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4. 00:08

1960년 가을, 민주당 대선 후보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미시간대에서 연설했다. 그때 아프리카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벅찬 문제에 허덕이고 있었다. 문맹퇴치와 인적 자본 개발이 시급했다. 케네디는 미시간대 학생들에게 해외로 나가 봉사하라고 촉구했다. 그의 호소로 탄생한 게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다. 미국이 세계에 선사한 가장 훌륭한 선물로 손꼽힌다.

오바마 대통령은 4~6일 워싱턴에서 미국-아프리카 정상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 주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다. 그러나 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민간 기업 프로젝트가 다음 세대를 위한 진정한 투자라고 볼 수 없다. 아프리카의 차세대를 위해 저비용으로 지속적인 변화를 안겨줄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지금 아프리카 경제의 약진은 산업 생산성 제고가 아니라 천연자원 채굴에 의존하고 있다. 아프리카 경제는 아직 천연자원의 초보적 가공이나 내수용 단순 소비재 생산에 머물고 있다.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과 달리 현대 과학기술을 습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보건·에너지·개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학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

과학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개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다. 무기가 생기면 빈곤 척결과 자생적 경제 개발이 가능하다. 과학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것은 임기응변적 구호 처방보다 더 확실하고 더 많은 개발이익을 안겨 주는 지속적 장기 투자다.

아프리카 지도자들도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간기업이 후원하는 연구센터도 속속 문을 열었다. 그러나 혁신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기업·학계 간의 국제적인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미국 국내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STEM 교육 발전을 핵심 정책으로 꾸준히 내세웠으며 예산도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이제는 미국이 과학 중심의 아프리카 어젠다를 수행할 때가 왔다. 미국 고등교육 기관과 과학 연구 센터, 기술혁신형 사업가들을 아프리카 국가와 연계시켜 경제 성장을 지원하고 외국 구호자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과학기술 파트너십이 확대되면 교역이 증가하고 아프리카 시장에서 미국 기업을 위한 기회도 풍부해질 것이다.

과학기술 협력은 중국·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에 대한 미국 대외정책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특히 1959년 이래 미국-이스라엘 과학 협력의 결과로 43개의 노벨상이 나왔다. 미국은 현재 외국 정부와 50여 개의 과학 파트너십 관계를 체결했다. 아프리카 국가는 하나도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미국-아프리카 정상 회의를 계기로 미국의 대(對)아프리카 정책은 과학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새로운 교류·협력을 수립하는 한편 이를 수행할 자원을 새롭게 할당해야 한다.

필요한 재원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디딤돌이 될 만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미 진행 중이다. 미 국제개발처(USAID)의 ‘고등교육 프로젝트’, 미국 학술원의 ‘아프리카 과학 학술원 발전 이니셔티브’, ‘에이즈 구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계획(PEPFAR)’, 파워아프리카(Power Africa) 등이 좋은 예다. 이 중에서도 에이즈 위기와 에너지 부족에 대처하기 위한 PEPFAR와 파워아프리카는 첨단 과학기술 역량이 뒷받침돼 있지만, 개발 구호기관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공여자 중심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계속 바뀌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내 우선순위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제약품이나 태양광 패널처럼 이미 개발이 완료된 제품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대신, 2014~2018년까지 이 두 프로그램에 지원될 300억 달러 예산 중에서 10억 달러를 떼어내면 아프리카를 위한 공동연구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이 기금으로 과학·공학 분야의 차세대 아프리카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게 아프리카 자신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국은 또 앞으로 10년 동안 아프리카의 STEM 전공학생 10만 명을 미 고등교육 기관에서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미국 과학자들이 아프리카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국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개발의 난제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이고, 아프리카의 교육·연구 수준 또한 크게 향상될 것이다.

케네디는 54년 전 미시간대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 중 가나에서 봉사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케네디와 마찬가지로 영감을 주는 젊은 대통령인 오바마는 같은 질문을 미국의 고등교육 기관과 과학계에 던져야 한다. 

은켐 쿰바 미시간대 STEM-아프리카 이니셔티브 간사& 멜빈 P 푸트 ‘아프리카 지지 모임(CFA)’ 회장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8월 1일 게재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44578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2. 3. 23:46

The revolution is over

http://www.economist.com/news/special-report/21628597-after-decades-messianic-fervour-iran-becoming-more-mature-and-modern-country



변화하는 이란


테헤란이나 주변 도시들은 더 서구식을 변해가고있다. 해외 인터넷 접속은 금지 불구하고 접속가능. 교육, 문화 발달함. 중산층 인구 많아지고 청년층 인구 증가. 정치가에게 더이상 종교가 인기있는 주제는 아님. 


하지만 이란의 1979 혁명은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여전히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고, 이란은 주변 국가들과 다르기 때문에 국력으로써 핵프로그램은 여전히 지지를 받고 있다. 


혁명의 3단계 인상깊음

'스페셜 리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도시화 문제점  (0) 2014.12.22
폴란드의 뉴 골든 에이지  (0) 2014.12.12
사이버 보안  (0) 2014.12.11
온라인 광고  (0) 2014.12.08
제 3의 큰 물결  (0) 2014.12.04
Posted by 겟업
2014. 12. 3. 17:22

중국 浮上 관련 따져봐야 할 점은 '세계 지도자로서 역량 갖췄나'
현실은 경제 불평등 심각한 데다 인종·종교로 나뉜 불안정한 제국
美·中 하나를 선택할 필요 없어… 강대국 보호 불가피론 탈피하라



캐사린 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SK-한국교류재단 석좌
캐사린 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SK-한국교류재단 석좌
중국의 정치·군사적 부상(浮上)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안정성을 위협하는가?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반드시 한 나라를 선택해야 하는가? 중국은 정말 순수하게 대한민국과의 우호와 협력에 관심이 있는 걸까, 아니면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것일까? 한·중 간의 이른바 '밀월 관계'는 미국을 불편하게 만드는 건가?

많은 한국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 7월 정상회담 이후 이런 질문들을 부쩍 많이 던지고 있다. 최근 워싱턴을 찾은 한국의 외교정책 담당자들과 언론은 계속해서 미국의 정부 관계자들이나 분석가들에게 같은 질문을 거듭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리고 그 미래가 한국과 동아시아 나아가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고 싶은 거라면 이 질문들은 잘못됐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중국이 거대한 땅덩어리와 인구를 바탕으로 군사 대국으로 부상하고 글로벌한 세계에서 지도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과 정치적 일체감을 갖췄는가'이다. 현 시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내 대답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자랑한 국가들은 상당한 수준의, 그리고 오래가는 군사적 목표를 지원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이 있어야 했다. 국가적 상징과 국익을 위해 국민이 하나 될 수 있게 만드는 정치적 일체감도 필수조건이다. 중국은 아직 강대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첫째 현실은 중국이 아직도 내부 불평등이 심각한 가난한 나라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이다. 세계은행은 2013년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구매력 평가 기준)을 1만1905달러로 평가했고, 세계 185개국 중 84위였다. 세르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순위가 중국보다 높았다. 경제가 몰락한 쿠바도 1만8796달러(60위)로 중국보다 높았다. 중공업 집중, 국내 자본 축적, 뚜렷한 지역 간 임금 격차에 따른 지역적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가장 부유한 세 도시인 톈진·베이징·상하이의 1인당 GDP는 가장 가난한 세 성(省)인 구이저우·간쑤·윈난의 4배에 달한다. 중국의 기적 같은 경제성장은 특히 위험성이 높은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과 지속할 수 없는 인위적인 높은 저축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둘째 현실은 중국이 계속해서 영토적 통합과 중앙집권적 정치 통제를 위협하는 내부 분열에 맞닥뜨릴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는 이미 티베트와 신장에 중국 중앙정부와 대립하면서 자치를 요구하는 인종적·종교적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7월 29일만 해도 중국 당국이 신장 지역 두 곳에서 59명을 총살하는 등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났다. 신장의 면적은 중국 전체 국토의 6분의 1에 달한다. 중국 전체 인구 중 1억명은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졌고, 이들은 통합되지 않고 있다. 소수민족끼리는 완전히 별개다. 문화·언어·경제적 기회와 정치적 권력 등 모든 측면에서 다수인 한족(漢族)에 대해 배타적이다. 데이비드 엘머가 최근 발간한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책 '황제는 저 멀리: 중국의 변방을 가다'를 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은 단일한 민족국가가 아니라 한족과 중앙정부 지배를 거부하고 분노하는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거대한, 통제 불능의, 불안정한 제국'이다. 더욱이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정치적 개혁과 참여에 대한 욕구는 커지고 있다. 영토 분쟁이나 환경 문제 등과 연관된 현안을 둘러싸고 매년 약 3만~5만 건의 '군체성 사건(群�性 事件·Mass Incident)' 또는 지역적 봉기와 시위가 발생한다.

중국이 내부적으로 잠재적인 경제·정치적 불안정이 심하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택해야 하는 가장 현명한 정책은 중국이 계속해서 경제적 성장과 국내 정치적 안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역내(域內)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경제 발전에 몰두할 수 있고 내부 정치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상호 간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한·중 간의 건강한 경제적 경쟁과 협력이 포함된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스마트하고 정치(精緻)한 외교정책을 펼치는 것도 들어간다.

한국의 과제는 과거의 역사와 심리적 경험에 비춰 한국을 지켜줄 강대국이 필요하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중국과 미국 모두가 필요로 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캐서린 문 브루킹스연구소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7/2014081702275.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45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지만 역시 가장 많이 불리는 건 큰애와 작은애의 이름 뒤에 ‘엄마’를 붙인 누구누구의 엄마이다. 몇해 전 소도시의 작은 도서관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내고 온 엄마들을 만났다. 그해는 유독 엄마들의 정체성 찾기가 붐처럼 일어 도서관 안에서도 서로서로 누구 엄마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주자는 약속을 한 듯했다. 누구 엄마로 불리게 되면서 온종일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날이 많다는 푸념 뒤에 오늘만큼은 아이 이야기 빼고 여자와 한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는데 이야기 중 누군가 불쑥 아침에 오이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마 그 기쁨을 모를 거예요. 아이를 낳는 것 같다니까요.” 잠시 뒤 누구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채 몇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누구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세월호 100일 추모식에서 ‘동혁이 엄마’를 보았다. 안산에서 1박2일 동안 걸어 광화문에 도착한 그녀의 둥근 얼굴은 다른 엄마 아빠들과 같이 검게 그을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 속에서 자신을 ‘동혁이 엄마’라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폰 동영상 속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걱정하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혁군이었다. 동혁이 엄마는 “엄마 아빠 사랑해,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말한 아이가 바로 제 아이입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옆에는 오빠가 걱정하던 동생이 같이 서 있었다.


