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를 넘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자살률 1위, 합계출산율 34위와 같이 부끄러운 지표들도 있다. 살기도 싫고 아이 낳기도 싫다는 것은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불안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불안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대선주자들이 공통적으로 들고나오는 것이 일자리, 복지, 경제민주화지만 이 문제들에 대한 처방을 들어봐도 국민의 근심 걱정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불안요소에 대해 대선후보들이 제대로 된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중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경제 문제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세계경제가 순항해야 안심할 수 있는데 글로벌 리스크가 심상치 않다. 2008년 금융위기가 여전히 진행형인 가운데,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해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올해는 경제침체로 신음하고 있다. 미국의 달러화 양적완화 방침으로 주식시장이 잠시 반등 기미가 있었지만 약효가 오래갈 것 같지 않다. 1929년의 대공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경제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세계 금융위기와 국내 경기침체
국내 사정은 더 심각하다. 버블 세븐 지역부터 시작된 부동산 가격 하락이 가계부채 문제를 촉발하고 있고 정부가 백방으로 노력해도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성장률은 2%대로 하락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과 경기침체가 20여 년 전 일본의 버블 붕괴에 이은 장기 경제침체 현상을 닮았다.
한반도의 주변 사정도 긴박하다. 최근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물대포 싸움을 벌인다. 일본은 엄연히 우리 영토인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의 이어도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자원전쟁’이라는 책을 집필한 일본의 시바타 아키오 소장은 최근의 자원 가격 상승은 석유와 석탄 등 지하자원에 의존한 20세기형 성장모델에 한계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지적했다.
춘하추동 날씨 변화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볼라벤 덴빈 산바에 이어 제17호 태풍 즐라왓이 예상과 달리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 한다. 지난겨울엔 이상한파, 올여름엔 가뭄을 동반한 이상고온 등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날씨 변화는 지구온난화가 가져오고 있는 또 하나의 리스크다.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물 부족이나 식량안보와 관련된 우려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1980년대 말 분출했던 노사갈등 이상의 계층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서 불평등한 배분 상태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현상으로 요약되는 인구변화 리스크는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민족분단 리스크가 있다. 핵실험, 미사일 시위는 60년간의 경제적 번영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초대형 리스크다. 남북 분단이 종식돼 통일이 온다 해도 해결해야 할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경제침체, 버블 붕괴, 자원전쟁, 기후변화, 계층 갈등, 인구변화, 분단 대치 등과 같이 국가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7대 리스크로 미래를 호언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은 이러한 리스크를 극복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적어도 7대 리스크와 같이 국가 안위와 관련된 리스크에 대해서 지도자는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200년 동안 서구 사회는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고 한국은 이를 단 60년 만에 따라잡았다. 7000년 인류 역사를 반추해 보면 200년은 짧고 유한하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이 망하리라고는 그 당시에 아무도 예견하지 못하였듯이 영원한 문명도 영원한 국가도 없었다. 미래 리스크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국가와 민족은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예외 없이 무너졌다.
미래 대비 못하면 무너진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유럽 각국은 단기적 현안에 대해서는 때때로 미흡하게 대처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국가 미래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비했다. 그러나 과거 수치스러운 역사적 순간에 우리 지도자들은 근시안적 시각으로 눈앞의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음을 본다. 2050년, 그리고 2100년, 3000년이 되는 미래의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국민과 지도자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끄럽지 않은 선조가 되기 위해서 현재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통찰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하 객원논설위원·순천향대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0928/49737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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