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에서 수많은 정치인이 명멸해 갔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정치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히거나 실패한 정치인으로 폄하되곤 한다. 지금은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며 세상을 풍미하는 것 같지만 1∼2년만 지나도 그 사람이 어떤 정당 소속이었는지, 어느 지역구 출신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도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국민의 망각과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만의 정치적 욕구 충족과 권력 행사에만 관심이 있어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유치원생 수준의 국민은 적어도 이제는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 그리고 이들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정책대결은 없었다. 국민이 좋아할 만한 정책들을 급조해 승리하고 나면 비현실적인 것은 슬그머니 바꾸든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진행을 해 결국 엄청남 재정적 부담만 남기고 떠났다. 그다음 대통령들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 반복되어온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다들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다. 23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4년마다 선거에서 항상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집권기간 동안 복지를 통해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4주 휴가제, 실질임금 증가, 출산휴가 및 출산보조금 도입, 임금 연계 노령연금 개혁, 무상교육, 그리고 의료개혁을 통한 국민건강의 형평성을 이루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당들은 소련식 계획경제가 된다고 공격했지만 시장경제와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이끌어 고용과 복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강한 사회’ 구축에 있었다.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완전고용을 통해 경제와 복지에 기여하는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회, 사회적 갈등이 적어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은 사회가 강한 사회라고 역설하면서 한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엘란데르의 증세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성장과 고용, 분배가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50∼60년대의 경제발전과 함께 소외된 국민 없이 대다수의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낮은 의료비, 행복을 통한 사회적 통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1946년 집권 당시 유럽에서 세금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지만 엘란데르가 정계를 떠나는 196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금을 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가 하야하고 나서 노부부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총리로 23년간 봉사한 노정객을 임대주택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사민당이 자신들이 모시고 있었던 선배정치인에게 사택을 지어주기로 했다. 단 한푼의 국세도 축내지 않았다. 신뢰와 감동은 엘란데르 총리를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5년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로는 위험하다. 임기 안에 끝내려 하지 말고 초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꿈과 비전, 정치적 목표를 담은 청사진의 제시가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20년 이후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두고두고 국민의 뇌리에 남을 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늦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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