무대 위에 선 동혁이 엄마는 차돌 같았다. 동영상 속에서도 동혁이 엄마는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그녀 옆의 동영상 속에는 2학년 6반 김동협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성기를 거친 티가 남아 있는 목소리로 김동협군은 살고 싶어! 꿈이 있는데! 외쳤다. 침몰 상황을 중계하던 동협군의 영상은 랩을 끝으로 끊어졌다. 동혁이 엄마는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을 봐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엄마로서 그 동영상을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동혁이 엄마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마이크를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말이 자꾸 끊어졌다. 자신이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이토록 많은 군중 앞에 서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녀에게 흘러갔을 지난 100일의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동혁이 엄마로 살았던 시간. 동영상을 보면서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우리 아이들을 저런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는가. 아이들은 그 끝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너희들이 왜 죽어갔는지 엄마 아빠는 끝까지 밝힐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동혁이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부분보다 힘이 실렸다. 하지만 “보고 싶다, 내 새끼”라고 말하면서 결국 흐느끼고 말았다. 누가 동혁이 엄마를 저 위로 올라가게 했나. 불현듯 동혁이 엄마의 둥근 얼굴 위로 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하던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을 잃은 뒤에 평생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많은 엄마 아빠의 삶이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쯤 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애가 고 2예요. 그 애들과 같은 학년이에요, 어떡해요?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로부터 이제 겨우 백여일 지났을 뿐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들만이라도 잊지 않기를…….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이렇듯 소중한 것일 줄, 이토록 책임감으로 무거운 건 줄 몰랐다.


하성란 소설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0404.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39

요즘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테마파크 유니버설스튜디오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 중국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변 호텔은 투숙객이 전년 대비 4배 증가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를 재현한 '해리포터관'을 지난달 연 덕분이다. 외국인이 적어도 100만명 이상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4500억원을 투자한 해리포터관이 앞으로 10년간 오사카 등 인근 지역에 경제 효과 3조엔(약 30조원)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니버설스튜디오 덕분에 오사카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로 급부상했지만, 테마파크 유치와 운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오사카시는 1990년대 공장 해외 이전이 잇따르면서 유휴 토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테마파크 유치를 추진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오사카를 관광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지역 간 유치 경쟁이 붙으면서 오사카시는 시유지와 민간 용지를 저렴하게 장기 임대해주고 25% 지분 출자 등 파격적 지원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1년 개장 이후 매년 관람객이 줄었고, 2004년부터 경영난으로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자금난으로 새로운 시설 투자가 어려워 관람객이 더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테마파크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비난이 쏟아지고 유치 책임론도 나왔다. 당시 나가사키(長崎)의 하우스텐보스 등 테마파크가 잇따라 부도를 내자, 저출산으로 어린이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테마파크는 '몰락 산업'이라는 비관론도 나왔다.

유니버설스튜디오의 부활 비결은 경영진 교체였다. 오사카시는 자본 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오사카 시청 퇴직 관료들로 채웠다.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미국인 사장을 영입하고 골드만삭스가 사실상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테마파크다운 경영이 시작됐다. 미국인 사장은 최근 한 잡지 인터뷰에서 "취임 당시에는 정말 회사가 도산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디즈니랜드, 하우스텐보스 등에서도 관람객이 급증하고 버블기를 방불케 하는 신규 시설 투자 경쟁이 불붙고 있다. 몰락론을 극복한 것은 새로운 고객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중장년층과 외국인으로 확대한 결과다. 디즈니랜드는 1983년 어린이 입장객 비율이 30%를 넘었지만, 최근 17%까지 떨어졌다. 반면 40대 이상 비율은 10% 안팎에서 19.9%까지 치솟았다.

일본의 테마파크 붐과는 달리 한국은 유치론만 무성할 뿐이다. 한국도 10여년 전부터 자치단체, 기업들이 치열한 테마파크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파라마운트 등 유명 테마파크가 당장 착공할 것이라는 식의 발표도 있었다. 해외 유명 테마파크는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지만, 투자비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한다. 한국은 높은 토지 비용 탓에 자금 조달 단계에서 대부분 좌초했다.

그러나 설령 완공한다고 해도 테마파크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일본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경영 노하우와 뼈를 깎는 혁신 노력이 없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자 '장밋빛 테마파크 대망론'이 무성해지고 있다.



차학봉 도쿄특파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7/2014081702261.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35

# 2011년 11월 대전 현충원에서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행사 시작 10분 만에 비가 쏟아졌다. 참석자들이 우산을 꺼내 드는 속에서도 굵은 빗줄기를 몸으로 맞는 사람이 있었다. 김황식 당시 총리였다. 경호원이 우산을 씌워주려 하자 그는 "됐다. 치우라"며 물리쳤다. 김 총리는 추모식이 열린 40분 내내 고스란히 장대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양복이 몸에 달라붙고 안경 위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전사자 묘역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흐느끼기도 했다. 온 국민을 감동시킨 이 장면은 '비 맞는 총리'란 제목으로 오래도록 사람들 기억에 남았다.

김 총리가 발탁될 당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인기가 없었고 정권 후반기였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대타로 기용된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김 총리는 2년5개월간 재임해 1987년 직선제 이후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그의 장수 비결은 진정성이었다. 자기 몸을 낮춰가며 '이슬비'처럼 조용히 현장을 챙기는 진정성이 국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총리실을 떠나는 날 많은 언론이 그에게 '명재상(名宰相)'이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 세월호 사고 직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온 국민의 '공적(公敵) 1호'였다. 실종자 가족에게 멱살 잡히고 고성(高聲)과 폭언을 듣기 일쑤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대통령 면전에서 이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다들 이 장관이 이리저리 얻어터지다가 곧 잘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개각에서 살아남았고, 경질은커녕 더 오래 장관을 시키라는 여론까지 생겼다. 그에게 분노를 폭발시켰던 세월호 가족들도 이젠 마음을 열고 신뢰를 주고 있다.

가족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4월 24일 밤이었다고 이 장관은 기억한다. 실종자 구조 작업이 더디자 이날 가족들이 진도군청 상황실로 몰려왔다. 격앙된 가족들 앞에서 이 장관은 "도망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이 장관과 가족들은 수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가족들은 세월호 안에 있을 자녀들의 추억담을 많이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효도했던 일이며, 얼마나 공부도 잘하고 착했는지 같은 얘기들이었다. 이 장관은 밤새도록 함께 울면서 가족들의 말을 들었다. 이때부터 가족들이 조금씩 이 장관을 믿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사고 후 100여일 동안 국회에 출석한 것을 빼고는 한순간도 진도를 떠나지 않았다. 면도 안 한 얼굴은 흰 수염으로 뒤덮이고, 염색기 빠진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다. 영락없이 귀양 가는 '노(老) 죄수'의 몰골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죄인 된 심정이라서…"라고 했다. 이렇게 몸을 낮추며 자신을 내던진 자세가 가족들의 마음을 열게 한 듯했다.

# 7·30 재·보선 순천·곡성에서 승리한 이정현 당선자의 선거 구호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였다. 선거 전날 마지막 방송 연설에선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저는 호남 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 미치도록, 정말 미치도록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제 손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 온몸을 던진 읍소이자 절규에 가까운 호소였다.

이 당선자의 선거운동은 경쟁 상대인 서갑원 후보와 대조적이었다. 서 후보는 선거운동원을 병풍처럼 앞에 세우고 트럭을 개조한 유세 차량에 올라 연설했다. 파란 점퍼를 입은 청년 운동원들이 피켓을 흔들고 화려한 율동을 하면서 주민들 눈길을 끌었다.

반면 이 당선자는 선거 차량 대신 자전거로 선거구를 누볐다. 차를 타면 유권자들과 직접 접촉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나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플라스틱 확성기로 유세하고, 유권자가 보이면 내려서 손을 잡았다. 그냥 악수가 아니라 두 손으로 맞잡고 포옹하며 몸으로 부딪쳤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다녔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옷이 물에 젖어도 그 차림으로 주민에게 다가갔다. 온몸을 던져가며 "머슴이 될 테니 2년만 써봐 달라"고 호소했다.

이 당선자는 피켓 들고 거리 홍보하는 선거운동원을 두지 않았다. 대신 자원봉사자들로 하여금 골목 청소를 하고 경로당에 들러 안마 봉사를 하게 했다. 유세 차량 대신 자전거를 타고, 퍼포먼스 대신 자원봉사를 한 이 당선자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예산 폭탄' 공약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선자가 이긴 가장 큰 비결은 그가 주민들에게 진정성을 입증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불신받는 소통 부재의 시대, 열쇠는 결국 진정성이었다. 알고 보니 국민 쪽에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공직자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 온몸을 던져주기만 하면 됐다.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31/2014073104141.html

'가치있는삶 > 리더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더는 만들어지는 것  (0) 2014.10.14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34

해외 출장 때 들렀던 영국 런던의 카페 지퍼블랏(Ziferblat)에서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지금 진행 중'(So this is happening)이란 제목의 메일에는 턱수염을 기른 한 손님이 열정적으로 피아노 치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지퍼블랏은 러시아와 영국에서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카페 체인이다. 특이한 것은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시간을 판다는 점이다. 이 안에서는 다양한 고급 커피와 차·빵·쿠키·과일이 모두 무료다. 대신 1분에 5펜스(약 9원)를 내고 공간을 빌린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5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고급 에스프레소(5분이면 한 잔!)를 즐기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손님만 있다면 가게가 금방 거덜나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카페 입장에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와서 몇 시간 동안 4인용 테이블을 독차지하는 젊은이가 요즘 오죽 많은가.

