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한 눈빛의 비둘기 한 마리가 3일째 베란다에 앉아 있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지금은 어찌할지 모르겠다. 이별의 상심에 식음을 전폐한 걸까, 어지러운 세상사에 절망한 걸까, 먹을 것도 안 먹고, 만져도 떠나지 않는다. 설마 죽는 걸까 하는 생각에 뭐든 물어보라는 120에 구조 요청을 했다. 놀랍게도 비둘기는 유해 조류로 분류돼 도움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어쩌다 유해한 새가 된 걸까?
초등학교 1학년 5월, 담임 선생님이 문득 경주 시내의 미술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대신 참가비가 200원이라고 덧붙였다. 한껏 들뜬 난 냉큼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집을 비웠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뒤꿈치를 들어 부엌 찬장 속의 빨간 수저통을 뒤졌다. 그곳엔 늘 동전 몇 개씩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날은 동전이 없었다. 선생님은 참가비를 대신 내주며 풀죽어 돌아온 나를 인자하게 다독였다. 그림 경연이 시작되자 경주의 아름다운 솔밭으로 다들 흩어졌다. 문제는 설명해줄 엄마가 없었기에 어떤 주제로 그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초조해하다가 결국 한 그림을 훔쳐봤는데, 솥이었다. 솥이라면 자신 있었다. 솥뚜껑의 동그란 주름 틈에 손가락을 뱅뱅 돌리며 몇 시간이고 놀곤 했으니까. 온통 검게 채색된 내 그림이 제출됐을 때, 모두가 깔깔대고 웃어댔다. 그제야 내가 훔쳐본 그림이 갓을 쓴 할아버지였단 걸 알아챘다. 이후 다신 미술대회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행히 상처는 증발되어, 중1 땐 미술실에서 데생을 배우며 훗날 루브르에서 보게 될 온갖 그림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문득 미술 선생님이 ‘미대 어때? 넌 디자이너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라며 강력히 추천했다. 엉뚱하게도 난,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아요 하고 되받아쳤다. 황망한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했고, 그 말을 내뱉은 나 스스로도 어이없어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내가 왜 그런 폭력적 자기방어를 시도했는지, 긴 시간에 걸쳐 그 광경을 돌이켜보곤 한다. 분명 한켠은 첫 미술대회에서 폭포처럼 뒤집어쓴 그 조롱, 곧, 지위에 맞지 않는 무임승차로 민폐 끼치는 실력 없는 나쁜 사람의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실용적 명분을 갖춘 사회는 가난한 자를 유해한 자로 규정한다. 왜냐면, 그들은 학업을 게을리했고, 자기계발에 무관심했고, 지혜와 정치력이 모자랐기에, 말하자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 이 시대의 도덕률에 맞춰 성실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신봉자는 기내 승무원이나 편의점 알바나 음식점 종업원 앞에 진상 손님으로 등장해서, ‘니들 놀 때 난 뺑이쳤거든, 왜 꼽냐’라며 그나마 엷디엷은 자존감 위로 침을 뱉어댄다. 굴욕에 주눅든 유해 인간들은 부도덕한 존재라는 수치심에 한없이 무력해진다.
하나 그것은 애초에 공정한 게임이 아니니 속지 말아야 한다. 재벌 드라마의 당치 않은 대물림쇼를 보자. 철판 깔고 청문회에 선 고관대작들의 편법을 보자. 유익한 자가 못 된 건 개인 탓도, 부도덕한 탓도 아니다. 다만,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될 권리가 평등하게 부여됐다고 착각한 탓에, 이 죽일 놈의 가난이 결국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력의 소치라고 자학하는 습관이 문제이다. 다행히도 세도가들의 요즘 행태는 부를 악덕의 상징으로 대체시키며, 돈과 권력과 지위가 도덕적 지평과는 무관함을 증거하고 있다. 물론 이게 위안이 될진 모르겠지만.
음, 난 일생 풍족하진 못했지만, 그로 인해 수치스러운 적이 없었으니, 가난한 적이 없었다 해야겠다. 어쩌면 그건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엄마의 알라딘 수저통의 마법 덕인지도.
민규동 영화감독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5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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