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28

김동호 목사(62·높은뜻연합선교회)는 요즘 기독교 내 최대 이슈로 떠오른 ‘교회 세습 반대’ 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 2000년부터 ‘담임목사직 세습반대 연대기구’에서 활동하며 수시로 세습 반대를 설교해왔다. 지난달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회 세습은 범죄”라고까지 말하며 세습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니만큼 확신도 강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만난 그는 의외였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정연한 논리와 군더더기 없는 말 밑바닥에 불편함이 있었다. “참담하다” “부끄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

“목사인 내가 교계(敎界) 신문도 아니고 일반 신문에 나와 내부 치부를 고발하는 상황이 참담하다. 저 목사 왜 저래? 하겠지만…. (교회) 세습은 안 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바깥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 인터뷰에 응한 건 외부 힘을 빌려서라도, 다만 몇 사람이라도 옳고 그른 게 무엇인지 분별력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인터뷰는 4일 오후 서울 명동 김 목사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대형교회 세습에 개척교회 다 죽어가



―세습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세습에도 상식이라는 게 있다. 교회 안 시선도 중요하지만 교회 밖도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은 ‘세습’ 하면 북한을 떠올린다. 교회 밖 사람들은 속된 말로 영적(靈的) 고객이 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교회가 미개한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데 이래서야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는가. 그리고 (교회가) 힘들고 안 좋은 상태면 물려주겠는가. 크고 힘이 있으니까 세습을 하는 거다. 지금 개신교 내 세습은 가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남들이 다 가고 싶은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한마디로 교회를 사유화하는 것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

“12년 전 광림교회가 세습을 했을 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비판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광림교회 이전에는 눈치도 보고 그랬는데 이후 와르르 무너졌다. 지금은 신도수가 200∼300명인 교회도 세습을 당연시 여긴다. 오죽하면 신학생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목사면 성골, 장로면 진골, 이도저도 아니면 잡골’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세습은 일종의 문화 아닐까.

“물론 대기업도 세습을 한다. 그렇다고 광고하는 거 봤나(지난달 1일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신문광고를 통해 세습을 지지한 것을 일컫는다). 세상이 숨어하는 일을 교회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다. 그러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좌파, 빨갱이, 시기와 질투심이 가득한 소인배라고 한다.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정작 세습이 이뤄진 교회는 별 잡음이 없다. 문제없다는 것 아닌가.

“겉으로 그렇게 보여도 실망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해당 교회는 문제없다 해도 기독교계 전체에 폐를 끼치고 있다. 세습한 대형 교회는 안 무너지지만 다른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다. 개척 교회 목사들이 다 죽어나가고 있다. 기독교 이미지가 나빠져 목회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사고는 대형 교회가 치고 피해는 작은 교회들이 보고 있다.”

아버지가 목사면 성골,이도저도 아니면 잡골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세습이 교회를 죽이고 있다. 나는 역병(전염병)이라고 생각한다. 콜레라 걸려 다 죽어가듯 한국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중에서 유독 기독교 신자 수만 급격히 줄고 있다. 길 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라, 세습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기독교는 세습 문제만 해결하면 다 되는가.

“내 목적은 세습을 ‘불편하게’ 만들자는 거다. 최소한 교인들 사이에서만이라도 ‘(세습은) 안 된다’라는 말이 나오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교회는 커진 힘을 겁 없이 행사하려 한다. 그리고 신도들을 가르치려 한다. 막무가내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게 종교인가, 맹신이지.”

―종교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다. 자기들끼리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는 생각도 있고….

“나는 신도들이 언론사에 쳐들어가 항의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부터 교회가 죽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억울해도 세상이 뭐라고 하는지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교만하다. 자기들 주장과 다르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한다. 어느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한국 교회는 모여라 돈내라 집짓자 딱 세 마디’라고 했다. 기독교가 비탈에서 미끄러지고 있는데 속도가 빨라져 추락 수준이다. 교회가 사명을 잊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이 뭔가.

그는 답 대신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독교가 초창기 가장 기여한 사회적 공헌이 뭐라고 생각하나?”

“…….”

“나는 계급이라는 불공정한 룰을 깬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주교를 포함해 만인평등을 가르쳤다. 내가 목회를 시작한 곳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승동교회였다. 120여 년 전 백정들이 많이 다닌 교회다. 백정이 최초로 장로가 됐다. 교회 안에서는 왕손이나 백정이나 평등했다. 일제강점기 때 국채 보상운동도 교회가 나서서 했다. ‘3·1운동’으로 투옥된 사람 중에는 기독교 신자 수가 다른 종교 합친 것보다 많다. ‘크리스천=애국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돈도 많고 힘도 커졌는데 건물만 더 크게 더 크게 세우는 데 혈안이 되었다.”

세습은 한국 교회 죽이는 역병

김 목사는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만큼 잘사는 나라가 드물다. 하지만 물질이 풍요롭다고 정말 잘사는 건지, 어떻게 살아야 진짜 잘사는 것인지 보여줄 타이밍인데 교회가 못하고 있다. 미칠 노릇”이라고 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교회가 죽어야 기독교가 산다. 얼마 전에 미국 다녀왔는데 교회가 창고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그걸 너무 자랑스러워 했다. 한국처럼 사치스러운 교회를 본 적이 없다. 5성급 호텔 수준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 팔아 사업하는데 한국 교회는 남들 돈 당겨서 자기 집 짓고 있다.”

―페이스북 활동도 열심인데 요즘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시대에 꼭 공간이 필요한가.

“내가 페이스북을 해보니 그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생기더라. ‘세습반대’ 주장 글은 12만 명이 봤다. 내 글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사람이 매일 4만50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교회를 대신할 수는 없다. 교회가 건강하면 그처럼 매력적인 공동체가 없다. 서로 만나 예배하고 찬양하며 공감하고 감동하면서 누리는 환희와 교류는 비교할 데가 없다.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 때문에 (교회) 오는 게 아니다. 빈부귀천 없이 모두 형제라는 공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는 거다. 그걸 페이스북이 대신할 수는 없다.”

종교인 과세는 당연, 상식의 문제

어렸을 적 가난에 상처받았던 그는 내성적이고 열등감도 심했다고 한다.

“교회가 아니었다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분노와 비난만 퍼붓고 있었을 거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청량리 중앙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비로소 나라는 사람도 남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남루한 내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끌어안아 주셨던 여선생님이 내 인생을 바꿨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도 교회에서 깨달았다. 나는 교회를 통해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건강한 교회는 그렇게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김 목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개혁적인 말과 행동으로 기독교 내에 긴장을 불러왔다. 지난 8월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65세에 은퇴할 것”이라며 “은퇴 후에는 원로목사를 포함해 교회 재정으로 하는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굳이 은퇴선언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나는 목사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이라고 하면 속된 것이고, 성직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직업이 왜 속된가, 일이 다를 뿐이지 다 똑같다. 나는 내 일이 좋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최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직업인이니까 은퇴는 당연한 거다. 3년 뒤면 은퇴한다. 페이스북도 은퇴 준비의 일환이다. 새벽에 일어나 설교문을 올린다. A4용지 한 장에서 한 장 반 정도를 매일 쓴다.”

목사도 직업, 65세에 은퇴할 것

―목사의 소명은 무엇인가.

“세상은 하나님만의 식(式)이 있다. 철학 또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목사는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뜻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라고 주기도문에 나와 있지 않은가. 목사는 하나님의 뜻과 식을 전파하는 메신저이다.”

―세습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그렇다.”

―평소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해왔다.

“내가 다른 사람 세금 덕택에 살고 있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종교인 이전에 이 나라 국민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너 잘났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이 세금 내는 게 잘나서 내나, (종교인 과세는) 상식에 관한 문제다.”

―의도했든 안 했든 지금 투사가 됐다.

“원했던 일은 아니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많아지니 영웅심리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는 “지난달 25일 감리교단이 세습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감리교단 내 가장 큰 교회들이 세습을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 그걸 뒤집었다. 내 최종 목표는 모든 교단이 세습금지법을 만드는 것이지만 세습 반대 운동은 네거티브 운동이다. 교회 본연의 모습을 찾는 포지티브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동호 목사는 ::

장로회 신학대 기독교교육과, 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과, 신학과를 졸업했다. 매코믹신학교 목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승동교회 담임목사, 영락교회 교육담당 협동목사, 동안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동안교회(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목사 시절엔 목사 장로 신임투표를 주장해 화제를 모았으며 부임 때 1500여 명이던 신자수를 10년 만에 4000여 명으로 늘린 뒤 평생이 보장되는 대형 교회 담임 목사직을 스스로 사임하고 교회 개척에 나섰다. 2001년 말 숭의여고 강당을 빌려 주말 예배를 보는 식으로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해 출석교인이 5000여 명을 넘기자 2008년 교회를 해체해 4개로 분리, 4명의 목사들에게 맡겼다. 교회 건축헌금으로 200억 원이 모였으나 “교회를 짓기보다 다른 것에 할 일이 많다”며 2008년 탈북자들만을 고용하는 공장 등을 세웠다. 국내 사회적 기업 1호로 탈북자들의 자활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문명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1007/49924311/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27