지퍼블랏의 성공 이유를 '분(分)제'라는 창의적 발상으로 보는 경제적 해석이 우세하지만, 문화적 시선으로 보면 그 의미가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로 한국 독자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1902~1967)의 단편 중에 '생존 시간 카드'가 있다. SF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 단편의 핵심 설정은 바로 시간을 거래한다는 것이다. 부자들은 돈은 많은데 시간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다. 이 소설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자기 시간을 팔아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 부자의 달력에는 3월 34일과 12월 45일이 가능해지고, 가난한 사람의 달력은 1월 14일에서 끝나는 식이다.

이야기를 한 번 더 확장하면 현대의 시간 도둑은 과연 누구냐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하루 24시간을 누가 더 많이 빼앗느냐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스마트폰은 지난 5년간 '무적(無敵) 무패(無敗)'의 대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책이나 잡지, 눈앞의 친구나 가족과 나눠갖던 시간이라는 희소한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카페에 마주앉은 연인이 말없이 자신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은 이제 뉴욕과 서울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렇게 꼬집은 적이 있다. 에메의 소설에서는 부자가 빈자에게 돈을 주고 시간을 사지만 현실에서는 애플과 삼성이 만든 스마트폰이 공짜로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시간 지키기에는 혈안이면서도 그렇게 가까스로 지켜낸 시간을 엉뚱한 도둑에게 자발적으로 헌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퍼블랏에 들어가면 최신식 스마트폰 대신 고전적인 탁상시계를 하나씩 준다. 가상 세계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얼굴을 맞대고 새로운 경험과 대화를 나누자는 취지다.

여름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이번 여름에는 부디 시간 도둑과의 한판 승부를 펼쳐볼 수 있기를. 정말 소중하고 귀한 삶의 순간들은 스마트폰 액정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어수웅 문화부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5/2014071504065.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26

'너구리'를 시작으로 한반도에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이 돌아왔다. 최근 태풍과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월 초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북미 지역의 태풍인 허리케인에 여자 이름이 붙었을 때가 남자 이름인 경우보다 훨씬 큰 피해를 줬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그러고 보면 미국에 엄청난 피해를 준 카트리나·샌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악명(惡名)을 떨친 사라·베티 모두 여자 이름이었다. 태풍이 제 이름을 알 리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연구진은 "허리케인의 이름에 따라 피해가 달라진 것은 성별(性別) 고정관념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여자 이름이 붙은 허리케인이 오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대피에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가상의 허리케인에 대한 위험도를 물었다. 학생들은 알렉산더·크리스토퍼·빅터 등 남자 이름이 붙은 허리케인보다 알렉산드라·크리스티나·빅토리아 등 여자 이름의 허리케인이 위험도가 더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성 차별을 근거로 들었다. 기상 전문가들은 "허리케인에는 원래 여자 이름이 많았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미 공군과 해군의 남성 기상 예보관들은 1953년부터 아내나 애인의 이름을 허리케인에 붙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겨난 이 전통은 성 차별 논란이 일면서 1979년에 사라졌다. 지금은 허리케인에 남녀 이름을 번갈아 쓴다. 아시아에 오는 태풍 이름은 2000년부터는 회원국이 각각 10개씩 제출한 이름을 돌아가며 쓰는데, 우리나라가 낸 너구리처럼 동물이나 식물 이름이 대부분이다.

과학에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성 차별을 한 연구가 많다. 일례로 동물 실험에는 대부분 수컷을 쓴다. 암컷은 발정 주기 때 호르몬 변화가 심해 실험에 영향을 주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1997~2000년 미국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10종의 의약품이 회수됐다. 이 중 8종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실험 단계에서 암수를 골고루 썼다면 예방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공학 연구도 마찬가지다. 한때 자동차업체는 충돌 실험에 남성 인형만 썼다. 이러면 남성보다 몸이 작고 뼈가 약한 여성은 실제 자동차 사고에서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연구 과제를 선정할 때 연구자의 성비(性比)까지 맞추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실험동물뿐 아니라 연구자의 성에 따라서도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남자 연구원이 있으면 쥐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늘어 통증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한다. 국제 학술지들도 같은 이유로 논문에 연구 대상뿐 아니라 연구자의 성까지 밝히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과학 연구에 생물학적인 성과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 요소를 고려하기 위한 '과학기술 젠더 혁신 포럼'이 출범했다.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또 하나의 편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영완 산업2부 과학팀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4/2014071403858.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22

지난 3월 문을 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가 "이건 아닌데"라고들 했다.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물과 간송 고서화·골동품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다. DDP는 "창의적 인재들의 디자인에 관한 생각과 표현을 세계에 발신하겠다"는 목표를 걸고 4800억원이나 들여 지었다.

이달 초 DDP에 새로 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를 보고 "그나마 간송이라도 있길래…"라는 생각을 했다. 동대문 일대는 37개 대형 패션 상가가 있는 우리 패션·디자인 산업의 1번지다. DDP 간송 전시장을 찾아가는 길엔 상점마다 손님을 유혹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당신은 예뻐요. 헤어만 바꾸면" "선명한 컬러, 반짝임, 단 한 방울로 기적의 피부 관리"…. 그 한가운데 혜원의 '미인'이 걸려있었다.

여인은 가벼운 여름 단장이다. 실타래 같은 머리를 탐스럽게 말아 올리고 나긋나긋 두 손으로 앞가슴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흰 저고리 밑으로 쪽빛 열두 폭 모시 치마가 시원스럽다.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린 두 가닥 주홍색 허리띠와 자줏빛 옷고름엔 200년 전 패션 리더의 자신감이 넘친다. 뜯어보면 하나하나가 패션의 코드이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작품이 뉴욕에 전시됐을 때 그 고장 여인들이 '금년 뉴욕의 헤어스타일은 바로 이것이 될지 몰라요' 해서 같이 웃었다"고 쓴 적이 있다.

패션·디자인 산업과 예술의 공생(共生)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런던 디자인박물관은 작년 일본 화가 야요이 구사마의 '점(點) 그림'을 가방과 옷·장신구에 접목한 루이비통 여름 컬렉션을 '올해의 디자인'으로 뽑았다. 세계에 널리 퍼져 우리에게도 익숙한 윌리엄 모리스의 과일 무늬 벽지는 서양 중세 태피스트리에 나오는 꽃과 열매를 되살려낸 것이다. '산업 디자인의 천재'로 불리는 필립 스탁의 짐승 뿔 모양 조명 기구는 바이킹족의 뿔 달린 투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디자인 메카로서 DDP의 성패(成敗)는 '미인도'같이 이 시대 패션·디자인 산업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그나마 간송이라도 있길래…"라는 생각이 들 만큼 DDP의 디자인 관련 기획 전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DDP는 며칠 전 개관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찾은 발길이 250만명이다. 하루 평균 1만5000명으로 잡았던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DDP가 애초 약속대로 온갖 창조적 아이디어의 발신 기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DDP 전시 중 더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세트·사진전, '트랜스포머' 30주년 기념전, 판타지 영화 특수 효과 관련 자료전 같은 것이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해마다 400만명을 불러 모으며 런던의 관광산업을 이끄는 것은 관광객을 겨냥한 오락적 전시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거꾸로 순수·고품격 전시로 미술관의 본령에 충실해 사람들로 하여금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DDP가 창조의 서식지가 될 것인가, 테마파크가 될 것인가는 앞으로 DDP가 보여줄 전시의 질(質)에 달렸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4/2014071403856.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19

소설가 김원일은 대구에서 자랐다. 약전골목과 중국인 많이 거주하는 종로를 낀 장관동이었다. 장관동은 손수레나 지나다닐 수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남북으로 나 있다. 골목길 가장자리는 덮개 없는 하수구 탓에 겨울 한 철을 빼곤 늘 시궁창 냄새가 났고 여름이면 분홍색 장구벌레가 오글거렸다. 약전골목길 양쪽엔 약제 도매상과 한약방이 즐비했다. 갖가지 약초가 산더미처럼 쌓여 향긋한 내음이 진동했다.


김원일이 한국전쟁 당시 약전골목과 종로통을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 '마당깊은 집'이다. 1988년 발표한 작품이 최근까지도 '명성'을 누리는 건 대구 근대골목 투어 덕분이기도 하다. 이은상 시(詩)로 지은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골목 여행의 출발점이다. 일명 '90계단'으로 불리는 3·1운동 만세길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결혼식을 올렸다는 계산성당, 시인 이상화 고택(古宅)을 거쳐 뽕나무 골목, 약전골목, 종로로 이어지는 코스다. 한 해 2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단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2013 아시아 도시경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CNN과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선정한 '한국의 풍경들 100' 중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에서의 성공 때문일까. 온 나라에 골목 여행이 붐이다. '골목길 전쟁'이라고 할 만큼 지자체들의 예산 따기 경쟁, 코스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올해 서울시가 지원하는 골목길에는 미아리 점성촌길, 창신동 봉제동 길도 포함됐다. 유명 예술인 생가를 비롯해 역사 유적, 현대사의 흔적 등 '이야기'만 퍼올릴 수 있다면 죄다 '골목'이 된다.


골목길 부활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주도했다. 오래된 뒷골목이 관광자원이 된다는 걸 보고 와서다.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는 체코 프라하 성(城) 뒷골목 '황금소로'를 구경하는 데 1만원 가까운 입장료를 내라고 해서 입을 딱 벌린 적 있다. 이야기가 상품이 되니 너도나도 골목 만들기에 나섰다. 문제는 돈맛을 보자 골목 맛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옷가게와 갤러리, 식당이 늘어나고 스타벅스,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업종까지 진출했다.


