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8. 03:04

‘색(色), 네 개의 욕망.’ 얼마 전 방영된 KBS 기획물이다. 인간의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표현하는 빨강·초록·파랑과 그 합인 하양을 문명사 측면에서 파고든 교양물이다. 제작팀은 색의 의미를 강조한다. ‘인간은 구원(파랑)을 향한 욕망을 거쳐 불멸을 염원하는 빨강, 소유하고자 하는 초록을 지나 탐미(하양)로 돌아간다.’

 요즘 ‘성장의 한계’ 얘기를 많이 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꺾인다.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 다음을 이끌 기둥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고속성장을 더 해야 하는데 동력이 없다고 한다. 또 누구는 성장 지상주의의 수명이 다했다고 진단한다. 모두 한계를 가리키지만 방향은 제각각이다. 지금 세대가 성장의 한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미래세대의 모습은 바뀐다. KAIST 미래전략연구센터(원장 이광형)와 재미있는 조사를 해봤다. 오피니언 리더 55명에게 ‘성장의 한계는 무엇이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느냐’를 물었다. 그 유형을 네 가지 색으로 나눠봤다.

 1 유형 빨강(불멸). ‘성장동력 상실이 주원인이며, 그 책임은 정부·지도층에 있다.’ 55명 중 16명.

 “결국 성장은 얼마나 불필요한 활동을 적게 하느냐에 달렸다. 성장의 한계는 낭비를 조장하는 제도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권력 때문이다.”(벤처사업가) “규제가 많아서 되는 일이 없다. 공직자의 업무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재미 정치인) “수준 낮은 좌파 리더십이 문제다. 리더십을 바로잡자.”(중견그룹 CEO) “박정희 정부 이래로 이어온 산업화세대의 기득권이 문제다. 관 주도의 성장모델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기 어렵다.”(파워블로거)

 2 유형 초록(소유). ‘성장동력 상실이 한계의 주원인이지만 그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 13명.

 “저출산·고령화가 가장 큰 문제다. 성장에 불리한 인구구조가 만들어졌다.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을까.”(중견 언론인) “새로운 첨단산업을 못 만들어내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뇌과학자) “남북 분단이 경제 왜곡의 주범이다. 남북이 손잡고 통일로 가야 한다.”(과학연구기관 간부)

 3 유형 파랑(구원). ‘성장 지상주의가 한계의 주원인이며, 그 책임은 정부·지도층에 있다.’ 20명.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대기업과 정부가 이를 소홀히 했다.”(경제시민단체 간부) “주원인은 재벌 경제체제에 있다. 이런 체제에서는 다원성과 다양성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정치학 교수) “성장 중심의 국가정책 아래에서 불평등이 커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사회학 교수) “다수의 경제구성원이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다. 재분배 정책을 꾸준히 펴야 한다.”(증권분석가)

 마지막 유형 하양(탐미). ‘성장 지상주의가 한계의 주원인이지만 그 책임은 사회(지구) 전체에 있다.’ 6명.

 “성장의 한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과학연구기관 연구위원) “석유문명의 한계다.”(역사연구가) “우리의 모습은 몸집만 커진 아이다. 발전의 과정을 더 거쳐야 한다.”(행정연구기관 연구위원) “자원과 환경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지구적 차원의 문제로 봐야 한다.”(환경연구소 간부)

 결과적으로 파랑이 가장 많고 하양이 가장 적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장동력 상실파가 성장 지상주의파보다 약간 많았다. 조진삼 KAIST 미래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정부·지도층 책임론이 사회 공동책임론을 압도한 점은 새겨볼 만한 대목”이라고 했다.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와 출마자는 어떤 색깔을 고를까. 불멸의 소유일까, 탐미의 구원일까.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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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56

강릉 교육계에서 유명한 일화 한 토막이다. 지난해 강릉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물었다. “강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뭘까요?” 아이들이 앞다퉈 손을 들었다. “커피요!” 신사임당을 기대했던 교사는 당황했다.

강릉이 변했다. 신사임당과 경포대를 떠올린다면, 강릉의 과거만 기억하는 것이다. 지난 4일 강릉항 해변길(안목 해변)은 여느 포구와 달랐다. 횟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20여 개의 커피전문점이 줄지어 있었다. 모래사장이라고 해야 500m 정도인 데다 도축장·군부대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작은 어촌을 변하게 한 건 두 명의 도전자다. 커피 매니어들의 성지로 불리는 커피점 ‘보헤미안’을 연 커피 명인 박이추(65)씨, 커피공장을 차린 김용덕(54) 테라로사 사장이다. 송성진 강릉문화재단 예술사업팀장은 “‘지방에서 무슨 커피냐’고 비웃을 때 두 명인의 도전과 커피 축제가 만나 상상하지 못한 변화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강릉시내 190여 개의 커피점과 5년간 커피축제를 찾은 관광객 109만여 명은 표피적인 변화일 뿐이다. 송 팀장은 “대학 등을 통해 강릉에서만 한 해 5000명의 바리스타가 양산된다”고 말했다.

 ‘퍼스트 펭귄’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모두 머뭇거릴 때 ‘미친 사람’ 소리를 들으며 미지의 바다에 뛰어든 김용덕 사장 같은 도전자들이다. 퍼스트 펭귄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과제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변변한 상가 하나 없었던 강원도 강릉 안목해변(왼쪽)이 커피를 만나 강릉의 새 명소가 됐다. 4일 저녁 추운 날씨에도 20여 개의 커피점이 있는 안목 커피거리는 성업 중이었다. [강릉=변선구 기자]


올해 각 기업의 신년사는 절박했다. 재계의 리더들은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이건희 삼성 회장), “선도 상품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구본무 LG 회장),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자”(허창수 GS 회장)고 외쳤다. 추격자로는 더 이상 먹고살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이 선진국에 다가서면서 갖다놓고 베낄 참고서도 더 이상 없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과거의 기준이 통하지 않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됐다.

 돌이켜보면 한국 경제는 퍼스트 펭귄을 통해 성장해왔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의 시작은 1971년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백사장 사진 한 장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자금을 구해 온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에서 시작됐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해보기는 했나”였다. 삼성 휴대전화의 오늘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과감한 결정과 휴대전화를 들고 지리산을 뛰어다닌 삼성전자 과장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그저 그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취급을 받았던 카카오톡은 SNS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게임 시장을 만들어냈다. 1조원 규모다. 오영호 KOTRA 사장은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든 중동 건설 근로자도, 반도체에 승부를 건 순간에도 기업과 근로자는 가슴 옥죄는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누군가 퍼스트 펭귄이 되어 앞장서 뛰었기에 기적 같은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본지는 연중 기획으로 한국 경제의 희망이 될 퍼스트 펭귄을 소개한다. 작은 매장을 운영하는 1인 사업자도 있고, 세계적 히트작을 낸 대기업 연구자도 있다. 규모에 관계없이 이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자동차 장인 김태성(43)씨의 올해 일감은 모두 예약이 끝났다. 그는 오직 수작업으로 단종된 갤로퍼를 개조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차를 만든다. 그는 “사명감·수익성은 부차적인 문제다.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자동차 튜닝 시장 규모(5000억원)는 미국(35조원)의 70분의 1이다. SK케미칼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후발주자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굵은 알약 대신 티 나지 않게 녹여 먹을 수 있는 필름형으로 제품 형태를 바꿔 시장 판도를 바꿨다. 부동의 1등 비아그라도 지난해 이 회사가 만든 제품 형태를 따라왔다. 

변준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서울사무소 파트너는 “완벽한 전략을 만들겠다며 시간을 소비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미완의 전략이라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이 훨씬 낫다”며 “여기서 오는 실패는 긴 안목으로 보면 기업과 경제에 소중한 자산이 된다”고 말했다. 

