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오닐은 골드만삭스 자금투자관리의 회장이다. 그의 발언은 막강한 영향력이 있으며, 그는 브릭스(BRICs)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넥스트(NEXT)-11(N-11)”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브릭스 다음으로 성장잠재력이 있는 11개 나라로 한국, 멕시코, 터키 등을 뽑았다.
그가 지난 5월, 한국을 “전세계가 열망하는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른바 ‘골드만삭스의 성장환경점수’에 따르면 한국이 183개국 중에서 4위를 차지한 것. 오닐은 브릭스와 N-11 국가들은 한국을 열심히 연구하고 특히 한국의 G7에 근접하는 소득수준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언론 및 전문가들의 눈길을 끌었고 꽤 회자되었다. 음, 그로 인해 최근 한국의 신용등급이 A+로 상승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정부가 알면 희희낙락했을 이 인터뷰는, 그러나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여기엔 다음 얘기가 있다.
짐 오닐은 한 달 뒤 참석한 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후한 평가와 관련해 신랄한 비판에 직면한다. 한 참석자는 한국은 아주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데 어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다. 오닐은 이후 자신의 글에 이 대화를 거론하면서, “이 말에 이견을 달기는 어려웠다”며, 하지만 “물론 모든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들이 열망할 만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폈다.
근데 의문이 든다. 과연 그가 말하는 그 모든 성과들과 높은 자살률은 과연 분리될 수 있는 것일까. 자살률만은 닮지 않고, 다른 모든 성과만 카피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사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패키지’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한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수가 매일 42.6명인 나라(2010년 통계).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그중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단연 자살(13%)이며, 10만명당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노인은 10만명당 81.9명으로 일본(17.9명), 미국(14.5명)과 비교가 안 된다. 입시지옥과 경쟁사회에 지친 청소년들은 죽음을 택하고, 고립과 가난에 지친 노인들도 자살을 택한다.
나아가 빈곤과 정리해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거나 죽는 나라.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부른 스물세명의 죽음. 정리해고는 ‘사회적 학살’이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사람이 죽어나가도 여전히 정리해고 조항의 철폐는 요원하다. 또한 빈곤의 문제. 서울 시내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100일 동안 6명이 죽는 자살 행렬을 보여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부양의무제’라는 장애인 복지의 최대 독소조항 때문에, 아들의 장애인 혜택을 위해 그 아버지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
결국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제도가 부른 참극이다. 이 사회의 형상과 분리될 수 없다. 높은 경제성장률, 높은 성장 잠재력, 가장 빠른 경제성장 속도 등 오닐의 ‘성장환경점수’의 항목들은 모두 한국인들을 자살로 몰아붙이는 ‘죽음의 환경’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수출이 1600억달러에서 3700억달러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배가되고, 주가가 3배 올라도 자살률은 줄지 않았다. 이 화려한 숫자가 얼마나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음흉한지 우리는 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 딱 한 가지인 높은 자살률은 바로 이런 성장일변도 경제개발전략의 패키지 중 일부다. 우리는 계속 이런 허위의 숫자 공화국에서 살고 싶은가? 이렇게 자살을 부르는 사회정치경제체제를 용인할 것인가?
권영숙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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