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장거리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긴 여행을 피하게 된다. 좁은 자리에 몸을 욱여넣고 긴 시간 잠을 청하다 보면 몸이 힘들지만 가격에 따라 좌석을 나누는 비행기 좌석은 계급적이라 마음도 불편하다. 그런데 좌석의 ‘차별’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사실 이코노미 클래스의 승객들이다. 항공사는 많은 돈을 쓸 용의가 있는 손님들에게 비싼 가격을 매겨 이익을 얻지만 이코노미 클래스의 승객들에게는 싼 가격의 좌석을 제공한다.
이런 항공사의 정책을 ‘가격차별’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가격을 매개로 해 이질적인 고객의 성향을 구별하기 위한 전략이다. 나처럼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이런 정책에 불평을 하긴 어렵다.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편견에 의한 차별도 흔하다. 어떤 종류의 차별은 상당히 뿌리 깊은 편견에서 기인해서 해소하기 어렵고 때로는 전쟁이나 학살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차별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성, 인종, 출신 지역, 성적 취향 등에 다양한 편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 편견을 차별이란 행동으로 옮기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레스토랑의 주인이 최고의 요리사를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거나, 자동차 회사가 최고의 디자이너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하려면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내 편견을 행동으로 옮겨서 얻는 것은 정서적 쾌감이고 잃는 것은 구체적인 이익이기 때문에 차별은 비용을 더 높게 만드는 사회적 변화 앞에서 극적으로 줄어든다.
이런 사회적 변화의 좋은 예는 경쟁의 심화다. 한 번의 실수나 실패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로 경쟁이 심한 산업에서 최고의 직원을 그 사람이 여자, 흑인,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차별하기는 몹시 어렵다. 아무리 종교적인 이유로 편견을 신념처럼 믿고 있어도 자기 회사의 운명이 차별 대상인 직원에게 달려 있다면 대개 차별을 포기하게 된다. 중국과 인도와 같은 거대한 나라들이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전세계가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기 때문에, 기업이 생산성이 뛰어난 인재를 편견 때문에 차별하는 건 경제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문명 수준이 높고 경제 수준이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이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별의 비용이 사회적으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을 생산성 이외의 이유로 차별하면서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에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인종이나 출신 지역 그리고 성적 취향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차별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고 개선될 기미가 없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얼마 전 야당에서 추진한 ‘차별금지법’의 입법이 무산되었다. 차별이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과 그런 그들을 선동해서 생활하는 ‘생계형 차별주의자’의 반대 때문이었다. 그들의 상당수가 종교인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너무 낙담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차별의 실질적인 비용을 치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들의 정치적인 힘이 큰 것 같아 보여도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가지 차별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강력하고 글로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시대착오적 집단행동으로 막기는 어렵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싱가포르 규모의 인구가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할 수 없었던 게 불과 16년 전이다. ‘차별금지법’의 미래를 낙관한다.
김동조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저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50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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