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8. 00:33

한국에서도 ‘청년 시민’이 생겨나고 있다. 텀블벅 같은 스토리 펀딩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활기차고 기발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될 공간과 활동수당이다.



스톡홀름, 헬싱키, 뮌헨을 거쳐서 베를린에 다녀왔다. “치매, 국가 책임”, “청년 실업, 국가 책임” 등의 단어를 접하면서 국가 단위가 건재한 곳을 자세히 보고 싶어서였다. 뮌헨의 청년들은 이자르 강변에서 떨어지지 않는 해를 벌거벗은 몸으로 즐기고 있었다. 파도가 생기는 다리 밑에서는 새벽부터 밤까지 곡예 같은 서핑을 즐기는 무리가 도시를 관광지로 만들고 있었다. 급류에 몸을 맡긴 채 떼 지어 보디서핑을 하는 청년들도 있었는데 여행객 사망 사건으로 얼마간 금지했다가 시민들의 저항으로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헬싱키에서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청년과 아주머니가 만든 단체가 주최하는 ‘하늘 아래서의 저녁 식사’라는 행사가 벌어졌다. 도심부 4차선 거리를 막고 끝없이 이어진 8인용 테이블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길을 막은 불편함을 시민들은 기꺼이 감수했다. 할머니의 숄을 꺼내 입은 듯한 아주머니팀은 홈메이드 케이크를 나누어주었다.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는 이 행사를 세계 각 도시에서 벌이기로 했다는데, 서울시도 개장한 서울역 고가에서 함께하면 어떨까 싶다. 주최 측을 만나보았는데 이들은 시의 허락을 받는 것이 어려웠지 실제로는 의자 빌리고 테이블 예약을 받고 협찬받은 물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팀은 또 ‘청소의 날’을 정해서 집 청소를 하고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벼룩시장을 시작하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발레하기, 사우나를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공공건물 뒤편에 이동 사우나 설치하기, 부엌과 응접실을 공개해서 전시장을 만들고 파티하기 등 시민들이 서로 엮여서 행복해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마술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었다. 이 작업을 주도하는 야아코라는 청년은 행정당국에 신청한 후 소식이 없으면 통보하고 실행한다면서 시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으니 시민들이 지지자가 되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자본, 반관료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쳐야 한다며 “창조하는 것 자체, 사람들과 동네가 바뀌는 것을 보면 얼마나 즐거운가?”라고 말했다. 새로운 발상, 협업 가능한 동료, 그리고 펀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이 이런 공유 공간과 소셜 미디어로 인해 가능해졌다.


북유럽의 특징은 무엇보다 공터가 많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다음 7세대’를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인디언 추장의 말을 이곳 주민들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지 곳곳에서는 날마다 채식 그린 마켓 등이 펼쳐지고 임시 텐트극장과 수리하여 고친 놀이기차가 다니는 임시놀이터가 차려졌다. 버려진 옥상 주차장을 텃밭으로 가꾸어 독특한 자신들만의 쉼터로 만든 곳은 낮에는 카페로 밤에는 세계 유명 클럽으로 변한다. 청년들의 실험장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방황과 실업으로 고민이 많다는데 막상 이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시민’처럼 살고 있다. 널널한 시간 속에서 의논하면서 사는 삶 말이다.


공유 작업장(coworking space)에서 청년들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합작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이들은 “그냥 한번 해보자”는 모토로 가볍게 움직이고 “서로 좀 방해를 하자”면서 서로 연결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을 보면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곧 로봇에 의해 대체될 ‘2등 국민’이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벌이는 이들이 일등 국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유하고 발명할 여유가 있는 시민’ 말이다. 4차 산업 운운하는 시대에 자발성과 자치에 따른 시민의 이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닐까?


“취준생에게 한달에 30만원씩 3개월간 구직촉진수당. 하반기 6개월간 약 11만6000명이 지원. 취업성공패키지 규모 36만6000명” 등의 청년정책 발표를 들으면 갑갑해진다. 실은 한국에서도 ‘청년 시민’이 생겨나고 있다. 텀블벅 같은 스토리 펀딩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활기차고 기발한 일들을 벌이고 있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시민’이 될 공간과 활동수당이다. 취업 성공 신화와 수치화된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처럼의 시민혁명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 것이다. 고도기술관리 시대의 국가발전은 오로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시민들의 활동에 의해서 추동된다. 청년들이 공화국의 시민으로, 동네의 주민으로, 정서적 공동체를 이루어 자기 삶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1453.html#csidxdb59b7ff5bf3b2bac1f6b3c47c11a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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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7. 15:31

오래전 일이다.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지난달 만난 스리랑카 농부 때문인 것 같다. 수년간 유기농을 고집했는데 이제는 마을 전체가 유기농을 하면서 마을살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변화의 속도보다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2004년 12월26일, 성탄절 다음날이었다. 나는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강력한 지진으로 해일이 발생해 타이 푸껫을 휩쓸고 있다는 긴급 뉴스를 보았다. 지진 발생 지역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주 앞바다였다. 규모 9.3의 강진이었다. 급히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니 피해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후 사고 집계를 보니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17만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스리랑카, 인도, 타이 등에서 약 6만여명이 사망했다.


이듬해 피해복구가 한창인 아체를 갔다. 참혹한 현장이 끝도 없었다. 거대한 배가 지진해일에 밀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점령군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 뒤편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구호단체들의 수많은 텐트에 각종 깃발이 만국기처럼 펄럭였다. 저 수많은 구호단체 중 주민에게 기억되는 단체가 있을까. 주민들 입장에서 궁금했다.


현지 단체들의 도움으로 여러 마을 주민대표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국가 또는 구호단체 이름과 이유를 물었다. 유명한 단체를 이야기할 거라 짐짓 생각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체 이름을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유가 흥미로웠다. 어느 날 청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마을 곳곳을 다니는 외국 여성이 있었는데, 여느 단체들처럼 구호물품을 들고 온 것도 아니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기만 했다. 그리고 여느 구호단체와 달리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계속 묻기만 했고 주민들의 대답에 정말 기가 막힌 생각이라고 공감하는 게 전부였다.


