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출소 공격했던 중장비 기사, '내 차만 불법주차 딱지 끊었다'
그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지만 법 집행 과정 불공정해 보이면
사람들은 결코 승복하지 못해… 관청 일처리 불만, 이것뿐일까
지난달 중순 어느 날 밤 경남 진주시에서 만취한 40대 중장비 기사가 굴착기를 몰고 파출소로 돌진해 와서 난동을 부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람은 굴착기 삽으로 경찰 순찰차를 내리찍은 뒤 거꾸로 들어올려 파출소 건물 벽면에 여러 차례 내던졌다. 순찰차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났고 파출소 벽도 파손됐다. 이 사람의 난동으로 파출소 현관문과 파출소 옆 가로등, 가로수, 버스 정류장 표시대, 도로 표지판도 부서졌다. 40여분간의 난동은 이 사람이 경찰이 쏜 총알에 허벅지를 맞고서야 끝났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된 이 광경을 보면서 "그 양반 참 성질 한번 대단하군" 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파출소에 얼마나 억울한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고 의아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점이 궁금했다. 이 사람의 가족이 방송기자에게 한 말 한마디가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진주시에서 나온 불법주차 단속원이) 우리 차만 (딱지) 끊었어요. 다른 사람들 것은 안 끊고, 다 빼고…."
경찰에 따르면 이 사람은 진주시청 주차 단속원의 불법주차 단속에 걸려 딱지를 떼였다. 그는 시청으로 찾아가 항의하다 주차 단속원을 폭행하고 이를 제지하던 청원경찰의 팔을 물어뜯었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파출소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풀려난 그 사람은 몇 시간 뒤 조사받은 파출소로 찾아와 난동을 부린 것이다. 이 사람은 다른 차들도 불법주차돼 있었는데 그것들은 놔두고 자기 차만 단속해서 불공정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또 관청의 불공정에 항의하다 시비가 붙어서 일이 터졌는데 시비가 벌어진 원인은 놔두고 그 결과만 문제 삼는 경찰 역시 불공정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단속 공무원이 정말로 불공정하게 주차 단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이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단속이 불공정했다고 하더라도 단속 공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경찰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파출소를 때려 부수는 걸 용납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은 관청의 법 집행 과정이 공정하게 보이지 않으면 당사자는 그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미국 교수들이 1984년 경찰 조사를 받았거나 법원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 시카고 시민 1575명을 상대로 어떤 경우에 경찰이나 법원의 조치에 승복하게 되는지를 조사했다. '결과가 나한테 유리하게 나왔을 때'보다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됐을 때'라고 답한 사람이 두 배나 됐다. 어떤 때 절차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묻자 '경찰관이나 판사가 내게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을 때'와 '경찰관이나 판사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중립을 지키려 하고, 나의 권리와 인격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일 때'라고 답했다. 교수들은 조사 결과에 이런 해석을 달았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법 집행자의 행동이 이 감각에 맞는다고 느껴야 법과 법 집행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승복한다."
주차 단속반원들이 굴착기 기사가 '왜 다른 차는 놔두고 내 차만 단속하느냐'고 항의했을 때 그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줬다면, 파출소 경찰관이 이 사람을 조사하면서 왜 단속 공무원을 폭행하게 됐는지, 무얼 억울해하는지 충분히 듣고 그럼에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걸 납득시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시청·경찰·검찰·법원·국세청 등 관청의 일처리 방식에 불만을 느꼈던 사람은 이 굴착기 기사만이 아닐 것이다.
김낭기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5/20121015028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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