글=김영훈·김현예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바다에는 펭귄의 먹잇감도 많지만 바다표범 같은 펭귄의 적도 많다. 그래서 펭귄 무리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할 때 머뭇거린다. 이럴 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도 잇따라 입수한다. 처음 바다에 뛰어든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선 이 말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선구자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846509&cloc=olink|article|default



퍼스트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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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2:42
좋은 점과 나쁜 점은 함께 있다며 공평한 세상에 대한 신념 유지
하지만 내면의 유리천장 역할해 성취와 성장 저해하는 부작용도…
행복한 부자, 따뜻한 大家야말로 사회가 추구할 兩立 가능한 가치



학창 시절에 가장 얄미웠던 친구는 공부도 잘할뿐더러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며 음악과 미술에도 
하고 리더십도 뛰어나고 겸손하며 심지어 집안까지 좋은 친구였다. 이런 친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공부는 잘하지만 못생겼거나 성격이 나쁜 친구를 보고는 세상은
 공평하다는 위로와 안도감을 받는다. 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부자가 정직하고 행복하고 겸손하
고 잘생기고 심지어 자식이 공부까지 잘하면 우리는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느끼지만, 그의 가정사에 문
제가 있거나 자식 농사에 실패하면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이렇듯 사람들은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상보적(相補的) 신념을 생
해낸다. 상보적 신념이란 좋은 점을 가졌으면 반드시 안 좋은 점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상
보적 신념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다. 미인은 박명(薄命)이라고 믿는 생각, 대가들은 성격이 까칠하
다고 믿는 생각, 부자들은 정직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상보적 신념의 일종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보적 신념이야말로 우리의 성장을 저해하는 내면의 강력한 유리 천장으로 작
한다. 상보적 신념은 우리에게 심리적 자기 위로를 제공해주는 힘은 있지만 때론 성취 의지를 저해하는 
으로 작동하여 우리를 현 상태에 안주하게 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부자들이 정직하지 않으며 그들이 
반드시 행복하지도 않다는 믿음을 통해 공평한 세상에 대한 신념을 유지한다. 더 나아가 평범한 삶이 더 인
간적이고 그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분명 위로를 주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부자가 되고 싶
 동기를 은밀하게 약화시켜 버린다. 부자에게는 없는 인간적이고 훈훈한 행복이 자신에게는 있다고 믿
기 때문이다. 대가는 성격이 까칠하다는 상보적 신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능력과 인격을 모
두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능력과 인격이 상보적 관계에 있다고 믿게 되면 까칠한 대가가 되느니 인간적
인 보통 사람이 되겠다는, 얼핏 보면 좋은 생각이지만 사실은 성취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의 약자 집단과 강자 집단에는 늘 이런 상보적 신념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남성은 강하지만 섬세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여성은 저돌적이지는 않지만 여성적 섬세함이 있다고 믿는 신념이 있다. 이런 생각은 남
성과 여성 모두의 장단점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여성 우호적인 생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여성의 위치에 머물러 있게 하고 남성적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내면의 유리 천장으
로 작동하게 된다.

상보적 신념은 대가나 부자처럼 이미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도 위험하다. 이들이 상보적 신념
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가들은 자신은 까칠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용인하고, 부자들은 때론 부정직도 필요
하다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 결과 이들은 까칠한 대가와 부정직한 부자로만 머무르게 되고, 이들을 
바라보는 보통 사람은 자신의 상보적 신념을 더욱 확신하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지게 된다.

생각은 거의 모든 것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삶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진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
보다 자신의 생각을 최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부(富)와 행복, 능력과 인격은 결코 상보적일 필요가 없
다. 개인 수준에서건 조직 수준에서건 심리적 위안을 주는 상보적 신념을 경계해야 한다. 행복한 부자, 따
뜻한 프로페셔널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다.
최인철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45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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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1:12

뼈가 저리다. 생활고를 못 참고 영화배우가 스스로 죽었다. 얼마 전에는 세 모녀가 동반하여 죽었다.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미어진다. 왜 그 무서운 자살을 선택할까. 사연인 즉슨 그러하나 생활고 때문이 아니다. 가난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신건강 때문이다. 정신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긍정을 배우지 못했다. 자기 확신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긍정하지 않았고 우리 학교가 희망을 얘기하지 않았다. 잘못 가르쳤고 잘못 배웠다. 못나도, 못 배워도, 가난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못나면 성형해서 잘나야 하고, 학교는 명문대를 나와야 하며, 부자만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쳤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돈이라고 배웠다. 그렇게 엉터리 가치관이 대세이다 보니 작금의 한국사회는 겉하고 달리 속병이 들었다. 못 나고 무능력하고 돈이 없다면 사람 노릇이 불가능하니 존재의 이유도 당연히 없다. 이 얼마나 끔찍한 교조인가. 

나는 연극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얼마나 개성 넘치게 만들어졌는지를 늘 실감하면서 산다. 마냥 놀란다. 그리고 어떤 고난이나 질병, 불행, 가난 등에 내 던져졌을 때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할 능력을 인간이 가졌다고 굳건히 확신한다.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서다. 행복이야 말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서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한데 어떻게 행복해하라는 거냐며 따진다. 행복할 일이 있으면 행복하겠단다. 과연 그런 태도로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러니 당연히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 어떤 투쟁을 감수해서라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차없이 그 생각을 지워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무조건 지워야 한다. 그런데 가령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 때,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돈이 있어도 불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 생각의 전환에 길이 곧장 나야 한다. 돈의 유무가 행복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부자도 빈자와 마찬가지로 감옥 가고 사기 치며 도둑질한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많이 배운 도둑들이 훨씬 더 추악하고 교활하다. 예쁜 여자가 성형중독에 빠지고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예쁜 여자가 절대로 행복하다는 결론은 틀렸다. 내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에 자긍심을 가질 때 절대로 행복해진다. 자본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자본 중심 사회에서 지혜롭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작가사회에서도 잘 쓰는 작가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선 답이 없다. 세상에 사랑과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위대한 걸작이 무한정 탄생한다. 

배우는 멋지고 잘 생겨야 한다가 아니다. 잘 버티고 잘 노는 기술을 배워야 살아남는다. 구김살이 없는 최적의 상태로 즐거움을 유지해야 한다. 만일 그런 쾌적한 상태가 아니라면 당분간은 배우를 휴업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때는 배우 역시 아니다. 막노동을 하는 중이면그때는 막노동자일 뿐이다. 그때도 스스로를 배우라고 최면을 거는 것은 절대 도움이 안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이라면 편의점에 몰입해야 한다. 편의점에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만 고민해야 한다.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행복해진다. 그러면 정말 놀랍게도 돈이 막 생긴다. 행운이 막 생기고 좋은 일이 몰려온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행복은 절대로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가난하다고 확신하는데 어떻게 그가 더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가장 못된 짓은 실망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 절망이다. 사태 해결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 사람은 행복하려고 태어난다. 자살은 불행을 끝낸 것이 아니라 행복을 끝낸 것이다. 힘들면 더 힘든 사람들 좀 제발 보자. 죽지는 말자. 살자.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22

한 달 전 내 아내는 자동차 사고 위기를 모면했다. 오른쪽 앞바퀴 바람이 절반 이상 빠진 상태로 달리다가 신호 정지 중이었다. 이때 길 가던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타이어 바람 빠졌어요”라고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고 깜짝 놀랐단다. 바퀴 휠이 도로에 거의 닿을 정도였다고.

나도 얼마 전 아파트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저기요, 전조등 켜져 있네요”라고 친절을 베풀었다가 겸연쩍었던 적이 있다. 차주인 아줌마는 “자동으로 꺼져요”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지랖의 원래 뜻은 겉옷의 앞자락이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살짝 비꼴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오지랖이 너무 좁은 세태가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오지랖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모르게 정(情)과 배려가 느껴진다.

반면 일본인들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 전에는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을 금기시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타인이 자신의 영역에 허가 없이 침범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취재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살벌한 광경을 목격했다. 상점에서 쇼핑 중이던 한 일본 아줌마가 어린 딸의 뺨을 후려쳤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칭얼대는 딸에 대한 따끔한 현장교육이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일본의 이른바 ‘메이와쿠(迷惑·민폐) 문화(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생생한 사례였다.

