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 후임으로 선임된 벳쇼 고로(別所浩郞)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의 이력서는 그가 ‘엘리트 외교관’으로 성장해왔음을 보여준다.
그의 경력에서 일본 외무성의 핵심 부서인 총합외교정책국에 두 차례 근무한 것이 눈에 띈다. 2000년에 총무과장을, 2008년에 국장을 지냈다. 주미대사관 근무에 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외무성 차관 물망에도 올랐었다. 외무성 부국장을 역임한 후 한국에 부임한 무토 대사보다 훨씬 더 격(格)이 올라간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공보문화원장의 직전 근무지는 베이징이었다. 일본의 고위급 외교관이 중국 근무를 마친 후 한국에 부임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도쿄의 주일(駐日) 한국대사관엔 세 명의 외교관이 부임했다. 이 중에서 일본어 연수를 하고, 일본에 근무했던 '일본통(通)' 외교관은 K참사관뿐이다. 다른 한 명은 외교부에 들어온 지 약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참 외교관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일본어 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정기 인사 때도 주일 대사관은 적임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당시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 세 명을 새로 보내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올해 주중(駐中) 한국대사관에 가려는 지원자가 몰려서 인사위원회에서 표결까지 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물론 외교관들의 일본 지원율이 떨어진 데는 지난해 발생한 3·11 대지진이 적잖게 작용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방사능 공포 때문에 일본 근무를 꺼린다. 하지만 한 고위급 외교관은 이렇게 평가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에 가지 않으려는 현상이 전면에 드러났을 뿐이다. 해가 갈수록 외교관들이 일본 관련 업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을 경시(輕視)하고, 중국으로 쏠리는 현상은 외교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역회사나 은행 등 민간 분야에서도 이미 뚜렷해지고 있다. 독도 문제로 한일 갈등이 커지자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까지 "일본은 경쟁력이 없다" "일본이 추락하고 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가 중국에 '올인'하면서 무시할 나라는 아니다. 한국·일본·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간략한 수치로 비교하면 100:500:550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한국의 5배이고, 일본과 중국의 격차는 아직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의미다.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는 한국과 중국이 각각 10개, 46개 포함돼 있는데 일본은 도요타·히타치 등 71개가 들어 있다.
대한민국이 다른 대륙으로 이전하지 않는 한 일본과 영원히 마주 보며 살아야 한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 경쟁력을 가진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결코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하원 정치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2/20120912030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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