건축학자 임석재는 "골목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해 질 녘, 딸내미 피아노의 똥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가 호박 써는 소리가 통통통 울리고,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퍼지고, 가끔 개가 멍멍 짖고, 집 밖에 널어놓은 빨래가 기분 좋게 말라가는 때…"라고 썼다. 골목의 부활은 반갑지만 거기서 고유의 일상이 사라지면 진정한 시간 여행은 이뤄질 수 없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4/2014071403852.html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CNN 종군기자와 아시아  (0) 2014.12.05
결혼 결심[펌]  (0) 2014.12.05
원어민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영어 말하기  (0) 2014.12.03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0) 2014.11.21
끝나지 않는 논쟁에 대한 단상  (0) 2014.11.14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17

얼마 전 회사 인턴 면접시험에 면접 위원으로 참여했다. 서류 전형과 논술 시험을 거쳐 선발된 젊은이 100명이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온종일 회사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렸다. 새로 산 양복 입고 면접 보러 다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면접 위원 중 한 분이 물었다. "우스갯소리를 잘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쓴 것을 두고 물은 것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를 이끌어가는 편이고 곧잘 웃긴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주문이 돌아왔다. "한번 웃겨보시오."

눈앞이 캄캄해졌다. 개그맨 면접도 아니고 신문사 높은 분들을 어떻게 웃긴단 말인가. 음담패설 몇 개가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자멸(自滅)할 것이 뻔했다. 웃긴다고 해놓고 못 웃기면 정말 웃기는 친구가 될 판이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빳빳하게 다려주신 셔츠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5초쯤 지나 뭔가 생각났다. 그러곤 면접을 통과해 이 회사에서 20년을 일하고 있다.

다섯 명씩 스무 조의 응시자들이 차례로 면접장에 들어왔다. 다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다녔고 토익 점수도 높았다. 여러 가지 인턴과 자원봉사 경험을 했다. 떨어뜨릴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 80명을 떨어뜨려야 했다. 면접 위원이란 가혹한 자리였다. 그래서 비상임(非常任)인 것이다.

자연스레 인상(人相)을 보게 됐다. "수험생이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분명한 건 외모가 인상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남 미녀는 시선을 먼저 잡아끈다. 그 유효기간은 첫 질문에 대답하기 직전까지다. 특기란에 '자전거 타기'라고 써놓고 자기 자전거가 로드바이크인지 MTB인지 모른다든가, 취미가 고전 영화 감상인데 영화 제목으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대면 장동건·고소영도 떨어진다.

면접(面接)은 말 그대로 대면하여 만나보는 일이다. 자기소개서에 서술한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많은 취업 준비생이 잘생기고 예쁘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면접 위원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잘생긴 '곰바우'와 예쁜 무능력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응시자에게 특이한 경험이나 스토리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질문을 하게 된다.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 질문에 대답할 때 불덩어리가 이글거리면 합격이다. 그저 육하(六何)원칙에 맞춰 답하면 사막 횡단을 했거나 독도까지 헤엄쳐 갔다 해도 '취직하려고 애썼구나' 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한다. 그것들의 총합이 인상(人相)이요, 결국 좋은 인상(印象)을 남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 일이 무엇이냐와 상관없이 좋은 인상을 준다. 남이 좋다니까 한 일,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해온 사람은 그러기 힘들다.

한 취업 관련 사이트가 20대 취업 준비생 807명에게 물어보니 20.8%가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취업 성형에 300만원까지 쓰겠다고 했다. 그 돈을 성형 말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 투자하는 게 백번 낫다. 그 내용을 자기소개서에 써라. 반드시 그에 대해 물을 것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면 끝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한현우 문화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0/2014071004349.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6:07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온 나라가 새로운 배움의 에너지로 꿈틀거리고 있다. 

‘본성인가 환경인가(nature or nurture)’라는 유명한 구절은 교육학 이론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효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천재는 천재로 낳아진 것인가 또는 그렇게 키워진 것인가. 

물론 어느 한쪽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유전자도 좋아야 하겠지만 좋은 환경에서 잘 길러지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유전자의 영향 지수가 환경의 영향보다 약간 더 높다고 한다. 

인지과학과 생명과학의 발달은 현재의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가져왔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같은 환경 속에서 자란 두 쌍둥이도 인생의 경로가 갈라지기도 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각각의 유전자에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현재 내가 겪는 인생의 경험들이 내 유전자를 바꾼다는 것으로, 환경이 본성을 지배하며, 본성의 결함은 환경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고까지 넓게 해석할 수 있는 충격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이 가지는 사회적 또는 철학적 함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삶의 내용이 바뀔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존재란 계속 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육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필자가 17년 전 미국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 하나. 

늦게 둘째 아이를 갖고 십여 년 전 첫아이 때 한국에서 실패하였던 모유 수유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출산의 날이 다가왔고 그 긴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산모인 나와 아이는 고요한 장소로 옮겨져 그대로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휴식을 취한 몸은 강한 생물학적 의욕을 느끼게 했다. 간호사는 이제 아기가 첫 식사를 할 때라고 농담을 하면서, 아기를 미식축구 공처럼 들더니, 엄마 가슴 쪽으로 천천히 스윙하듯 갖다 댔다. 엄마 젖 근처에 다가가자 아기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입을 짝 벌렸는데 그때 간호사가 매정하게 물리쳐 버리는 게 아닌가. 간호사는 그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했고 배고픈 아기는 급기야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큰 울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아기를 엄마에게 돌진시켰다. 한입 가득 엄마의 젖무덤을 물고 엄마 몸에서 나온 젖을 꿀꺽 삼킨 아이는 그 후 마치 그것이 본성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유를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호사의 행동이 없었다면 아이는 엄마의 젖꼭지만 물고서 빨게 되고 계속 그 습관이 반복되면 젖을 물리는 엄마는 아파서 고통받고 아기는 모유가 부족해 불안한 유년기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당시 짧지만 진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일생일대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선, 엄마는 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었다. 

수유(授乳)라는 간단한 일에도 원리가 있고 교육은 이것을 잘 가르쳐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배움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운 기술은 깊은 인식과 진한 경험을 가져오며, 결국 모성은 더 풍부해지고 아기와 엄마 간의 연대도 더욱 강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문 기술, 고도의 과학에서만 교육을 말한다. 그러나 젖을 먹이는 법도 배워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 계측되고 수량화되고 특정 범주의 지식에만 적용하는 교육이라면 우리 교육관의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식의 서열화가 그러한 교육관 속에 들어있다. 그러한 사고방식 속에서는 어떤 종류의 일들은 하찮은 일로 소외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양편에서 오는 차를 차단하기 위해 깃발을 흔드는 사람은 어떤 훈련을 거쳐서 그 일을 시작했을까. 맞은편에서 오는 운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표정을 만들고 적절한 거리에서 특별한 형태로 깃발을 흔듦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통행 흐름을 유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는 기회들이 과연 주어졌을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여성과 고령자의 비정규직 비율도 계속 늘고 있다. OECD는 ‘직업교육을 확대하라’고 조언한다. 노동의 질을 높이고 그것의 전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교육’ 말이다. 교육 현장은 교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40306/61474123/1#replyLayer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59

美 이어 세계 2번째로 인터넷 기술 개발한 전길남 박사
'IT 코리아' 초석을 놓다…해외 과학자 유치에 부응해 NASA에서 가난한 조국으로 
먼저 성공한 건 인터넷 연결,이어 컴퓨터 개발까지…

'청출어람' 제자들 키우다…카이스트의 호랑이 선생님, 학문보다 벤처를 권했다
큰 스승 밑에서 자란 제자들이 넥슨 김정주·리니지 송재경…

"제자들 공부만큼 山 타게 했지… 몸이 받쳐줘야 머리도 되니까" 
美서 공부 재일교포의 한국行, NASA 동료들이 미쳤나며 모두 말렸지만…
제가 아는 걸 조국을 위해 쓸 때라고 생각했다
1982년, 인터넷 연결의 순간…전자기술硏~서울大 통할 때 환호성 지르고 난리였지
해외 논문 실시간 받으며 인터넷의 眞價 드러나더라

인터넷의 빛과 그림자 "악플 고통받던 최진실씨가 자살했을때 충격 받았죠"
인터넷 도입 너무 빨랐나…마음이 무거워질 때 많다
아내는 조한혜정 교수, 인터넷 개발 자랑했을 때 사회학자인 아내가 묻더라
"우리 사회에 좋은 거예요?" 평생 저의 든든한 조언자



1982년 5월 15일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실. 재일교포 출신의 한 과학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컴퓨터 앞에 섰다. 연구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서울에 있는 컴퓨터에 원격 로그인을 시도하려던 참이었다. 간헐적으로 컴퓨터에서 "삐익 삐이익" 날카로운 기계음이 흘러나오길 여러 번. '$ rlogin snucom' 구미 연구소 컴퓨터 모니터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컴퓨터로 원격 접속됐음을 알리는 문구가 떴다. 독자 기술로 '정보통신 강국' 한국의 초석을 놓는 순간이었다.

지켜보던 연구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컴퓨터 앞에 서 있던 과학자는 감격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국 인터넷 역사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세계에서 인터넷을 가장 먼저 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1969년 미국은 UCLA와 스탠퍼드대학 등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는 어느 나라일까. 놀랍게도 한국이다. 전길남(71)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국 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된 그날 이후 전길남은 '대한민국 인터넷의 대부(代父)'라 불린다.



지난달 26일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전길남 박사. 전 박사는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인터넷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인터넷협회가 선정하는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서울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전길남 박사. 전 박사는 한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인터넷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인터넷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인터넷협회가 선정하는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 이태경 기자



대한민국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 박사는 1979년 2월 '해외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귀국할 때 "한국형 알파넷(인터넷의 전신)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그에게 준 임무는 국산 컴퓨터 개발이었다. 그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보다 컴퓨터끼리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부를 설득해보려 했다. 한국이 뒤늦게 컴퓨터 제조업에 뛰어들 바에야 인터넷 기술을 선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물 같고 공기 같은 존재지만 당시 한국에는 인터넷의 효시가 된 컴퓨터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진 이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원하는 대로 컴퓨터 개발 작업을 하면서 인터넷 개발도 슬쩍 끼워넣었다.

"청와대에 가서 인터넷을 개발해야 한다고 우겼던 나도 지금처럼 인터넷 세상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올해로 한국에서 인터넷이 개통된 지 32년. 지난 30여년 한국 인터넷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무섭게 성장했다. 이 인터넷 발전의 뒤엔 전길남이 있다.