한국과 일본은 골프장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한국 골프장은 도시의 빌딩 숲을 탈출해 자연의 품에 안긴 골퍼들로 활기가 넘친다. 클럽하우스 식당과 그늘집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쾌활한 정담으로 왁자지껄하다. 반면 일본 골프장은 ‘조용함’ 그 자체다. 마치 ‘정숙(靜肅)’이라는 경고판이 온 사방에 붙어있기라도 한 듯하다. 

골프장 캐디도 다르다. 한국 캐디는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다. “OB 났는데 멀리건 한번 주시죠.” 낙망한 골퍼의 수호천사로 나서며 나머지 동반자들을 단숨에 인심 후한 골퍼로 탈바꿈시킨다. 이는 일본 캐디에게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정다운 모습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렸을 때 강조하는 덕목은 나라마다 독특하다. 미국은 ‘정직해라’, 중국은 ‘부자가 되어라’, 일본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한국은 종합 완결판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일본인들의 사회윤리 교육의 핵심인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주요 단어 ‘남’ 속에 다른 나라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가. 

국제 스포츠 경기 때 일본 응원단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계속 사용해 태평양전쟁 피해국을 자극하고 있다. ‘독일 나치처럼 비밀리에 개헌하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나치 망언’ 등 일본 각료와 정치인들은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오만한 언행을 수십 년간 쏟아내고 있다. 아소 부총리는 해외 비난이 잇따르자 사흘 만에 ‘나치 망언’을 철회했다. 

상점에서 소란을 피운 어린 꼬마는 엄마로부터 벌로 뺨 한 대를 맞았다.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킨 아소 부총리에게는 어떤 벌이 합당할까. 일본 야당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아소는 거부했다.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 것이고 그 발언이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면 엄청난 ‘메이와쿠’다. 이를 종합적으로 감안컨대 이후 ‘메이와쿠 문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해 보인다.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 掛けるな)=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단, ‘남’에 외국인은 해당되지 않음.”


안영식 스포츠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814/5703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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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18

“엄마, 우리 프랑스어 선생님 되게 부자야.”

프랑스인 선생님 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는 초등학생 조카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들갑이었다. 수다를 떨고 있던 우리 어른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이에게 쏠렸다.

“어떻게 해놓고 사시는데?”

부촌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사는 프랑스 사람은 얼마나 잘해놓고 사는지 궁금했다. 어른들의 뜨거운 반응에 신이 난 아이가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선생님 집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나 있고, 어항에 금붕어가 다섯 마리나 있어요!”

한국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읽어보니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급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이상,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 번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외국어 하나, 스포츠 하나, 악기 하나를 할 수 있고, 남과 다른 요리 레시피 한 가지를 갖고 있으며,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것을 꼽았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책상에 비평지 한 권이 놓여 있을 것, 사회적 약자 돕기 등 우리처럼 경제력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는 초등학교 교사였다가 결혼 후에 남편과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런데 잡화상이 날로 번창하면서 이웃의 가게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고는 가게 규모를 줄였다. 덕분에 시간의 여유가 생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4년 아사히신문 1000만 엔 현상공모 소설에 ‘빙점’이 당선돼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되었다. 

가게가 번창하여 돈을 많이 버는 와중에 이웃의 작은 가게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동했다. 만약 그녀가 돈 버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계속 가게 확장에 매달렸다면 부자는 될지언정 유명한 소설가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짜 부자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진정한 부자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않고, 만 석 이상으로 재산을 불리지 않으며,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 부잣집의 전설이다.

물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많이 들이켜면 들이켤수록 더 갈증이 난다고 했다. 미우라 아야코처럼 돈 버는 속도를 조금 늦추면 다른 삶도 꿈꾸어 볼 여유가 생기고, 이웃의 작은 가게도 살아남는다. 평생 아파트 평수와 은행 잔액 늘리는 일에 몰두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으로 가난한 삶이다. 

가끔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자신만의 요리를 해주는 아빠, 아이를 데리고 봉사활동을 함께 가는 엄마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중산층이다. 게다가 고양이도 기르고 금붕어도 있고 화분에 꽃이 만발해 있다면 아이의 말대로 그건 진짜 부자다.

윤세영 수필가



http://news.donga.com/3/all/20130704/56279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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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0:06

난 6월 7일 조선일보의 한 귀퉁이에 실린 기사다. 58세의 어머니와 스물두 살 딸 둘이 살았다. 남편이자 아버지와는 오래전 사별했다. 서울 한곳의 상가 2층 구석 골방이 모녀의 집.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고, 딸은 취직해 돈을 보태는데도 살아가기가 버거웠다. 어머니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딸은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카드는 13개로 늘었다. 빚은 3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골방 월세도 여덟 달을 못 냈다.

어느 날 자정 무렵 어머니는 일에 지쳐 잠에 떨어진 딸을 바라보았다. '내 이 비참한 삶을 네가 반복하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어머니의 결심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목에 스카프를 감았다. 딸이 숨진 후 어머니도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밖으로 뛰어나가 죽으려는데 딸이 "엄마, 죽지 마"라고 외치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방으로 뛰어들어와 딸을 안고 흔들었지만 이미 딸은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찰에서 "죽여달라"고만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무리 적은 수입이라고 해도 두 사람이 버는데 이렇게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것인지 답답했다. 이 모녀에게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먹고살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것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알려지지 않은 일도 무수히 많다. 이런 비극은 다른 사람들 가슴에도 상처를 남긴다.

2년 전 서울 한강의 어느 다리에서 18세 소녀가 몸을 던진 사건도 왠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시골에서 혼자 상경해 밤낮 없는 아르바이트로 매달 80만원을 벌던 아이였다. 소녀의 휴대폰에는 혼자 먹고살면서 그 80만원이 어떻게 사라지는지가 간단히 적혀 있었다. 휴대폰에 남은 마지막 문자는 '힘드네요.' 살기가 힘든 사람들의 절망과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 "살다 보면 길이 있다"는 상투적인 위로가 그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까.

모녀와 18세 소녀의 비극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중에 어느 다른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됐다. 지난 24일 휴가 중에 불의의 심장마비로 숨진 광동제약 최수부(78) 회장의 얘기다. 최 회장을 전혀 모르지만 우연히 그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람이란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그가 남긴 자서전을 구해 읽어보았다.

최수부는 열두 살 때 여덟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소년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쓰러지고 제대로 먹지 못한 다섯 살 막내가 감기 끝에 죽은 뒤였다. 초등학교 4년 중퇴.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고, 강가에서 참외를 길러 팔았다. 지쳐 잠에 떨어진 최수부가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방바닥에서 얼굴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떼려고 하니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실눈을 뜨고 보니 뭔가 시커먼 것을 사이에 두고 방바닥과 오른 뺨 전체가 붙어 있었다. 밤새 흘린 코피가 굳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물로 20~30분을 닦고서야 최수부의 얼굴은 바닥에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은 코피를 흘렸는지 세숫대야의 물이 검붉었다. 그러고서도 아침에 시장에 나가야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열세 살이었다.

최 회장은 성공했다. 세상 돈을 다 다룬다는 얘기만 듣고 재무부 이재국장 방으로 약을 팔러갔다가 쫓겨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잠시 정회한 틈을 타 의원들에게 약 광고지를 돌렸다. 국회 상임위원장은 "내 의원 생활 십수 년에 국회 회의실에 뭘 팔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했다. 성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일에 지치고 피로에 찌들어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한 어머니는 거기서 절망을 보고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다른 아이는 굳은 코피를 뜯어내고 살기 위해 또 시장으로 나갔다.

