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들어왔던 바로는, 근세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나쁜 일들 대부분은 일본의 제국주의 때문이다. 조선 땅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것도 일본 포수들 때문이라 들었다. 그러나 호랑이가 멸종된 것은 인간의 포획 때문만은 아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얘기겠지만 지금 깊은 산속에 호랑이를 풀어놓아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노력을 들였지만 아직도 반달곰 개체군 복원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이렇게 큰 야생동물의 복원이 쉽지 않은 것은 포획보다는 그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서식지란 넓은 공간보다는 에너지의 문제를 의미한다.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자연 내에서 흘러가는 에너지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다. 태양에서 들어온 빛에너지 대부분은 그냥 흘러지나가고 아주 작은 부분만이 식물을 통해 화학에너지로 변환된다. 즉 식물이 빛 에너지를 붙잡아 다른 생물이 이용하고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식물체를 먹고 사는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이 있고, 이것은 더 큰 생물에게 먹히면서, 소위 '먹이사슬' 혹은 이것이 복잡하게 얽힌 '먹이망'이 구성된다. 그리고 그 가장 위에 호랑이와 같은 동물이 위치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강조하는 바와 달리, 사실 생태학자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동물들의 식성이나 식탐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이런 먹이 단계를 통해 이동하는지 이다.
초기에 먹이사슬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생물의 수와 양에 관심을 두었다. 과학시간에 가르치는 '먹이피라미드'와 같은 것이다. 즉 식물체의 양이 가장 많고 먹이 단계 위로 올라갈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모양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 영국의 생태학자 챨스 엘톤이 발견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후에 생물의 양보다는 이들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를 파악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분석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어떠한 생태계든 식물에서 초식동물, 육식동물로 먹이 단계가 올라갈수록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통 한 단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약 10%의 에너지만이 남게 된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200㎏의 호랑이 한 마리가 생존하려면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은 적어도 2톤 이상 존재해야 하며, 또 초식동물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20톤 이상 존재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을 아주 단순화해서 설명한 것이고, 실제로는 훨씬 많은 식물이 필요하다. 즉 멸종 위기 동물의 복원을 위해선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넓은 숲과 풀이 필요하다. 호랑이는 숲을 호령하는 백수의 왕이 아니라 사실은 식물들의 광합성량에 의존하는 존재란 말이다.
나는 생태계의 먹이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이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떠올린다. 물론 인간의 정치체계가 생태계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직도 정보 전달과 의사소통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층적인 망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이런 측면에서 생태계의 먹이망은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에 대한 좋은 유비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마치 나라의 모든 문제를 지시 한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세주나 봉건 제왕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다. 그러나 많은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경험을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통령이 모든 사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렸으면 한다. 수많은 상충되는 의견을 어찌 모두 반영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밑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정보를 잘 듣고 이를 소화할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통령 일인 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람들, 생태계로 비유하자면 주변의 초식동물들을 잘 살펴야 한다. 대통령의 성품과 관계없이, 주변에 부정한 인물들이 보인다면 그 시스템은 부패한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호랑이가 백수의 왕이 아니라 이름 없는 풀들의 에너지에 의존해야 하듯, 대통령은 국민의 왕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국민의 에너지와 정보에 근거해야만 존재가 확보되는 대상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대통령은 아직도 복원의 대상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9/h201209232103511217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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