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0:59

얼마 전 아침 운전 부주의로 추돌 사고를 냈다. 내가 뒤에서 들이받은 차는 택시였다. 택시 뒷자리에는 손님이 타고 있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접촉 사고는 있어왔지만 대부분 예의 바른 사과를 주고받고 넘어갈 정도로 경미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손님은 목을 부여잡고 고통과 원망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황하고 있는 내게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빨리 보험사에 전화를 하라고 재촉을 했다. 결국 운전 경력 3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사에 사고 신고를 해야 했다.

오후가 되어 나는 손님과 기사 아저씨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손님은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큰 이상은 없지만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내가 사람을 다치게 했구나. 기사 아저씨는 아무래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원이라니. 또 다시 자책감이 밀려왔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대답은 한결 같았다.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내가 두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누구는 말했다. 자꾸 전화해서 괜찮은지 묻지 말라고. 그럼 만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또 다른 누구는 말했다. 한번쯤은 전화하는 게 좋다고. 안 그러면 괘씸하게 생각한다고. 모두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택시를 탔다. 조심스레 기사 아저씨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택시 기사들은 부상 정도와 상관없이 대부분 입원을 해요. 기사들이 무슨 대단한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니에요. 보험금이 나오니까요. 보험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관행이에요. 입원을 안 하면 동료들한테 면박을 받기도 해요. 손님도 나중에 사고를 당해 봐요. 입원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어요. 이번에는 줬으니 나중에는 받는 겁니다. 보험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거죠."

나는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 때문에 다친 손님은 지금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목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닐까? 기사 아저씨는 입원을 했을까? 잠자리가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는 건 아닐까? 내일 안부 문자나 전화를 해볼까? 그렇게 하면 너무 지나치게 착한 척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온갖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겐 마음을 달래주는 천사가 있었다. 그 천사가 내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염려 마요. 내가 있잖아요. 당신의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줄게요. 그러니 안심하고 어서 자요." 물론 그 천사의 이름은 바로 보험이었다.

보험으로 사고 처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험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런데 보험은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킴으로써 안심시킨다. 보험이 손해를 배상하고 피해를 보상해준다. 만약 보험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보험금을 주고받는 화폐관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보험의 화폐관계는 무엇보다 '마음'을 배제한다. 아니 마음까지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계산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바라보게 하는 보험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죄를 주고받고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태에서조차 자신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이익을 최대한 늘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보험은 천사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이다! 내가 보험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나의 친구는 자기가 겪은, 나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보험과 관련된 시련을 이야기해주었다. 보험을 충분히 완전하게 들지 않아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였다. 결론은 보험은 무조건 종합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보험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를 만든 주범은 바로 보험이다. 보험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보험은 신이다. 이 세상은 보험의 뜻대로, 보험이 보시기에 참 좋게 만들어진 세상이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0321025181920.htm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