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연구를 위한 재원과 관심이 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해외의 연구 현황은 어떤가. 두 가지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측면은 북미와 유럽 같은 지역에서 교육, 장학사업,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의 발전과 관련됐다. 두 번째는 선진국의 여론주도층, 매체, 정책결정자 사이에 한국에 대한 수준 높은 공공정책 대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을 보면 한국학 연구의 위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재단은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미국의 주요 대학에 한국학 석좌교수직을 설치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종신재직권(tenure)을 지닌 교수직을 설치하기 위한 기금이 모금됐다. 역사학·인류학·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한국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또 한국에 대해 반드시 긍정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공개 경쟁 채용을 통해 최고의 교수들이 임용됐는데, 그들의 관점이나 연구 방향의 독립성이 보장된 것이다. 또 한국에 대한 ‘실질적인(substantive)’ 관심만 있으면 교수로 채용되는 데 유리했다.
최고의 한국학 교수진이 확보되자 미국 대학에서 한국 관련 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한국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프로그램도 늘어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서울의 어떤 당국자가 뭔가 명령하는 일도 없었다. 구상은 이랬다.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학자들이 채용되면, 한국 관련 활동 전반이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의 관심에 자연스럽게 부응하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번째 측면을 살펴보자.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결과로 매체·비즈니스·정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중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지난 20년간 발전한 학술적 전문성 사이에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다. 한국학 교수들은 대부분 정치학자·국제정치학자·경제학자가 아니다. 이들 학문분야는 특정국가보다는 이론적인 분석이나 계량적인 방법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치학과·경제학과에서 선호하는 교수는 ‘한국 전문가’하고는 거리가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한국학 전문가로 성장한 교수들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다.
공공정책 차원에서 보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 대한 전문성은 한국의 민주화·핵확산·경제성장·외교정책 등의 이슈에서 필요한데, 미국 대학의 한국학은 이들 이슈와 거리가 있다. 한국 관련 문제가 터지면, 언론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는 인근 대학의 교수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다. “평소 신문을 읽고 한국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정책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공정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시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내정치, 권력구도, 역사, 심리학, 국제기구 등에 대한 정책 분석이 필요하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책결정 실무 경험도 필요하다.
한국과 관련된 정책 전문가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한국학 교수 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한국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응답 내용이 예전과 비슷하다. 즉 한국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한국에 대한 지식 수준은 아주 낮다. 한국에 대한 호의적이지만 표피적인 이해는 정책결정자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다. 광우병 시위처럼 한·미 관계에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면 미국의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공공정책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다음 세대 한국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나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데이비드 강,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와 고든 플레이크,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더불어 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는 미국 내 최고의 중진 학자 12명을 워싱턴 DC로 초청해 정책결정자, 언론인,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을 만나게 했다. 각 대학으로 돌아가 정책 문제에 대해 보다 잘 답변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였다.
세계가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지 K팝이나 한국 TV 드라마의 성공에 안주해 세계가 한국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하면 안 된다. 또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제 공공외교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하면 안 된다.
세계가 한국에 대해 보다 균형 있고 세련된 이해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오래전에 그럴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덜한 것일까. 아니다. 한국은 패권국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더욱더 열심히 알려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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