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로 세계를 석권한 싸이를 외교부가 독도 홍보대사로 임명해 '독도스타일'제작을 의뢰한다고 최근 몇몇 매체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싸이는 열흘 전 귀국회견에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요청 받은 게 없어 (작업을) 생각해본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방침이란 "싸이를 독도 홍보대사로 위촉하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은 외교부 관계자가 "검토해보겠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외교부가 적극적인 것처럼 보도함에 따라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독도문제만 나오면 들끓는 우리 사회의 '스타일'이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뭐라고 답변해야 했을까? 독도 수호를 위해 바람직한 제안이라고 말했어야 하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부적절하다고 일축했어야 하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검토해보겠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대답한 사람보다 그렇게 묻고 그렇게 보도한 기자가 문제다.
런던올림픽 축구 한일전이 끝난 뒤 박종우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씌어 있는 종이와 태극기를 들고 그라운드를 누빈 게 문제가 됐다. 그때 박종우는 관중이 준 종이를 받지 말고 정치의 스포츠 개입을 규제하는 IOC규약에 맞춰 독도 세레모니를 거부했어야 하나? 하지만 그 상황에서 선수에게 자제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준 사람이 문제다.
한국인들은 독도를 비롯한 일본문제만 나오면 여지없이 흥분하고, '정답'이 아닌 말을 하면 따돌리거나 몰매를 때린다. 박종우의 독도 세레모니도 뭐가 잘못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은 양심도 없고 반성할 줄 모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인가 보다.
한국인들은 어느새 일본을 하찮은 나라, 경쟁력과 희망이 없는 나라, 정국이 불안정하고 재난이 끊이지 않을 만큼 하늘도 돕지 않는 나라라고 깔보게 된 것 같다. 그게 잘못이며 착각이라는 것은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나 유구한 문화전통과 유산, 한일 경제관계의 속살, 일본 지성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일본이 특정 문제에 대해 한 목소리로 국익을 주장하는 단원적 사회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된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를 비롯한 지식인 1,300명이 최근 정부 비판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이며 식민지 지배과정의 침탈이었다는 역사적 인식을 상기시켰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도 신문 기고를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이 확산되는 시점에 일본 정부가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일본은 가해자요, 우리는 피해자이므로 처지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 누군가가 이런 반론과 자아비판을 한다면 용납될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적 편향성이 심한 사회에서 그런 사람은 발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 대한 조치나 투쟁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앉게 한 소녀상이다. 그 소녀상은 뜯긴 머리카락, 꼭 쥔 손, 땅에 딛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 어깨 위의 작은 새, 그 자신이지만 이미 등이 굽은 할머니의 그림자, 소녀 옆의 빈 의자, 이런 것들로 인해 볼수록 가슴이 아프고 강렬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소녀는 그런 모습으로 말없이 일본을 응시ㆍ주시하고 있다. 놀랄 만한 예술작품이다.
문화와 예술로 싸워야 한다. 민간의 자생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일본을 이겨야 한다. '강남스타일'이 성공한 것은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한, 열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특정 목적에 동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이미 저력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 돈만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게 아니다. 문화의 힘은 더욱 더 그렇다.
임철순 논설고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0421012381940.htm
'교양있는삶 > 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49>‘아레테’를 원하는가? (0) | 2012.12.26 |
---|---|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화천스타일 ! (0) | 2012.12.26 |
[인사이드 코리아/브래드 벅월터]한국인의 뜨거운 야구사랑 (0) | 2012.12.26 |
[횡설수설/고미석]예술로 도시 살리기 (0) | 2012.12.26 |
[삶의 향기] 낭비하는 삶과 지속가능한 삶 (0) | 2012.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