그는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인터넷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인터넷 기구를 설립해 인터넷 표준을 제정했다. 이뿐만 아니라 카이스트에서 26년간 교수로 일하면서 IT업계 인재들을 키워냈다. NXC(게임회사 넥슨의 지주회사)의 김정주 회장, 리니지를 만든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정철 전 삼보컴퓨터 사장, 허진호 전 아이네트 사장이 모두 그의 제자이다. '전길남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전길남 박사가 없었으면 오늘 우리나라의 인터넷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인재, 최고의 대우

지난달 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전 박사는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스웨터 차림이었다. 그가 입을 열자 영어와 일어 억양이 뒤섞인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한국과 미국·일본을 돌아다니며 산 그의 인생 역정이 발음에서 묻어났다.

전길남은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가서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곳에서 '인터넷의 창시자' 중 한 명인 과학자 빈튼 서프와 함께 통신 기술을 연구했다. 1979년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그는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재일교포가 왜 한국에 오게 됐나.

"재일교포였던 나는 성년이 될 때쯤 일본에 계속 살지 혹은 한국에 돌아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아버지가 경남 거창 출신이니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왕 한국에 갈 거면 박사 학위를 받고 가자 생각했다."

―그 시절에 나사 근무를 포기하고 가난한 조국에 돌아오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당시 정부가 해외 과학자 귀국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귀국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 정치 사정이 굉장히 불안했다. 한국에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다. 동료들은 내가 설사 한국에 간다 해도 몇달 못 버티고 돌아올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에 온 이유는.

"조국을 위해 기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사는 인류 최고의 기술로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위대한 조직이다. 내가 없어도 그 조직은 문제없이 굴러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한국은 달랐다. 내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이제 배울 만큼 배웠으니 내가 아는 걸 조국을 위해 쓸 때라고 생각했다."

전 박사는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한국 유학생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지난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에서 정년 퇴임한 조한혜정 교수다. 아내가 박사 학위를 마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국 정부에서 귀국을 제의했다.

"조건이 상당히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진짜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박사 학위 받은 지 몇년 안 된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대접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때 내 월급이 대통령 월급보다 많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운전기사 딸린 자동차에 집까지 줬다. 아이고, 운전은 내가 그냥 해도 되는데…."

한국 정부는 전 교수를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스카우트하면서 당시 서울대 교수가 받던 월급의 3배를 줬다.


전폭적 지원이 거목(巨木)을 키우다

전 박사는 KIST(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에서 독립한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서 '컴퓨터시스템개발실장'이란 직책을 받았다.

―연구소에서 국산 컴퓨터 개발 임무를 맡았나.

"그랬다. 그때는 우리나라가 컬러TV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있던 때였다. 여세를 몰아 국산 컴퓨터를 개발해 수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 일을 하라고 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왜 컴퓨터보다 인터넷에 관심을 가졌나.

"그때 컴퓨터 국산화를 하면 세계에서 20번째였다. 하지만 인터넷 개발은 세계에서 최초 아니면 두 번째가 될 것 같더라. 어떤 게 좋겠나. 게다가 인터넷이 성공하기만 하면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릴 거라고 봤다."

―그건 그만큼 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란 얘긴데.

"한국에 왔더니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연구하더라. 조금 어려운 걸 시켜도 밤을 새우면서 매달리는 거다. 그게 신기했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안 하는데 이 정도면 인터넷 연구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그게 원래 내 전공 분야이기도 했고."

전 박사는 UCLA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나사에서도 우주비행선과의 컴퓨터 통신 기술을 연구했다.

―그러면 정부에서 요구한 국산 컴퓨터 개발은 안 하고 '딴짓'을 한 건가.

"아니다. 딴짓이라니! 결국 국산 컴퓨터도 만들어냈다. 둘 다 성공한 거다. 대단하지 않은가. 하하. 아마 그때 국산 컴퓨터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으면 지금의 PC 산업은 없었을 거다."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나.

"우리가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뭐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 다 구해줬다. 우리는 연구에만 집중하면 됐다. 청와대에서도 찾아와서 부족한 건 없는지 세세하게 챙겼다."

―박정희 대통령이 연구소로 직접 찾아온 일도 있나.

"대통령이 연구소에 와서 '우리나라, 이거 안 되면 큰일 난다'고 했다. 자주 올 땐 한 달에 한 번 왔다고 했다. 그러면 다들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국가의 운명이 우리에게 달렸다고 느꼈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그때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전 박사가 몸담고 있던 한국전자기술연구소나 모체였던 KIST엔 대통령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연구진이 수두룩했다.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연구소로 몰렸다. 고등학생들이 책상 앞에 'KIST'라고 써 붙여놓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최초의 인터넷 연결…그땐 이해 못 받아

1980년 3월 24일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 연구실에서 하와이 대학으로 보낸 이메일. 우리나라에서 국외로 보낸 최초의 이메일이다.
1990년 3월 24일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 연구실에서 하와이 대학으로 보낸 이메일. 우리나라에서 국외로 보낸 최초의 이메일이다. / 전길남 박사 제공
―처음 인터넷에 연결됐을 때 감개무량했겠다.

"연구실 식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였다. 최신 논문에서만 겨우 보던 걸 우리가 실현해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생각해봐라. MIT 애들도 낑낑대는 걸 우리 힘으로 해낸 거다."

―주변에서 많이 놀랐을 것 같다.

"아니, 별로. 개발 초창기엔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연구소 안에서도. 다들 그렇게 굉장한 거라는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전문가들도 몰랐으니 일반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럼 언제부터 그 개발의 진가를 인정받게 됐나.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을 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렴풋이 '그게 중요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대학에서 논문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기 시작했을 때쯤일까? 당대 최신의 연구 논문이 인터넷을 통해 공유됐다. 해외 학회에 나가면 MIT·UCLA·스탠퍼드대학 학자들이 '인터넷에 올려 뒀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자 귀한 선진 정보가 대한민국에 실시간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의 진가가 드러났다."


체력은 국력

전길남 박사는 1982년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떠나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둥지를 튼다. 연구소에서 그를 관리직으로 승진시키려 하자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학교로 옮겨간 것이다. 카이스트 교수로 일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기술을 개발하며 제자들을 길러낸다.

전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괴짜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 내에서도 전 박사의 연구실은 "가장 특이하다"는 평을 받았다. 50%가 채 되지 않는 낮은 논문 통과율이 그랬고, 공부만큼이나 운동을 강조하는 연구실 분위기가 그랬다.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전길남 교수 연구실에선 날이 좋으면 좋아서, 안 좋으면 안 좋다는 이유로 등산을 갔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MT를 떠났고, 산에서 조깅하는 건 일상이었다. 카이스트의 어떤 연구실과도 분위기가 달랐다"고 말했다. 김정주 NXC 회장은 "전 교수는 모든 학생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고 최대한의 역량을 끌어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호랑이 선생님이었다는데.

"무서웠대? 하하. 완벽을 추구했다. 학생들에게 완벽을 요구했고, 기준도 아주 까다로웠다. 5년에 한 명씩 나와 비슷한 수준의 학자를 만들어 내겠단 목표가 있었다. 25년간 교수를 한다면 나 정도 되는 학생 5명만 나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미달하면 무섭게 다그쳤다. 내가 지도한 학생 중 박사 학위는 절반 정도밖에 못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느슨하게 했어도 되지 않나 싶지만 그때는 모든 지원을 다 해주고 대신 내가 정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학위는 없다고 했다."

전길남 박사는 26년간 박사 11명의 제자를 뒀다. 비슷한 기간 재직한 교수들에 비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운동은 왜 그렇게 강조했나.

"몸이 건강해야 연구도 잘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카이스트대학원에선 머리를 극한까지 쓴다. 머리만 쓰게 된다. 그러면 안 된다. 연구는 20~30년 걸리는 장기전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좋은 연구 결과도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다 잘된 것일까.

"제대로 운동한 제자들은 다 잘됐다. 나중엔 운동에 자신이 없으면 우리 연구실에 가면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와서 몸 좋은 애들이 많이 들어왔다. 하하. 첫눈이 내리면 연구실 식구가 다 같이 북한산 정상에 꼭 갔다. 여름엔 설악산에 가서 반나절 만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상식으론 이해 안 되지만 어차피 기술 연구라는 게 그런 것이다. 상식적으로 되는 것은 연구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연구한다는 것, 벤처사업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친 짓에 가깝다.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수준에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운동을 통해 그 한계를 뚫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등산은 그런 멘털 게임에 크게 도움이 된다."

"내가 받은 것처럼 학생들에게 모든 걸 지원해"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가 몰려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전길남 박사 연구실이었다. 서울대 전산학과에서조차 공용 컴퓨터 한 대를 갖고 번갈아 쓰던 시절 전 박사 연구실에선 대학원생 한 명당 컴퓨터가 한 대씩 있었다. 총 40대였다.

―그 비용은 누가 댔나.

"프로젝트 6~7개 따서 받은 연구비와 사비를 몽땅 털어서 샀다. 당시 우리 석사 학생이 쓰던 컴퓨터가 기상청 컴퓨터보다 훨씬 좋았다. 그걸 한 대씩 배정해줬을 때 컴퓨터를 부여잡고 울던 녀석들도 있었다. 하하."

―왜 그렇게까지 했나.

"나는 국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고 그 덕에 연구를 성사시켰다. 내 학생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는데 그러려면 환경도 그 수준이어야 하지 않겠나. 'MIT·버클리 수준으로 잘하라'고 요구하려면 연구 환경도 MIT·버클리 수준이어야 한다. 그게 안 되는데 열심히 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학생들을 해외로 자주 보낸 것도 같은 이유인가?

"누구하고 경쟁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려면 직접 보내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날 MIT, MIT 하는데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고 오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서 원래 교수가 가야 하는 것도 학생들을 보냈다. MIT 학생 수준이 되려면 실제 MIT에 가서 하루라도 같이 부딪혀봐야 한다. 거기 가서 작업해야 거기 있는 사람들이 지금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다녀오면 달라졌다. 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위 사진) 2003년 1월 서울 남산의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렸던 회갑연에서 전길남(오른쪽 아래) 박사가 제자들에 둘러싸인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아래 사진) 2008년 2월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전길남·조한혜정 부부. 전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26년간 교수로 있으면서 정보통신 분야의 거물들을 길러냈다.
(위 사진) 2003년 1월 서울 남산의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렸던 회갑연에서 전길남(오른쪽 아래) 박사가 제자들에 둘러싸인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아래 사진) 2008년 2월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 참석한 전길남·조한혜정 부부. 전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26년간 교수로 있으면서 정보통신 분야의 거물들을 길러냈다. / 조선일보 DB·카이스트 제공




악플로 최진실씨가 자살하자 인터넷 개발한 거 후회

부인 조한혜정 교수는 평생 남편의 든든한 조언자였다. 사회학자인 부인의 시각은 달랐다.