주민들은 이제나저제나 언제 올지 모르는 구호물품을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생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뭘 해서 먹고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날품팔이라도 좋으니 손수레와 옥수수를 공급해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손수레를 공급해주겠다고 해야 할 텐데 “그 손수레와 옥수수는 어떻게 구입하지요?”라고 또 물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당황스러웠다. 주민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쓰나미에 떠밀려온 폐자재 중에 골라서 고쳐 쓰면 될 것 같았다. 손수레 바퀴 짝이 안 맞는 것도 있지만 굴러가기만 하면 급한 대로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몇푼 안 드는 옥수수와 재료비는 장기 저리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공짜로 받는 것보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어서 그것도 괜찮다 생각했다. 게다가 돈 빌려주는데 까다로운 서류를 요구하지도 않고 주민들에게 맡긴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 후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폐자재 수리 전문가가 되고 이래저래 자그만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그녀는 빌려준 돈이나 사업보다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그제야 주민들도 어느 나라 어떤 단체에서 일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몇달이 지나서 알게 된 단체 이름은 영국의 ‘옥스팜’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주민들 스스로 이루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옥스팜은 참 좋은 친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단체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변화의 속도보다 함께 공감할 줄 아는 능력, 정책 못지않게 사람이 중요한 까닭이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6411.html#csidxfa2184726d215d9bc1bd0849b68eb76 

Posted by 겟업
2015. 3. 8. 00:30

신성장동력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

애플처럼 혁신이 상업화에 성공해야

패자부활이 가능한 벤처생태계 필요


외환위기가 수습되고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 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간 적이 있다. 1998년 리스본에서 해양박람회가 열렸고, 한국이 해양박람회 유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할 때였다. 당시 바다로 통하는 테즈강변에서 ‘항해 왕자’로 유명한 엔히크(Henrique) 왕자 사후 500주년 기념비를 볼 기회가 있었다. 50m이상 솟은 이 거대한 기념비에는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 등 포르투갈의 영웅적 탐험가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여행가이드는 “당시 항로와 식민지 개척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벤처기업의 성격을 가졌다”고 했다. 야심만만한 젊은 인재들이 국왕에게 탐험 계획서를 제출하면 국왕이 검토해 선박과 필요한 자금을 대준다. 목숨을 담보로 탐험을 하지만 성공하면 엄청난 보수를 챙겼다. 당시 농경사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산업동력을 발굴한 것이다.


덕분에 포르투갈은 일찍이 ‘대탐험 시대’의 선두주자가 됐다. 엔히크 왕자는 직접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인도로 가는 길을 탐험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국왕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대륙을 발견했다.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불나방처럼 항로 개척에 뛰어들어 희생을 당하면서 포르투갈은 이후 상당기간 인재난에 시달리면서 쇠퇴했다고 한다. 당시 항로개척은 탐험정신을 바탕으로 혁신기술이 동반되어야 가능했지만 벤처기업 마냥 성공확률은 극히 빈약했다. 하지만 불굴의 모험정신 덕분에 포르투갈은 한동안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한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요즘 우리 경제계의 화두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으로 요약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다. 창업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모험적이고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인물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짐 클리프턴 갤럽 회장이 저서 ‘일자리 전쟁’에서 주장하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상관관계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혁신은 드물지 않지만, 많은 혁신들이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한다. 미국과 인류를 발전시킨 것은 인터넷의 발명보다 인터넷의 상업화였고, 뛰어난 기업가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요와 소비를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찾기 어렵고, 부족하며, 보기 드문 에너지와 재능은 바로 기업가 정신”이라며 “이를 희귀한 세일즈 기술, 천재적인 비즈니스 모델 설계, 혹은 레인메이킹(rainmaking)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원래 가뭄 때 비를 오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라는 뜻의 레인메이커(rainmaker)는 신규사업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존재를 일컫는다. 미국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다. 세계 경제전선에서 매우 선전하고 있으나 이들 기업에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의 그림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드웨어는 강하나 소프트웨어는 맥을 못 춘다. 그렇다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이나 인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vs 코리아 프리미엄’에서 “재벌의 압도적인 우위는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다”고 주장한다. ‘샐러리맨의 신화’ 팬택 박병엽의 몰락이 하나의 사례다. 휴대폰 업체 경쟁력이 기술력이나 품질보다 브랜드파워와 대기업의 보조금 위력에 좌우됐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재벌의 후예들은 모험정신은커녕 사고만 치고 다니고, 선대가 쌓아놓은 명성에 먹칠이나 하고 있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 벤처기업 생태계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물론 모험이 없으면 대박도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 경험의 축적을 통해 가능했다.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레인메이커가 등장할 수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www.hankookilbo.com/v/39508521dde84cdab116b2652e4111d7



Posted by 겟업
2015. 3. 7. 22:58

대한민국에서 식중독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싶다는 그를 알게 된 것은 지난달 말 한 빅데이터 관련 콘퍼런스에서였다. 재작년 말 부산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식중독 업무를 새로 맡게 된 6급 주무관 조지훈(36)씨는 상사로부터 "부산 지역 학교에서 식중독이 발생하면 다 네 책임"이라는 격려성 '엄포'를 받았다. 일상적인 점검 외에 뭔가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인터넷에서 찾은 두 장의 지도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경찰이 8년간 발생했던 200여 종(種)의 범죄 발생 자료를 기초로 해 만든 '범죄 지도(crime map)'와 구글의 '독감 트렌드(Flu Trends)'였다. 범죄 유형과 발생 지역을 세밀히 따져 보니 한 도시 안에서도 유형별로 발생 구역이 확연히 달랐고 예측 정확도는 70%가 넘었다. 이를 토대로 제한된 경찰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구글도 전 세계 이용자의 독감 관련 검색 실태를 분석해 보니 해당 국가·지역의 실제 독감 창궐 시기와 일치했다고 소개했다.

조씨에겐 12년간 부산·울산·경남에서 발생한 식중독의 발생 이력·원인균(菌)·지역·발생 음식·날씨 등의 온갖 자료가 있었다. 이걸 잘 활용하면 더 과학적으로 식중독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교육부로부터 식중독 발생 학교 위치, 영양사·조리사의 경력과 정규직 여부, 지하수 사용 등의 자료도 받았다. 방대한 자료를 손에 쥐었지만 어떻게 분석해 시각화할지 막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 본 적 있어?" "좋은 얘기이긴 한데…." 미심쩍어하는 상사들을 설득했고 정부 산하 IT 관련 연구원의 소개로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을 만나 석 달간 함께 작업했다.