전세계에서 수많은 정치인이 명멸해 갔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정치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히거나 실패한 정치인으로 폄하되곤 한다. 지금은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며 세상을 풍미하는 것 같지만 1∼2년만 지나도 그 사람이 어떤 정당 소속이었는지, 어느 지역구 출신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도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국민의 망각과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만의 정치적 욕구 충족과 권력 행사에만 관심이 있어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유치원생 수준의 국민은 적어도 이제는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 그리고 이들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정책대결은 없었다. 국민이 좋아할 만한 정책들을 급조해 승리하고 나면 비현실적인 것은 슬그머니 바꾸든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진행을 해 결국 엄청남 재정적 부담만 남기고 떠났다. 그다음 대통령들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 반복되어온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다들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다. 23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4년마다 선거에서 항상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집권기간 동안 복지를 통해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4주 휴가제, 실질임금 증가, 출산휴가 및 출산보조금 도입, 임금 연계 노령연금 개혁, 무상교육, 그리고 의료개혁을 통한 국민건강의 형평성을 이루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당들은 소련식 계획경제가 된다고 공격했지만 시장경제와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이끌어 고용과 복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강한 사회’ 구축에 있었다.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완전고용을 통해 경제와 복지에 기여하는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회, 사회적 갈등이 적어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은 사회가 강한 사회라고 역설하면서 한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엘란데르의 증세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성장과 고용, 분배가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50∼60년대의 경제발전과 함께 소외된 국민 없이 대다수의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낮은 의료비, 행복을 통한 사회적 통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1946년 집권 당시 유럽에서 세금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지만 엘란데르가 정계를 떠나는 196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금을 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가 하야하고 나서 노부부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총리로 23년간 봉사한 노정객을 임대주택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사민당이 자신들이 모시고 있었던 선배정치인에게 사택을 지어주기로 했다. 단 한푼의 국세도 축내지 않았다. 신뢰와 감동은 엘란데르 총리를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5년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로는 위험하다. 임기 안에 끝내려 하지 말고 초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꿈과 비전, 정치적 목표를 담은 청사진의 제시가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20년 이후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두고두고 국민의 뇌리에 남을 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늦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643.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26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부에 들어서면 ‘가난 없는 세상이 우리의 꿈이다’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대부금은 빈곤 퇴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계은행 책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복잡한 금융지식이 아니라 이 사명에 대한 충실함이었다. 의사 출신 인류학자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의 총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빈곤퇴치의 사명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세계 성장 위한 마지막 자원

김 총재의 최근 행보는 세계은행의 수장이라기보다는 양성(兩性)평등 전도사 같다. 그는 어디에서나 “세계가 성장을 위한 부가자원을 찾는다면 그것은 여성”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양성평등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 증대는 최근 세계은행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양성평등 지원 규모는 2010회계연도(2009년 7월∼2010년 6월)의 대출 활동 중 53%를 차지한다. 2006회계연도의 34%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2006∼2010회계연도에 증가한 금액이 190억 달러에 이른다. 양성평등 관련 지원은 피임 보건교육, 유아 및 어머니에 대한 영양지원, 소녀를 위한 학교, 여성에 대한 기술지원 등이다.



세계은행이 양성평등에 눈뜬 것은 대출 시스템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길을 놓으라고, 학교를 세우고 우물을 파라고, 엄청난 금액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개도국에 지원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도로도 학교도 없었다. 돈은 정치인의 배를 채웠고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문맹인 주민은 이러한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일부 프로그램에서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는 가계소득 관리를 어머니가 맡을 경우 자녀의 생존 확률이 20배가 더 높았고 가나는 여성이 경작했을 때 소출이 17% 늘었다. 우간다가 농업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여성을 포함시키자 생산성이 급증했다. 글자를 깨친 여성들이 “우리에게 와야 할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데모하기 시작하자 공무원은 뇌물을 챙기기 힘들어졌다. 엄마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돈 벌어 오라며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메이슨은 “양성평등은 그 자체로 옳은 가치이지만 무엇보다도 경제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간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간 고용 장벽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노동생산성을 7∼18% 높일 수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소득이 늘고 이는 빈곤퇴치로 이어진다. 양성평등이야말로 세계은행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빈곤퇴치의 황금열쇠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 지위를 아시아의 다른 개도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편견이었다. 한국은 유아 사망률 같은 지표는 세계 최고였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2005년 기준)은 세계 평균에 겨우 근접했고 남녀 간 임금격차는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 아직 개도국형 남녀 불평등국


한국은 선진국형 문제와 개도국형 문제가 공존하는 이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여성 의원 비율은 14% 수준으로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에 못 미친다. 여성이 최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s)이 여전하지만 저임금 직종에서 남녀 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끈끈한 바닥(sticky floors)’도 존재한다. 끈끈한 바닥이란 여성이 저임금 직종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 여대생 수가 남자 대학생을 추월했다. 그런데도 우수한 여성 자원이 유리천장에 막히고 끈끈한 바닥에 달라붙어 역량 발휘를 못하고 있다. 이것만 터주어도 우리 경제가 더 도약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워싱턴에서


정성희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006/49892216/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3

# 서울에서 춘천을 거쳐 2시간 남짓 걸려 다다른 강원도 화천의 화천갤러리에서는 방랑식객으로 더 잘 알려진 산당 임지호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자연 재료를 취해 음식만 예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흙, 모래, 숯, 브론즈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그림 역시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그런데 산당이 그림 전시회를 연 화천은 그의 고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공들여 그린 81점의 그림 전부를 아낌없이 화천군에 기증했다. 그리고 조만간 그는 이곳 화천에 화천군의 협력을 얻어 자연요리학교를 세울 예정이다.

 # 산당 임지호와 화천군이 엮이도록 가교 역할을 한 이는 다름 아닌 작가 이외수다. 그는 트위터 팔로어만 150만 명에 육박해 ‘트위터 대통령’이란 별칭까지 얻고 있는 이다. 게다가 나꼼수, 안철수와 더불어 속칭 ‘전국 3수’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찾아가 협력을 요청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그가 트위터에서 화천 간동산 멜론을 언급하자 그 멜론이 삽시간에 동이 났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화천이 고향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화천 감성마을에 눌러앉아 전국적 인물이 됐다. 그리고 이제 화천은 그의 제2의 고향이다. 그래서 ‘화천’ 하면 이외수를, ‘이외수’ 하면 화천을 떠올리게끔 됐다. 물론 그가 화천에 눌러앉게 만든 것은 화천군의 노력이었다. 26억여원을 들여 감성마을을 조성하고 그를 촌장으로 임명해 살며 글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살아 있는 이의 문학관으로는 국내 최초라 할 이외수문학관을 지어준 곳도 다름 아닌 화천군이다. 하지만 화천군은 그 몇 배 아니 돈으로 다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보답을 받고 있다. 이외수라는 독특한 한 인간이 수많은 이들을 이곳 화천으로 이끌고 유인하는 매력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 화천군의 공식 통계 인구는 약 2만5000여 명이고 지역 주둔 군인이 약 3만5000여 명이다. 그만큼 군사 지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겨울에 보름 동안 화천에서 열리는 산천어 축제에는 약 150만여 명이 다녀간다. 화천군수를 11년째 하면서 화천을 독특한 문화 거점으로 만들어낸 정갑철 군수와 화천군 관계자들 그리고 인근에 주둔하는 군부대까지 합세한 공들인 노력에 더해 이외수의 트위터가 한몫 이상으로 크게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 덕분에 화천 산천어 축제는 지역경제 직접효과만 600억원이 넘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흑자 축제가 됐다.

 # 화천군 내에도 적잖은 폐교가 있다. 그중 한 곳인 옛 율대분교 자리에 젊은 목수와 생태화가 부부가 폐교 교실을 작업장 삼고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살림집 삼아 살고 있다. 이정인, 이재은 부부가 그들이다. 이들 부부 역시 화천이 고향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터 잡고 살며 정말이지 살아 있는 예술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마을의 가가호호 그림이 있는 나무 문패를 만들어 걸어주고 있다. 그 문패엔 그 집 주인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주로 생산하는 작물들을 그려 넣었다. 그런가 하면 흔히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초라한 버스 정류장의 대기 장소 안팎에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얼굴을 하나하나 어우러지게 그려놨다. 예술합네 하고 스스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살아 있는 예술을 그들 부부는 그렇게 만들고 있던 것이다.

 # 고향도 아닌 이들을 오직 문화와 예술이란 공통분모 아래 끌어들인 화천이 살아나고 있다. 화천군민이 스스로 노력하고 이외수, 임지호, 이정인, 이재은 등과 같은 문인, 예인, 장인이 어우러져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거점을 만들며 화천이 깨어나고 있다. 이것이 다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찾고 또 다시 찾는 지역으로 만든 것이다. 정말이지 ‘화천스타일’이라고 말해야 옳을 만큼! 바야흐로 지역의 시대, 지방의 시대다. 화천스타일의 매력적인 자력갱생법을 배울 만하지 않은가!


정진홍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08767&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2

[논쟁] ‘제한적 공창제’ 도입 필요한가 -2

아동 대상 성폭행 등 성범죄 관련 강력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제한적 공창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종암경찰서장 재직 시 성매매 단속에 앞장섰던 김강자 한남대 겸임교수가 “제한된 지역에서 성매매를 인정해주는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계를 중심으로 “성매매 금지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와 조배숙 전 의원에게서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성욕 해소에 여성 인권이 희생돼선 안 된다

연일 보도되는 끔찍한 성폭력 사건으로 온 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대책 마련에 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성매매를 금지했기 때문에 성범죄가 증가했다”며 성매매특별법을 흔들려는 주장과 논설이 인터넷과 토론공간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주장은 두 가지 심각한 오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는 범죄 현상에 대한 잘못된 분석이다. 성폭력 증가 원인을 분석하면 성매매 금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첫째, 과거에도 수많은 성폭행 사건이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이 쉬쉬하고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달라져 신고율이 높아졌고 언론도 가감 없이 즉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둘째, 가족 및 지역공동체 해체 현상으로 과거에 범죄 억제 기능을 하던 무형의 기제, 즉 가족·이웃 등 인간관계의 끈이 단절돼 버렸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진공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이 늘었다.

 셋째는 음란물의 범람이다. 과거와 다르게 TV·인터넷 등의 발달과 성 개방 풍조 속에 음란동영상, 아동포르노물 등의 만연으로 사람들이 쉽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장면을 접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이를 내면화하면서 실행할 기회가 왔을 때 범죄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의 증가는 이러한 사회병리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또하나의 오류는 남성들의 원초적인 성본능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으니 이를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성적 본능은 당연한 권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남성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일부 여성들의 인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일 뿐이다. 피해를 보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일부를 위해 다른 일부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잔인한 논리는 따지고 보면 종군위안부를 제도화한 일본제국주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야말로 남성 우위의 권위주의적 사고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는 발상이다.