흔한 성공 스토리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최수부는 자서전에서 상투적인 인생 교훈을 하나도 적지 않았다. 그의 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성공은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최수부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인생의 기회는 버티고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이것이 내가 70년 이상 배운 삶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살아남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다'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최수부는 "나는 모든 것을 그냥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에게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굴복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운명에 보란 듯이 맞서 싸웠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인생의 전장(戰場)엔 화려한 햇살이 비치는 날이 너무 적은 것만 같다. 그러나 운명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언정 결코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최 회장은 이렇게 호소했다. "나 역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이상 세상을 등지고 싶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내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이 이를 악물고 세상을 버티며 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양상훈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30/20130730037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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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42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수학과 물리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책을 통해 패러데이나 드브로이 같은 과학자의 이론을 이해하고, 맥스웰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유명한 과학자와 사귀는 걸 좋아했다. 당시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어 관심을 끌자, 발레리는 아인슈타인을 만난 자리에서 불쑥 물었다.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 적어 둡니까?”

아인슈타인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뇨.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발레리는 영감을 얻어 독창적인 사유에 이르는 경위를 ‘번갯불의 섬광’이라고 표현했다. 천재는 번갯불의 섬광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비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고실험(思考實驗)은 실험에 필요한 장치와 조건을 가정한 뒤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는 머릿속의 실험이다. 사고실험을 통해 갈릴레이는 관성의 개념을 발견했고, 톰슨은 원자 모형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번갯불의 섬광’처럼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고실험을 통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기조의 핵심 단어로 내세우면서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 기관의 조직 명칭에 새로운 접두사들이 추가됐다. 창조경제, 창의산업, 창의문화, 미래창의, 창의인재, 융합인재, 융합기획 등등 비슷비슷한 접두사로 이름만 바꾼 조직이 여기저기서 탄생했다. ‘창조경제’나 ‘무한상상’ 같은 접두사를 앞세운 행사나 사업이나 모임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갑자기 ‘창조의 제국’이 된 듯하다. 그런데 창조, 창의, 상상 같은 단어를 앞세워 아이디어를 개구리 알처럼 마구마구 낳아도 되는 걸까? 

‘빛나는 아이디어들의 실패율은 개구리 알의 폐사율만큼이나 높다.’ 세계적인 석학인 피터 드러커는 ‘빛나는 아이디어 가운데 열에 아홉은 분명 말잔치에 지나지 않고, 남은 것들도 대다수는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연못마다 개구리 알이 넘쳐나듯이 아이디어도 부족한 법이 없다.’ 

개구리 알처럼 많은 아이디어를 낳아서 번갯불의 섬광처럼 포착하는 능력이 필요한 걸까? 명저 ‘단절의 시대’에서 드러커는 잘라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창의력이 아니다. 혁신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은 고도로 조직되어 있고, 규율이 잡혀 있으며, 체계적인 프로세스다.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창조는 4단계로 진행된다. ①Data+System=Information; 데이터를 가공하여 가치 있는 정보(Information)를 만든다. ②Information+Experience=Knowledge; 정보에 경험을 더해 지식(Knowledge)을 쌓는다. ③Knowledge+Intuition=Wisdom; 지식에 직관(융합)을 담아 지혜(Wisdom)를 터득한다. ④Wisdom+Imagination=Creation; 지혜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 창조(Creation)를 일으킨다. 묘하게도 이 순서는 역대 정부의 국정기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조경제의 공식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스템과 경험과 직관과 상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냥 상상만 부풀린다고 창조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ttp://news.donga.com/3/all/20130725/566489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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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38

싱가포르 A★STAR를 다녀왔다. 흔히 싱가포르 하면 무역이나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싱가포르도 한때 석유화학, 전자 등의 자본집약적 산업에 치중하다가 21세기 들어 발 빠르게 지식산업으로 국가전략을 선회한 나라다. 2003년에 생명공학 첨단단지 바이오폴리스를 구축하고, 이제는 융합기술의 거점 퓨전폴리스를 만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술개발 투자를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518만 명밖에 안되고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크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가 넘는다. 세계 금융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2010년에 경제성장률 14.5%를 달성했고, 2011년 5%에 이어 매년 비슷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산업으로 급선회한 국가전략과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한 정부 정책 덕분이다. 작은 나라여서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싱가포르 국가전략의 우수성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1년 아시아의 기술혁신을 평가하면서 상위 12개 품목을 선정했다. 놀랍게도 그중 5개가 싱가포르의 기술이었다. 중국이 2개, 일본이 2개, 홍콩이 2개, 대만이 1개인 데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한국은 노메달이었다. 이런 이유로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세계 기술혁신 평가에서 싱가포르를 1위로 선정했고, 월드이코노믹포럼(WEF)은 9위, 인시아드(INSEAD)는 7위로 평가했다. 모두 한국보다 앞선다.

무엇이 싱가포르를 이처럼 짧은 기간에 지식산업의 선두에 우뚝 서게 만들었을까. 핵심은 싱가포르가 가진 국제화 마인드와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역량에 있다. 전체 인구 중 순수한 싱가포르 국민은 3분의 2인 320만 명 정도다. 나머지는 외국인 영주권자와 단기체류자들이다. 싱가포르는 전 세계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엄청난 연봉을 주고 초빙한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에도 한국인 교수가 30명이 넘는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연구업적을 인정받는 젊은 한국교수가 한국대학 연봉의 세 배 가까이 받고 싱가포르 국립대학으로 옮긴 경우가 있다. A★STAR에도 분야별 프로젝트 디렉터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싱가포르 정부이지만 국가전략에 필요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도록 정책집행의 유연성을 보인다고 한다. 바이오메디컬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려고 심지어 도로체계마저 바꾼다. 이처럼 모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기 때문에 외국기업이 투자하기 제일 편한 나라가 되었다. 

2002년 설립된 A★STAR(Agency for Science, Technology and Research)는 싱가포르의 생명과학 사이언스 파크, 바이오폴리스의 전략본부에 해당한다. A★STAR는 새로운 기술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은 기술의 상업화에 있다. A★STAR는 싱가포르 정부 기술개발 예산의 4분의 1정도인 1조3000억 원의 예산을 매년 집행한다. 정부기관이지만 마치 컨설팅회사와 기술투자회사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덕분에 1990년 싱가포르 전체 경제에서 1.8%에 불과했던 바이오산업 비중이 2010년에는 8.6%로 성장했다. 지난 10년 사이에 바이오메디컬 기술개발 인력과 제조업 종사인력도 각각 2.5배 정도 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A★STAR의 기술 중개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상업화는 쉽지 않다. 산학연 협력이 잘 되지 않는 이유도 기술의 상업화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는 에인절펀드가 이 죽음의 계곡에 다리를 놓아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싱가포르는 기술투자의 생태계가 빈약하다. 그래서 싱가포르가 택한 전략이 정부가 기술을 평가하고 전략적 투자를 해서 상업화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A★STAR가 바로 이 전략의 브레인 역할을 했고, 이제 10년 만에 뿌린 것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에 17조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 붓는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액이 이스라엘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됐고, 총액도 영국을 제치고 세계 6위에 올라섰다. 그런데 기술의 상업화는 얼마나 이루어졌나. 정부출연연구소, 대학들이 엄청난 양의 논문을 쏟아냈지만 기술혁신이나 상업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이 ‘죽음의 계곡’을 넘어 상업화로 가기 위한 다리가 없기 때문이다. A★STAR가 오히려 한국의 좋은 기술을 사가기 위해 기웃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된 기술을 어떻게 상업화하느냐가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벌어 가면 안 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기술개발 투자 못지않게 기술 상업화의 생태계 구축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A★STAR는 저쪽 하늘에서 먼저 빛나고 있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30723/56603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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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29

유명 산악인들의 등반 장면을 통해 익숙해진 네팔은 보통 사람에게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신비의 땅이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해발 8000m가 넘는 고산 8개를 보유한 가장 높은 나라. 수도 카트만두도 해발 1300m 높이에 있다. TV 카메라가 보여주는 네팔은 청정한 자연 풍광과 걱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나라다. 

직접 본 카트만두는 달랐다.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좁은 차도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매연이 심해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내의 강줄기는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를 풍긴다. 