작년 봄에 1차 결과물이 나왔다. 예를 들어 '지하수를 쓰는 기숙사가 있는 부산 지역 고교에선 금요일에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 발생 위험이 가장 크다'는 식이었다. 또 부산에선 7·8월 한여름보다 9월에 주로 병원성(性) 대장균에 의한 식중독이 많았고, 요일 중에선 월·수·금에 많이 발생했다. 부산식약청은 올해부터는 기숙사 유무(有無), 지하수 사용 여부, 쓰레기 소각장과 식당 간 거리까지 따져서 미리 학교들을 선정하고 예방 컨설팅에 나섰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의 식중독 환자 수는 올해 상반기에 작년 대비 69.2%가 줄었다고 한다.

본부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월 조씨의 식중독 예측 지도 발표에 주목했고, 전국 차원에서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는 중앙무대인 본부로 영전(榮轉)하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국내 포털의 검색어 통계까지 활용할 수 있다면 뭔가 확실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며칠 전 식약처가 있는 충북 오송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는 수입식품정책과에서 수입업체들의 통관 여부 질의와 정식으로 수입 허가를 받은 품목인지를 묻는 소비자들의 민원 처리를 맡고 있었다. "아니, 식중독을 확 줄이겠다는 것이 꿈 아니었어요?" "에이, 제 뜻대로만 됩니까? 본부에서 일할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죠. 지금 하는 일도 국민 건강에 엄청 중요한 것이고요." 말을 아끼는 그의 답변엔 어색함이 묻어났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9/2014101902729.html


Posted by 겟업
2015. 3. 7. 22:39

요즘 유난히 사형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구미 택시기사 살해범, 서울시 의원, 윤일병 사건 가해 병사, 세월호 선장에게 이미 사형이 구형된 바 있었고, 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병사에게도 사형이 구형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사형이 국가의 책무인 것처럼 말한다. 중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고 사회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형의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것을 찾기 어렵다. 기존의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사형의 범죄억제력이 입증된 바 없다고 입을 모아왔다. 예비범죄자들에게 ‘범죄자는 반드시 검거되고 처벌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형과 같은 극형을 도입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집행이 피해자 가족들의 사회복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의심되는 사형제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다. 만약 당장 다음 주에 사형이 집행된다고 가정해보자. 매스컴에서는 연일 톱뉴스로 다룰 것이다. 사형당하는 사람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행각들이 자세히 묘사될 것이다. 가해자의 친지ㆍ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따고, 경황이 없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댈 것이다. 사형집행 전 날에는 사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3D 그래픽 화면과 인포그래픽스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일 날에는 집행현장에 장사진을 친 중계차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국가는 ‘이제 할 만큼 했다’며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고, 시민들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형이 집행돼도 흉악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사형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뿐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형제야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들이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범죄대책이나 피해자보호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무능하고 정당성 없는 국가에게 사형은 참으로 편리한 통치수단이 아닐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사형제 존치국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한 얘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형폐지론자들이나 사형폐지국들은 범죄와 범죄피해자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책임을 지려고 한다. 사형을 통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단순하고 효과 없는 방법에 반대할 뿐이지,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책이나 시민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사회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선도적인 사형폐지국들에는 대개 범죄피해자 가족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물질적ㆍ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이 범죄피해자 문제에도 동시에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형폐지론은 단순히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소극적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를 막지 못하고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은 현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사형의 사이비효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국가에 맞서, 복수와 응징의 악순환을 끊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며,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형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논의돼야 한다. 얼마 전 민청학련 사건의 사형수였던 유인태 의원이 사형폐지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달 17일에는 인권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국회에 모여 사형폐지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한 번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http://www.hankookilbo.com/v/3f2f9592a26849cba6649f6b737da5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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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18

한국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연구를 위한 재원과 관심이 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해외의 연구 현황은 어떤가. 두 가지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측면은 북미와 유럽 같은 지역에서 교육, 장학사업,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의 발전과 관련됐다. 두 번째는 선진국의 여론주도층, 매체, 정책결정자 사이에 한국에 대한 수준 높은 공공정책 대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을 보면 한국학 연구의 위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재단은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미국의 주요 대학에 한국학 석좌교수직을 설치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종신재직권(tenure)을 지닌 교수직을 설치하기 위한 기금이 모금됐다. 역사학·인류학·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한국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또 한국에 대해 반드시 긍정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공개 경쟁 채용을 통해 최고의 교수들이 임용됐는데, 그들의 관점이나 연구 방향의 독립성이 보장된 것이다. 또 한국에 대한 ‘실질적인(substantive)’ 관심만 있으면 교수로 채용되는 데 유리했다.

 최고의 한국학 교수진이 확보되자 미국 대학에서 한국 관련 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한국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프로그램도 늘어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서울의 어떤 당국자가 뭔가 명령하는 일도 없었다. 구상은 이랬다.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학자들이 채용되면, 한국 관련 활동 전반이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의 관심에 자연스럽게 부응하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번째 측면을 살펴보자.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결과로 매체·비즈니스·정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중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지난 20년간 발전한 학술적 전문성 사이에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다. 한국학 교수들은 대부분 정치학자·국제정치학자·경제학자가 아니다. 이들 학문분야는 특정국가보다는 이론적인 분석이나 계량적인 방법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치학과·경제학과에서 선호하는 교수는 ‘한국 전문가’하고는 거리가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한국학 전문가로 성장한 교수들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다.

 공공정책 차원에서 보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 대한 전문성은 한국의 민주화·핵확산·경제성장·외교정책 등의 이슈에서 필요한데, 미국 대학의 한국학은 이들 이슈와 거리가 있다. 한국 관련 문제가 터지면, 언론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는 인근 대학의 교수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다. “평소 신문을 읽고 한국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정책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공정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시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내정치, 권력구도, 역사, 심리학, 국제기구 등에 대한 정책 분석이 필요하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책결정 실무 경험도 필요하다. 