 제한적 공창제 역시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제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내용은 마찬가지다.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하는 것은 성매매특별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그나마 어렵게 이루어온 나름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든다. 어느 지역에 가면 실정법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할 수 있다면 그 지역으로 성매매업소가 몰려가 우후죽순처럼 번창할 것이고 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인신매매 등 다른 관련 범죄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물론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신종 성매매가 성업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살인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할 때다. 탈(脫)성매매 여성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고 성매매 산업으로의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취업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매매 범죄에 대해 엄정한 단속 의지를 보이고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근본적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배숙 변호사 전 국회의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0901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1

한 나라 경제력은 '돈'에 응축돼… 외국에선 안 통하는 한국 '원'
엔화는 어디서나 바꿀 수 있어… 韓日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乙'
MB 정부 원화 가치 17% 하락…金처럼 튼튼한 화폐 되게 해야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작년 언젠가 뉴욕 투자자들 모임에서 강연을 끝냈다. 주최 측은 물었다. "강연료를 달러로 드릴까요, 아니면 유로화나 엔화로 드릴까요?" 그린스펀의 대답은 "포 나인으로"였다. 숫자 9가 넷인 '포 나인(four nines)'이란 순도(純度) 99.99%짜리 금괴를 말한다. 요즘 같은 위기엔 어느 나라 통화도 믿을 수 없다는 농담이었다.

국가신용등급은 빚을 갚을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이고, 국내총생산(GDP)은 국가 경제의 덩치를 재는 지표다. 어떤 나라의 경제력이 가장 옹골지게 응축(凝縮)된 곳은 그 나라의 돈이다. 경제가 건강하면 통화에 힘이 실리고, 경제가 무너지면 통화도 함께 사라진다.

40여년 전 캄보디아의 돈은 하루아침에 휴지가 됐다. 경제가 처참한 지경에 몰리자 새 정권이 들어선 후 기존의 국가 화폐를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옛 지폐를 이어 붙여 쇼핑백이나 지갑으로 재활용했다.

에콰도르는 2000년 1월 재무부 건물 앞 광장에서 자기 나라 화폐를 불태우는 세러모니를 가졌다. 미국 달러를 에콰도르의 공식 화폐로 선포한 직후였다. 햄버거도 달러로 팔기 시작했고 은행 예금도 달러로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식민지가 될 수 없다'고 울부짖는 데모는 없었다. 국회에서 몸싸움도 없었다. 반복되는 인플레, 금융 위기, 외환 위기에 진저리 쳤던 에콰도르 국민은 자기네 지폐가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화형식에 박수를 쳤다.

우리 원화(貨)가 캄보디아·에콰도르의 화폐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G20 멤버이고 국가신용등급도 A급이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휩쓸고 세계 최강의 조선 회사도 거느리고 있다. 이런 나라의 멀쩡한 통화가 어느 날 돌연사(突然死)한다는 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원화가 한두 번의 조작 실수로 컴퓨터 속의 비밀 파일이 사라지듯 급사(急死)할 리는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 무역 규모 세계 9위, 경제 규모 세계 15위 국가의 화폐가 왜 외국에서는 도통 통하지 않는 것일까. 왜 '10억원'이라고 인쇄된 원화 채권이 도쿄나 런던에서는 팔리지 않고 서울에서만 팔리는 것일까. 왜 뉴욕의 주요 은행에선 5만원권 현찰 뭉치를 들고 가도 달러로 바꿔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연변 조선족 마을의 식당과 방콕의 한국인 단골 골프장에서 우리 지폐를 받는 것에 감격할 때는 지났다. 어쩌다 해외여행 중 한국 돈으로 계산이 끝나는 걸로 '조국(祖國)의 힘'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쑥스럽다. 국제금융 시장에서 아무런 존재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원화이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싸우며 원유 수출 대금을 유로화로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숨어들어 간 지하 굴에서 체포됐을 때는 75만달러의 현찰 뭉치가 함께 나왔다. 미국을 그토록 증오했던 후세인마저 생사(生死)가 갈리는 궁지에서는 달러만을 비상금으로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독도를 둘러싼 분쟁 여파가 통화 마찰로 번졌다. 일본은 한국이 통화 스와프 협정을 연장해달라고 무릎을 꿇어야 통화동맹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국의 급소 어느 곳을 찔러야 피눈물을 흘릴지 '눈물샘'을 잘 알고 있다. 엔화는 세계 어디서든 달러나 유로화로 바꿀 수 있는 돈이지만, 원화 채권이나 한국산 금융 상품은 후세인의 달러 뭉치 같은 비상용이 되기는커녕 위기 조짐만 보이면 가장 먼저 내던져야 할 돌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다.

일본은 4년 전에도 우리가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서도 쩔쩔매는 꼴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지금 우리가 3200억달러가 넘는 보유 외환을 자랑하지만, 그중엔 미국 주택금융공사에 볼모로 잡혀 있는 게 얼마라는 것, 급할 때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중국에 "양국 간 통화 스와프를 상설화하자"고 제안했다. 통화동맹을 영구화하자며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일본에도 이제 자존심을 접고 허리를 굽혀야 할지, 아니면 덤터기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고 튀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환율은 1달러에 949원이었으나 5일 시세는 1111원으로 17%가량 상승했다. 원화가 그만큼 가치를 잃은 것이다. 원화가 갈수록 천덕꾸러기 통화로 신분이 강등되는 줄도 모르고 자동차·반도체 수출만이 최고라고 여겨왔던 결과다. 나라 경제가 이만큼 컸으면 원화를 금 덩어리처럼 튼튼한 화폐로 만들어 보겠다는 지도자가 나올 때도 됐다.

 

 

송희영 논설주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5/2012100501108.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0

내가 재직하고 있는 부개동성당의 교적부에 올라 있는 신도 수는 정확히 5796명이다. 주일에는 이들이 모두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규율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부턴가 미사 참례자 수가 점점 줄어 요즘엔 전체 신도의 4분의 1이 될까 말까 한다. 교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가르친다. 미사에 참례하는 수로만 본다면 아기들과 환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제외하더라도 전체 신도의 반 이상이 죄인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는 아예 교회를 떠났거나 오랜 기간 쉬는 분들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더러 빠지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가톨릭교리서가 교회를 ‘죄인들의 집단’이라 정의한다 하더라도, 주일 미사 몇 번 빠졌다고 다수의 선량한 신도들에게 고해성사를 종용하는 것은 융통성 없는 율법주의의 소산이라고, 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부개동성당의 관할구역은 성당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에 오래된 연립주택과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가장자리에 고층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네모난 지형이다. 대도시 변두리가 대부분 그렇듯 우리 동네도 인구는 많지만 면적은 넓지 않아 가장 먼 아파트에서 성당까지 걸어서 20분이면 족하다. 지난 1월 내가 이 성당에 부임하자마자 구석구석 걸어다니며 직접 확인한 바다. 이런 인구밀집지역에 주일 미사 시간이면 성당 앞 300평쯤 되는 주차장(신도들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는)은 자동차들이 빽빽하고 골목길은 차 한 대 비켜갈 만큼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신도들과 주민들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추위가 가시자 나는 신도들을 상대로 적어도 성당에만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잠시 반짝했을 뿐, 기대와 달리 지속적인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하기야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나.

 

성당에 올 때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자동차를 버리라는 건 억지다. 가까운 거리라도 불가피하게 차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어디 한두번인가? 나는 자동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 승용차를 가지고 있고 가끔은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신체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한 우리 신도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미사에 오는 것을 보면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엎드리면 코 닿는데 꼭 차를 타야 하는 그들의 심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들은 오늘 아침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성당에 가서 무엇을 기도하자고 했을까? 이런 나를 보고 도대체 자동차와 신앙이 무슨 관계냐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고리타분한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신도들 다 잃는다고 충고하고픈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예수의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이나 불이익 또는 희생을 못견뎌하면서 그분을 따를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실천 없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녀 출신 신학자 캐런 암스트롱의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굳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들먹이지 않아도 10분만 걸으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를 차를 타고 오는 신앙은 엉터리요 거짓이다. 정치·경제·사회의 민주화를 바라면서 독재자의 자식으로, 독재자 곁에서, 독재를 체득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을 선택하는 이상야릇한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480.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9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어느 교육평론가의 답변. “잘 먹는 것, 잘 자는 것, 잘 읽는 것.” 앞의 둘은 많이 하는 이야기다. “잘 읽는 것”은 조금 뜻밖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말뜻을 얼추 짐작하겠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건강에 긴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을 “잘 읽는” 수련의 과정을 거칠 때 양식 있는 시민이 탄생하고, 활력 있는 시민사회가 형성된다. 글 읽기의 힘이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는 4년 교과과정 전부를 고전읽기로 채운다는데, 나는 그런 대학이 부럽다. 한국에서는 고전읽기조차 입시를 위한 요점정리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잘 읽기 위해서는 읽을 만한 좋은 글이 많아야 한다. 케케묵은 말처럼 들리지만 (인)문학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런 고전들이 긴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근대문학의 총아인 (장편)소설을 비롯해 서정시, 희곡을 살펴봐도 그 나름대로 합의된 고전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 그들은 ‘한국문학공화국’의 ‘적자’들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서자’이다. 잡다한 신변잡기를 풀어놓은 가벼운 수필(미셀러니)은 많지만, 삶에 대한 통찰을 그만의 문체로 표현하는 ‘에세이’는 매우 적다. 고독하지만 독립적인 정신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의 뿌리가 깊지 못한 한국 문화의 척박한 토양도 한 이유이리라.