네팔의 정치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국왕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했지만 극심한 정쟁으로 헌법조차 제정하지 못한 채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당과 노조는 걸핏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걸고 시위와 파업을 주도해 국가를 파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카트만두를 떠나던 날 호텔에서 본 영자신문 1면 기사는 절망적인 네팔의 오늘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최대 정당인 UCPN의 간부가 16세 소녀를 인도에 인신매매한 혐의로 구속되자 UCPN 당원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였다. 김일두 주네팔 한국대사는 “외국대사들도 누가 지도자가 될지, 어느 정당이 집권당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네팔 정부와 구체적인 정책 협의와 지원 논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네팔을 떠나 방글라데시를 거쳐 캄보디아를 찾았다. 세 나라 모두 가난하다. 남한보다 조금 넓은 14만 km²의 국토를 가진 방글라데시에는 무려 1억6000만 명이 복작대며 산다. 캄보디아 상황은 한 해 30만 명을 넘어선 한국 관광객이 잘 알고 있는 대로다.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발전한 한국이 세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2조411억 원이나 된다. 이 중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캄보디아에 194억 원, 방글라데시에 111억 원을 지원한다. 고단하게 사는 세 나라 국민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우리의 무상원조가 제대로 쓰여 그들이 허리를 펴고 사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주는 원조의 상당부분이 세 나라 고위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캄보디아는 100점 만점에 22점을 받아 176개국 가운데 157위를 기록했다. 방글라데시는 26점으로 144위, 네팔은 27점으로 139위였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귀국하는 공항에서 캄보디아 부패의 실상을 경험했다. 여권 검사를 하는 앳된 관리가 서툰 영어로 “팁을 달라”고 떼를 썼다. 거대한 석조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9∼15세기 크메르제국이 동남아 최대의 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캄보디아 조상들이 몰락한 요즘 후손들을 보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우리가 주는 재정적 지원이 개도국의 외형적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 변화다.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부패의 악순환을 깨겠다는 국가의 각성도 있어야 한다. 네팔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우리 외교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분투하고 있다. KOICA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 주재국 국민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박근혜정부의 원조정책에도 창조경제 개념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720/56558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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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3:27

2004년 여름 유럽 연수 시절,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서 자동차 여행을 했다. 시골길을 달려가는데 길가에 체리 과수원에서 체리를 내다 파는 무인(無人) 판매대가 줄지어 나타났다. 한 봉지당 2유로(약 3000원)라는 안내판과 동전함만 있고 사람은 없었다. 한 봉지 사면서 동전함을 힐끗 보니 동전과 지폐가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골길을 가다 보면 농민이 참외, 수박 등을 내다 파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는데, 무인 판매 방식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도 무인 판매로 운영할 수 있다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2011년 5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동계올림픽 후보지에 대한 평가회를 취재하느라 스위스 로잔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하니 종업원이 투숙객한테 제공하는 지하철 승차권이라면서 명함 크기 종이 카드를 꺼내선 유효기간을 볼펜으로 써 주었다. '최고 선진국에서 종이 카드에 수기(手記)라니….' 그런데 지하철을 이용해 보니 개찰구도, 역무원도 없어 카드를 내보일 일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요금 징수 시스템, 개찰구 같은 시설을 안 갖춰도 되고, 그 돈을 다른 데 투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돈만 자본이 되는 게 아니다. 사회·문화 자본도 있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는 사회자본에 속하고, 경제 자본과 달리 아무리 많이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의 주장). 미국의 정치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의 가치를 특별히 중시해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5020클럽(인구 5000만명,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했다고 자랑하지만 신뢰 자본 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신뢰가 없을 때 사회가 어떤 비용을 치르는가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민, 한전,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전문가 협의회'를 구성해 40일간 연구 검토했고, 여러 전문가가 '우회 송전'과 '지중화(地中化)'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은 보고서 내용을 불신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내년 3월쯤 완공될 새 원자력발전소가 송전선이 없어 무용지물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40일 동안 공사가 중지된 데 따른 손해만 28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돈을 신용불량자 구제에 쓰면 2만2000명(국민행복기금 신청자 1인당 부채액 기준)을 빚의 구렁텅이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 신뢰 자본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쿠야마가 '신뢰'에 대해 내린 정의에 답이 있다. "신뢰란 공동체에서 다른 구성원들이 보편적 규범에 기초해 규칙적으로 정직하고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란 기대이다." 신뢰의 출발점은 구성원들이 법(최소한의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상식적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상식이 존중되는 사회가 선진국 아닌가.



김홍수 경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5/2013071503007.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10

고개를 숙인 여인과 소녀들이 나귀 수레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능욕당한 이들의 몸에선 지린내와 함께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일부는 12, 13세에 결혼해 영양 상태가 충분치도 않은 몸으로 임신했다. 이들은 난산으로 내장에 구멍이 생겨 대소변이 새어 나오는 피스툴라라는 몹쓸 병에 걸렸다. 이들 대부분은 남편에게 쫓겨난 뒤 육신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 서쪽 니제르 지역의 신설 병원. 이곳에서 피스툴라 치료를 받는다.

피스툴라로 고통받는 10대 소녀를 보기란 정말 괴로운 일이다. 나는 예전에 니제르 단자 지역에 피스툴라 치료 센터를 세우길 원하는 부부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 뉴욕타임스 독자들이 피스툴라 치료 펀드(WFF)에 5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이런 계획은 현실이 됐다. 단자 피스툴라 센터는 지난해 문을 열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 다니는 제자와 함께 ‘세계 빈곤’에 대한 기획 기사를 구상할 겸 단자를 다시 방문했다. 이곳에서 독자들이 이룬 성과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첫 환자는 장난꾸러기 웃음을 잘 짓는 하디자 술라예였다.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술라예는 자기 생일도 몰랐다. 그는 가족의 강요로 생리를 시작하기도 전인 11, 12세 때쯤 결혼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삼촌의 둘째 부인이 됐다.

1년이 지나 그는 아이를 가졌다. 어떠한 산전 관리도 받지 못한 술라예는 폐색성 분만을 했다. 이후 3일간 끙끙 앓다가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아기는 죽었다. 이후 그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단지 소변 조절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술라예는 이후 외톨이가 됐다. 남편은 그를 집에서 쫓아냈고 마을 사람 누구도 그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았다. 물을 길어 오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마을 사람들은 늘 오줌이 묻은 내 옷을 보며 손가락질했다”고 말했다.

몇 달 전 술라예는 단자 피스툴라 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청했다. 미국 미시간 출신 비뇨기과의 스티브 애로스미스 박사는 술라예를 치료한 뒤 완전한 회복을 위해 6개월간 성관계를 맺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뒤 술라예는 기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갔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남편은 그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술라예는 “나는 그의 부인이기에 (동침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관계로 인해 피스툴라는 도졌고, 다시 소변이 새기 시작했다. 남편은 다시 술라예를 쫓아냈다. 병원으로 돌아온 술라예는 다시는 남편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전 세계 200만 여성이 피스툴라로 고통받고 있다. 피스툴라를 치료하려면 500∼1000달러 정도 비용이 든다. 

피스툴라는 조혼으로 인한 사회 문제다. 니제르 여성의 4분의 3 정도가 18세가 되기 전에 결혼한다. 애로스미스 박사는 “소녀 중 일부는 월경을 시작하자마자 아이를 갖고, 이로 인해 자궁이 망가진다”고 말했다.

