울릉도점까지 여는 게 꿈이다. /이명원 기자



튜더는 2010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 특파원으로 서울에 왔다. 왜 돌연 맥주집 주인장으로 돌아섰을까? 튜더가 "저한텐 맥주가 김치"라고 했다. "한국은 어딜 가나 카스 아니면 하이트예요. 전국에 김치가 딱 두 종류뿐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야, 담가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것이다.

"한국 맥주에 불만 있다"

그는 2012년 겨울 이코노미스트에 '먹을거리는 화끈한데 맥주는 따분하다'는 기사를 썼다. 해외에선 동네마다 가게마다 고유 맥주를 만들어 판다. 한국은 규제가 많아 중소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기 힘들다. "그러니 맥주가 밍밍해요. 북한 대동강맥주만큼도 맛이 없어요." 맥주 회사들은 열 받았겠지만 맥주 동호회 회원들은 "옳소!" 하고 박수 쳤다. 동업하자는 한국 친구가 생겼다. 맥주에 조예 깊은 미국 친구는 공짜로 제조법을 내놨다. 기사 쓰고 반년 뒤 첫 가게를 열었다.

인생 전환점, 2002 월드컵

그때만 해도 '반쯤은 재미'였다. "근데 재미로 계속하기엔 장사가 너무 잘됐어요." 3호점 내면서 이코노미스트에 사표를 냈다. 창업 석 달 만이다.

꼭 돈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보러 처음 한국에 왔다. 옥스퍼드 대학 1학년이었다. "한국 친구가 '아버지가 월드컵 표 사놨다'고 했어요. 독일과 미국 경기를 보려고 친구 4명이 인천공항을 찍고 김해공항에 내려서 울산으로 갔어요. 숙소에 체크인하려는데, TV에서 안정환이 반지에 입 맞추며 잔디밭을 질주했어요. 우와, 로비 전체가…!"

그는 "인생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한국 오기 전까지 '졸업하고 회계사가 될까, 은행에 갈까' 생각했어요. 갑자기 '꼭 그런 식으로 살 필요 없잖아?' 싶었어요." 인생 최고의 시절을 더 재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8년 뒤 한국 특파원이 될 기회가 찾아왔다.

마법이 가신 한국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맨체스터대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스위스 유명 투자은행에 1년쯤 근무했다. 재미없었다. 한참 좀이 쑤실 때, 대학원 시절 인턴으로 일했던 이코노미스트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 특파원이 관뒀는데 가겠느냐?"고 했다. 두말없이 짐 싸서 한국에 왔다.

이후 한국 생활이 꼭 매력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튜더는 지난해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다. 2002년 처음 겪은 한국은 나라 전체가 활기차고 따뜻했다. "마법 같았죠." 한·일 월드컵이라는 마법은 풀린 지 오래됐다. 깊이 들여다본 한국은 "만사에 경쟁이 심해 승자(勝者)조차 녹초가 되는 나라"였다.

누가 진짜 승자일까

튜더가 "제가 만난 한국인 중에 정말 행복한 사람은 서울대 나와서 삼성전자 다니는 분들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나운서 관두고 여행 다니는 사람, 홍대 앞 인디 뮤지션, 경리단길에 타이 음식점 차려서 '맛집' 소리 듣는 사람…. 요컨대 "남들이 가라는 길로 안 가고 역주행한 사람들"이 신나 보였다. "금융 상품 거래할 땐 내가 뭔가를 사고판다는 실감이 없었어요. 맥줏집은 달라요.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요. 대기업이 못하는 장사가 반드시 있어요. 제 가게도 그중 하나죠."

영국에서 어머니 크리스틴(66)이 전화로 "외아들이 한국에 가겠다고 하길래 울었지만, 자주 못 보는 게 섭섭할 뿐 '명문대 나왔으니 큰 회사 다니지…' 소리는 안 해봤다"고 했다. "남이야 뭐라건 스스로 '잘 살았다'고 느끼면 성공 아니겠어요? 그리고 걘 어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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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