 

고종석이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에세이스트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고종석이 펼쳐온 다양한 글쓰기의 알짜는 에세이이다. 그가 앞으로 ‘직업적 글쓰기’는 하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다. “소수의 독자들이 내 글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내 책이 독자들에게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켜 많이 팔려나간 적은 없다. 설령 내 책이 꽤 팔려나가고 운 좋게 거기 권위가 곁들여졌다 해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략) 미심쩍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한겨레> 9월24일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글쓰기의 영향력에 큰 회의를 갖게 된 듯하다. 안타깝다. 내 생각에 글은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없다. 글쓰기는 힘이 없다. 글쟁이 자신, 혹은 글을 읽어주는 “소수의 독자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게 ‘문학의 정치’ 혹은 ‘글쓰기의 정치’의 한계이지만, 그런 미약한 글쓰기들이 모여 아주 가끔은 의미있는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기대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게 아닐까? 글쓰기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닌 글쟁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평화운동가 에이브러햄 머스트(1885~1967)의 일화.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백악관 앞에서 밤마다 촛불을 들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한 방송 기자가 물었다. ‘혼자서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고 나라 정책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겠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글쓰기의 소임도 그렇지 않을까. 거창하게 남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와 비틀어진 현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가냘프지만 의미있는 행위.

 

에세이스트 고종석이 조만간 ‘한국문학공화국’의 시민으로 귀환하기를 한 애독자로서 희망한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481.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9

얼마 전 아침 운전 부주의로 추돌 사고를 냈다. 내가 뒤에서 들이받은 차는 택시였다. 택시 뒷자리에는 손님이 타고 있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접촉 사고는 있어왔지만 대부분 예의 바른 사과를 주고받고 넘어갈 정도로 경미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손님은 목을 부여잡고 고통과 원망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황하고 있는 내게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빨리 보험사에 전화를 하라고 재촉을 했다. 결국 운전 경력 3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사에 사고 신고를 해야 했다.

오후가 되어 나는 손님과 기사 아저씨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손님은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큰 이상은 없지만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내가 사람을 다치게 했구나. 기사 아저씨는 아무래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원이라니. 또 다시 자책감이 밀려왔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대답은 한결 같았다.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내가 두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누구는 말했다. 자꾸 전화해서 괜찮은지 묻지 말라고. 그럼 만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또 다른 누구는 말했다. 한번쯤은 전화하는 게 좋다고. 안 그러면 괘씸하게 생각한다고. 모두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택시를 탔다. 조심스레 기사 아저씨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택시 기사들은 부상 정도와 상관없이 대부분 입원을 해요. 기사들이 무슨 대단한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니에요. 보험금이 나오니까요. 보험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관행이에요. 입원을 안 하면 동료들한테 면박을 받기도 해요. 손님도 나중에 사고를 당해 봐요. 입원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어요. 이번에는 줬으니 나중에는 받는 겁니다. 보험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거죠."

나는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 때문에 다친 손님은 지금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목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닐까? 기사 아저씨는 입원을 했을까? 잠자리가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는 건 아닐까? 내일 안부 문자나 전화를 해볼까? 그렇게 하면 너무 지나치게 착한 척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온갖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겐 마음을 달래주는 천사가 있었다. 그 천사가 내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염려 마요. 내가 있잖아요. 당신의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줄게요. 그러니 안심하고 어서 자요." 물론 그 천사의 이름은 바로 보험이었다.

보험으로 사고 처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험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런데 보험은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킴으로써 안심시킨다. 보험이 손해를 배상하고 피해를 보상해준다. 만약 보험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보험금을 주고받는 화폐관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보험의 화폐관계는 무엇보다 '마음'을 배제한다. 아니 마음까지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계산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바라보게 하는 보험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죄를 주고받고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태에서조차 자신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이익을 최대한 늘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보험은 천사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이다! 내가 보험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나의 친구는 자기가 겪은, 나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보험과 관련된 시련을 이야기해주었다. 보험을 충분히 완전하게 들지 않아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였다. 결론은 보험은 무조건 종합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보험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를 만든 주범은 바로 보험이다. 보험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보험은 신이다. 이 세상은 보험의 뜻대로, 보험이 보시기에 참 좋게 만들어진 세상이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03210251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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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7

'강남스타일'로 세계를 석권한 싸이를 외교부가 독도 홍보대사로 임명해 '독도스타일'제작을 의뢰한다고 최근 몇몇 매체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싸이는 열흘 전 귀국회견에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요청 받은 게 없어 (작업을) 생각해본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방침이란 "싸이를 독도 홍보대사로 위촉하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외교부 관계자가 "검토해보겠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외교부가 적극적인 것처럼 보도함에 따라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독도문제만 나오면 들끓는 우리 사회의 '스타일'이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뭐라고 답변해야 했을까? 독도 수호를 위해 바람직한 제안이라고 말했어야 하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부적절하다고 일축했어야 하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대답한 사람보다 그렇게 묻고 그렇게 보도한 기자가 문제다.

런던올림픽 축구 한일전이 끝난 뒤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씌어 있는 종이와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누빈 게 문제가 됐다. 그때 박종우는 관중이 준 종이를 받지 말고 정치의 스포츠 개입을 규제하는 IOC규약에 맞춰 독도 세레모니를 거부했어야 하나? 하지만 그 상황에서 선수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준 사람이 문제다.

한국인들은 독도를 비롯한 일본문제만 나오면 여지없이 흥분하고, '정답'이 아닌 말을 하면 따돌리거나 몰매를 때린다. 박종우의 독도 세레모니도 뭐가 잘못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양심도 없고 반성할 줄 모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인가 보다.

한국인들은 어느새 일본을 하찮은 나라, 경쟁력과 희망이 없는 나라, 정국이 불안정하고 재난이 끊이지 않을 만큼 하늘도 돕지 않는 나라라고 깔보게 된 것 같다. 그게 잘못이며 착각이라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나 유구한 문화전통과 유산, 한일 경제관계의 속살, 일본 지성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한 목소리로 국익을 주장하는 단원적 사회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된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를 비롯한 지식인 1,300명이 최근 정부 비판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이며 식민지 지배과정의 침탈이었다는 역사적 인식을 상기시켰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신문 기고를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이 확산되는 시점에 일본 정부가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은 가해자요, 우리는 피해자이므로 처지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 누군가가 이런 반론과 자아비판을 한다면 용납될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적 편향성이 심한 사회에서 그런 사람은 발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 대한 조치나 투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앉게 한 소녀상이다. 그 소녀상은 뜯긴 머리카락, 꼭 쥔 손, 땅에 딛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 어깨 위의 작은 새, 그 자신이지만 이미 등이 굽은 할머니의 그림자, 소녀 옆의 빈 의자, 이런 것들로 인해 볼수록 가슴이 아프고 강렬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소녀는 그런 모습으로 말없이 일본을 응시ㆍ주시하고 있다. 놀랄 만한 예술작품이다.

문화와 예술로 싸워야 한다. 민간의 자생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일본을 이겨야 한다. '강남스타일'이 성공한 것은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한, 열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특정 목적에 동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이미 저력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돈만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아니다. 문화의 힘은 더욱 더 그렇다.

 

 

임철순 논설고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04210123819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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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6

한국의 야구 인기가 대단하다. 올해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프로야구가 역대 한 시즌 최다 관중 신기록인 7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700만 명이라니…. 한국 인구가 현재 5000만 명이니까 대략 7명당 1명꼴로 야구장을 찾았다는 얘기가 된다. 하루하루 숨 가쁜 일상을 보내는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비춰 보면 결코 무시 못할 수치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난 사람끼리 ‘어느 팀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다. 그만큼 두 나라 모두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내 고향 캘리포니아에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프로야구단이 여럿이다 보니 사람마다 좋아하는 팀이 제각각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은 LA에인절스다.

아버지는 내가 여섯 살 때 글러브를 처음 사주셨는데, 아버지와 함께 야구경기를 보러 가는 것이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학창시절에는 투수와 3루수를 번갈아 하며 오전 내내 야구 연습을 하곤 했다. 그때 경기에 임하는 팀원의 열정과 팀워크가 경기의 과정과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배웠다. 당시 아버지가 사준 글러브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 되어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다.



한국은 야구 강국이다. 예전에도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많이 냈지만 정작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실력을 분명하게 확인한 건 두 차례에 걸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한국은 이 대회들을 통해 미국 일본 멕시코 쿠바 등 이른바 야구 강국들과 맞서 당당하게 그들의 실력을 보여줬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대표팀은 9전 전승의 파죽지세로 금메달을 거머쥐며 세계 야구 정상에 올라섰다.

야구는 개개인의 실력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스포츠다. 야구 강국이 되려면 선수 간의 실력은 물론이고 팀 간의 경기력도 큰 차이가 없어야 한다. 저마다 최고를 자랑하는 기량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프로야구단의 실력은 세계 최강이다. 팀 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소수의 팀이 치열한 경쟁을 반복하는 가운데 짧은 기간에 놀라운 실력을 쌓아왔다. 최근 들어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줄었다지만 여전히 많은 스카우터가 한국에서 활약 중이란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 언제고 제2, 제3의 박찬호, 추신수 같은 선수들이 나오리라 믿는다.

선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데는 든든한 팬들의 응원도 한몫한다. 한국의 야구장에서 만나는 풍경은 가히 놀라움 그 자체인데 어디에서 저런 열정이 나오나 싶을 정도로 광적인 응원이 집단적으로 펼쳐진다. 필자도 회사가 후원하는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세 팀의 경기를 가끔 보러 가는데 야구의 수도라는 부산 사직구장에서 보았던 신문지 응원과 부산 갈매기 노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야구에서 보듯이 한국, 한국 사람들은 강하다. 뜨겁고 열정적이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나는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말춤으로 세계인을 사로잡는 가수 싸이의 당당한 어깨 너머로 또 다른 한국인들을 보게 된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한국과 한국인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한 세대를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한국의 청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청년들이여! 자신감을 가져라. 당신들은 충분히 강하고 뛰어나다. 당당하게 세계무대로 나아가라! 맹렬히 도전하라!”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

http://news.donga.com/3/all/20121005/49864634/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5

“예쁘게 화장만 하면 뭐해. 안 보이는 데서 머문 자리를 깨끗하게 해야지.”

