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직하고 있는 부개동성당의 교적부에 올라 있는 신도 수는 정확히 5796명이다. 주일에는 이들이 모두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규율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부턴가 미사 참례자 수가 점점 줄어 요즘엔 전체 신도의 4분의 1이 될까 말까 한다. 교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가르친다. 미사에 참례하는 수로만 본다면 아기들과 환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제외하더라도 전체 신도의 반 이상이 죄인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는 아예 교회를 떠났거나 오랜 기간 쉬는 분들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더러 빠지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가톨릭교리서가 교회를 ‘죄인들의 집단’이라 정의한다 하더라도, 주일 미사 몇 번 빠졌다고 다수의 선량한 신도들에게 고해성사를 종용하는 것은 융통성 없는 율법주의의 소산이라고, 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부개동성당의 관할구역은 성당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에 오래된 연립주택과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가장자리에 고층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네모난 지형이다. 대도시 변두리가 대부분 그렇듯 우리 동네도 인구는 많지만 면적은 넓지 않아 가장 먼 아파트에서 성당까지 걸어서 20분이면 족하다. 지난 1월 내가 이 성당에 부임하자마자 구석구석 걸어다니며 직접 확인한 바다. 이런 인구밀집지역에 주일 미사 시간이면 성당 앞 300평쯤 되는 주차장(신도들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는)은 자동차들이 빽빽하고 골목길은 차 한 대 비켜갈 만큼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신도들과 주민들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추위가 가시자 나는 신도들을 상대로 적어도 성당에만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잠시 반짝했을 뿐, 기대와 달리 지속적인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하기야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나.
성당에 올 때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자동차를 버리라는 건 억지다. 가까운 거리라도 불가피하게 차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어디 한두번인가? 나는 자동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 승용차를 가지고 있고 가끔은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신체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한 우리 신도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미사에 오는 것을 보면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엎드리면 코 닿는데 꼭 차를 타야 하는 그들의 심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들은 오늘 아침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성당에 가서 무엇을 기도하자고 했을까? 이런 나를 보고 도대체 자동차와 신앙이 무슨 관계냐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고리타분한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신도들 다 잃는다고 충고하고픈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예수의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이나 불이익 또는 희생을 못견뎌하면서 그분을 따를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실천 없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녀 출신 신학자 캐런 암스트롱의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굳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들먹이지 않아도 10분만 걸으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를 차를 타고 오는 신앙은 엉터리요 거짓이다. 정치·경제·사회의 민주화를 바라면서 독재자의 자식으로, 독재자 곁에서, 독재를 체득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을 선택하는 이상야릇한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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