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우연한 기회에 소셜 벤처의 컨설팅회사에서 한참 성장 중인 소셜벤처 대표 그리고 그들에게 투자하는 벤처 앤젤들까지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수 백만원씩 하던 보청기를 34만원에 공급하는 한 회사의 사례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난청환자가 200만명 정도 있는데, 정부 보조금이 딱 34만원이다. 거기에 맞춘 제품을 출시한 회사가 대표적인 소셜 벤처다. 누구든 연락만 하면 0원에 자신의 보청기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5년에 한 번씩 새 걸로 교체할 수 있다. 뜻만 가지고 하는 자선사업은 아니다. 보청기 주파수를 표준화하는 등, 가격을 낮추기 위한 기술혁신과 함께 0원에 보청기가 제공되는 이 사업,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도 못했고, 독지가도 못했던 일을 대학생들이 모여서 5년만에 이룬 일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나무를 키우면 정말로 나무를 심어주는 소셜 벤처,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에 발벗고 나선 소셜 하우징 전문 업체, 5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중이다. 나도 사회적 경제가 한국에서 커져나갈 것이고,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이런 것들이 실질적 대안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렇지만 소셜 벤처가 이렇게 빠른 기간에 밑바닥을 다지고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역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다.
벅찬 감동을 잠시 뒤로 하고 눈을 감고 생각해봤다. 6ㆍ25전쟁 이후, 한국의 최고 인재들이 모인 곳은 육군사관학교였다. 막 건국한 나라, 그것도 전쟁의 참사를 겪은 나라에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나라는 젊은 장교들의 통치로 들어갔다. 육사 나온 사람들이 정말 오랫동안 한국을 통치했다. 경제라고 말할 것도 별 게 없던 나라에서, 세 끼 밥을 줄 수 있고, 줄줄이 딸린 식솔들을 먹여 살릴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곳, 그게 군대 아니겠는가? 70년대, 수출입국이 한참일 때, 한국의 인재들은 무역상사라는 곳에 주로 갔던 것 같다. 해외에 아무나 나갈 수 없던 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이어를 만날 수 있던 무역상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엔지니어들은 울산이나 포항과 같은 공장으로 갔다. 무역입국, 기술입국을 한국이 외치던 시절, 그렇게 인재들은 기업으로 몰려갔다. 지난 대통령이 그 시절에 세계를 뛰어다니던 대기업 간부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연한 일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한 번쯤은 대기업 CEO의 시대를 거칠 수밖에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그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 활동가로, 빈민가의 흑인들 집 고쳐주던 일을 했었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한국에 젊은 지도자가 나온다면, 지금 소셜 벤처에서 공익과 경제의 중간에서 활동하는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일 것 아니겠는가? 정부든, 삼성이든, 지금 몇 조씩 경쟁적으로 돈을 푼다고 한다. 그 돈의 아주 일부라도 공익을 고민하는 소셜 벤처로 흘러가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미래와, 우리 모두의 윤리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진보든 보수든, 동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이 방향으로 가자! 그렇게 토건의 시대를 흘려 보내고, 혁신과 창조의 방향으로 가자.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ㆍ경제학 박사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5/h20130520033044243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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