학교 도서관의 미화원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명색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인데 학내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고 느끼던 터였다. 역시나 아주머니들과의 대화 내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거는 바라지도 않아요, 식수대에 가래침 좀 안 뱉었으면 좋겠어. 초등학생도 알 만한 걸 대학생들이 안 지켜.”



“남학생들은 소변 보면서 아무데나 침 탁탁 뱉고,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민망하지.”

아주머니들은 한목소리로 학교가 고된 일터라고 했다. 작년 봄 전국 대학에서 시작된 청소노동자 파업 이후 몇몇 학교는 청소노동자 시급을 1년 전보다 500원 올렸다. 하지만 실질적인 노동환경이 개선된 건 아니다. 학교 시설을 이용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 탓이 크다.

당장 도서관을 둘러봐도 아주머니들의 고충을 알 만했다. 먼저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 앞 선반은 널브러진 휴지, 치약덩어리, 화장품이 묻어 있는 솜뭉치들로 지저분했다. 좌변기 옆에는 골인에 실패한 휴지들이 습기를 머금고 바닥에 버려져 있다. ‘휴지는 변기에, 패드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무색했다.

남자 선배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 속 남자화장실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쓰고 난 휴지 뭉치들로 세면대와 바닥 곳곳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 앞 쓰레기통도 난장판이었다. ‘일반 쓰레기, 페트병, 캔/병, 종이’로 분리수거를 하게 돼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일반 쓰레기통’에 캔이 수북했고, ‘종이 통’에는 과자 봉지와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버려진 채였다. 음료가 반 이상 담긴 종이컵은 ‘페트병 통’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서울 소재 다른 대학들도 찾아가 봤다. 용변 후 물을 내리지 않거나, 쓰고 난 여성용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화장실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각 대학의 열람실마다 학생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가래침을 뱉던 학생, 휴게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한 학생들이 미래의 법관, 연구원, 지도자를 꿈꾸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봄, 나는 핏대 높여 청소노동자의 인권을 토론했다. 하지만 먹고 남은 음식을 도서관 화장실에 버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 미래 지도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 모두 좋다. 문제는 기본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쉽게 탓하기 전에, 혹은 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지레 회의하기 전에,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대학생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격한 몸싸움보다, 탁상공론에 그치고 마는 토론회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아주머니가 전한 어떤 남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웬 남학생이 도서관 복도에 엎드려 무언가를 닦고 있더란다. “학생 뭐해요? 내가 할게” 했더니 “아니요, 제가 커피를 엎질렀거든요” 하면서 열심히 치웠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덧붙였다.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지. 보통은 그렇게 남은 청소를 하다가 퇴근이 늦어지거든. 그런데 사실 그게 기본 아닌가, 자기가 남긴 쓰레기는 자기가 처리하는 것.”

끝까지 부끄러운 담소였다.

신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http://news.donga.com/3/all/20121005/49864769/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4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민주화 열풍뿐 아니라 사회 변화의 폭풍도 거세다. 지난해 민주화 도미노에 화들짝 놀란 각국 정부가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쇼핑센터와 도로·철도 등 생활 인프라 확충과 함께 복지정책 강화가 한창이다. 복지라는 당근을 입에 물려줌으로써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한다. 한국이 복지확대 문제로 내부 토론이 한창인 동안 중동에선 복지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서 제2 중동특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지역 복지정책의 핵심은 보건의료 서비스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MENA 투자 전문 알마사 캐피털의 보고서가 이 분야 인프라 확충이 ‘정권 안보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아픈 사람 치료라도 제대로 해줘야 왕정이나 독재에 따른 국민 불만을 줄여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충고다.

사실 오래전부터 보건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2억1400만 명인 이 지역 인구는 2025년에는 2억720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평균수명은 지난 30년 동안 59세에서 71세로 늘었다. 1000명당 90명에 이르렀던 유아 사망률은 26명으로 줄었다. 지난 1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727달러에서 8187달러가 됐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당뇨·심혈관질환·암 등 서구형 질환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인구와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보건의료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인프라와 인력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인구 1만 명당 병상 수는 21.6으로 미국(31.0)의 70% 정도다. 인구당 치과의사는 79%, 간호사는 71% 수준이다. 기존 체제로는 도저히 필요한 의료인력을 충당할 수 없다. 외국 의사를 모셔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의 아부다비 등 부자 산유국들도 지난해 수요 억제를 위해 무상의료를 줄이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이 지역 국가들은 중증 환자를 외국에 송출하는 데 주력했지만 사정이 이렇자 자국에 의대·병원을 결합한 ‘메디컬 플랜트’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테러 우려로, 유럽은 의료 사회화 때문에 해외진출 여력이 별로 없다. 한국은 의과대학이 40개나 되고 대부분 해방 이후 들어선 학교다. 그만큼 의대·병원 신설 노하우가 풍부하다. 보건의료 인프라가 절실한 MENA 지역 국가들엔 매력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산유국이 한국 유수의 의대에 의대·간호대와 종합병원을 패키지로 현지에 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선 보건의료 관련 대학과 종합병원이라는 지식기반 ‘고부가 플랜트’를 수출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개발도상국 의사를 국내에 데려와 연수시켜주는 이종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 의대·병원을 짓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활발히 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간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보건의료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발전해 경제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의대 수출은 외국인 환자의 국내 의료관광 유치와 달리 국내 보건의료 인프라·시스템이 영향받지 않아 사회적 논란의 가능성도 별로 없다.

한국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보건의료산업이 인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의료기술·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산업 특성상 내수만 충당했지 수출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보건의료산업도 수출·외화획득 산업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의료는 서비스산업으로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청년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대선 후보들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대·병원도 수출할 수 있다는 이 작은 발상의 전환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96874&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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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3

“일본과 한국 두 나라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선 금융시장의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두 나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정신에 입각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으며, 이번에 유럽 재정위기에 공동 대응해 이를 확충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재무성이 한국과 통화스와프 규모를 13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리는 협정을 맺으면서 내놓은 담화의 일부다. 재무성 홈페이지(www.mof.go.jp)에는 아직도 당시 보도자료가 생생히 올라 있다. 통화스와프는 일본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돕는 조치가 아니라 아시아 금융시장의 안정과 한·일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한 호혜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다.

최근 한·일 통화스와프를 둘러싼 일본의 행보를 보면 이런 정신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일본 재무성은 3일 NHK를 통해 ‘한국의 요청이 없으면 통화스와프 확대는 더 이상 없다’는 방침을 흘렸다. 독도 문제라는 정치 이슈에 통화스와프 카드를 끝까지 써먹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계를 15년 전인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로 돌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장면이다. 당시에도 일본은 통화협력 문제를 한국 압박의 카드로 활용했다. 한 푼의 달러가 아쉬웠던 한국은 이웃 일본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은 냉담하게 뿌리쳤다. 남들보다 앞서 150억 달러를 회수해가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선 한국을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는 정서가 강했다. 돈을 떼일지도 모른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평소엔 소원하다가 아쉬울 때만 친한 척하느냐는 견해도 나왔다. 기저에는 일본 기업을 맹추격하던 한국 기업들이 회생하는 데 도와줄 이유가 있느냐는 셈법도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혹독한 역풍을 맞았다.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들은 일본을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동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일본은 왕따 취급을 받기도 했다. 도쿄를 국제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물 건너갔다.

일본 안에선 그 뒤 자성론이 활발히 일었다. 국제 금융무대에서의 신뢰 회복과 협력 증진이 발등의 불이 됐다. 일본이 2000년 CMI 출범에 적극적 역할을 한 이유다. CMI는 아시아의 외환위기 재발을 막고 역내 금융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중·일이 참여해 만든 금융협약이다. 그 정신에 입각해 한·일 통화스와프가 2000년 시작됐고, 꾸준히 금액을 늘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정치 논리에 휘둘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의 은행과 증권 등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내심 걱정이 크다. 유럽이나 미국 금융회사들에 비해 금고가 넉넉해 해외 진출에 호기를 맞았지만 과거처럼 역풍을 맞지 않을까 해서다.

 

김동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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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1

대선에 나선 세 후보들의 캠프에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북적거린다. 그들은 집권만 하면 북한과 한·중, 한·일 영토갈등과 과거사를 포함한 난제들을 단숨에 해결할 기세다. 그러나 한국과 세계의 외교사를 돌아보면 한 나라의 국왕과 대통령과 총리에게 문화적 소양(cultural literacy)으로 무장된 전략적인 사고능력이 없으면 그 나라는 한정된 파이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국제사회에서 소극적으로는 제 몫을 지키고, 적극적으로는 대외적으로 나라의 위상을 높일 수가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학 석좌교수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에 와서 홍석현 회장과 가진 긴 대담에서 지적한 비스마르크의 전략적인 외교의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과 세 대선후보들에게 천금 같은 교훈이 될 것 같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러시아의 재상에 취임했을 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프랑스 보호국 라인연방,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러시아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로 분할되고 그 각각의 나라 안에 수많은 왕국과 공국과 자유시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 전체를 포함한 유럽의 질서는 1814년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이 주축이 되어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들이 출범시킨 빈 체제(Wien system)로 유지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안보에 빈 체제가 필수적이라는 신화를 깨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러시아 중심으로 독일을 통일해야 하는 벅찬 도전 앞에 섰다.