"인터넷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했을 때 이공계는 '세계에서 두 번째입니다! 좋은 겁니다!' 그러면 된다. 집사람한테는 그게 안 통했다. '그거 우리 사회에 좋은 거예요?'라든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일찍 도입한 거 아니에요?'라고 묻곤 했다. 생각 못했던 부분을 많이 이야기해줘 항상 고마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터넷의 모습이 있다면?

"인터넷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특히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과 같은 건 오프라인에서도 이미 사회문제였지만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겪는 부작용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나?

"책임도 느끼고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악플로 고통받던 최진실씨가 자살했을 때는 충격을 받아 인터넷을 개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내가 연구에 참여했든 하지 않았든 인터넷이 우리나라에 언젠가는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다른 나라들보다 우리가 10년 먼저 인터넷을 쓰기 시작한 데는 내 역할이 컸다. 그러니까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인터넷 개발에 몰두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개발을 포기할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돌아간다면 10년 앞당기는 일은 안 할 것 같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은 이제 인터넷 도입 20년을 맞는다. 우리는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5년 정도만 앞당겼으면 딱 좋았을 텐데, 10년을 앞당겨서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밖으로 기술이 폭주한 거 같다. 그게 위험한 거다."

―제자들에게 학문보다는 사업을 더 권했다는데.

"우리 연구실에선 교수가 되는 건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교수는 면접 보면 될 수 있지만 벤처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제자들이 벤처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하라고 하고 최대한 도와줬다. 교수 한 명 더 키운다고 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벤처는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벤처사업으로 성공했던 제자들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없나?

"왜 없겠나. 사회적 역할이 적은 것이 아쉽다. 그들이 쌓은 사회적 자산을 더 많은 후배가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성공한 제자들과 함께 간다."

―그들은 인색한 것일까.

"제자에게 그렇게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외부 활동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그들이 자랑스럽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더욱 책임감을 느끼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인터넷의 대부' 전길남은 카이스트 정년 퇴임 후 일본 게이오대 쇼난후지사와캠퍼스 정책미디어 연구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퇴임 후 게이오대와 중국 칭화대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경쟁적으로 스카우트하려 했는데, 일본 제일의 정보통신 학과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한 게이오 측에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매력적인 제안을 하며 그를 찾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1/2014032103085.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51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3/2014032301605.html?related_al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48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47

2년 전 이맘때 중국 외교부가 한국 기자 7명을 자국으로 초청한 적이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국영 방송사인 중앙TV (CCTV) 녹화 현장과 외교부 브리핑 현장 등을 보여준 중국 측은 3일째 되는 날 한국 기자단을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고려사관유적지(高麗使館遺址)'였다. 고려사관은 12~13세기 남송(南宋)과 교류하던 고려 사신과 상인이 머물던 영빈관이었다. 고려인은 중국 측이 명주(明州·지금의 닝보)에 세워준 고려사관에서 외교 업무와 무역 거래를 했다. 긴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고려사관은 2006년 닝보시에 의해 되살아났다.

중국 외교부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 기자단을 베이징에서 1200㎞나 떨어진 남방 도시로 데려간 의도를 알 듯했다. 한·중 간 교류의 뿌리를 찾아 양국민 간 유대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양저우(揚州)의 최치원기념관이나 하얼빈의 안중근기념관도 같은 목적에서 세워졌다. 이런 기념관은 한국인 관광객을 중국 구석구석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이후 한·중 간 '인문 유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문 유대는 한 개인 혹은 한 국가가 살아온 궤적이나 삶의 철학, 살아가는 방식에 공감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형성된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인문 유대를 강화하는 길이다. 중국이 자국 내 한·중 교류사의 발자취를 찾아 복원하는 것도 한국인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한국의 투자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쯤에서 한국은 과연 중국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닝보에 고려사관이 있었다면 호남 도서 지역에 송대의 '상관(商館)'이나 '객관(客館)' 같은 것이 있었을 법하다. 당시 중국의 상선이 봄과 여름 사이 계절풍을 타고 전남 흑산도나 가거도·진도 등지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뒤지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포의 해양유물전시관을 제외하고 당시 한·중 간 교류의 흔적을 발굴해 복원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을 추천했지만 그중 중국인이 유대감을 느낄 만한 곳은 인천 차이나타운뿐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전략에서 우리는 중국에 뒤진 것은 아닌가?

한국이 중국인의 마음을 얻는 데 노련하지 못하다는 점은 천편일률적인 관광 코스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 여행 상품을 찾아보면 열 중 아홉은 서울·제주행 프로그램이다. 또 여행사는 달라도 여행 코스는 똑같다. 한 해 430만명의 중국인이 서울의 경복궁·청와대·청계천, 제주의 용두암·성산일출봉·섭지코지만 뱅뱅 돌다 돌아간다. 다른 지역의 관광 자원은 중국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장금'에 이어 10년 만에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 이 열풍이 장기간 지속되도록 하려면 두 나라 국민을 잇는 역사와 철학의 교감을 넓혀야 한다. 호남·영남·경기·충청도는 중국인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만 할 게 아니라 지방 곳곳에 숨은 한·중 교류의 발자취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인의 마음을 얻고 관광 수입도 올리는 첫걸음이다.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3/2014032302705.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43

경험은 대개 값진 것이지만, 경험의 독재는 경계해야 한다. '우리 때는…'으로 시작해서 '요즘 것들은…'으로 이어지는 '어른'들의 타령이 그럴 때가 많다. 세월의 편차를 소거시키는 절대평가와 맥락을 무시한 비교의 폭력이 저 경험론 안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실업타령 그만두고 이주노동자들을 보라고, 일손 없어 허덕이는 일터가 한두 곳이냐고 반문하는 경영자의 훈계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사진 속 어떤 마을에서 온 청년이 몇 달 알뜰히 모아 고향 가족들에게 집을 사줄 수도 있는 월급과 몇 년을 벌어도 허름한 전셋집조차 얻기 힘든 한국 청년의 월급을, 요컨대 공간의 차이와 사회관계의 차이를 그는 무시하고 있다. 인류학 학위 유학을 하며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노(老)교수가 "나는 스트레스로 귀가 안 들릴 지경이어도 책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고 한다. 학위만 받고 귀국하면 교수직이 기다리고 있던 그의 6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상대성을 소거한 맹목의 경험은 스스로를 특권화, 권력화한다. 그런 경험의 독재는 일상에 편재한다. 나는 시인의 가난 타령에서 경험의 독재를 읽었다. 칸트는 개념 없는 직관을 맹목이라고 비판하며 경험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최윤필 기획취재부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65036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39

ㄴ왜 휴식이 중요한지, 월화수목금금금이 능사가 아닌지 보여줌



적당한 휴식과 압박 해소 방법이 있어야
효율성과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어 

15년 전 박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대학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환경청의 'STAR'라는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스타과학자를 위한 연구비가 아니라, '결과를 성취하기 위한 과학'이라는 말의 머리글자였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뚜렷한 결과를 내어 놓으라는 관료들의 압박이 반영된 것이었다.

지난 연말연초에 걸쳐 세 가지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였다. 첫 번째는 하버드 대학에서 있었던 폭탄설치 위협 사건이다. 학교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위협메일 때문에 FBI가 출동하고 기말고사를 보던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며칠 후 심리학 전공의 한국계 신입생이 협박 메일을 보낸 혐의로 체포되었다. 두 번째 기사는 한 펀드 매니저의 재판 이야기였다. 이 사람은 불법적인 내부자 거래로 27억 달러의 부당 이익을 취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 받는 중이었는데 정작 뉴스거리는 그가 15년 전 학생시절에 한 일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미국 프로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관한 것이었다. 로드리게스는 뉴욕 양키스 3루수로 최다홈런과 연봉 기록을 기록한 인기 절정의 메이저리그 선수였다가 불법 약물 복용 혐의로 출장 정지된 상태이다. 그런데 약물 복용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담은 보고서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의 이야기가 다시 수면위에 떠올랐다.

불법적인 일을 하다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이 세 가지 에피소드의 배경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이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남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란 점이다. 어느 분야의 엘리트라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윤리적일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 높은 공직에 있는 관료, 대기업의 임원, 연구와 강의를 잘하는 교수, 모두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엘리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보통사람의 것을 뛰어 넘는다. 폭탄 위협 메일을 보낸 학생은 자신의 IP를 숨기려고 두 가지 프로그램까지 사용했고, 펀드 매니저의 경우에는 성적 조작이 들통 난 후에도 가짜 이메일과 유령 컴퓨터 회사 보고서까지 조작하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이름까지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로드리게스의 경우 처음 주장과 달리, 사실은 요일별로 또 경기 일정별로 자세한 약물 주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성공에 대한 주위의 강한 압박이다. 정황을 보면 하버드대 학생은 어려서부터 학업에 대한 주위의 기대가 매우 컸고, 결국은 기말고사를 중단시키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펀드 매니저는 처음에 성적 조작을 한 이유가 좋은 성적을 기대한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실토했다. 로드리게스의 경우 약물 복용을 정기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그의 연봉과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쉴 틈 없이 결과를 독촉하면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비윤리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연구실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던 어느 한국 과학자의 표현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돈 버는 동물이라 불리는 미국 금융계의 대표 회사들조차 비윤리적인 행위를 줄이고자 제시한 첫 번째 방안이 직원들을 휴일에 쉬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 종교 활동이나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것 등이 오히려 업무 성과를 더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 또한 생각해볼 점이다. 내 주위를 보면 '열심히 연구하는 것'과 '실험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을 혼동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회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에서 결과만 독촉하고 밑에서는 자리에 앉아 전전긍긍 하고 있는 것, 이것이 비윤리와 비효율의 시작점이다. 휴식과 사람 관계의 회복, 이것이 높은 윤리성과 우수한 결과를 얻는 상책이다. 이는 내 개인적인 경험과도 일치한다. 박사과정 때부터 지금까지의 내 연구 경력을 되돌아보면, 'STAR'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정작 결과물은 제일 초라했었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65067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35