단자 센터는 산모의 건강도 돌본다. 병원을 오가는 무료 택시 운영체계도 도입했다. 환자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애로스미스 박사와 워싱턴대 루이스 월 박사, 그리고 미국 기독교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피스툴라 센터는 소액의 후원금으로 어렵사리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은 여성들의 충만한 기쁨은 피스툴라 센터가 이 도시에 얼마나 큰 선물이 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참담한 심경으로 입원한 환자들은 자신감을 되찾아 퇴원한다. 복잡한 문제로 얼룩진 세상에서 정말로 축하할 일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3/all/20130715/56448879/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06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란 특정한 현상이 시간 및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가를 관찰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에 더해 그 현상을 만들어낸 원인은 무엇이고 또 그 현상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일지를 따져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학자'라 부른다. 학자의 관찰 대상은 물론 자연현상일 수도 사회현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경우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동일할 수도 혹은 다를 수도 있다. 또한 현상은 달리 보여도, 결국에는 본질이 같은 경우도 있다. 역으로, 본질이 달라도 현상이 같게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남극이나 북극과 같은 극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현상을 관찰할 방법이 없다. 그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그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으로 가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연구의 결과로부터 추출된 자연과학적 지식은 우리나라의 자연현상에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극지에 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까닭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만약 계절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학자라면 우리나라는 연구를 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진 셈이다. 사시사철 춥거나 덥기만 한 나라의 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여 자신의 나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연구 대상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비단 자연과학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예컨대 근대화, 다시 말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 서유럽, 북미, 일본을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미처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화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선진국 중심의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지식이 축적되어 왔다.

연구 대상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 현상 즉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취는 매우 높은 중요성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그리고 가장 빨리 또 최근에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입체적으로 완성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의 전면적 도입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에서 우리가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연구의 대상은 바로 한국 현대사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학자들은 한국의 사례가 가지는 연구대상으로서의 중요성을 애써 외면한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성공을 우리나라 학자들은 관찰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유럽의 200년에 걸친 산업화와 민주주의에만 주목한다. 30여 년 만에 전면적인 복지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은 폄하하고, 100년에 걸쳐 발전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에만 눈을 돌린다.

나아가서 한국의 사회과학을 지배한 연구의 대상은 대부분 한국 현대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8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던 '종속 심화·독점 강화' 테제가 대표적이다. 만약 당시의 한국이 대외적으로 종속이 심화되고 대내적으로는 독점이 강화되는 사회였다면, 90년대 혹은 2000년대 한국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한 사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로서 드러난 사실은 대외적인 종속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동시에 대내적으로는 독점을 규제하는 경제 민주화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학자들은 이런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를 매우 귀중한 연구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이고, 새마을 운동을 공부하러 오는 개발도상국의 학자와 공무원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마치 우리가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해 남극에 과학기지를 운영하듯이, 한국을 연구하여 자신들의 발전에 도움을 얻고자 우리나라로 몰려오고 있다.

그런데 막상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을 스스로 만들어 낸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이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업을 통해서는 절대 대한민국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연구 대상으로서 한국 현대사가 가지는 가치를 우리나라 학자들만 외면하는 역설이야말로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한 연구의 대상이다.


류석춘 연세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30/2013063002388.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2:39

미국 서부의 모하비 사막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 사는 집 대신 성냥개비처럼 꽂힌 수백 개의 풍력발전기만 보였다.

LA에서 두 시간. 마침내 항공우주 공항과 격납고, 퀀셋 건물이 들어선 마을이 나왔다. 우주기술 벤처들이 모여있는 이른바 '스페이스 밸리'다. 거대한 소음과 폭발, 시험비행을 수용하기에는 사막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이곳으로 4000여 명이 출퇴근한다고 했다.

마을에는 햄버거 가게, 편의점, 유흥시설이 없었다. 단조로운 창고형 건물만 규격대로 있었다. 그 속에서 기술자들은 자기 일을 했고, 공간 절약을 위해 남녀 혼용 변기를 썼고, 첫 계약을 따낸 기념으로 '1달러'를 액자로 걸어놓았다. 여기 벤처 하나의 로켓 엔진 기술이 우리나라 전체가 갖고 있는 기술보다 앞섰다.

사막에 온 것은 '상업 우주여행'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지금껏 우주 영역은 정부의 대규모 프로젝트로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막에 몰려든 자유로운 개인들은 우주가 정부의 독점 사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벤처들은 어느 날 그냥 사막에서 선인장처럼 자라진 않았다. 이들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일깨우고, 미친 듯이 만들게 하는 동기 부여가 없었다면, 열정의 불을 지피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하비 사막은 단지 누런 흙 사막이었을 것이다.

1997년 두 여성 기업인이 다음과 같은 현상금을 내걸었다. "정부 자금이 아닌 순수 민간 자본으로 만들고, 세 명의 우주인이 고도 100㎞까지 여행하고, 귀환 2주일 뒤에 같은 우주선으로 다시 우주여행에 성공하면 1000만달러(120억원)를 주겠다."

수십 개의 우주 벤처가 달려들었다. 승자는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했던 폴 앨런이 투자한 벤처였다. 그는 상금 1000만달러를 거머쥐기 위해 2600만달러를 썼다. 수지타산을 따지면 헛장사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기술의 벽(壁)을 돌파했을 때의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그 뒤 우주와 무관해 보이는 구글(Google)에서도 '달 탐사 현상금'을 걸었다.

"로봇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켜 표면에서 500m 이상 전진하면서, 동영상과 이미지를 지구로 전송하면 3000만달러(360억원)를 주겠다."

왜 우주 탐사에는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들여야만 하는가. 엔지니어들에게 저가(低價)의 로봇 탐사 개발을 자극한 것이다. 현재 25개 팀이 달착륙 로봇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주 분야 말고도, 공상과학영화'스타트렉'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 몸을 스캔해 15가지 병을 진단할 수 있는 무게 2.2㎏ 이하 의료기기를 만들어내면 1000만달러, 온실가스를 제거 및 이동시키는 상업적 기술에는 2500만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런 현상금은 인류를 위한 혁신적인 과학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다. 실제 현상금으로 많은 기술적 과제가 해결됐거나 도약을 이뤘다. 1L당 42.5㎞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에 10만달러,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에 건 140만달러 현상금에는 이미 주인들이 나타났다.

거액의 현상금은 대부분 자본가와 기업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는 세상의 엔지니어들에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영역을 향해 달려가도록 도전과 용기,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로 돌아오면 대부분 '자본'은 먹기 좋은, 이미 다 잡아놓은 먹이를 가로채는 데 능숙하다. 내부 일감 밀어주기, 빵집과 콩나물 업종 진출, 납품 단가 후려치기,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기술 빼가기 등이 자본의 생존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정 재벌의 '횡령' '비자금' '차명계좌' 수사 소식을 접하면, 몇 백 번 태어나고 다시 죽을 때까지도 다 쓰지 못할 돈을 깔고 앉은 이들이 그걸로 또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상업 우주여행의 선두 주자인 버진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썼다.

"평생 얼마를 벌었느냐로 기억되는 사람은 없다. 은행 계좌에 10억달러를 넣어둔 채 죽든, 베개 밑에 20달러를 남기고 죽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성취는 그런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창조했는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켰는지 여부다."

어제 정부가 40조원을 퍼붓겠다는 '창조경제'에 대해 발표했을 때, 나는 감흥이 없었다. 이는 수식어와 액수 규모만 달랐지 그전에도 수차례 봐왔던 풍경이다. 창조에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대담한 상상력, 파괴와 융합, 획기적인 기술력 돌파가 요구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 성패는 정부의 구호보다 자본과 기업인들이 과감하게 '현상금'을 내걸 수 있는 마음 자세에 더 달려있는 것이 틀림없다.


최보식 선임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6/2013060600722.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2:28

2013년 2월, 나는 하버드대에서 공중보건을 공부하는 젊은 마리사 릭스(Mariesa Lee Ricks)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며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한류의 잠재력을 찾고 싶다고 얘기했다. 마침 얼마 후 미국 출장을 가게 돼 보스턴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도 아내가 한국 사람이라 막연히 내 딸을 마음속에 그리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내 딸 레이첼과 달리 흑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는 그로 인해 결코 불쾌함이나 불안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차분하고 성숙한 여성이었으며 한눈에 그녀만의 단단한 자아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한류에 대한 관심이 학문적인 면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는 것이고, 그녀가 겪었던 경험의 연장선에 있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마리사로부터 한류의 새로운 종(種)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한류란 가수 싸이의 유행을 훨씬 초월하는 그 무엇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임과 동시에 세계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창이었다. 예전부터 한국은 아프리카계 혼혈인에 대해서는 불친절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여기 내 눈앞에 있는 마리사로부터 나는 이런 인식이 산산이 조각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우린 한국인'이라는 단일민족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틀이 깨지는 광경이었다.

