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산악인들의 등반 장면을 통해 익숙해진 네팔은 보통 사람에게 경외심을 갖게 만드는 신비의 땅이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해발 8000m가 넘는 고산 8개를 보유한 가장 높은 나라. 수도 카트만두도 해발 1300m 높이에 있다. TV 카메라가 보여주는 네팔은 청정한 자연 풍광과 걱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나라다.
직접 본 카트만두는 달랐다.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좁은 차도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하루 종일 북새통이다. 매연이 심해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시내의 강줄기는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를 풍긴다.
네팔의 정치상황은 더 심각하다. 2008년 국왕제를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을 선포했지만 극심한 정쟁으로 헌법조차 제정하지 못한 채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당과 노조는 걸핏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걸고 시위와 파업을 주도해 국가를 파탄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카트만두를 떠나던 날 호텔에서 본 영자신문 1면 기사는 절망적인 네팔의 오늘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최대 정당인 UCPN의 간부가 16세 소녀를 인도에 인신매매한 혐의로 구속되자 UCPN 당원들이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였다. 김일두 주네팔 한국대사는 “외국대사들도 누가 지도자가 될지, 어느 정당이 집권당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네팔 정부와 구체적인 정책 협의와 지원 논의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네팔을 떠나 방글라데시를 거쳐 캄보디아를 찾았다. 세 나라 모두 가난하다. 남한보다 조금 넓은 14만 km²의 국토를 가진 방글라데시에는 무려 1억6000만 명이 복작대며 산다. 캄보디아 상황은 한 해 30만 명을 넘어선 한국 관광객이 잘 알고 있는 대로다.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발전한 한국이 세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2조411억 원이나 된다. 이 중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캄보디아에 194억 원, 방글라데시에 111억 원을 지원한다. 고단하게 사는 세 나라 국민을 한꺼번에 보고 나니 우리의 무상원조가 제대로 쓰여 그들이 허리를 펴고 사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국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주는 원조의 상당부분이 세 나라 고위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서 캄보디아는 100점 만점에 22점을 받아 176개국 가운데 157위를 기록했다. 방글라데시는 26점으로 144위, 네팔은 27점으로 139위였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를 둘러보고 귀국하는 공항에서 캄보디아 부패의 실상을 경험했다. 여권 검사를 하는 앳된 관리가 서툰 영어로 “팁을 달라”고 떼를 썼다. 거대한 석조 사원인 앙코르와트는 9∼15세기 크메르제국이 동남아 최대의 강국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캄보디아 조상들이 몰락한 요즘 후손들을 보며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우리가 주는 재정적 지원이 개도국의 외형적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절실한 것은 그 나라 국민의 의식 변화다.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부패의 악순환을 깨겠다는 국가의 각성도 있어야 한다. 네팔 방글라데시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우리 외교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분투하고 있다. KOICA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 주재국 국민에게 정신적 자극을 주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박근혜정부의 원조정책에도 창조경제 개념을 적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720/56558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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