 한국과 관련된 정책 전문가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한국학 교수 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한국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응답 내용이 예전과 비슷하다. 즉 한국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한국에 대한 지식 수준은 아주 낮다. 한국에 대한 호의적이지만 표피적인 이해는 정책결정자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다. 광우병 시위처럼 한·미 관계에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면 미국의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공공정책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다음 세대 한국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나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데이비드 강,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와 고든 플레이크,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더불어 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는 미국 내 최고의 중진 학자 12명을 워싱턴 DC로 초청해 정책결정자, 언론인,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을 만나게 했다. 각 대학으로 돌아가 정책 문제에 대해 보다 잘 답변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였다.

 세계가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지 K팝이나 한국 TV 드라마의 성공에 안주해 세계가 한국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하면 안 된다. 또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제 공공외교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하면 안 된다.

 세계가 한국에 대해 보다 균형 있고 세련된 이해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오래전에 그럴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덜한 것일까. 아니다. 한국은 패권국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더욱더 열심히 알려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348728&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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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00:57

2007년 한국에 발을 디뎠을 때 지방정부의 제도개혁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충남 도지사 보좌관으로 일하는 동안 도청 소재지를 대전에서 홍성으로 이전하는 데 따른 갖가지 준비사항들에 참여하게 됐다. 한국에선 도시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면 시가 광역시로 바뀌기 때문에 도청 소재지를 홍성으로 옮기면서다.

이런 정책은 매우 과학적이고 실용적이지만 이 같은 혁신은 미국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의 인구는 다른 주들보다 훨씬 더 많지만 주정부에 걸맞은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새로운 주를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푸에르토리코 같은 자치령을 주로 승격시키는 문제도 워낙 오래 끌어 이젠 아예 독립시키자는 논의가 대두될 정도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도청 소재지 이전에서 보인 놀랍고 신속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행태에서 드러나는 약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도시 설계 시 나타나는 근시안적 태도와 확고한 제도적 틀의 결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 관리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과거 훌륭한 운영 선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제아무리 혁신적인 정책도 사전에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듯하다. 그저 온갖 양식의 서류를 채우기에 급급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충남도청, 대전, 서울에서 함께 일한 공무원들은 교육 수준도 높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1년만 지나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는 순환근무제의 틀에 갇혀 있다. 이들이 지적 능력과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구축하기 힘든 이유다. 이들에게 시간을 내 자신의 일과 관련된 서적을 읽어보라고 하면 아마 사치스러운 주문일지 모르겠다.

게다가 각 정부 단위의 평가에 이용되는 기준도 장기적이고 체계적이기보다는 단기적으로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정부의 업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며 여기에는 역사적 안목을 갖고 있는 전문가와 시민들의 반응도 요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서울시는 시정에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위키 서울’ 등 다양한 혁신 방법을 시도하며 도시의 녹색공간을 늘리기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시간과 동기부여가 없다면 이 또한 공염불이 될지 모른다.

한국의 지방정부는 단기적 시각에서 장기적 관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정책 아이디어가 제아무리 신선하고 좋아도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면 유명무실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

그러나 장기 계획이 수립된다면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들을 미리 기를 수 있다. 아무리 후한 급여를 주더라도 하루아침에 전문가를 구할 수는 없지만 사전에 계획만 세운다면 충분히 완벽한 팀을 만들 수 있다.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행정적 지혜는 조선왕조의 통치 방식에서 찾으면 어떨까 싶다. 정도전이 경국대전에서 구축한 조선의 통치이념은 그 후 500년을 지탱하지 않았나. 서울시도 개발과 유지, 관리에 최소 100년을 내다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 도시계획안에 40년 후에 대해 세세한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한다면 서울의 인프라시설 상태와 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 사실 혁신은 한 발짝 물러서 장기적 시각에서 도시 공간의 개발을 바라볼 때만 가시화된다.

100년을 내다보고 도시계획을 수립한다면 잘못 지은 건물과 도로에 수반되는 숨은 비용도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그게 바로 100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양질의 자재를 쓰고, 시공을 해야 하는 이유다. 당장은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지은 하수도 시설과 보도가 결과적으로 더 싸게 먹힌다. 그렇게 되면 최소 20년간은 거뜬한 가로등과 100년간은 거뜬한 주택을 짓게 되리라.

장기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된다면 단기적 이득을 노린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행태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런 정책이 미래에 가져올 해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 계획이 장기적 재정정책의 뒷받침을 받아야 할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만일 20, 30년간 지속될 프로젝트를 위한 장기적 금융조달 방식을 개발한다면, 주택의 단열처리와 태양전지판 이용도 더 싼 값에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이 같은 재정조달 계획은 경제에 지속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뿐더러 단기 이익을 노린 투기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통치 시스템은 장기적 계획에 확고히 바탕을 뒀다. 그 지혜를 오늘날의 서울과 지방정부에 끌어온다면 분명 한국이 전 세계에서 행정의 선두주자로 우뚝 설 것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862023&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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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4. 00:58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강원도 평창이 2011년 확정되었을 때, 경쟁 지역이자 탈락 지역이었던 독일 뮌헨의 주민들은 축배를 들었다.


2년 뒤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 유치신청 과정에선 독일 뮌헨 등 해당 지역은 주민투표를 실시해 아예 유치신청 자체를 거부했다. 지역 주민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조건과 땅값 인상, 경기장 건설로 건설기업, 은행이 챙겨가는 이익이 자명한 만큼이나, 지역공동체에 돌아오는 것은 적자와 부채로 인한 세금 증가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17일간 진행되는 행사를 위해 알프스의 오래된 자연, 경관, 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올림픽 유치 반대는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고,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지역과 주민이 입을 경제적 손실을 방지하는 일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일이고, 공적 예산을 공공 분야에 투여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라 본다. 이 때문에 이 활동이 지역발전을 저해한다고 지탄받거나,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받는 일도 없다.


독일만이 아니다. 스위스의 장크트모리츠-다보스,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도 주민투표로 2022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부결했다. 스웨덴 스톡홀름도 의회의 반대로 신청이 불가능해졌다. 오스트리아 빈의 2028년 겨울올림픽 개최 추진 역시 주민투표 결과 무산됐다.