비스마르크는 1864년 오스트리아와 함께 덴마크와 전쟁을 하여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분할 점령했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준비했다. 그는 186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담판하여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밀약을 받아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패배할 것을 확신하고 전쟁을 부추겼다. 1866년 프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3주 만에 홀슈타인을 점령하고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 최후의 일격을 안겼다. 철도로 병력을 신속하게 이동한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의 획기적인 전략에 오스트리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몰트케와 휘하 장군들은 빈을 점령하자고 주장했다. 비스마르크가 반대했다. 그는 후일을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더 이상의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스마르크는 이미 프랑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러시아의 패전을 바라고 중립을 지킨 나폴레옹 3세는 중립의 대가로 라인강 좌안의 영토를 요구했다. 비스마르크는 당연히 거절했다. 빈 체제는 영웅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에 전파한 프랑스 혁명의 효과를 차단·무력화하는 보수체제였다. 그래서 영웅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에게 빈 체제는 눈엣가시였다.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빈 체제에 최종적인 사망선고를 내린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통일된 독일이 등장하여 빈 체제를 대신하고 대륙의 강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비스마르크는 남부독일 국가들과 비밀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로부터는 중립의 약속을 받아냈다. 몰트케의 주장대로 1866년 전쟁 때 프러시아가 빈을 점령했더라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면서 배후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1868년 공위(空位)가 된 스페인 국왕 자리를 놓고 다툼이 생긴 것이 도화선이 되어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일어났다. 승리는 준비한 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간섭과 영향력을 차례로 제거하고 1871년 4개 왕국, 18개 공국, 3개 자유시, 2개 제국령을 가진 역사적인 통일국가를 실현했다.

비스마르크의 모든 대외정책은 전략적·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짝을 옮겼다. 키신저는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순간의 무드에 맞추고 전체 전략과 무관한” 지도자의 행동을 경계했다. 나폴레옹 3세는 외교적인 업적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했다는 키신저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한·중·일 관계가 최악인 것도 세 나라 지도자들의 언행이 순간의 무드와 신문 제목과 저녁뉴스에만 맞춰지기 때문이다. 한·일 두 나라 정상들의 상대에 대한 언행이 특히 그렇다. 1890년 비스마르크가 현실주의외교(Realpolitik)라는 불멸의 모델을 남기고 퇴임할 때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수로 안내원이 배를 떠난다”면서 앞으로의 유럽 평화를 깊이 걱정한 것은 얼마나 교훈적인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97233&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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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1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앞바다는 온통 빙산으로 뒤덮여 있다. 작은 얼음 덩어리부터 산처럼 거대한 빙산까지 크기와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흔치 않은 장관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마음 편치 않은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서 자원 개발이 가능해졌다. 그린란드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5분의 1에 가까운 원유와 중국보다 많은 희토류가 묻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최근 미국지질조사국은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지역에 전 세계 석유 미발견량의 13%, 천연가스는 30%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일본 등은 이곳 자원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요국의 7개 메이저 에너지회사들은 1990년대 초·중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 북부의 자원 매장 가능성을 조사했고, 그 결과 그린란드 정부로부터 자원개발에 대한 우선 참여권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도 그린란드 자원개발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세계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그린란드 자원개발에서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그린란드를 정상 방문한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 외교’다. 그린란드 총리도 조속한 시일 내에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밝혀 양국 간 협력 진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 있어 이 같은 정부 간 공조체제를 지렛대 삼아 적극 활용하는 지혜와 전략이 시급하다.

이번 방문국에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도 포함됐다. 카자흐는 자원이 풍부해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이번 정상 방문 시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유전 탐사 등의 조속한 추진을 협의했고, 지난 번 정상외교 시 수주한 40억달러 규모의 발하쉬 화력발전소 기공식을 열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가 배워야 할 최우선 국가는 한국이며, 20년 안에 한국을 추월하는 것이 목표”라는 구체적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양국 정상 간의 허심탄회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가 ‘세일즈 성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꼈다.

이번 순방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시작했다. 다자간 정상회의에서는 참가국의 경제력과 국격, 그리고 정상 개인의 리더십이 한데 어우러져 세계질서를 만들어 간다. 중간 중간 양자 간의 문제도 협의한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일본 수상과의 만남이 APEC 기간 중에 이루어졌고, 인도네시아와는 친환경 자동차산업의 공동 추진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그야말로 ‘종합외교’의 현장이었다.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노르웨이는 석유 수출 세계 7위, 천연가스 수출 2위의 자원강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도 10만 달러에 육박한다. 우리 선박의 최대 고객이자 해양플랜트 분야에선 최정상급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전형적인 복지국가로 국민총소득(GNI)의 1%를 해외원조에 쓰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노벨평화상을 주관하는 국가로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런 노르웨이의 오슬로대 강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노르웨이가 도와주었던 극동의 작은 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며, 자원봉사자 숫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진지하게 듣고 있던 청중들의 표정에서 ‘국격 외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족 하나.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식사는 대부분 호텔 아니면 행사장에서 서양식이나 현지 음식으로 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카자흐스탄 출장 마지막 날 저녁이 돼서야 시간이 생겨 한국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수도인 아스타나에 하나밖에 없다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에서 갈비탕을 시켰는데 영 ‘그 맛’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을 때는 비빔밥을 시키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돌솥비빔밥을 맛있게 먹던 직원이 마냥 부러웠다. 외국과의 협력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음식 고르기에서도 쌍방향 소통이 필요한 모양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http://www.korea.kr/celebrity/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74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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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0
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구글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처음으로 뛰어넘어 4위에 올랐다. 모바일과 웹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구글이 PC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MS를 추월한 것은 PC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과 영국 언론은 “포스트 PC(PC 이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증거” “정보기술(IT)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30년간 IT 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던 MS는 2010년 애플에 추월당한 지 2년 만에 구글에도 밀렸다. MS는 PC 운영체제인 윈도를 기반으로 PC 시대를 이끈 선도자였지만 모바일 체제로의 전환이 더뎌 역전을 허용했다. 구글은 웹 기반의 검색과 광고 사업을 기반으로 모바일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모바일 광고 같은 신사업에 진출해 시장 판도를 바꿨다. 구글의 힘은 숙련된 소프트웨어 인재를 전 세계에서 확보해 모바일로 가는 시장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

휴대전화, TV, 자동차와 같은 하드웨어 제품도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다. 모바일과 웹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기술융합도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소프트웨어 기업 비중은 최근 20년간 갑절로 늘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는 후진국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같은 제조회사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IT 강국의 명성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에서 밀려나면 차세대 성장엔진 확보나 청년 일자리 창출도 요원해질 것이다.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영세한 내수 중심의 시장과 낮은 노동생산성을 극복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대다. 2010년 글로벌 500대 IT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한국 회사는 한 곳도 없다. 각 산업에서 소프트웨어를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활용하면 GDP가 1.43%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해외에서는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 소프트웨어 회사가 올라가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은 모자라고, ‘낮은 처우-우수 학생 기피-교육 부실-산업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산학협력 같은 실용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인재를 길러내야 한국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21004/49832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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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49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의 소호는 고급 브랜드 매장과 맛집이 밀집한 지역이다. 오늘날은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세련된 동네로 꼽히지만 원래 이곳은 버려진 공장지대였다. 지금처럼 활기 넘치는 지역으로 탈바꿈한 것은 예술의 힘이다. 뉴욕의 제조업이 쇠퇴해 빈 건물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1960년대 초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값싸고 넓은 작업실을 찾아 소호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예술가들의 취향과 안목에 맞는 개성 있는 옷가게와 식당들도 들어섰다. 낙후됐던 지역은 ‘예술가들의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소호 개발을 처음 주도한 것은 전위적 예술운동인 ‘플럭서스’의 창시자 조지 마치우나스(1931∼1978)였다. 백남준과 함께 활동했던 그는 동료들과 의견이 맞지 않자 예술의 길을 접고 부동산 개발에 눈을 돌렸다. 소호에 있는 건물을 사들인 뒤 예술가들에게 싼값에 공급해 예술인 거리 형성에 앞장섰다. 예술은 대도시뿐 아니라 시골마을도 살려낸다. 일본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구리 제련소가 있던 곳이다. 환경오염 때문에 주민이 떠나가면서 불모의 땅처럼 변했다. 그러나 한 기업인의 주도로 1989년부터 섬 재생 프로젝트가 펼쳐져 이제 이곳은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의 순례코스로 떠올랐다.

▷문화를 통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빌바오 효과’라고 부른다. 스페인 북부 항구도시 빌바오에서 따온 말이다. 철강과 조선 등 주력산업이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치솟고 쇠락의 길을 걷던 이 도시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으로 색다른 선택을 한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유치한 것이다. 1997년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지은 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인구 35만 명의 도시에 한 해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하나로 창작공간 사업을 시작했다. 유휴시설을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지원하고 지역민에게 문화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공장지대였던 영등포구 문래동에 자리 잡은 문래예술공장도 그중 하나다. 공장들이 이전하면서 빈 건물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은 요즘 철공소 골목의 사장님들과 의기투합해 다채로운 전시와 공연 행사를 열고 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투자다.


