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0:09

중국 취재를 다니면서 좌절할 때가 많다. 지난해 12월 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벌어진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에 갔을 때는 사전에 현지 취재원을 구하지 못해 '맨땅에 헤딩'을 했다. 길거리 주민과 공원의 노인 10여명을 붙들고 이틀 전 시위 상황을 물었더니 "모른다"거나 침묵 일색이었다. 시위가 벌어진 여러 곳 중 하나를 골라 갔다. 큰 도로가 교차하는 고속도로 진입로인 데다 높은 건물이 없어 인근 주민이라면 6000여명이 벌인 과격 시위를 모를 수 없는 곳이었다.

도로 옆 해산물식당에 들어가 요리와 담배를 주문하며 주인의 환심을 샀다. 식사를 마친 뒤 주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을 붙였으나 그는 시위에 대해서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얻어낸 대답은 "시위는 벌어졌지만 진압됐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였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만 가로젓고 입을 닫았다.

지난 5월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당국에 구금돼 있다는 얘길 듣고 출장을 갔으나 거기서도 아무런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공안 관계자를 어렵사리 만났지만 극비(極秘) 사안인 데다 안전부에서 관장하는 일이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달 초에는 동북지방의 한 도시에 취재를 갔다가 밤늦게 호텔 방으로 찾아온 보안요원들한테서 "초청받지 않고 취재온 것은 규정 위반"이라는 경고를 받고 서둘러 도시를 떠났다.

중국 전역엔 거대한 정보 차단막이 있다. 중국인들은 생래적으로 낯선 사람에게 자기네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외국 기자가 소위 '관시(關係)'를 통해 취재원을 소개받지 않으면 낯선 곳의 취재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공직사회는 이런 보이지 않는 차단막 외에 법규정이라는 유형의 차단막까지 결합돼 있어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압권이 최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잠적 사태다. 그가 자취를 감춘 14일 동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쏟아지는 외국기자들의 질문에 "그 방면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며 완벽한 답변 거부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시 부주석의 신상(身上)과 관련해 운동 중 부상, 심장병, 암, 자동차 테러, 총칼 피격,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갈등 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설(說)이 나돌았다. 시 부주석의 측근이나 주변에서도 거의 얘기가 흘러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떠도는 얘기도 진위를 알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땅에서 이 많은 사람이 만나고 떠들고 부대끼며 사는데, 차기 국가 최고지도자라는 사람이 도대체 왜 사라졌는지 확인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의 호각소리를 시작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달려온 지가 30년이 지났는데도 정보 차단막은 개방되지 않았다. 시 부주석이 잠적을 끝내고 미 국방장관 등 외국 귀빈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지만, 중국 매체들은 그의 잠적 사연에 대해 여전히 일언반구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대국은 덩치만 크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대국의 요체는 당당함이고, 정직함 없는 당당함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여시동 상하이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8/2012092801917.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