독일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소치야말로 최악의 환경파괴가 이뤄진 올림픽 개최라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소치 국립공원 안에서 오래된 수령의 주목과 회양목들이 대거 벌목됐고, 자연보호구역 내 광범위한 채굴이 행해졌다. 또한 종합경기장과 스키 활강장 40㎞를 연결하기 위한 도로와 철도가 천혜의 므짐타강을 제멋대로 지나며 소치 주민 식수원의 수질을 악화시켰다. 강 주변을 감싸고 있던 원시림도 훼손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은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와의 인터뷰에서 “벌목된 나무 한 그루당 세 그루 이상 식재로 만회하겠다”고 했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원시림을 베고 생태적 특성과 무관한 야자수나 덤불을 이식하고 생색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다섯 동그라미의 깃발에 환경보호를 새겨 넣은 지는 오래됐다. 2006년부터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지역에서 자연·환경 훼손 고려는 의무사항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개최 준비가 환경 규준에 따라 이행되는지 여부를 감시할 의무도 갖고 있다.


독일 언론은 수만명의 선수, 코치, 관계자, 관객, 언론인을 동원하는 대규모 행사가 환경훼손 없이 가능할 것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2018년 평창 역시 자연보호구역 가리왕산에 세워지는 스키 활강 구간에 대한 반대와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와 지역발전을 등식화하고 있다. 500년 이상 보존해온 산을 파헤치고, 공사비와 복원비용 2천억원 낭비를 감내하면서 가리왕산에서의 활강 경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대회 전 경기를 정선에서 개최하고 활강 경기를 용평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조정하면, 500년 숲의 가리왕산도 보전하고, 절약된 예산으로 주민들을 위한 공공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제안은 최문순 강원도지사에 의해 거부되고 있다.


소치올림픽은 “푸틴을 위한 잔치”, “푸틴의 발밑에 놓인 자연생태계”란 말을 낳았다. 가리왕산 벌목이 임박해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에 어떤 수식어가 붙을지, 최문순 도지사의 숙고와 결단이 필요하다.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40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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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4. 00:53

9ㆍ11 진상 규명 과정에서 유가족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 대표격으로 9ㆍ11 진상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유족 대표로 증언한 크리스틴 브릿와이저를 꼽는다.

브릿와이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압박해 진상조사위를 출범시키고 결국 부시까지 청문회에 세운 주역이다. 하지만 그는 공화당이라면 사사건건 반대하는 골수 민주당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얼마 뒤 만난 남편을 따라 공화당원이 됐고, 그 남편이 ‘걸레’라고 비난했던 뉴욕타임스의 구독도 끊었다. 2000년 대선 때는 부시에 한 표를 행사했다. 공화당을 지지하게는 됐지만 그렇다고 정치에 유별나게 관심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안 일 챙기고 아이 키우는데 열심인 가정주부였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진상 조사의 필요성을 9ㆍ11 당시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동화를 읽어 주던 부시가 사건 보고를 받고도 25분간 그 동화를 마저 읽었다는데 충격받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국가 재난에 대한 지도자의 무감각에 놀란 것이다.

테러 이전에 무수한 경고들이 있었음에도 왜 막지 못했는지, 그때 지도자는 무엇을 했는지 등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브릿와이저의 노력에 대해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당시 갖은 비난을 퍼부었다. ‘불평꾼’이라거나 ‘히스테릭’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보수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칼럼으로 ‘9ㆍ11 미망인들에게 미국인들은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며 그들을 말썽꾼 취급했다. 한 보수 평론가는 그들을 유명인 된 것을 즐기는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들로 비난했다. 남편의 죽음을 즐기는 마녀이고 괴물이라거나, 부시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저주하는 ‘극좌 창녀’라는 망언까지 등장했다.


9ㆍ11 진상조사 과정에서 이 같은 역할과 대중적인 인지도 때문에 매년 사건 발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브릿와이저는 주목받았다. 특히 10주년을 맞은 2011년에는 여러 외신들이 인터뷰를 했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두 차례 공직에 나서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선거에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받으면 빚을 지는 셈이라는 이유에서다.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또 다른 테러를 막는데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그는 미국의 정치가 심지어 시민의 안전까지 담보로 해서 이익을 챙기는 체제라는 점을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그런 체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대신 그는 허핑턴포스트에 관심 분야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그가 올린 글들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중동, 아프리카 등 이슬람국가에 대한 글이 많다. 글 제목을 읽어가다 2011년 5월 2일에 눈이 멎었다. 9ㆍ11 테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소식이 전해진 날이다. 브릿와이저는 이날 ‘내 남편을 위한 정의’라는 글에서 9ㆍ11 이후 10년 가까이 끌어온 테러와의 전쟁이 마침표를 찍었다며 안도를 표시했다.


그런데 약 네 시간 뒤 이보다 좀더 긴 ‘내게 오늘은 축복할 날이 아니다’라는 글이 올라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남편이 죽던 날 TV 화면에서 불타는 무역센터 빌딩과 거리에서 환호하는 아랍 청년들을 교차해 보여 주는 것을 보며 믿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빈 라덴의 죽음으로 우리가 승리했다고 할 때 그 과정에서 수반된 여러 피해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을 이었다. 미국인, 이라크인 등 목숨을 잃은 수천명과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과 지금도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많은 젊은 미국 청년들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보다 현기증을 느꼈던 건 그날 아침 거리에서 환호하는 미국 군중들의 모습이었다. 자신은 수천명의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전쟁도, 정의를 증명하기 위해 피를 묻히는 일도, 총알자국 투성이의 시신을 바다로 내던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악인이더라도 한 사람의 죽음을 젊은 사람들이 환영해 마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교훈을 얻지 않았나’고 물었다.


브릿와이저의 행동과 성찰을 되짚으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김범수 국제부장


http://www.hankookilbo.com/v/d5443d6fb4c648e68842a4acd229915e

Posted by 겟업
2014. 10. 10. 15:30

지난달 말부터 서울 도심 곳곳의 교통을 막고 진행한 영화 '어벤져스 2'의 한국 촬영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이 영화의 한국 홍보 효과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우리는 외국인이 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할지 여부와 그 속에 담을 내용을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 '어벤져스 2'만 해도 수십 분 분량을 찍었다는데, 실제 영화에서 무슨 장면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지는 '그들 마음'이다. 우리는 그저 영화 제작을 지원하면서 '한국 알리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희망과 달리 이 영화가 작년 여름 국내 개봉한 '월드워 Z'처럼 한국을 그리면 어쩌나 싶다. '월드워 Z'는 한국을 좀비(zombie) 바이러스의 최초 유포지로 설정하고, 암흑 속 평택 미군 기지에서 죽은 괴물들이 날뛰는 장면만 몇 분 보여줬다. 한국이 나와서 반갑기는커녕 황당하고 불쾌했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진행자로 유명한 타이라 뱅크스는 이달 초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빛둥둥섬 등을 배경으로 프로를 촬영하며 세계 180여 나라, 400만 시청자에게 "서울은 패션 도시"라고 선전해줬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문화의 힘이 탄탄해진 데 따른 효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멋진 이벤트 역시 우리가 기획했다기보다 "서울이 궁금하다"며 제 발로 찾아와 준 뱅크스가 선사한 행운이다.

