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39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을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읽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구독한다." WSJ가 미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만큼 이 신문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주(主)독자층이라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문이다.

지난달 말 WSJ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인터뷰가 실렸다.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시작된 한일 외교 갈등이 비등점을 찍을 때였다. 노다는 당시 "일본군위안부(성노예)에 대한 배상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났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새로운 배상(new compensation)'을 요구했다는 표현도 세 번 등장한다. 마치 한국이 배상금을 받은 후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 것이다.

노다의 이 '망언(妄言) 인터뷰'에 우리 정부가 대응한 것이라곤 딱 한 가지였다. 외교부 당국자가 청사 1층 기자실로 내려와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당시에 이 사안은 토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WSJ의 노다 인터뷰를 읽은 외국 독자들이 이 브리핑을 접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국 기자들을 상대로 반박 브리핑을 한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분위기였다.

2년 전에는 NYT 지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그해 11월 NYT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남북한 간의) 경계선(서해북방한계선·NLL을 의미)을 다시 그을 직권(職權)이 있다"고 주장하는 칼럼이 실렸다. 한국의 좌파가 자주 인용해 온 셀리그 해리슨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글이었다. 같은 해 8월엔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NYT를 통해 천안함 폭침(爆沈) 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외교부는 당시 "이 매체에 반론(反論) 게재를 요청하고,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외국의 주요 언론 매체가 또 한국과 관련한 왜곡 보도를 하고 우리 정부는 '뒷북'을 칠 확률이 100%에 가깝다. 정부 내에서 외국 언론에 대응하는 주체는 외교부와 문화부 산하의 해외문화홍보원으로 이원화돼 있다. 외국 언론 논조 분석은 해외문화홍보원이, 중요한 정무 사안은 외교부가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감한 현안과 관련한 유기적인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한일 갈등처럼 폭발력이 큰 사안이 튀어나올 때 우리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는 기능은 말할 수 없이 취약하다. 최근엔 해외 공관이 한국 홍보를 문화 행사 개최와 동일시하는 경향도 늘고 있다. 일부 공관장은 한류(韓流) 관련 행사 개최에 주력해 인사 고과(考課)를 높이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문화 외교도 좋지만 해외 홍보 정책의 기본은 외국의 정부와 국민에게 우리나라의 입장과 정책을 정확하고 빠르게 알리는 것이다. 해외 홍보 담당 부서를 통합하고 관련 정책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 다른 어떤 정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18대 대선주자들은 알고 있을까.

 

 

이하원 정치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5/2012101502863.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