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36

정교한 DB 통해 여행 상품 개발… 영화 관람객 파악, 빵 주문도 예측…
방대한 분량의 정부기관 DB는 상업 활용 못해서 쌓아놓고 방치돼

 
지난 5월 웹 트래픽 동향과 전화 상담 내용을 분석하는 롯데관광 IT 지원팀은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주로 법인의 골프 여행이 많았던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섬에 대해 개인의 리조트 문의가 부쩍 늘어난 것이었다. 이 회사는 바로 6~8월의 이 지역 여행 상품을 대거 개발해서 출시했고, 개인 여행자를 위한 여객기 좌석을 대량 확보했다. 이 회사는 또 2003년부터 쌓아놓은 조회·예약 수천만 건의 데이터베이스(DB) 분석을 통해서 출발 1개월 전쯤 관심 여행지를 웹사이트에서 반복 검색하고, 2주 전쯤 전화로 상담하며, 출발 10~7일 전에 계약하는 국내 여행객들의 패턴을 알고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상담객의 행동 패턴을 알고 있었기에 전화 문의가 몰릴 시점엔 이미 상품 안내 문구까지 새로 마련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잘 갖춰진 DB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12일 경기도 구리시는 섭씨 7~23도의 기온에 아주 맑은 날씨가 예상된다. 이곳 파리바게뜨 가게의 11일 모니터엔 '내일' 최근 2주치 평균보다 판매 변동 폭이 제일 큰 제품군(群)으로 케이크 종류(+34%)가 떴고, 이 중 치즈·고구마·블루베리 요거트 케이크 등 세 제품이 추천됐다. 이 지역 빵집 주인들은 이 '예측'을 참고해 본사에 제품을 주문한다. 파리바게뜨는 기상 정보 제공 업체인 케이웨더와 전국 169개 지역의 5년치(4월 말 기준) 제품 판매량과 날씨의 관계를 분석한 DB를 구축해, 6월부터 가맹점에 '날씨판매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한 달 뒤인 7월 매출을 보니, 2010년보다 가게당 평균 30%가 늘었다고 한다. 5년치 DB는 이달 말 다시 업데이트된다.

경기도와 인천 일부의 200만 가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삼천리는 전체 사용량을 99% 정확도로 예측한다. 최근 5년간 도시가스 사용량을 요일, 공휴일 여부, 경기(景氣), 체감기온 등으로 세밀히 분석한 DB를 구축한 덕분이다.

'야한 영화는 남성이 많이 본다'는 속설(俗說)은 최소한 극장에서는 이제 안 통한다. 온라인 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에 따르면, 지난 4월 영화 '은교'의 예매자 중 여성이 71%였다. 2008년 11월 '미인도'도 66%가 여성이었다. 연간 1500만명인 이 사이트의 고객 DB를 분석한 결과다. 이 회사는 어떤 유형의 영화가 어느 나이대, 어느 성별(性別)에서 인기가 있을지 미리 안다.

하지만 이는 자체적으로 DB를 정교하게 구축하고 분석할 능력을 갖춘 기업에나 통하는 얘기다.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정부 기관의 공공 DB는 그 막대한 양(量)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기상·특허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민간 기업에 이를 제공할 법규가 없기 때문이다. 한 의료 정보 사이트 운영자는 "복지부와 식약청, 병원 등에 어마어마한 약품·의료 정보가 있지만 접근이 안 돼 자료 수집에 수천만~수억원씩 이중 투자를 한다"고 말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미 2008년 국가 자본(capital)에 DB 자산을 추가하도록 권고했다. EU(유럽연합)·미국·영국·호주 등은 공공 DB를 민간에 개방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수년 전에 정비했다. 국내에서도 공공 DB를 민간에 개방하면 부가가치가 약 11조원 발생하고, 15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의 한 DB 분석가는 "업데이트 관리가 부실해 활용은커녕 쌓아놓고 방치하는 공공 DB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국회엔 뒤늦게 지난 7월, 김을동 의원의 발의로 관련 법안이 제출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우리 공공 DB는 '잠자는 공룡' 신세다.

 

이철민 디지털뉴스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2764.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