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0. 15:30

지난달 말부터 서울 도심 곳곳의 교통을 막고 진행한 영화 '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이 영화의 한국 홍보 효과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리는 외국인이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할지 여부와 그 속에 담을 내용을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어벤져스 2'만 해도 수십 분 분량을 찍었다는데, 실제 영화에서 무슨 장면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지는 '그들 마음'이다. 우리는 그저 영화 제작을 지원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과 달리 이 영화가 작년 여름 국내 개봉한 '월드워 Z'처럼 한국을 그리면 어쩌나 싶다. '월드워 Z'는 한국을 좀비(zombie) 바이러스의 최초 유포지로 설정하고, 암흑 속 평택 미군 기지에서 죽은 괴물들이 날뛰는 장면만 몇 분 보여줬다. 한국이 나와서 반갑기는커녕 황당하고 불쾌했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진행자로 유명한 타이라 뱅크스는 이달 초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빛둥둥섬 등을 배경으로 프로를 촬영하며 세계 180여 나라, 400만 시청자에게 "서울은 패션 도시"라고 선전해줬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문화의 힘이 탄탄해진 데 따른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멋진 이벤트 역시 우리가 기획했다기보다 "서울이 궁금하다"며 제 발로 찾아와 준 뱅크스가 선사한 행운이다.

한국 홍보를 이런 우연에 기대지 말고 문단(文壇)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싶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모옌과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는 각종 작품과 기고를 통해 한국을 홍보해 왔다. 모옌은 장편 '개구리'에서 "아기 용품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하나같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한국산 아기 침대, 프랑스산 우유병…"이라고 썼다. 파무크는 터키 유력 신문 사바흐에 "나는 서울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휘황찬란한 건물들, 호텔 로비들과 서점을 보았다"고 격찬했다.

이런 결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파무크의 소설을 번역·소개해 온 터키 문학 전공자 이난아 박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서 파무크를 서울에서 열린 문학 행사에 초청했고, 귀국하는 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글을 터키 신문에 기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개구리'가 한국 제품을 광고한 배경에도 대산문화재단·파라다이스문화재단 등이 한·중 작가 교류 행사를 열어 모옌을 여러 번 초청한 노력이 깔려 있다.

지난해 베네치아 광장과 트레비 분수, 리골레토와 토스카를 화면 가득 펼쳐놓는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세계인에게 '서울 위드 러브' '광주 위드 러브'를 보게 할 수 없나 생각했다. 그 영화를 만든 우디 앨런 같은 명감독을 초청해 한국의 매력을 설명하는 전략적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외국인의 우연한 선택에 국가 이미지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어벤져스 2' 서울 촬영을 이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태훈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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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