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력 수급이 빠듯한 여름과 겨울이면 웃기는 일이 벌어진다. 한전이 포스코·GS·SK처럼 자체 발전회사를 갖춘 기업을 독려해 비싼 값에 전기를 사들인다. 대신 이들은 한전의 싼 산업용 전기를 쓴다. 이런 기형적 구조를 틈타 세 그룹은 최근 3년간 3007억~1690억원씩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한전은 거액의 적자를 뒤집어쓰면서 서민들에게 전기료를 거둬 대기업에 보조금을 준 셈이다. 하루 빨리 대형 발전소를 지어도 모자랄 판이다.
남동발전의 장도수 사장은 지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간신히 여름을 넘기니 영흥도의 7, 8호기 건설이 기다린다. 값싼 유연탄을 때는 80만㎾짜리 2기의 이 대형 발전소가 세워져야 4~5년 뒤 전력난에 버틸 수 있다. LNG발전보다 연간 1조200억원을 아껴 전기요금을 2.6% 인하하는 효과는 덤이다. 하지만 아무리 섬에 세워도 수도권 대기배출총량 규제와 사용 연료 협의가 순탄하지 않다. 영흥도의 행정구역이 경기도 옹진군에서 인천시로 바뀌면서 협상이 한층 까다로워졌다.
여름철 영흥도에는 중국을 향하는 남동풍이 분다. 겨울의 북서풍에는 인천이 아니라 경기 남부로 연기가 흩어진다. 하지만 남동발전이 가장 신경쓰는 쪽은 인천시다. 인천시의 재정상태가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천의 수많은 단체까지 은근히 눈치를 준다. 장 사장은 “협의를 이달 말까지 끝내야 2014년 착공하는데 우군(友軍)이 없다”며 쓴맛을 다셨다. 한국 전력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그콘서트다.
우리 사회는 재래시장·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게 정의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난 5월 시작된 대형마트·SSM(기업형 수퍼마켓)의 강제휴무의 중간 성적표를 보자. 국정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대형마트 매출은 두 자릿수 감소했다. 그렇다면 재래시장은 되살아났을까. 오히려 매출액이 0.7~1.6% 뒷걸음쳤다. 대신 대형마트에서 2933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그중 93.5%가 비정규직이었다. 유탄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튄 것이다.
반사이익은 엉뚱한 쪽이 챙겼다. 우선 10억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 수퍼마켓들이 풍선효과를 독식했다. 온라인 쇼핑도 수혜자다. 이마트·롯데마트 등은 올해 규제가 덜한 온라인 매출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울 계획이다. 배송 차량을 늘리고 배송 최저 금액은 1만원으로 낮추었다. 신용카드 번호 대신 원(one) 클릭 결제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최근 대형 할인점 온라인 방문자가 급증하고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런데도 서울시의 코스트코 때려잡기가 한창이다. 정치권·정부·지자체가 합동으로 개그콘서트를 하는 셈이다.
낡은 대립구도로 우리 경제를 재단하면 부작용만 낳는다. 조명산업의 쓰라린 경험을 되새겼으면 한다. 전두환 정부는 형광등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했다. 그 후 30여 년간 국내 시장은 필립스·GE·오스람 등 외국 기업이 독차지했다. 정책 실패라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넘어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구분까지 모호해진 세상이다. 한때 토종 강자였던 번개표 형광등은 전량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다. 반면에 외국 기업인 오스람은 안산공장에 300여 명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형광등을 만든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일까.
어느새 우리 경제의 생태계는 매우 다원화되고 복잡해졌다. 더 이상 ‘자동판매기식 대응’은 통하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만 잡으면 학생들이 자동으로 공부하고, 야한 동영상만 막으면 성범죄가 줄고, 교실 창문을 작게 하면 학생 자살이 사라질 것이란 환상은 착각이다. 뉴욕대의 요시노 겐지 교수는 “정의를 꿈꾸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현실을 망각한 정의는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시대 흐름과 시장 원리에 벗어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개그콘서트는 일요일 밤에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언제까지 편을 갈라 “브라우니, 석탄 발전소 물어! 대형마트 물어! 외국 기업 물어!”만 반복할 것인지….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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