한국 홍보를 이런 우연에 기대지 말고 문단(文壇)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떨까 싶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중국의 모옌과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는 각종 작품과 기고를 통해 한국을 홍보해 왔다. 모옌은 장편 '개구리'에서 "아기 용품도 모두 준비했습니다. 하나같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한국산 아기 침대, 프랑스산 우유병…"이라고 썼다. 파무크는 터키 유력 신문 사바흐에 "나는 서울에서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휘황찬란한 건물들, 호텔 로비들과 서점을 보았다"고 격찬했다.

이런 결실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다. 파무크의 소설을 번역·소개해 온 터키 문학 전공자 이난아 박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책에서 파무크를 서울에서 열린 문학 행사에 초청했고, 귀국하는 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글을 터키 신문에 기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개구리'가 한국 제품을 광고한 배경에도 대산문화재단·파라다이스문화재단 등이 한·중 작가 교류 행사를 열어 모옌을 여러 번 초청한 노력이 깔려 있다.

지난해 베네치아 광장과 트레비 분수, 리골레토와 토스카를 화면 가득 펼쳐놓는 영화 '로마 위드 러브'를 보며 세계인에게 '서울 위드 러브' '광주 위드 러브'를 보게 할 수 없나 생각했다. 그 영화를 만든 우디 앨런 같은 명감독을 초청해 한국의 매력을 설명하는 전략적 접근은 왜 하지 않는가. 외국인의 우연한 선택에 국가 이미지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어벤져스 2' 서울 촬영을 이 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태훈 문화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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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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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한드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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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4. 10:16

포로된 아들 석방 위해 5년 헌신
탈레반 마음 얻으려 외모도 바꿔
풀려난 아들 구금 탓 모국어 잊어

2009년 6월 30일 오후 7시. 로버트 버그달과 부인 자니 앞에 정복을 입은 군인 두 명과 군목이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군인 가족에겐 이는 단 한 가지 사실을 뜻한다. 부부는 두 달 전 입대한 아들 보의 죽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군인들은 이들 앞에 ‘DUSTWUN(Duty Status Whereabouts Unknown· 위치 불명의 임무 상태)’라는 일곱 글자를 내려놓았다.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버그달의 5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 전쟁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끝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에 포로로 잡혀 있던 보 버그달(28·사진) 병장의 무사 귀환을 알렸다. 오바마는 이날 백악관에서 “전장에 어떤 병사도 남겨두고 나오지 않겠다는 미국의 변치 않는 의무를 재확인한 것”이라 고 말했다. 보는 탈레반에 붙잡힌 유일한 미군 포로다.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 중이던 탈레반 지도자 5명과의 교환 조건으로 구해낸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민과 미군을 적극적으로 납치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논란을 무릅쓰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지난달 3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 참석한 로버트 버그달(왼쪽)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 버그달은 아들 보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오바마 대통령과 협상을 중재한 카타르 정부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워싱턴 AP=뉴시스]
 오바마 옆엔 버그달 부부가 나란히 서있었다. 버그달은 감격에 겨워 아랍어를 섞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보의 석방 뒤에는 아버지의 숨은 헌신이 있었다. 그의 대응은 초기부터 남달랐다. 군 수색작전이나 협상이 틀어질 것을 우려해 소수의 가족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2009년 7월 탈레반이 버그달 병장의 첫 생존 동영상을 공개하자 아버지는 아프간어인 파슈툰어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각종 군사 게시판과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의 역사와 문화, 아들의 석방에 변수가 될 만한 국제 정세를 파고들었다.

 감정적 대응은 자제했다. 미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동시에 탈레반에겐 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버그달은 유튜브에 전쟁 중 사망한 탈레반에 대한 위로의 말을 올리기도 했다. 파슈툰어를 섞어 말하며 이슬람 문화에 대한 존중감을 표했다. “아이다호와 아프가니스탄은 공통점이 많다”고도 했다. 수염을 길러 연대감을 보여줬다. 그는 탈레반과 직접 접촉하기도 했다. 아이다호의 산골, 인구 6000여 명의 소도시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버그달은 2012년 5월 보의 26번째 생일을 앞두고 인터뷰를 자청했다. “미국 정부는 아들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을 하루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탈레반 내부에서 보와 탈레반 죄수 맞교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 것을 알게 돼 조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정치적 압력에 따라 맞교환이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인터뷰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보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다.

 31일 아들이 석방돼 특수부대가 보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버그달은 비로소 마음껏 감정을 드러냈다. “ 우리의 외아들과 포옹할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다.” 독일로 이동해 치료 받는 보의 건강 상태는 양호하지만 오랜 구금으로 영어를 거의 잊었다. 그는 미군이 아프간 국경지대에서 헬기에 태우자 종이에 ‘SF(Special Force·특수부대)?’라는 글자를 썼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울음을 터뜨렸다고 군관계자는 전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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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8. 18. 03:07

2012년 미국의 실력파 싱어 송 라이터 벡(Beck)은 앨범 ‘송 리더(Song Reader)’를 발표했다. 본인은 앨범이라고 했지만 실제 음반은 나오지 않았다. 오직 악보로만 출판됐고 이후 공연에서 음악으로 들려줬을 뿐이다. 평소 잊고 있던 ‘악보’의 가치를 일깨운 작업이다.

 어제 새 앨범 ‘8’을 선보인 가수 이소라도 앨범 발매 전 악보를 공개했다. 자신의 SNS에 타이틀 곡 ‘난 별’ 등 2곡의 자필 악보와 가사를 올린 것이다. 악보 공개의 파장은 의외로 컸다. 팬들은 악보를 퍼 날랐고 커버 열풍이 이어졌다. 팬들, 실용음악 전공 학생들, 연주자들이 자신만의 ‘난 별’을 부르거나 연주했다. 나중에는 가수 박효신·손승연, 기타리스트 박주원 등 프로들까지 가세했다. 이소라의 ‘난 별’이 세상에 나오기 전, 다양한 버전의 ‘난 별’이 이미 등장한 것이다.