산업혁명으로 출현한 철도는 19세기 사람들의 시ㆍ공 개념을 바꿔 놓았다. 프라이버시(Privacy) 개념이 싹튼 것도 철도여행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영국인들은 덜컹거리는 객실에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있어야 했고, 어색함을 덜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래도 상대와 눈이 자꾸 마주치는 난감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권리라는 의미의 프라이버시가 '사람의 눈을 피하다'는 뜻의 라틴어 프리바툰(Privatun)에서 유래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 프라이버시를 실정법상 권리 개념으로 끌어올린 건 1890년 미국의 새무엘 워렌과 친구인 루이스 브랜다이스였다. 보스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워렌은 자신의 딸 결혼 소식이 지역언론에 가십성으로 시시콜콜 보도되자, 브랜다이스와 함께 사생활 보호를 위한 법 이론을 궁리해 냈다. 이들은 하버드로리뷰((Harvard Law Review)에 기고,'혼자 있을 권리(The right tobe let alone)'를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 디지털시대에 프라이버시는 자신의 정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타인에게 전달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이른바 정보의 자기결정권으로 확장된다. 문제는 디지털의 특성상 한번 기록된 정보는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쉽게 복제ㆍ유출돼 당사자의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생성ㆍ저장ㆍ유통되는 글과 사진 등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ㆍ수정ㆍ영구파기를 요청할 수 있는 '잊혀질 관리(The right to be forgotten)'가 대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이 가장 먼저 이를 명문화한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 올해 발효를 추진 중이다.

■ 유례 없는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정부는 주민등록번호제도 개편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개인정보를 온전히 지킬 수는 없다. 각자의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무심코 흘린 정보들이 때로 혼자 있고 싶을 자유마저 빼앗게 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박진용 논설위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64008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33

병리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공격과 저주의 사회
이해하고 협상하여 타협하는 게 사회통합의 출발 


최근 일본인 친구가 내게 "도쿄 시내에서 자동차 경적음이 자주 들린다"며 심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의미에서 탄성이 나왔다. 일본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다. 역사 문제에서 계속 말썽을 부리지만, 내부적으로 화합을 중시하는 특유의 인내심과 친절도 등은 높이 사줄 만 하다. 때문에 차량 경적음은커녕 다른 승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지하철에서 전화 통화하는 이들도 보기 어렵고, 다리를 꼬고 앉는 이도 드물다. 그런데 최근에는 야간에도, 주택가에도 경적음이 심심찮게 들린다니 분명 변화는 변화인 것 같다.

그는 장기 불황 탓에 경제불안 요소 등이 커지게 되자 사회 전체가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하면서 사납게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논리의 비약일 수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적음을 갖고도 타인에 대한 공격성 점증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우린 어떤 모습인가.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양극화 심화와 취업난 가중, 물가고 등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여기에 대선을 몇 차례 거치면서 정치 노선과 이념은 극단적으로 이분화했다. 국민 갈등이나 분노가 생길만한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원인제공 측면에서 보면 일본보다 덜할 게 없다. 문제는 불만감 표출의 정도다.

얼마 전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고 적힌 종이를 찍은 사진을 리트윗하면서 청와대로 보내자고 적어 파문이 일었다. 즉사를 축하한다니 이 무슨 섬뜩한 내용인가. 또 국회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을 언급하면서 딸이 전철을 밟을 수 있다거나, 귀태(鬼胎ㆍ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의 후손이라고 칭하는 등 온갖 저주의 비수가 난무했다. 일각의 저급한 돌출 행동으로 보기엔 너무나 도가 지나치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진보진영을 적대시하는 '일베'란 사이트에는 특정 지역 비하에서 종북 덧씌우기 등 차마 옮겨 적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반 사이트에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 대한 공격성 글은 특정인을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

작은 일에도 적개심부터 들이대는 것은 직장이나 학교 등 가까운 주변에서 흔히 눈에 띈다. 심지어 종교계에서도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정치개입 자제를 호소하자 한 교인이 "차라리 하늘로 올라가시라"는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야만사회다. 다혈질 민족성을 따질 게 아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폭력적으로 바뀌었는지 개탄스럽다.

사회적 분노가 커지면 합리성은 줄어든다. 애정 어린 비판은 사라지고 자신만의 정당성만 앞세우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암울한 자화상이다. 이와 관련 사회학자들은 "극단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내면엔 사회적 불만에 대한 공허함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부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권에서는 입만 열만 사회통합을 외친다. 여야 모두 할말은 많겠지만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지는 여권이 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불문가지다. 때문에 박 대통령도, 정부 여당도 반대세력과의 타협이나 협상은 굴욕이나 불의가 아니라 사회통합으로 가는 단계적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려도 그 길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만 해법을 요구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개개인이 생각과 방법이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부터 갖도록 해보자. '악(惡)을 악으로 대하면 본인이 악이 된다'는 단순한 사실만 새겨둔다면 변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 여기서 염 추기경이 서임에 즈음해 한 말이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웃을 넘어 형제처럼 살아가는 꿈입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아주 작게라도 현실화했으면 좋겠다. 

염영남 논설위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64012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14

지식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과 실험을 통해 축적된다. 그리고 이는 절대적 시간의 양을 필요로 한다.





Posted by 겟업
2014. 12. 3. 15:12

새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그러나 정부가 그것을 반드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이를 굳이 정의하려 들면 뜻이 좁아지고, 오히려 왜곡이 생기게 된다. 국민들은 이를 굳이 정의하지 않더라도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같이 자본, 노동의 투입 증가를 통해 높은 성장률을 지속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달했으니 생산성을 높여 고성장을 지속하자는 뜻이 아닐까.

 경제학에서는 이 생산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자본, 노동과 같은 요소 투입의 증가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성장의 증가를 뜻한다. 즉 자본과 노동을 2%씩 증가시켰는데 경제는 5% 성장했다면 총요소생산성 증가에 의해 나머지 3%의 성장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일종의 ‘잔여(residual)’ 개념이다. 이 속에는 생산기술의 혁신뿐 아니라 노사관계, 경영효율성, 법, 제도의 개선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가 ‘창조’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을 향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창조경제를 실현할 능력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식 수준과 각종 제도의 합리성에 달려 있으며, 이들을 얼마나 높여갈 수 있는가가 창조경제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가장 큰 잣대가 바로 기술과 지식을 선도하고 있는가, 제도와 법 적용이 합리적인가 하는 것일진대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시점에서 창조와 혁신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지식 수준과 합리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교육개혁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우리의 사회문화를 먼저 말하고 싶다. 지식은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과 실험을 통해 축적된다. 그리고 이는 절대적 시간의 양을 필요로 한다. 잦은 술자리와 경조사를 챙겨야 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지식이 자라기는 어렵다. 아마도 일제의 유산인지 모르나 오늘날 우리는 매우 집단적인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다. 런던정경대 교수였던 미치오 모리시마는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1982)라는 저서에서 유교의 충(忠)이라는 말이 원래 중국에서는 스스로 마음의 중심을 가지는 것, 즉 자신에 대한 충실을 뜻했으나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와서는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이 더 강조되었다고 한다. 

 집단에 대한 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는 양적 성장을 이루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혁신과 창의에 의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스터 엔’으로 잘 알려진 사카키바라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은 2003년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출간한 『일본의 구조개혁: 철의 삼각구조를 깨야』라는 저서에서 일본 경제는 10%만이 자유시장경제이고, 나머지 90%는 사회주의경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계열사나 협회를 통한 담합으로 보호와 진입장벽을 쳐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합주의, 특히 정부 관료와 각종 협회, 자민당의 결속으로 대표되는 철의 삼각구조로 도요타, 소니와 같이 세계 경쟁에 노출된 약 10%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경제는 묵시적 담합구조로 편안히 ‘나누어 먹기’에 안주해 일본이 90년대 이후 더 이상 자본, 노동의 증가에 기댈 수 없게 되자 곧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담합에 기대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 경조사, 명절에 얼굴을 내밀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일본 사회는 지식과 창의력 면에서는 여전히 서구 선진국들에 뒤지는 상황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일본 사회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담합적 모임 중시적 문화와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실력보다 연줄이나 관계가 중시되는 사회는 결코 지식사회, 창조경제로 나아가기 어렵다. 창의와 혁신은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며,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그 사회의 지식 수준과 합리적 제도, 관행이다. 담합구조의 혁파, 실력에 의한 공정 경쟁, 인사제도의 혁신이 바로 창조경제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미래창조과학부만이 창조경제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정부의 지원을 강화해 창조경제를 이루려 해서는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만 성행시킬 뿐이다. 모든 정부 부처가, 그리고 국회와 정치권이 현재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각종 제도와 관행의 합리성을 제고시키고, 사회 전 분야에서 담합구조를 혁파해 공정경쟁 기반을 확대해 나갈 때 비로소 창조경제를 이뤄나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인주의적 문화를 존중할 필요도 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936793

Posted by 겟업
2014. 12. 3. 14:55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 결심[펌]  (0) 2014.12.05
골목길 투어  (0) 2014.12.03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0) 2014.11.21
끝나지 않는 논쟁에 대한 단상  (0) 2014.11.14
별별예의  (0) 2014.11.13
Posted by 겟업
2014. 12. 1. 06:42

인천국제공항 매각 문제가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지난 2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인천공항의 ‘국민주 매각’ 방식을 제안하자 친박계 유승민 의원이 반기를 들며 정치권 논쟁으로 번진 것이다. 유 의원은 “국민주 방식은 23년 전에 실패한 정책으로, 공기업 주식을 매각할 때는 매각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매각 방식을 떠나 ‘잘나가는’ 인천공항을 굳이 매각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인천공항 매각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일부 국민주 매각 시도해볼 만하다


지분 매각 통해 시장 감시와 외국사 제휴로 경쟁력 높여야
20% 정도만 국민주 매각하면 공적자금 회수에도 문제없어


우선 인천공항의 경우 민영화는 아니고 정부 지분의 49%만 매각하고 51%는 계속 정부가 보유하고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49%를 매각하려는 이유는 현재는 인천공항공사가 서비스 측면에서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고, 특히 국제허브공항으로서는 환승률과 취항 항공사 수 등에서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함으로써 시장의 감시를 받게 하고, 외국의 유수한 전문공항운영사와 제휴하여 허브공항으로서 경쟁력을 더 높이려는 것이다. 또 매각대금을 인천공항 3차 증축에 필요한 4조원의 비용으로 충당하려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찬성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대체로 비효율적·관료적으로 운영되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따라서 국민 혈세가 수시로 투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성이 강하지 않은 공기업은 민간에 매각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또 판매대금으로 정부수입도 올리고 국가부채를 줄이는 데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6년째 세계 최고 서비스 공항으로 선정되는 등 잘하고 있는데 왜 굳이 민영화하려 하느냐는 반대여론이 있다.



