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2:39

미국 서부의 모하비 사막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 사는 집 대신 성냥개비처럼 꽂힌 수백 개의 풍력발전기만 보였다.

LA에서 두 시간. 마침내 항공우주 공항과 격납고, 퀀셋 건물이 들어선 마을이 나왔다. 우주기술 벤처들이 모여있는 이른바 '스페이스 밸리'다. 거대한 소음과 폭발, 시험비행을 수용하기에는 사막밖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이곳으로 4000여 명이 출퇴근한다고 했다.

마을에는 햄버거 가게, 편의점, 유흥시설이 없었다. 단조로운 창고형 건물만 규격대로 있었다. 그 속에서 기술자들은 자기 일을 했고, 공간 절약을 위해 남녀 혼용 변기를 썼고, 첫 계약을 따낸 기념으로 '1달러'를 액자로 걸어놓았다. 여기 벤처 하나의 로켓 엔진 기술이 우리나라 전체가 갖고 있는 기술보다 앞섰다.

사막에 온 것은 '상업 우주여행'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지금껏 우주 영역은 정부의 대규모 프로젝트로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막에 몰려든 자유로운 개인들은 우주가 정부의 독점 사업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벤처들은 어느 날 그냥 사막에서 선인장처럼 자라진 않았다. 이들을 자극하고, 창의력을 일깨우고, 미친 듯이 만들게 하는 동기 부여가 없었다면, 열정의 불을 지피는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하비 사막은 단지 누런 흙 사막이었을 것이다.

1997년 두 여성 기업인이 다음과 같은 현상금을 내걸었다. "정부 자금이 아닌 순수 민간 자본으로 만들고, 세 명의 우주인이 고도 100㎞까지 여행하고, 귀환 2주일 뒤에 같은 우주선으로 다시 우주여행에 성공하면 1000만달러(120억원)를 주겠다."

수십 개의 우주 벤처가 달려들었다. 승자는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했던 폴 앨런이 투자한 벤처였다. 그는 상금 1000만달러를 거머쥐기 위해 2600만달러를 썼다. 수지타산을 따지면 헛장사였다. 그가 추구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기술의 벽(壁)을 돌파했을 때의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그 뒤 우주와 무관해 보이는 구글(Google)에서도 '달 탐사 현상금'을 걸었다.

"로봇 탐사선을 달에 착륙시켜 표면에서 500m 이상 전진하면서, 동영상과 이미지를 지구로 전송하면 3000만달러(360억원)를 주겠다."

왜 우주 탐사에는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을 들여야만 하는가. 엔지니어들에게 저가(低價)의 로봇 탐사 개발을 자극한 것이다. 현재 25개 팀이 달착륙 로봇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우주 분야 말고도, 공상과학영화'스타트렉'에 나오는 것처럼 환자 몸을 스캔해 15가지 병을 진단할 수 있는 무게 2.2㎏ 이하 의료기기를 만들어내면 1000만달러, 온실가스를 제거 및 이동시키는 상업적 기술에는 2500만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런 현상금은 인류를 위한 혁신적인 과학기술 개발을 촉진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다. 실제 현상금으로 많은 기술적 과제가 해결됐거나 도약을 이뤘다. 1L당 42.5㎞를 달릴 수 있는 자동차에 10만달러,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는 기술에 건 140만달러 현상금에는 이미 주인들이 나타났다.

거액의 현상금은 대부분 자본가와 기업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는 세상의 엔지니어들에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영역을 향해 달려가도록 도전과 용기,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로 돌아오면 대부분 '자본'은 먹기 좋은, 이미 다 잡아놓은 먹이를 가로채는 데 능숙하다. 내부 일감 밀어주기, 빵집과 콩나물 업종 진출, 납품 단가 후려치기,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기술 빼가기 등이 자본의 생존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정 재벌의 '횡령' '비자금' '차명계좌' 수사 소식을 접하면, 몇 백 번 태어나고 다시 죽을 때까지도 다 쓰지 못할 돈을 깔고 앉은 이들이 그걸로 또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상업 우주여행의 선두 주자인 버진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의 얘기를 이렇게 썼다.

"평생 얼마를 벌었느냐로 기억되는 사람은 없다. 은행 계좌에 10억달러를 넣어둔 채 죽든, 베개 밑에 20달러를 남기고 죽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생에서 성취는 그런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창조했는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켰는지 여부다."

어제 정부가 40조원을 퍼붓겠다는 '창조경제'에 대해 발표했을 때, 나는 감흥이 없었다. 이는 수식어와 액수 규모만 달랐지 그전에도 수차례 봐왔던 풍경이다. 창조에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대담한 상상력, 파괴와 융합, 획기적인 기술력 돌파가 요구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 성패는 정부의 구호보다 자본과 기업인들이 과감하게 '현상금'을 내걸 수 있는 마음 자세에 더 달려있는 것이 틀림없다.


최보식 선임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06/2013060600722.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