고미석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004/49832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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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48

사람이란 살면서 이런저런 계기로 새로운 환경을 맞아 그에 걸맞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모양이다. 물론 이전의 자신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는, 이른바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끊임없이 경험하고 배우고, 생각하면서 내 모습을 어느 방향으로 점점 갖추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이전과는 다른, 조금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젊었을 때, 아니 어렸을 때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나 삶의 방향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일 것이고 많은 사람은 살면서 상황에 맞게 자신의 생각이나 행태를 조금씩 수정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과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서두가 약간 거창했는데 나 자신이 올해 들어와 겪은 몇 가지 실제적인 사건과 그리고 약간의 독서 경험을 통하여 나 자신의 생각과 언행이 미묘하지만 조금은 바뀌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른바 생태, 환경에 관한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이른바 ‘개똥철학’에 관한 것이다. 지역에서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의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환경모임에 가입하게 되고(이전부터 막연하게나마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모임에 가입하여 회원이 된 것은 처음이다), 우연한 계기로 텃밭을 가꾸게 되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 내지는 허영심으로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학과목 중에 환경, 생태에 관한 과목이 있어 구체적인 공부를 하게 되면서 관련이 있는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협동조합운동에 참여하는 등등의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러한 거의 동시에 마주친 몇 가지 경험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과 몸으로 우리의 본래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어떠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나아가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고, 추구하는 모습은 이와는 얼마나 다를까 역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나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은 “이게 아닌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이 소외되었다든지, 석유 등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다든지, 환경이 오염되어 우리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든지 하는 단편적인 지식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전원의 코드를 뽑고, 될 수 있는 대로 ‘나 홀로 운전’을 줄이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산이나 바다로 갔을 때 자연을 덜 더럽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머리로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이러한 지식 차원이 아니라 삶의 행태의 차원에서 과연 현재의 모습이 올바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제성장을 통하여 삶이 풍족해지고, 발달된 정보통신의 덕택으로 정보와 지식을 신속하게 습득하고,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과학과 기술이 뒷받침된 문제해결 능력을 통하여 성장과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등의 모습이 바람직한가, 지속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진부한 말이 되었지만, 혼자 꾸는 꿈은 몽상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한다. 나도 전에는 환경, 생태 운동에 대하여 ‘내용은 좋지만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약간은 냉소적인 생각을 했다. 이를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정화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혹은 스스로 즐거워서 엄청난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의 조그마한 몽상이라도 이 기회를 통해 보탠다.

그냥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몸에 좋은 친환경 유기농 음식을 먹고, 경치 좋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수만 년 동안 살아온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다르고, 그 다른 것이 과연 바람직하고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가를 수확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몸과 마음으로 생각한다.

 


이영직 변호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84786&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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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6

문화는 원래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품 속에 문화가 녹아있고 또 문화 자체가 상품화되어 전 세계 사람의 삶을 알게 모르게 변화시킨다.

아시아 사회에서 줄 서기 문화는 분명 서구에서 수입된 것이다. 사실 유럽인들이라고 언제나 줄을 잘 섰던 것은 아니다. 1850년대에 독일인 여행자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이 줄을 제대로 안 선다고 개탄했다. 1950년대에는 반대로 영국인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인들이 줄을 제대로 안 서는 것을 보고 놀랐다. 21세기가 되자 영국에서 다시 줄 서기 문화가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고 한다. '본토'에서 줄 서기 문화가 쇠락하는 동안 그것이 아시아로 수출되었다. 중국에서 줄을 제일 반듯하게 잘 서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곳은 햄버거 가게라는 말이 있다. 작은 예이지만 서구식 가게가 외래문화가 흘러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브라질의 인구 동향을 연구하는 학자는 20세기 후반에 이 나라의 인구증가율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 1970년대에 들어온 미국 연속극이라고 분석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미국 연속극은 중간 계급이나 상층 계급의 도시적 가치를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전국에 내보냈다. 시청자들은 이제 그들의 전통문화와는 다른 행동 패턴과 다른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가족 계획 프로그램보다 이런 드라마가 훨씬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서구 영상물의 '파괴적' 효과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다. 특히 화면에 보이는 서구 여성들의 의상, 행동 방식,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이 여성 시청자들에게 선망을 불러일으키고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종교인이나 보수적 지도자들이 볼 때 할리우드 영화는 낯선 가치를 숨기고 있는 트로이의 목마나 다름없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서구의 문화적 '공격'이 무슬림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그 대신 세속적이고 심지어 기독교적 정체성을 심으려 하는 것으로 비쳤다. 사실 경제적 경쟁 관계로 보면 서구보다는 동아시아가 이슬람권에 더 위협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구만큼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 상품만 수출했지 문화를 수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늘 외래문화 유입의 충격에 대해 우려해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문화가 세계로 흘러나가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필요하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3/20121003018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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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6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다음 달로 다가온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인이 읽는 정치 관련 책들의 이념 스펙트럼을 분석해 그 결과를 자사 사이트에 소개하고 있다. '2012 아마존 선거 열기 지도(Amazon Election Heat Map 2012)'라는 제목의 이 서비스는 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정치 분야 책 100권을 뽑은 뒤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책 내용 등을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분류하고 주(州)별로 국민이 어느 정당 성향의 책을 많이 읽는가를 조사해 그 결과를 서적 판매에 활용하고 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서 '정치와 출판이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출판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지식계의 흐름과 미국민의 독서 성향까지 보여주는 고급스러운 마케팅 기법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존은 미국민의 정치 서적 독서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각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獨食)하는 미 대선 시스템을 적용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했다. 공화당 성향의 책을 '붉은 책(red book)', 민주당 성향의 책을 '파란 책(blue book)'으로 명명한 뒤 미국 지도를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 양당 성향 출판물의 과반 비율을 선거 결과처럼 보여줬다.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10월 3일 현재 미국 전체 51개 주(워싱턴 DC 포함)에서 아마존을 통해 팔린 책 가운데 공화당 성향 책이 절반 넘게 팔린 주는 43곳이었고, 민주당 성향 책이 더 많이 팔린 곳은 워싱턴 DC와 뉴욕·매사추세츠 등 8곳이었다. 실제 대선 판도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약간 앞서는 가운데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아마존 독서 지도에서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미 공화와 민주 양당 성향 책의 구매 비율을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지도는 '승자 독식' 방식에 따라 붉은색이 압도하고 있지만 구매 총량은 '공화 57% 대(對) 민주 43%'로 양쪽 진영의 책이 비교적 균형 있게 팔리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지식인들이 막말과 몸싸움 대신 책을 매개 삼아 지적(知的) 전쟁을 벌이는 현상은 부럽기까지 했다. '붉은 책' 가운데 '그림자 보스들'이라는 책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미국 정부에 침투해 국민의 세금을 빨아먹고 자기들의 혜택만 극대화하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거대 정부에 대항하는 지식인들의 투쟁을 다룬 작가 아인 랜드의 1957년작 소설 '아틀라스 슈러그드'도 부자 증세 논란을 둘러싸고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반면 '파란 책' 중에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마련한 80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이 교육·건강·친(親)환경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중시해온 가치들을 지켜냈다고 주장하는 '뉴 뉴딜' 등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이처럼 세련된 출판 이벤트와 정치 세력 간 저서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가 편식(偏食)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좌파적 가치에 쏠려 있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훈 국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3/2012100301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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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5
한안자(73)씨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가문 대대로 전해오는 방식을 지키며 간장·된장 등 장류(醬類)를 담그는 이다. 지난 2010년 정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名人) 제4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장 담그기보다 더 신경 쓰는 일이 있으니, 바로 해파리 박멸이다. 한씨의 주장은 '해파리를 먹어 없애자'는 것이다.

전통식품 명인인 한씨가 해파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해파리 때문에 김장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젓갈 구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해파리가 급증했습니다. 해파리떼가 바다를 뒤덮고 새우와 멸치를 먹어치워 버리고 있습니다. 그 피해가 올해처럼 심한 적이 없었어요. 새우와 멸치가 잡히지 않으니 젓갈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젓갈장사들은 가격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면서 젓갈을 감추고 내놓지를 않아요. 춘젓도, 육젓도, 추젓도 구하기 어려워 김장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민들의 피해가 급증하자 정부는 해파리떼를 제거하는 로봇을 개발하거나 그물에 걸린 해파리를 수매하는 등 구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씨는 "해파리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쉽게, 그리고 국민이 기뻐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파리를 식용(食用)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해파리를 식용화한다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해파리 숫자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 한씨의 주장을 들었을 때, 조금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씨가 음식에 대해서 허튼소리 할 분은 아니다. 그리고 중국집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냉채의 주재료가 해파리 아니던가. 한씨는 해파리로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 고향인 해남 바닷가에서는 해파리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고 말했다. 해파리가 한국 전통음식이라는 것이다.

"해남 사람들은 옛날부터 해파리를 즐겨 먹었어요. 특히 머리가 어지러울 때 많이 찾았지요. 어부들이 끌어올린 그물에 들어 있던 해파리를 모래에 버리면, 아주머니들이 그것을 가져다가 간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장에 나가면 바다에서 해파리를 잡아다가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식당에서 해파리를 반찬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막걸리 식초를 넣어서 무친 해파리는 절묘하고 깔끔하고 행복한 맛입니다."
 
해파리 무침을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도무지 그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씨는 "직접 맛을 보여 주겠다"면서 해파리와 각종 양념을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씨가 큰 양푼에 담아 보여준 해파리는 흔히 '스지'라는 일본말로 더 익숙한 소의 힘줄처럼 약간 뿌옇게 투명한 젤라틴 덩어리처럼 보였다. 한씨는 "해파리를 잡아서 물을 빼고 소금과 백반에 절여 보관 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름 2m짜리 해파리는 무게가 150㎏쯤 나가요. 이놈을 잡아서 물을 빼면 50㎏쯤 될 거야. 이걸 다시 소금과 백반에 절이면 30㎏ 정도로 줄어들어요. 유통기한이 3~4년은 되지요. 여름 해파리는 물렁거리고 독성이 강하며 맛이 없어 저장하지 않고, 봄과 가을에 잡은 해파리가 먹을 만해요."