수시로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 소식을 접한다는 마리사는 "한국 청소년들의 왕따나 자살 문제를 접할 때마다 마치 중학생인 제 조카가 실제 한국에서 그런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해요"라면서도 "그러나 한국은 지금 민족과 문화가 아주 다양해지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역동성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이 어떻게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의 역동성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한류는 그녀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을 넘나들며 존재하는 한류, 마리사의 한류는 그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팔고 연예계에 유행을 일으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와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녀는 설명했다. "아버지의 가족이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한국 문화를 전혀 접해보질 못했어요. 다행히도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열심이셨어요. 한국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속담을 말해주거나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셨죠. 그래서 전 자연스럽게 새롭게 조화된 음식과 문화를 찾게 되었고, 그것이 제가 경험한 한류의 매력이에요." 동시에 그녀는 "미국식 개인주의의 가치는 저에게 스스로 흥미를 추구하고 위험을 감내하는 법을 알려주었어요"라고 했다. 마리사는 미국과 한국 양쪽의 장점을 취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마리사는 그녀만의 해석으로 한류를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인과 흑인에게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흑인들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한국인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그 고통이 그녀를 키운 원동력이었다. "그 고통 때문에 불굴(不屈)의 정신과 공동체 의식이라는 공통분모가 두 집단 모두의 삶에 녹아 있어요. 그 공통점이 제 가족의 두 문화를 쉽게 섞이게 해 주었죠." 두 문화의 융합에서 그녀는 한국의 중요한 가치를 보게 된다. 그녀는 세상이 좁아질수록 한류는 다양한 세계 인구가 한국 문화의 이해를 통해 하나의 교집합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화를 마치면서 마리사는 강조했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불가능의 벽을 넘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제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우리 가족의 불굴의 정신이고, 제가 한국인 혈통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저는 언제나 소수민족일 거예요. 그래서 특권을 받은 한 사람으로서, 소수민족이 평등과 기회를 얻기 위해 불가능의 벽을 깨는 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평등을 부르짖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그들이 자기 생각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날 한류는 정부 정책이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의지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흐름은 비슷한 마음을 지닌 전 세계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 만들어 낸 진실한 흐름이고, 이 흐름 속엔 전 세계 사람들의 한국 탐험에 대한 욕구가 들어 있다. 필자가 일본과 중국 문화에 대한 탐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한국에 닻을 내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한국문화 전공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5/2013060501100.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40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로 꼽는 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근 중국의 급부상으로 주요 2개국(G2)이라는 용어가 나왔지만, 미국의 강대함은 쉽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미국을 더욱 강대한 나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의 반열에 든 것에 자만하지 말고, 다시 G10으로, G8로 도약하기 위한 성장동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프로젝트를 살펴봤다.

무엇이 나라를 강대하게 할까? 경제력, 군사력, 천연자원 등을 꼽기 쉬운데, 필자는 뜻밖에도 ‘독서’라고 답변한 미국인들이 참 ‘희한하게’ 생각됐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독서가 나라를 강대하게 만든다(Reading makes a country great)’는 것이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단체가 ‘딕셔너리 프로젝트(The Dictionary Project)’다. 이들은 해마다 전국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국어(영어)사전’을 선물하고 있다. 어휘력과 독해력을 향상시켜 공부를 하게 함으로써 나라를 더욱 강대하게 만드는 초석을 다지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의아하게 여긴 것은 독서가 중요하다면서 ‘왜 책(book)이 아니라 사전(dictionary)을 주는 것일까’였다. 이는 이 단체의 연혁을 살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992년 조지아 주에 사는 한 할머니가 집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사전 50권을 기부했다. 사전을 받은 학생들이 어휘력과 독해력이 향상돼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는 소문이 이웃 마을로 퍼지면서 사전 기부 운동이 널리 확산됐다. 1995년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메리 프렌치 씨가 남편 아노 씨와 함께 ‘딕셔너리 프로젝트’라는 장학재단을 결성했다. 이 단체의 후원자들이 해마다 늘어나 전국으로 확산됐으며, 15개 국가에까지 보급됐다고 한다. 1995년 이후 총인원 1825만5644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고, 2012년 한 해에만 239만7306명에게 사전을 선물했다고 한다(미국 초등학교 3학년생은 모두 417만여 명이다). 

사전 기부 활동의 양적 팽창과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이론적 무장에 더욱 놀랐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16년간의 학업 과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 가장 큰 분수령이 된다고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읽을 줄 알기 위하여 공부하는 단계이고, 3학년 이후 대학 4학년까지는 지식 축적을 위하여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단계인데, 이때 가장 강력한 학습도구가 바로 사전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놀란 것은 우리가 무상급식으로 학생들의 ‘배’를 채우게 하는 일에 골몰하는 사이에, 미국은 사전 선물로 학생들의 ‘머리’를 채우는 일에 몰입한 것이다. 동물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는 ‘먹여 기르는’ 사육(飼育)이 아니라 ‘가르쳐 기르는’ 교육(敎育)이 더욱 중요함을 이제라도 깨달아야겠다. 

미국은 ‘다(多) 대 다’ 방식으로 사전 장학 프로젝트를 선구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생이 45만여 명이라고 한다. 매년 120억여 원의 투입으로 ‘강대한 나라’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선발주자를 추월하는 지름길일 것 같다. 학비를 지급하는 재래 방식에 그치지 말고 교구(敎具)를 지원하는 선진국형 장학제도를 도입할 때가 됐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도구를 주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최영록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625/56091458/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15


*One of my dreams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 시니어는 1938년부터 2년간 주영 미국대사를 지냈다. 지명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아일랜드계 사업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장남인 조지프 케네디 주니어에게는 정치를 권했고, 차남인 존 F 케네디에게는 군인이 되라고 했다. 장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차남이 정치에 투신해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케네디 대통령 아버지처럼 미국 대통령은 직업외교관이 아닌 ‘정무형 인물(Political appointee)’을 대사로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외교부에 해당하는 미국 국무부의 경우 외교 공무원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위층(Senior level)으로 진급할 수 있는 길을 택할지, 아니면 국무부 평직원으로 남을지를 선택한다. 시니어 레벨에서는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걸려 중간에 옷을 벗을 수도 있다. 평직원으로 남으면 잘릴 위험 없이 1등서기관까지는 올라간다. 우리의 고참 서기관쯤 된다.

▷미국 대통령이 정무형 인물을 대사로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직업 외교관인 차석대사(deputy chief) 제도가 있어서다. 누가 대사가 되더라도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미스 USA 출신이나 대선캠프에서 일한 사람, 문화계와 언론계 출신 등이 주요국 대사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정치 문화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주베트남 대사 신임장을 받은 전대주 씨는 1973∼2001년 LG화학 베트남법인장을 지냈다. 베트남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베트남 정관계와 재계에도 두꺼운 인맥을 갖고 있다. 민간 기업인 출신 대사로는 상하이 총영사를 지낸 김양 씨(김구의 손자)와 칠레 대사를 지낸 기현서 씨(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출신)에 이어 세 번째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해외 공관장 자리는 113개. 직업 외교관이 두세 번씩 돌아가면서 맡는 대사 자리에 우리도 각계의 민간 전문가를 보내는 것을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임지(任地)가 마음에 안 든다며 낙담하는 직업 외교관과 현지 사정에 밝고 의욕이 넘치는 민간인 중 누가 더 국익에 도움을 줄 것인가.

최영해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618/55930721/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1:13

며칠 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동네 병원에 가서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했다. 이번이 네 번째다. 이제 아들은 소아마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소아마비는 예방 접종만 하면 피할 수 있는 질병이고, 한국에서는 1983년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소아마비는 사라지는 추세다. 1988년 이후 전 세계 소아마비 감염자 수는 99%나 줄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아마비 근절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창업자 등이 거액을 기부해 퇴치를 적극 지원한 결과다.

