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부고를 받았다. 그와 나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장례식장에 가야 했지만 망설여졌다. 그 장례식장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 종일 망설이다, 마지막은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갔을 때 녀석이 나에게 남긴 말이 귀를 맴돌았다. "형 졸업식에 꽃 들고 찾아가야 하는데."
그를 만난 것은 군대에서였다. 나의 후임병이었다. 묘한 친구였다. 한 선임병은 그의 몸에서는 사과 풋 향이 난다고 했다. 생긴 것도 장난스럽게 생겼고 하는 짓도 아주 귀여웠다. 그 바람에 그는 많은 선임병들에게 희롱을 당했다. 안고 뺨을 부비고 냄새를 킁킁대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십년 전에는 이런 희롱을 당하더라도 후임병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어쩔 줄 몰라 볼멘소리로 "하지마시란 말입니다"만 반복했다.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군대에서는 없었다. 그러다 그가 화장실에서 '바위처럼'이라는 민중가요를 흥얼거리다 나한테 딱 걸렸다. 쓱 옆으로 다가가 "너 운동권이지?"라고 물었다. 녀석은 "아닙니다!"며 화들짝 놀랐다. "아니긴 뭐가 아냐 임마. 그거 '바위처럼'이잖아." 녀석은 경계를 다 풀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이 노래 아십니까?" 하하하. "당연히 알지. 임마. 나도 운동권이었거든." 그리고 녀석과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별로 말을 나눌 사람이 없던 터라 온갖 이야기를 하며 몰래 술도 마시며 어울려 다녔다.
그러다 녀석과 내가 더욱 각별해진 것은 1996년 연세대 사태 때였다. 부산에서 여전히 학생운동을 하던 녀석도 올라왔다. 서로 반가워하며 밖에서 만나 잠시 술을 마시는 와중에 연세대가 봉쇄됐다. 녀석은 오도 가도 못하게 됐고 연세대 사태가 진행되던 우리 집에 숨어있었다. 매일 헬기 소리를 듣고 그의 친구도, 내 동료들도 잡혀가는 것을 TV로 지켜봐야했다. 큰 상처였다. 이 상처에 대한 공유는 우리를 더욱 각별한 사이로 만들었다. 내가 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울산에 내려갈 때마다 만났고 서로를 격려하고 삶을 나눴다.
그러나 그의 빈소에서 그와 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의 가족을 만난 것은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머니를 만난 딱 한번이 전부였다. 그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를 내서 경찰서에 끌려갔던 이야기며, 몸무게가 급속도로 늘어서 부인이 된 여자 친구한테 살이 더 찌면 헤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는 말도 킬킬거리며 했지만 정작 그의 가족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유족들에게 조문하며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의 가족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나를 알리는 없었다. 길게 설명했으면 그들도 내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겠지만 거기서 그럴 수도 없었다. 더듬거리며 몇 마디로 나를 소개했지만 어쨌든 나는 쌩뚱 맞은 사람이었고 유족들도 뜬금없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나의 슬픔과 유족들의 고통이 만날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오면서 사람의 관계는 나와 너, 둘 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현 듯 깨달았다. 그와 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제3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내 존재는 무화되었다. 그러면서 왜 성소수자들이 결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건 흔히 오해하듯 결혼이라는 이성애적 질서에 그들이 편입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최소한 세 명이 모여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이 세 번째 존재가 없다면 나머지 둘은 아직 인간이 아닌 것이다. 성소수자들에게 결혼이란 바로 자신들의 존재를 보증하고 기억하는 이 세 번째를 얻고자 하는 그런 투쟁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들의 투쟁에 이성애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 그 이유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애자들은 성소수자의 투쟁에서 배워야한다. 그들이 잃어가고 있는 세 번째의 의미를 말이다. 이미 우리는 삶의 전 영역에서 세 번째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오로지 둘만 남는, 그런 해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31210048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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