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35

美 차기 대통령과 中 시진핑, 본격 패권 경쟁 초석 놓을 것
'美 밀어내기'와 '中 묶어두기'… 동아시아서 치열한 싸움 예상
역사 얽힌 영토 분쟁도 연결돼… 한국, 수평적 네트워크 지향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과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2010년대 중반을 장식할 세계사의 새 라이벌이 결정될 것이다. 세계 1위 미국과 2위 중국의 격차가 점차 좁혀져 가는 가운데 최종 승부까지 10년 남짓 남았다는 것이 관측의 대세이다. 부상하는 중국의 오르막 그래프와 약화되는 미국의 하강 궤적이 교차하는 접점은 지금 추세라면 2020년대 중반쯤일 것이다. 구매력평가지수 기준 양국의 GDP, 그리고 동아시아에 사용되는 양국의 군사비는 2020년대 중반쯤 비슷해질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고, 중국은 여전히 9%대를 유지하고 있다. 막중한 재정 적자로 미국의 군사비는 줄어드는 반면, 중국은 매년 15%를 넘는 군사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가진 힘만큼 원하게 되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은 '핵심 이익(core interest)'을 더욱 확장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 이상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은 재활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에 핵심 이익이던 것들을 이제는 주변 이익으로 놓아버려야 하는 처지이다. 중동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역내 지정학적 변화에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새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차기 주석은 역사 속 화려한 주인공으로 기억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覇權)이 부활한다면 오바마는 그 밑거름이 된 인물로,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한다면 시진핑은 그 초석을 놓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양국 모두 국제경쟁력 저하, 국내 불안정 등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지도자가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소용돌이의 눈, 미·중 경쟁의 핵심 무대는 동아시아다. 가난해져가는 유럽, 혼란한 중동과 달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미국에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매력적인 디딤돌이다. 부시 전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 제2의 테러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었다면 오바마와 차기 대통령의 소명은 동아시아에 집중하여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고 패권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회귀(回歸) 전략'은 설사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변함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경쟁은 복합적이다. 군사 부문에서 양보란 없다. 중국은 소위 '반(反)접근·지역 거부 전략'으로 미국 밀어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거점을 연결하여 중국이라는 큰 고기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새로운 어망(漁網)을 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의 신무기 개발 소식은 속속 들어올 것이다. 여전히 군사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짠다는 소식도 계속 들릴 것이다. '미국 밀어내기'와 '중국 묶어두기' 간의 치열한 싸움이다.

경제 부문에서 미·중 간 협력은 구조적 필연이다. 미국에 중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수출시장이고, 중국에 미국은 무역 흑자 창출의 보고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시장이 평화를 온전히 보장할지는 미지수다. 환율, 지적재산권, FTA 네트워크 등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시장이 정치적 대결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중 경쟁은 동아시아 특유의 분쟁과 연결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례로 동아시아 영토 분쟁은 근대적 주권 영역 확보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상처받은 과거의 아픔을 건드리는 마음의 분쟁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민족 간 자존심 싸움에서 섬 하나에 걸린 이익은 핵심 이익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지도자는 국력에 걸맞은 지위를 요구하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 속에 더욱 공격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센카쿠 분쟁에서 보이듯이 미국의 개입도 용납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미국은 일본의 기대와는 달리 도서 분쟁을 주권 문제로 규정하고 불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새 지도자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특수성을 더욱 절감해야만 중동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한일 갈등과 같은 동맹국 간 분쟁은 미국에 특히 치명적이다.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는 군사·경제에 이은 마음의 경쟁에서 패권 발판의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불개입과 수수방관만이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인들은 일방주의(一方主義)를 행사하는 미국이나 패권적인 중국 모두를 원하지 않는다. 21세기 동아시아인들은 수평적 네트워크가 강화된 다차원적이고 민주적인 동아시아를 원한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한국이 강대국 외교를 지향하지 않는다 해서 덜 야심적인 것은 아니다. 대다수 동아시아인이 원하는 새로운 지역을 꿈꾼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중보다 더욱 야심적일 수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를 위한 전략적 외교 문화에 젖어갈 때 미·중 간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0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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