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29

수확의 계절이다. 그러나 농부들의 마음은 어둡다. 태풍이 스쳐간 들판에 한숨이 무성하다. 기후변화, 어디 농부들만의 도전이겠는가? 로마의 멸망도, 몽골의 유럽 침입도 기후변화가 낳은 결과였다. 다시 기후변화의 정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중동의 정치적 격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기온으로 밀 생산량이 급감하자 러시아를 비롯한 곡물수출국은 수출통제에 나섰고, 밀 가격은 폭등했다. 농업기반이 허약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권들은 결국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우리의 식량안보는 어떤가? 식량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2011년 기준 자급률은 밀 2.2%, 옥수수 3.3%, 콩 22.5%에 불과하다. 쌀 자급률의 급격한 하락도 주목할 만하다. 한때 남아돌아 처리를 둘러싸고 골치를 앓았던 쌀이다. 그랬던 쌀 자급률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농지전용과 관련된 규제가 해제되면서 절대농지가 감소했다.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변화로 생산도 감소했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생산이 줄고 곡물에 대한 수출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식량민족주의 경향이다. 이 상황에 곡물의 투기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이 상승하면 국내 축산농가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사료의 수입의존율은 85% 이상으로,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는 거의 100% 수입이다.

 

농업에 대한 몰이해가 농업의 몰락을 가져왔다. 낡은 수출지상주의와 케케묵은 토건논리가 식량안보를 붕괴시켰다. 농업은 미래 산업이다.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농지전용을 막고, 유통체계를 개선하고, 도시농업을 지원하는, 백년을 바라보는 농업정책을 고민할 때다.

 

북방 농업도 대안 중 하나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작물은 81㎞ 북상한다. 사과와 포도 등 저온성 작물의 북진이 빠르다. 이제 곧 38선이다. 농부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종자개량 기술과 축적된 농업기술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북방의 농토고, 노동력이다. 남북 농업 협력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북한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도 이제 농업협력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에는 남쪽에 쌀이 남아서 대북지원이 남쪽 쌀 수급의 가장 편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남는 쌀이 없다. 일방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상생하고 호혜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삼일포 협동농장의 사례도 있고, 통일딸기 사업의 경험도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남북의 농부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평화를 기르고 통일을 수확할 가능성이 사라졌다.

 

얼마 전 카자흐스탄에서 밀농사를 추진했던 젊은 농부를 만났다. 수확한 밀을 대륙철도에 싣고, 북쪽에도 주고 남쪽으로 갖고 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실현될 수 없었다. 물류 문제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극동의 광활한 대지도 남쪽 농부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체계적인 정책이 부재했고, 환경조성도 미흡했다. 일본은 이미 30년 전부터 해외 농업기지를 확보하여 가공용과 사료를 조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후변화,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과제다. 북방 농업에서 해답을 찾자. 저온성 작물들의 월북을 허하라. 밀양의 농부들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젊은 농부들이 대륙의 광활한 대지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 보자.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5374.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