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침묵의 봄'은 환경주의 이념을 고취하며 세계 곳곳에 환경보호 운동을 불러일으켜 이른바 생태학의 시대(Age of Ecology)를 열어젖힌 책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책의 사회적 영향을 1852년에 출간되어 남북전쟁과 노예제도 폐지를 불러온 해리엇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비견한다. 1970년 미국 정부에 환경보호국(EPA)이 만들어진 것과 1992년에 도출된 '리우 선언'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이 책 덕택이다.
활활 타는 불에는 어김없이 날파리들이 꾀는 법. 50년이 지난 오늘도 이 책에 대한 구시렁거림은 끊이지 않는다. 비판자들은 이 책이 DDT 사용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이 주장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과연 카슨의 책을 읽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화학 살충제의 사용을 무조건 중지하라고 쓰지 않았다. 다만 화학 살충제의 남용이 훨씬 더 큰 생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태학적 원리를 설명했을 뿐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관광도시 클리어 레이크(Clear Lake)의 주민은 1949년 실제로 물지는 않지만 매우 성가시게 구는 날파리를 없애달라는 관광객들의 요구에 못 이겨 DDT보다 독성이 약한 DDD를 소량(0.02ppm) 호수에 살포한다. 그러나 잠시 반짝 효과가 있었을 뿐 2년 뒤 날파리가 더 극성을 부리자 주민은 매년 농도를 조금씩 올려가며 DDD를 뿌려댔다. 그러자 1954년 수많은 논병아리가 죽어나갔고 그들의 조직에 DDD가 무려 1600ppm이나 농축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현상을 생태학에서는 먹이사슬을 따라 독성이 축적되어 인간을 비롯한 최종소비자들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게 되는 '생물농축'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그 사라지는 생명 속에 인간이 있다. 카슨의 가르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절하다. 이제 막 대학의 문을 나서려는 젊음에게 묻는다. 지구의 생명을 되살리는 일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겠는가? 생태학과 에코과학이 꿈 많고 능력 있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1/20121001008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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