그런데 지금도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등 3개 국가에서는 소아마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왜 유독 이들 국가에서만 소아마비를 퇴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소아마비 예방 백신 접종에 반대하면서 접종 요원들에 대한 테러까지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심각한 나라는 파키스탄이다. 지난해 12월 9명의 접종 요원이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20여 건의 접종 요원 공격 사건이 일어났다. 16일에도 접종 요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과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소아마비 백신 접종 요원이 살해됐다.

알카에다, 탈레반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미국이 이슬람 여성을 불임으로 만들려고 백신을 접종한다’ ‘소아마비 백신에는 이슬람에서 금지한 성분이 들어 있다’ 등의 낭설을 퍼뜨리며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백신 접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사마 빈라덴 사건’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는 2011년 3월 미 중앙정보국(CIA)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파키스탄의 한 마을에 가짜로 B형 간염 예방 접종을 해주면서 빈라덴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던 사건을 가리킨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미국이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각종 예방 접종을 해주고 있다’고 믿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프간과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접종 요원 공격도 이 사건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막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있는 병에 걸려 아이가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갖게 된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미국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9·11테러의 주범인 빈라덴을 추적하는 것이 아무리 중요했더라도 방법은 신중했어야만 했다. 그 피해는 테러와 아무 상관 없는 일반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고,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가 근절되는 날은 늦어지고 있다.


장택동 국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619/55959884/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6:47

섭씨 46도를 오르내린 날씨만큼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서니랜즈 1박2일 회동’은 기록적이었다.

480분간의 마라톤 만남은 벌써 기록으로 남았다.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새로운 접근법, 냉전시대의 미국·소련 관계와는 다른 미·중 관계의 설정 등도 먼 훗날 역사책에 등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부상하는 강대국’ 중국과 ‘기성 강대국’ 미국의 두 정상이 만난 1박2일은 거대한 국익의 충돌장이기도 했다.

8일 오후 2시20분(현지시간). 오바마와 시진핑이 만난 서니랜즈로부터 5㎞ 남짓 떨어진 웨스턴 미션힐스 호텔의 앰배서더 룸에는 1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렸다. 회동 결과와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급히 마련된 자리였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함께 나타났다. 도닐런 보좌관은 이번 회동을 사전에 기획하고 연출한 주인공이다.

“아주 특별하고 중요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동 결과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도닐런 보좌관의 모두발언 뒤 문답 시간이 이어졌다.

AP통신과 CNN 등 미국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한 가지에 집중됐다. 미국 기업과 정부를 괴롭히는 중국의 사이버 해킹에 대해 어떤 얘기가 오갔느냐였다. 미국 기자들에게 둘의 만남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는 중국의 행위로부터 미국의 국익을 얼마나 방어할 수 있었느냐가 관심이었다.

미국 기자들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된 뒤 일본 기자들이 나섰다. 그들의 관심사는 또 달랐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이 제대로 거론됐는지였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 기자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북한 핵 문제, 탈북자 북송 문제 등이 어떻게 논의됐는지를 물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브리핑은 한국·미국·일본 등 3국 기자들이 서로 다른 관심사를 묻는 경연처럼 진행됐다.

마지막 답변을 마친 도닐런 보좌관이 단상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기자석 한편에서 갑자기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에 중국이 문제 제기를 했느냐”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대만 기자였다. 도닐런이 그냥 퇴장하려 하자 그 기자는 다시 소리를 쳤다. 멈칫하는가 했던 도닐런은 백악관 직원에게 e메일로 답변해 주라고만 한 뒤 떠났다.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세계 각국 기자들이 모이는 공동 기자회견장에 가면 늘 체감하는 게 있다. 그 나라의 국력만큼 언론도 발언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중국이 커질수록 작아질 수밖에 없는 대만 기자의 상기된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다.


랜초미라지(캘리포니아)
박승희 워싱턴 특파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76418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19. 14:40

망연자실한 눈빛의 비둘기 한 마리가 3일째 베란다에 앉아 있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지금은 어찌할지 모르겠다. 이별의 상심에 식음을 전폐한 걸까, 어지러운 세상사에 절망한 걸까, 먹을 것도 안 먹고, 만져도 떠나지 않는다. 설마 죽는 걸까 하는 생각에 뭐든 물어보라는 120에 구조 요청을 했다. 놀랍게도 비둘기는 유해 조류로 분류돼 도움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어쩌다 유해한 새가 된 걸까?


초등학교 1학년 5월, 담임 선생님이 문득 경주 시내의 미술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대신 참가비가 200원이라고 덧붙였다. 한껏 들뜬 난 냉큼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집을 비웠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뒤꿈치를 들어 부엌 찬장 속의 빨간 수저통을 뒤졌다. 그곳엔 늘 동전 몇 개씩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날은 동전이 없었다. 선생님은 참가비를 대신 내주며 풀죽어 돌아온 나를 인자하게 다독였다. 그림 경연이 시작되자 경주의 아름다운 솔밭으로 다들 흩어졌다. 문제는 설명해줄 엄마가 없었기에 어떤 주제로 그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초조해하다가 결국 한 그림을 훔쳐봤는데, 솥이었다. 솥이라면 자신 있었다. 솥뚜껑의 동그란 주름 틈에 손가락을 뱅뱅 돌리며 몇 시간이고 놀곤 했으니까. 온통 검게 채색된 내 그림이 제출됐을 때, 모두가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제야 내가 훔쳐본 그림이 갓을 쓴 할아버지였단 걸 알아챘다. 이후 다신 미술대회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행히 상처는 증발되어, 중1 땐 미술실에서 데생을 배우며 훗날 루브르에서 보게 될 온갖 그림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문득 미술 선생님이 ‘미대 어때? 넌 디자이너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엉뚱하게도 난,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아요 하고 되받아쳤다. 황망한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말을 내뱉은 나 스스로도 어이없어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내가 왜 그런 폭력적 자기방어를 시도했는지, 긴 시간에 걸쳐 그 광경을 돌이켜보곤 한다. 분명 한켠은 첫 미술대회에서 폭포처럼 뒤집어쓴 그 조롱, 곧, 지위에 맞지 않는 무임승차로 민폐 끼치는 실력 없는 나쁜 사람의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실용적 명분을 갖춘 사회는 가난한 자를 유해한 자로 규정한다. 왜냐면, 그들은 학업을 게을리했고, 자기계발에 무관심했고, 지혜와 정치력이 모자랐기에, 말하자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 이 시대의 도덕률에 맞춰 성실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신봉자는 기내 승무원이나 편의점 알바나 음식점 종업원 앞에 진상 손님으로 등장해서, ‘니들 놀 때 난 뺑이쳤거든, 왜 꼽냐’라며 그나마 엷디엷은 자존감 위로 침을 뱉어댄다. 굴욕에 주눅든 유해 인간들은 부도덕한 존재라는 수치심에 한없이 무력해진다.


하나 그것은 애초에 공정한 게임이 아니니 속지 말아야 한다. 재벌 드라마의 당치 않은 대물림쇼를 보자. 철판 깔고 청문회에 선 고관대작들의 편법을 보자. 유익한 자가 못 된 건 개인 탓도, 부도덕한 탓도 아니다. 다만,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될 권리가 평등하게 부여됐다고 착각한 탓에, 이 죽일 놈의 가난이 결국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력의 소치라고 자학하는 습관이 문제이다. 다행히도 세도가들의 요즘 행태는 부를 악덕의 상징으로 대체시키며, 돈과 권력과 지위가 도덕적 지평과는 무관함을 증거하고 있다. 물론 이게 위안이 될진 모르겠지만.


음, 난 일생 풍족하진 못했지만, 그로 인해 수치스러운 적이 없었으니, 가난한 적이 없었다 해야겠다. 어쩌면 그건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엄마의 알라딘 수저통의 마법 덕인지도.


민규동 영화감독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5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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