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30
11일자 신문에 10일 낮 내린 폭우로 청계천에 고립된 시민이 흙탕물이 쏟아져 나오는 수문(水門) 옆에서 바지를 걷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청계천에서 탈출하려고 제방 벽을 기어오르려 한 시민도 있었다. 이날 서울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제방 스피커를 통해 대피 안내 방송을 했다. 안전 요원들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피를 유도했다. 하지만 청계천에 걸린 다리 아래마다 비를 피하겠다며 수십명씩 시민이 모여들어 대피 안내 방송을 무시했다. 안전 요원에게 "비가 이렇게 오는데 당신 같으면 다리 밖으로 나가겠느냐"고 짜증을 낸 시민도 있었다. 일부 시민 중엔 안내 방송을 못 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청계천의 249개 수문이 열리면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자 뒤늦게 대피 소동을 벌였고, 수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13명은 119 소방대에 의해 30분 만에 구조됐다.

청계천은 한번 비가 오면 빗물이 한꺼번에 청계천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구조이므로 서울시는 각 청계천 수문을 시차(時差)를 두고 여닫아 물이 급속하게 불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안내 방송이 잘 들리도록 스피커 음량도 키우고 비상시에 대비한 간이 피난 사다리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청계천에서 벌어진 일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압축해 보여줬다. 시민의 안전이 확보되려면 국가도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하지만 시민 개개인도 자기 할 바를 해야 한다. 야영하지 말라고 정해놓은 곳에서 야영을 하다 변을 당하거나 수심이 깊으니 수영하지 말라는 경고판을 무시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그러고는 정부가 잘못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흔하다.

농정 당국이 2009년부터 소 사육 두수가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며 과잉 사육을 경고했지만 농민들이 이를 듣지 않는 바람에 올해 초 송아짓값이 마리당 1만원대로 떨어지는 사태를 빚었다. 그러자 일부 축산 농민은 소의 정부 수매를 요구하며 소를 끌고 서울로 올라오는 '상경 시위'를 시도했다.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각 개인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경고·설득·권유·지도할 책임이 있다. 국가가 그 임무를 소홀히 한다면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할 일을 다했는데도 개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피해가 생겼다면 국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대한민국이 성숙한 공동체가 되려면 국가와 시민 양측이 상식과 규범을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2827.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