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2:02

우리는 세계에 팔아먹고 살 자산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외국 민간단체들에서 원조받았던 경험도 그런 자산 중 하나다. 이를 깨달은 건 지난주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선생과 오랜만에 했던 통화에서였다. 선생이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 남수단에 망고나무를 심어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희망고’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들어 수시로 바자회도 하고, 매년 수익금을 들고 아프리카에 다녀오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남수단에 방문했을 때,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한 엄마가 “망고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매년 두 차례씩 열매를 따서 팔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하기에 시작했던 일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심어준 망고나무는 모두 3만 그루. 매년 가다 보니 농업교육과 재봉기술 같은 직업교육을 시키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복합교육문화센터인 ‘희망고 빌리지’ 조성사업을 벌였다는 얘기도 지난해에 들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한국청소년연맹과 함께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상대로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주민 돕기 교육과 훈련을 시키려고 계획 중이라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세계시민 교육, 가난한 이웃의 자립을 이끄는 리더 교육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가 이런 사업을 시작한 건 과거 ‘원조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목사였던 선친을 따라 미국인 선교사들의 봉사현장을 보고 자란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난한 나라 주민들의 자립을 도우며 세계에 친구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아봤기에 돕는 방법도 알고,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 느끼는 고마움도 알기에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산은 또 있다. 우리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회복하느라 애를 먹었던 경험도 알고 보니 자산이었다. 최근 신부남 외교통상부 녹색성장대사를 만났다. 신 대사는 요즘 비영리재단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국제기구로 출범시키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GGGI는 개발도상국에 환경을 보전하면서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구다. 우리나라가 주도해 만든 이 기구를 이미 18개국이 국제기구로 설립하는 협정에 서명했고, 23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 비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이 기구가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슬로건에 따라 정부 예비비를 털어 설립됐던 터라 최근 열렸던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총체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개도국에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는 것을 삐딱하게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삐딱하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이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지금도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건 선진국이다. 그런데 이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나라들에 저탄소형 환경보호부터 하라니…. 참, 할 말이 아니긴 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할 일이 있단다. 선진국들이 아무리 개도국에 얘기해 봐야 바늘도 안 들어가는 녹색성장을 한국이 얘기하면 확 먹힌단다. 경제성장 과정에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치러야 했던 대가와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가 개도국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개도국들의 경제발전 롤 모델이고, 저개발국들은 지금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니 미래형 먹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이 자산을 MB가 시작했다고 국회에서 용심을 부릴 일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원조받던 가난의 역사, 비약적인 경제개발의 노하우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까지…. 우리는 반도체·휴대전화·선박 말고도 정말로 세계에 팔 게 많다. 찾아보면 우리의 자산은 더 있을 거다. 이런 틈새시장을 잘 찾아내 좁은 한국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가 뻗어나갈 시장은 무한정 넓어질 거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번 더 외칠 때가 됐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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