 이는 원곡에 대한 궁금증도 증폭시켰다. 이소라의 목소리로, 원래의 편곡으로 듣는 ‘난 별’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감이 커졌다.

 이소라는 앨범 발매와 함께 ‘난 별’ 가사를 손글씨로 쓴 뮤직비디오도 선보였다. 팬들에게도 ‘난 별’ 가사를 손으로 써 올리면 그것으로 개인 버전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줘 공유하게 했다. 고객참여형·맞춤형·쌍방향 소통형 마케팅이다. 디지털 시대, 악보와 손글씨라는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린 마케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악보의 존재와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 것이 흥미롭다.

 이소라는 새 앨범에서 거리낌 없는 록을 선보여 평단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난 별’은 비교적 과거 음악의 연장선에 있다. “우주의 한 부분으로 살며/ 믿는 대로 생긴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을 때 오는/ 빛나는 결과들에 감사하며/ 별처럼 저 별처럼/ 난 별 빛나는 별” 그녀가 쓴 노래 가사다. 무심히 관조하듯 읊조리며 “난 별 넌 별 빛나는 별”이라 노래한다.

 문득 “수많은 별들은 순한 양떼처럼 소리 없이 운행을 계속하고, 그 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다”라는 알퐁스 도데의 그 유명한 『별』이 떠오르기도 한다. 주인집 아가씨를 짝사랑하는 양치기 소년이 자기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아가씨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작곡가 정지찬은 파리 여행 중 몽마르트르 언덕 성당 문밖에서 기도하는 남자를 보고 이 곡을 썼다고 했다. 별을 보지 않고 산 지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겠다. 오늘 밤은 꼭 별을 봐야겠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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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7

마이크로네이션(Micronation)이란 게 있다. 관광학에서 ‘초소형 국가체’라 번역한다. 국가가 아니고 국가체인 건, 국가가 아닌 것이 국가 노릇을 하고 있어서다. 국가를 흉내 낸 공동체, 즉 국가체제를 빌린 테마파크가 마이크로네이션이다. 애들 장난 같지만 전 세계에는 현재 120개가 넘는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마이크로네이션이 있다. 남이섬이다. 남이섬은 2006년 3월 1일 나미나라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 나미나라공화국은 헌법·애국가·화폐·여권·문자는 물론이고 군대도 갖췄다(남이섬 여객선 직원이 ‘해군’이다).

 남이섬의 국가 흉내는 마케팅 전략에서 출발했다. 2004년 이후 일본인 입장객이 부쩍 늘었지만 남이섬은 ‘겨울연가’ 바람이 3년이면 잦아들 것으로 내다봤다. 궁리 끝에 찾아낸 활로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상상 나라’였다. 독립은 불가피했다. 

 하나 속사정은 복잡하다. 남이섬 국립호텔 ‘정관루’에 단서가 있다. 객실 44개가 전부인 호텔 정문에 별 6개가 그려져 있다. 6성호텔의 상징인 듯싶지만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호텔등급을 무궁화로 표시한다. 그러니까 정관루의 별은 장식인 셈이다. 강우현 대표의 설명이다.

 “호텔등급을 신청했더니 공무원들이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계속 시간을 끄는 거야. 2년을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어 별을 붙여버렸어. 우리는 6성급 서비스를 하고 손님은 6성급에 묵고. 진짜 등급? 여관이지.”

 지난주 청와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대통령의 “죄악” 발언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저희도 정말 미치겠습니다” 발언을 모두 끌어낸 문제가 학교보건법에 막힌 관광호텔 설립 건이었다. 초등학교에서 170m 떨어진 장소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다 1년째 애를 먹었다는 호텔업자의 사연에는 분명 딱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규제만 탓하기도 그렇다. 학부모에게 호텔은 아직도 유해시설이어서다. 요즘엔 특급호텔도 밸런타인데이에 커플 패키지상품을 판다. 처음에는 부부 패키지였는데 언제부턴가 커플로 바뀌었다. 국내 호텔이 문화공간 대우를 못 받는 데는 호텔 잘못도 있다.

 남이섬에는 대만 국기가 펄럭인다. 중국하고만 국교를 맺은 한국의 공공기관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한국 땅에 휘날리는 제 국기 아래에서 대만인은 감격한다. 누가 대만 국기에 딴죽을 걸면 강우현 대표는 “여기는 한국이 아닙니다”라며 너스레를 떤다. 지난해 남이섬에는 대만인 10만 명이 입장했다.

 별 6개짜리 여관 정관루는 객실마다 다르게 생겼다. 예술가들이 각자 색깔을 입혀 방을 꾸민 결과다. 남이섬의 독립선언은, 규제에 맞서는 남이섬만의 대처방식이다. 규제만 규제하면 정말 대박이 날까. 지금의 관광 타령에서 문화가 안 보여 하는 소리다. 


손민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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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8. 00:58

몇 년전 복지 사각지대의 결식아동 지원 사업 방식을 놓고 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식권 형태의 바우처를 줘 식당에서 밥을 먹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 도시락 배달 등을 통해 급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우처 방식에서 나타난 부작용 때문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바우처를 현금화해 PC방으로 달려갔고, 심지어 일부 부모는 술값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바우처는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수 있었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정크푸드로 몰려 성장기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우처를 줘도 여전히 굶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도시락 급식은 아동의 집에 찾아가 직접 전달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전용(轉用)을 막을 수 있었다.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도시락 제작ㆍ배달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배달 과정에서의 변질 우려 등 위생문제, 메뉴에 대한 아동들의 선택권이 없는 점 등 단점도 있었다.

편의성과 효과 등에서 두 방식의 장단점은 명확했지만 분명한 점은 바우처라는 물질적 지원만으로 아동의 끼니 해결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결식아동 지원 사업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이야기다. "복지 사각지대의 아이들이 굶는 이유는 집에 돈과 쌀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부모가 맞벌이거나 조손 가정이어서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을 챙겨준다는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밥만 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시락 배달의 또다른 장점은 대면접촉으로 인한 관계 형성이다. 배달원들은 가정 방문을 통해 아이들의 어려움이 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먹지 않은 도시락이 쌓이는 것은 결식 아동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였고, 아동의 위기 상황에 대응이 가능해졌다.

