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0:25

올 상반기 스웨덴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1위 통신장비 기업이 된 중국 화웨이(華爲)의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지난해 미국 '포천'지(誌)가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1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화웨이의 주된 성공 요인은 128만㎡ 규모의 '화웨이 유니버시티'라는 사내(社內) 교육훈련센터를 운영하는 강도 높은 직원 교육과 전체 직원의 약 46%를 R&D 인력으로 두고 매년 순이익의 10%를 연구개발(R&D)비로 쓰는 '기술중심 경영'이다. 하지만 정작 런 회장이 꼽는 비결은 경쟁자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이다.

"1988년 2만위안(약 330만원)을 갖고 창업한 제가 지금도 가장 애독하는 책은 '마오쩌둥 선집(毛澤東選集)'입니다." 실제로 그는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하던 통신장비 시장을 빼앗기 위해 농촌 장악 후 도시로 공격하는 마오쩌둥 전법을 그대로 구사했다. 홍콩을 시작으로 러시아·남미 등 신흥시장(2단계),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 시장(3단계)을 거쳐 유럽·미국으로 진격한 것이다. 그 결과 총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올리는 화웨이는 지금 세계 50대 통신기업 중 45개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에서 '자아비판' '와신상담' 같은 용어가 일상화된 것은 런 회장의 마오쩌둥식 사고방식의 영향이 크다.

중국 1위 음료회사인 와하하(娃哈哈)의 쭝칭허우(宗慶後) 회장은 1998년 '페이창콜라(非常可樂)'를 내놓으며 '측익진공(側翼進攻)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코카콜라·펩시콜라 같은 다국적 기업과 정면승부를 피하고 중소도시와 농촌 시장을 먼저 확보하는 방식으로 페이창콜라의 점유율을 3년 만에 12%로 높이며 중국 대륙에 '콜라 삼국지 시대'를 연 것이다.

냉장고·세탁기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하이얼(海爾)의 장루이민(張瑞敏) 회장은 자나깨나 '손자(孫子)병법'을 곁에 두고 응용방략을 숙고한다. 신입사원 면접장에서도 '손자병법' 구절로 질문할 정도이다. 하이얼이 소형 냉장고로 미국 시장에서 대히트를 친 것은 '출기불의(出其不意·적이 생각하지 않는 곳을 친다)'라는 손자병법 원리를 마케팅 현장에 적용한 산물이다.

내로라하는 중국 CEO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전략 고수(高手)'들인데, 우리는 어떤가?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공략하겠다고 선언하는 대기업 오너와 CEO들은 많지만, 차별화된 '전략'조차 없이 "선진국에서도 통했으니 중국에선 더 잘 될 것"이라는 오만한 발상으로 접근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진출 10년이 넘어도 반짝 성공 후 실적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기업들이 훨씬 많다.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인 중국은 광대한 시장과 �r시(關係), 독특한 유통망·상거래 관행 등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비즈니스 정글' 같은 곳이다. 이런 땅에서 한국 기업인들은 너무 순진하게 대응하는 게 아닐까. 중국 CEO들과 당당하게 겨루며 때로는 그들을 뛰어넘는 고단수의 치밀한 전략과 지모(智謀)가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차이나 비즈니스는 자칫 백전백패(百戰百敗)라는 참화를 낳게 될 것이다.

 

 

송의달 산업부 부장대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2/2012100201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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