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0:20
1966년 9월 초 불교 미술 연구의 권위인 황수영·정영호 박사는 서둘러 경주로 달려갔다. 국보 21호 불국사 석가탑이 훼손됐다고 하니 조사해달라는 문화재관리국 요청을 받고서였다. 가서 보니 석가탑 주변에는 화강암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1층과 3층 덮개(옥개석·屋蓋石)도 어긋나 있었다. 사찰 측과 경찰은 며칠 전 있었던 지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지진 여파라면 석가탑보다 훨씬 섬세한 다보탑은 무너져 내렸어야 했다. 각층 탑신(塔身)이 다 움직였는데 2층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황·정 박사는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 게 틀림없다고 보고했다.

▶며칠 후 도굴범들이 잡혔다. 범인 중에는 국립 경주박물관의 경비원도 끼어있었다. 그들은 사다리와 지렛대를 이용해 야밤에 석가탑을 들쑤시다 불국사 새벽 종소리에 놀라 달아났다고 했다. 석가탑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범인들이 미처 손을 대지 못한 2층 탑신 내부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 은으로 만든 사리함같은 국보급 문화재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일본이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본이라고 주장하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함산의 새벽을 여는 불국사 종소리가 조금만 늦게 울렸더라면, 다른 탑처럼 석가탑도 사리함을 맨 아래 1층 탑신에 모셨더라면…. 돈에 눈이 어두운 도굴범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석가탑 해체 작업이 하루아침에 석가탑의 가치를 더 높여주었다.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린다. '그림자 없는 탑'이란 뜻이다. 백제의 아사녀는 석가탑 다보탑을 세우기 위해 신라에 불려간 남편 아사달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직접 경주를 찾아온다. 날마다 불국사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는 들어갈 수가 없단다. 가까운 연못에서 탑이 빨리 다 올라가 모습을 비치기를 지극 정성 빌지만 탑은 끝내 비치지 않는다. 아사녀는 상심 끝에 연못에 몸을 던진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아사달은 연못 옆 바위에 아내의 얼굴을 새기고 자신도 몸을 던진다. 석가탑이 무수한 전란과 일제의 문화재 약탈, 도굴에도 그 안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어서일까.

▶석가탑이 대대적인 해체·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1000년 만의 본격적 해체인 만큼 이번에는 탑의 밑바닥도 파보게 된다. 다른 신라 석탑처럼 불상이나 귀걸이 팔찌같은 보물이 나올 수 있을까? 팔순의 정영호 박사는 "가능성은 반반"이라면서도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8/2012092801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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