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8. 00:30

신성장동력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

애플처럼 혁신이 상업화에 성공해야

패자부활이 가능한 벤처생태계 필요


외환위기가 수습되고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 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간 적이 있다. 1998년 리스본에서 해양박람회가 열렸고, 한국이 해양박람회 유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할 때였다. 당시 바다로 통하는 테즈강변에서 ‘항해 왕자’로 유명한 엔히크(Henrique) 왕자 사후 500주년 기념비를 볼 기회가 있었다. 50m이상 솟은 이 거대한 기념비에는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 등 포르투갈의 영웅적 탐험가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여행가이드는 “당시 항로와 식민지 개척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벤처기업의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야심만만한 젊은 인재들이 국왕에게 탐험 계획서를 제출하면 국왕이 검토해 선박과 필요한 자금을 대준다. 목숨을 담보로 탐험을 하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보수를 챙겼다. 당시 농경사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산업동력을 발굴한 것이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일찍이 ‘대탐험 시대’의 선두주자가 됐다. 엔히크 왕자는 직접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탐험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국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대륙을 발견했다.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불나방처럼 항로 개척에 뛰어들어 희생을 당하면서 포르투갈은 이후 상당기간 인재난에 시달리면서 쇠퇴했다고 한다. 당시 항로개척은 탐험정신을 바탕으로 혁신기술이 동반되어야 가능했지만 벤처기업 마냥 성공확률은 극히 빈약했다. 하지만 불굴의 모험정신 덕분에 포르투갈은 한동안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한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경제계의 화두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으로 요약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다. 창업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모험적이고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인물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짐 클리프턴 갤럽 회장이 저서 ‘일자리 전쟁’에서 주장하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상관관계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혁신은 드물지 않지만, 많은 혁신들이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미국과 인류를 발전시킨 것은 인터넷의 발명보다 인터넷의 상업화였고, 뛰어난 기업가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요와 소비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찾기 어렵고, 부족하며, 보기 드문 에너지와 재능은 바로 기업가 정신”이라며 “이를 희귀한 세일즈 기술, 천재적인 비즈니스 모델 설계, 혹은 레인메이킹(rainmaking)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원래 가뭄 때 비를 오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라는 뜻의 레인메이커(rainmaker)는 신규사업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존재를 일컫는다.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다. 세계 경제전선에서 매우 선전하고 있으나 이들 기업에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의 그림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드웨어는 강하나 소프트웨어는 맥을 못 춘다. 그렇다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이나 인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vs 코리아 프리미엄’에서 “재벌의 압도적인 우위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다”고 주장한다. ‘샐러리맨의 신화’ 팬택 박병엽의 몰락이 하나의 사례다. 휴대폰 업체 경쟁력이 기술력이나 품질보다 브랜드파워와 대기업의 보조금 위력에 좌우됐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재벌의 후예들은 모험정신은커녕 사고만 치고 다니고, 선대가 쌓아놓은 명성에 먹칠이나 하고 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 벤처기업 생태계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물론 모험이 없으면 대박도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 경험의 축적을 통해 가능했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레인메이커가 등장할 수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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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