이런 효과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배달은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선 적잖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돼 번거로운 일이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나눠주는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는 바우처 방식이 훨씬 편한 선택이다.

때문에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사회적 기업의 복지 사업 참여다. 장애인, 실직자, 경력단절 여성 등 취약계층을 고용해 친환경 식재료로 도시락을 만들고, 노인들이 배달하도록 하면 적잖은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의 자원봉사 인력을 배달원으로 활용하면 아동들에 대한 상담도 할 수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우리 복지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질해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맞는 말이지만 금전적 지원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고민을 들어줄 이웃,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돈 못지 않게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결식 아동들처럼 바우처보다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필요하진 않았을까.

우리 복지 시스템은 비효율투성이다.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로 여전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22.1%)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복지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물론 그들의 업무가 복지 대상자들을 발굴하는 대신 소득과 재산을 조회해 수급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데 몰려 있는 게 문제다)에 시달리는 게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다.

늘어나는 복지 예산과 목숨 바쳐 일하는 공무원. 그런데도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취약계층의 극단적인 선택이 끊이지 않는다면 비정상도 이만저만 비정상이 아니다.

한계에 부딪혔다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국가 관료시스템이 복지를 틀어쥐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하게 민간 부문이 복지서비스 영역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물질적 지원 외에 이웃과 소통하는 사회적 관계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단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게 아니라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7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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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7. 11:04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필리핀의 피해 지역은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마저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피해 주민들이 갈증을 참지 못해 오염된 물이라도 마시게 된다면 전염병은 더욱 창궐할 수 있다.

지난달 말 환경산업기술원은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市)를 방문해 빗물을 활용해 깨끗한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을 수 있는 설비를 제공했다. 민다나오섬은 필리핀에서 가장 빈곤한 20개 주(州) 중 14개 주가 위치한 대표적 빈민 지역이다. 우리가 방문한 다바오시 역시 식수가 부족하고 오염이 심각했다. 특히 수도요금이 t(톤)당 약 3200원대로 가난한 주민에게는 금값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이에 빈민 지역 주변의 아나윔 초등학교에 우리 기술원이 연구개발한 '저(低)전력 소규모 정수 처리 패키지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제공했다. 다바오 지역은 다행히 강우량이 풍부해 빗물을 활용한 환경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통해 비싼 수도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800여 지역민에게 매일 생활용수 10t, 식수 2t씩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개발도상국의 생존과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현지 정치, 문화, 환경을 고려해 개발하는 기술을 '적정환경기술(Appropriate Environmental Technology)'이라고 한다. 필리핀처럼 갑자기 태풍 피해를 본 나라는 적정환경기술이 더욱 절실하다.

'소외된 90%(other 90%)'라는 말이 있다. 전 세계에서 환경기술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적정환경기술이 이들 90%를 위해 쓰이기를 기대한다. 해외 원조를 받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제는 환경기술을 개도국에 전파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90년대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환경기술 연구개발과 성과 확산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환경산업기술원의 설립 취지 중 하나도 한국의 환경기술을 통해 개도국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새 정부 국정 과제인 '과학기술의 국제화'의 일환으로 개도국에 한국의 환경기술을 보급하는 시범 사업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9개국에 적정환경기술을 보급할 계획이다.

한류는 대중문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 분야에서도 신(新)한류 붐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윤승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0/20131220037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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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0. 01:24

최근 영국 BBC방송에 흥미로운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제목은 '독일 사람 되어보기(Make me a German)'.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경제 담당 기자 저스틴 롤러트(Rowlatt)가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독일의 중부 도시 뉘른베르크로 이사해 독일 중산층처럼 살아보는 내용이다.

롤러트 기자는 문구류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임시로 취직했다. 독일인 평균 기상 시각인 오전 6시 23분에 일어나고, 주말엔 가족과 함께 축구장에 갔다. 작가 겸 PD였던 아내는 전업주부가 돼 하루 4시간씩 집안일을 했다.

롤러트가 근무한 공장의 노동자들은 평균 오전 7시 49분 출근부에 도장을 찍었다. 영국보다 일하는 시간이 적었지만, 월급은 더 많이 받았다. 그들은 근무시간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다. 사장은 "독일은 연필 같은 단순 제조업에서도 세계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롤러트의 아내는 거의 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생활하는 독일 주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예전 같았으면 영국 시청자들은 재미없기로 세계 1등인 독일인들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는지 속으로 비웃으며 이 프로그램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획 의도는 달랐다. 독일의 성공 비결을 독일인의 삶 속에서 직접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롤러트 가족은 "영국도 성공하기 위해선 직장에서 휴대전화부터 꺼야 할 것 같다"며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그들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요즘 영국에선 새로운 국가 모델을 연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우리는 좀 더 독일답게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앙숙인 독일을 벤치마킹하자는 이야기가 영국 총리 입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있었다. 올여름 프랑스 장관들은 2주일씩 휴가를 갔다. 우리가 볼 때는 여전히 긴 기간이지만, 보통 한 달 가까이 바캉스를 즐기던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짧았다. 휴가에서 돌아온 장관들은 곧바로 '2025년의 프랑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장관들은 휴가 중에도 이 세미나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바캉스에 목숨 거는 프랑스인에게 비록 장관이라 하더라도 휴가지에서 서류를 뒤적여야 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세미나 내용이 장밋빛 일색이라는 비판이 있긴 했지만, 프랑스 정부로서는 10년 이후 장기 플랜을 논의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처럼 경제 위기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가 나오면서 유럽 국가들은 '위기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부양 같은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위기의 승자(勝者)'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고민 중이다. 영국은 국민의료보험(NHS), 프랑스는 연금 같은 사회 근간을 이루는 핵심 정책에 칼을 대고 있다.

유럽의 저력은 이처럼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에 대한 치열한 논쟁도 피하지 않는다. 명백한 오류가 아니고선,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정책을 자기 입으로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은 없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 우리 정부는 과연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동시에, 그리고 있기는 한 건지 걱정도 뒤따랐다.



이성훈 파리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25/20130825022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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