이렇게 처리한 해파리는 요리하기 전 물에 서너 차례 씻고 뜨거운 물을 끼얹어 소독한 다음 바구니에 밭쳐 물기를 뺀다. 가늘게 썰어서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와 고추·쪽파·설탕·배 따위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이 해파리 무침을 맛봤다. 쫄깃하지만 중국집 냉채에 들어간 해파리보다 식감이 한결 말랑말랑 부드럽다. 질긴 청포묵 같달까. 새콤달콤한 양념과 썩 잘 어울렸다. 몰라서 먹지 않았지, 알았다면 일부러라도 먹을 만한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씨는 "어민은 해파리를 잡고, 요리연구가들은 조리법을 개발해 홍보하면 정부 지원 없이도 해파리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씨가 만든 해파리 무침을 먹으면서 아귀찜을 떠올렸다. 한때 아귀는 '물텀벙'이라고 불렸다.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리다 아귀가 걸려 있으면 "에이, 재수 없어" 하면서 아귀를 그물에서 떼어내 도로 바다에 텀벙 던져 넣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아귀를 먹지 않았다. 먹지 않으니 당연히 아귀를 내다 팔 수 없었다. 게다가 생김새마저 흉측했으니, 어부들이 아귀를 잡으면 짜증을 낼 만도 했다. 그러다 50여년 전 경남 마산에서 아귀로 찜 요리를 만들어냈다. 이후 아귀는 가격이 급등했고, 천대받던 물텀벙에서 고급 생선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해파리라고 아귀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나.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3/2012100301759.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34

8월13일치 오피니언면 ‘안철수 태교와 좋은 부모’를 읽고

‘한겨레 프리즘’의 ‘안철수 태교와 좋은 부모’를 읽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여성들의 임신·육아 걱정에 편승한 상업주의를 우려하고 진정한 태교는 성공을 잣대로 하는 욕망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과의 즐거운 교감이라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논지에 공감하지만 비단 안철수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대해 읽어보고 그것을 뱃속의 아이와 교감해보려는 것은, 그것이 비록 성공에 관한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됐더라도 ‘문제적 욕망’이 ‘긍정적 희망’으로 승화될 기대를 접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영어 태교, 바느질 태교, 국외여행 태교, 그림책 태교, 음식 태교, 숲 태교를 모두 상업주의로 지나치게 경계한 대목입니다. 극히 일부는 혹시 과장을 했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태교는 그 가능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콘텐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숲 태교’는 아직 상업주의를 우려할 만한 어떤 문제점도 없는 ‘스페셜 콘텐츠’입니다. 숲 태교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초기 단계의 사업이고, 산림청과 국립수목원,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산림복지 차원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숲 태교는 전통적인 태교 프로그램을 산림휴양과 복지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통합적 문화콘텐츠로 재창조하고자 하는 신개념 프로그램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에 기대감이 큰 임신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고, 특히 1박2일간의 숲 태교 프로그램은 당첨되기도 어렵습니다.

 

전통 태교의 내용은 아름다운 말을 듣고, 성현의 문구를 외고, 시를 읽거나 품위 있는 음악을 감상하고, 소나무에 드는 바람소리를 듣고, 매화와 난초의 은근한 향을 맡으며 스트레스 없는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못 볼 걸 볼까봐 ‘못생긴 과일도 먹지 마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태교의 방법과 내용을 일상생활에서 통합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숲 태교입니다. 숲은 배움과 가르침의 공간입니다. 이름 모를 풀꽃과 나무와 새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상생과 공존, 다양성의 조화를 체득하는 충분한 태교이고, 솔 향기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행복하고 훌륭한 태교가 됩니다. 숲의 초록 빛깔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많은 건강상의 이로움이 있고,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임신부들이 마을 숲이나 공원에 나가 고독감과 우울감, 불안감을 서로 해소하는, 이처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태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나아가 숲 태교는 임신부와 태아의 녹색의식을 제고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임신부와 태교의 중요성은, 올해 리우+20 정상회의의 많은 의제 중 하나로 세계태교협회에서 주관한 ‘세상을 구하는 9개월’이라는 의미심장한 테마에서도 드러납니다.

 

생명의 숲에서 태아가 보고 듣고 느끼도록 하는 숲 태교야말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영적 복지의 시초가 될 것이며, 산림복지의 튼튼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영초 풀빛문화연대 대표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54156.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32

아사히신문에 기고하신 ‘영혼의 통로를 막지 마라’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선동에 휘둘리는 자국민들에게 긴 안목과 침착한 사려를 촉구하신 선생과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에 관한 역사적, 인간적 진실에 일본 국민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신 오에 겐자부로 선생 등 지식인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힘으로 비교우위를 만회하려는 日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2차대전 종전 후 한중일 3국은 고차원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을 이루었습니다. 이 성취는 일본이 먼저, 이어 한국과 중국이 경제성장을 이루어 바야흐로 문화의 ‘등가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선두주자인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누렸던 비교우위를 잃으면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고요. 따라서 지금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 태도의 바탕에는 이 비교우위 감퇴를 힘으로 또 위세로 만회하려는 심정이 깔려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도 아시겠지만 독도는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주권을 마비시킨 후 합법의 형식을 빌려 불법으로 편입해 버린 우리 영토입니다. 을사늑약이 명백한 불법이고 무효인데 독도 편입은 합법이고 유효하다는 것이 인류사의 정의일 수 있을까요? 일본이 독도 편입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인이 사랑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 “벼룩을 눌러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바로 그 상황입니다.

고대 한반도 3국과 일본은 더할 수 없이 다정한 이웃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제의 왕족, 고구려 고승들이 풍랑을 헤치고 일본까지 달려가 학문을 전하고 불도(佛道)를 펼치고 뼈를 묻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유민들은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일본에 가서 백제인 촌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엔 일본을 이웃으로 가진 것이 한국에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는 용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요?

한국인들은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일본인을 보고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다가도 일본의 침략근성 부활의 징후가 감지될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임진왜란,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잔혹성,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그 모든 피해와 굴욕을 상기하고 분노합니다. 일본이 이웃 나라들을 그토록 괴롭히고 유린해서 얻은 것이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몇 해 전 규슈의 남단, 가미카제특공대 기지였던 지란(知覽)에서 저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구입한 특공대원들의 마지막 서한집에는 무카이시마 고이치(向島幸一)라는 청년이 부모에게 쓴 ‘황국의 성업(聖業)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다’는 서한이 있었습니다. 서한에는 자기가 죽은 후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은 ‘염원했던 집의 개축에 일부나마 보태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효성스러운 청년은 영웅일까요, 살인마일까요, 희생양일까요? 그의 부모가 ‘조국’의 끊임없는 영토야욕의 제물이 된 착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그의 자살폭격으로 희생된 수백 명, 수천 명의 이국 젊은이의 부모들도 피를 토했습니다. 이 착한 청년이 어떻게 인류사의 죄인이 되었는지 일본의 젊은 세대가 똑바로 알지 못한다면 가미카제특공대의 비극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립을 부르는 영토에 대한 욕심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그 전성기 때 영토를 자기네 영토라 고집한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다를 모두 매립해서 육지를 만들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성과 민족감정을 침해하는 영토에 대한 욕심은 결국 살상과 원한을 낳고 민족적 고립과 배척을 초래합니다. 선생께서 말씀한 대로 국경은 영혼이 오가는 통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지구의 일시적인 세입자가 아닙니까? 온순한 일본 국민이 정치가들이 뿌리는 값싼 술에 취해 공격적 구호를 복창하다가 뒤따라 올 가미카제에의 호출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태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http://news.donga.com/3/all/20121002/49811499/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30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여행객에게 숙소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호텔이든 모텔이든 숙소에서 보낸 몇 시간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 파리에 처음 가서 우연히 들어간 지하철역 주변의 시끄럽고 지저분한 호텔에서 밤을 보내고 난 뒤 파리에 대한 나의 환상은 무참히 깨졌다. 숙소가 꼭 호화로운 고급 호텔일 필요는 없다. 초라한 호텔이라도 그곳의 공기를 느끼며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대만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타이난(臺南)에 다녀왔다. 1887년 타이베이(臺北)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대만성의 수도였던 곳이다. 타이난에 대한 인상은 복잡한 구도심에 자리 잡은 가가서시장(佳佳西市場) 호텔에서 결정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05년 조성돼 타이난의 물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던 서시장통에 최근 건립된 작은 호텔이다. 객실이라고 해야 27개밖에 안 된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과는 거리가 멀다.

기치로 내건 ‘문화호텔’답게 방마다 컨셉트가 다르다. 영화감독부터 미술관장, 사진작가, 소설가, 화가, 건축가 등 문화·예술 분야의 다양한 인사가 방 하나씩을 맡아 디자인과 설계에 참여했다고 한다. 내가 묵었던 ‘신농가방(神農街房)’은 과거 항운(航運)이 성행했던 오조항(五條港)의 거리 풍경을 재현한 방이었다. 흰 벽면을 장식한 검은색 페인트 그림이 옛날 해안가의 집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소파 앞에 있는 둥근 철망 형태의 탁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이다. 한쪽에 놓여 있는 골동품 같은 낡은 여행용 가방은 방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멋진 소품이다. 일인용 철제 안락의자와 발받침대는 가구이면서 동시에 문화상품이다. 관심 있는 투숙객을 위해 연락처까지 붙여 놨다.

요컨대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편리하고 친근한 호텔이다. 단순히 잠자는 곳이 아니라 그 동네의 스토리가 있는 호텔이다.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갤러리를 겸한 로비에선 전시회가 열리고, 호텔 지하에선 콘퍼런스가 열린다. 구도심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춰 크고 작은 건물의 용도와 디자인을 바꿔 나가고 있는 타이난시 당국의 ‘타이난 스타일’ 정착 노력과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최대 고민 중 하나가 숙소라고 한다. 약간 과장하면 값비싼 호텔과 싸구려 모텔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텔을 개조해 중간급의 특색 있는 호텔로 바꾸는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여건과 능력을 갖춘 모텔부터 지자체 및 지역의 예술가들과 힘을 합쳐 동네의 특성에 맞는 개성 있는 중급 호텔로 리노베이션할 필요가 있다. 어두컴컴한 모텔에서 보낸 하룻밤이 한국의 첫인상을 좌우하도록 방치해서는 ‘동북아 관광 허브’의 꿈은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79527&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