정부 지분을 국민주로 매각하는 방식에 대해선 장단점이 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공기업 지분을 매각할 때는 다른 기업이나 사모펀드에 팔 수도 있고 국민주로 매각할 수도 있다. 국민주로 매각하는 이유는 국민 세금으로 만든 기업이기에 그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고, 상장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서민들에게 매각함으로써 서민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주 매각의 단점으로는 기업이 발전하려면 주인이나 대주주가 필요한데 국민주로 다 매각하면 기업 발전에 도움이 안 되고, 상장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에 팔기 때문에 공적자금 회수가 극대화되지 않고, 기존 주주들이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 등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주 매각이 과연 서민들에게 이익이 되는가 하는 것도 문제다. 모든 서민들에게 매각되는 것이 아니라 당첨된 일부 서민들에게만 유리한 ‘로또화’ 문제가 있고, 대부분의 서민들이 여윳돈이 없어 돈을 빌려 살 텐데 주식 값이 매각 당시보다 떨어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도 문제다. 실제로 과거에 포스코와 한전의 국민주 매각 사례가 있는데, 한전의 경우 보유기간 제한이 풀린 3년 후 시장가격이 할인가격보다 떨어진 사례도 있다.


따라서 인천공항공사의 정부 지분을 매각하려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기업 발전, 서민복지 향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49%를 전부 국민주로 매각하는 것은 공적자금 회수에 문제가 있기에 15~20% 정도만 국민주로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선 이윤도 많이 나고 부채 상환 능력도 있으니 지분 매각보다는 돈을 빌려서 3차 공항 확장공사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지만, 국가부채와 공기업부채 문제가 심각한 지금 자체적으로 돈 마련이 가능한데 굳이 빌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국민주로 매각하면 결국 외국인에게 다시 주식이 넘어가 국가 핵심 안보시설을 외국에 넘겨주는 꼴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요즈음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기업 주식의 일부가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오히려 외국인들이 매입함으로써 주가가 올라가고 국제시장의 감시도 받게 되니 바람직하다. 더욱이 활주로와 관제탑 같은 핵심 시설은 정부가 계속 보유하고 외국인이 30% 이상 보유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기에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건대, 인천공항공사는 정부가 지분 51%를 유지할 것이기에 민영화의 단점에 대해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 49%를 팔아 정부 수입도 올리고 3차 공항 확장공사를 위한 재원으로 쓰고, 외국 전문항공사와 제휴해 허브공항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더욱이 국민주 매각은 국민 혈세가 들어간 공기업의 매각으로 인한 이익을 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니 극렬하게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성린 한나라당 국회의원


투기세력에 넘어갈 위험이 높다





이미 국제경쟁력을 자랑하는 인천공항을 굳이 매각하는 건 

매각 이익 얻는 모종의 세력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한다


정부는 인천공항 매각을 오랫동안 물밑작업을 통해 진행해오다 지난해 9월 인천국제공항공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내외적으로 그 의지를 구체화했다. 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를 받아 인천공항의 지분 49%를 국민주 방식으로 서민에게 20~30% 정도 저렴하게 공급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매각 여론의 공론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최고의 경영 성과를 자랑하는 인천공항을 민간에게 매각하기 위해 애쓰는 정당한 이유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정부와 여당이 제시하는 근거도 문전옥답을 처분하는 부잣집 아들의 변명처럼 초라하기만 하다.


정부는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항의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이미 최고의 경영 효율성과 국제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천공항은 7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지난해 흑자 규모만 3200억원에 이르며, 세계 공항평가에서 6년 연속 서비스부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와 같이 업계 최고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보유한 인천공항의 지분을 경영상의 효율과 경쟁력을 이유로 민간에게 매각할 이유는 없다.


나아가, 인천공항과 같은 국가의 기간공항은 이를 민영화한다 하더라도 서비스 향상, 비용 절감, 고용이나 투자의 창출과 같은 민영화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공항은 지리적 독점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민간공항 운영자들은 투자비 회수를 위해 공항을 과도한 수익창출의 도구로 활용하고, 안전이나 고객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리는 사례들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행정적 규제를 통해 민간공항 경영의 공익성을 보장하면 된다는 설명을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정부가 공항사용료의 최고액을 규제하면 서비스가 열악해지고, 항공사의 사용료를 인상시켜 그 비용의 인상이 최종적으로 승객에게 전가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민간공항은 인력 감축과 새로운 장비의 도입을 통한 인건비의 감소를 추구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공항이 민영화되면 상당한 해고가 발생할 것이고, 중요한 업무를 외주나 하청을 통해 해결할 것이므로 공항업무의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만일, 인천공항이 민영화되면 영국 히스로공항의 장기 폐쇄 사태가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질 낮은 서비스에도 최고가의 공항사용료를 물어야 하는 오스트레일리아나 유럽 민영공항의 현실을 인천공항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또 2017년까지 3단계에 걸쳐 공항을 확장하기 위해 4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인천공항의 지분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인천공항의 흑자 기조를 고려하면 지분 매각이 아닌 합리적인 자본조달 방안이 적절하다. 인천공항의 지분을 국민주 방식으로 저가로 국민들에게 제공한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주장은 근거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주장이다. 민영화로 공기업을 매각할 때 정부가 채택한 원칙은 최고가 매각 이론이다. 그런데 이 원칙을 철회하고 국민주로 매각할 경우 일반 서민들이 이 주식을 취득할 여력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투기자본 등이 서민들을 내세워 저가로 주식을 취득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은 부동산 투기의 사례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다.


공항과 같은 국가기간시설은 최고의 공익성을 요구하므로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과 항공사의 편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국민의 안전과 편익은 어느 경우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럼에도 매각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의지 때문에 국민들은 이번 거래로 이익을 얻는 모종의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여지가 있다. 인천공항 매각대금의 15%인 5900억원을 미리 당겨서 2010년 도로사업 예산에 편성한 것과 같은 예산의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자존심인 인천공항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투기세력에 넘길 수 있는 위험은 홍수나 자연재해의 위난과 비교되므로 즉시 매각을 위한 모든 절차를 중단함으로써 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정부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본다. 


정미화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Posted by 겟업
2014. 11. 29. 09:27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은 서울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 주민이 이웃에서 큰 개를 기르지 못하도록 해달라며 제기한 ‘애완견 사육 및 복도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대형견을 기르는 것이 공동주거생활의 질서 유지를 위해 바람직한 행위는 아니지만 이웃의 인격권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문제의 골든 리트리버 종이 안내견이나 인명구조견으로 활용될 정도로 유순한 종인 것도 판단의 근거’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거시설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을 두고 이웃간의 갈등이 빈번한 상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와 아파트입주자단체의 의견을 들어본다.




유순하다면 소도 키울 건가?


아파트는 사유재산이면서 공동재산
공공성 위해 일부 제약은 당연하다
개 싫어하는 이웃을 위한 예의 절실
큰 개 키우고 싶다면 동의부터 구하자


공동주택 생활에서 애완견이 주는 피해는 크다. 그래서 아파트마다 관리규약으로 애완견 사육에 제한을 두고 있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법 시행이 3년간 유예된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을 보면, 놀이터의 모래는 사람과 애완견 등의 외출이 많은 4월부터 10월까지 1회 이상 기생충(란)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에 따라 위생소독을 하거나 모래 교체를 하는 등 조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을 정도다. 애완견의 ‘배변’이 발견되지 않아도 단지 애완견 출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생충(란)에 대한 검사를 의무화한 것이다.


애완견을 사육하는 아파트 주민들은 애완견과 관련된 민원을 제기해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동주택 애완견 피해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요즘 피서철을 맞아 장기간 집을 비우는 주민이 많다. 그런데 간혹 애완견만 놔두고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 소음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밤새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설치는 건 기본이다. 이웃 주민이나 빈집에 방치된 애완견이나 괴롭긴 매한가지다. 또한 애완견 배변 문제도 심각하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아파트 놀이터나 화단에 배변을 방치하는 이들이 있어 대다수 선의의 애완견 주인들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타워팰리스 주민끼리의 ‘개싸움’을 보면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단지는 층간소음과 애완견, 주차문제 등 공동주택 생활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폭발 직전인데 부자들이 사는 타워팰리스는 상대적으로 작은 분쟁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며 이슈가 되는 게 보기에 불편하다. 공동주택 생활의 갈등과 분쟁도 부자들이 해야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나 보다. 둘째는 아파트에서 큰 개를 키워도 된다는 법원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사유재산이자 공동재산이다.


주택법 시행령 57조 3항 5호에 따르면 공동주택에서 가축을 사육해 공동 주거생활에 피해를 미치는 행위는 관리주체의 동의를 구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타워팰리스 주민 김아무개씨가 “(이웃의) 애완견이 나를 위협하고 소음을 내 생명·신체·건강에 대한 인격권이 침해됐고, 무게 15㎏ 이상의 애완견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아파트 관리규약에도 위반된다”며 이웃 함아무개씨 부부를 상대로 낸 ‘애완견 사육 및 복도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대형견을 기르는 행위가 공동 주거생활 질서 유지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행위는 아니지만, 이 개가 김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줌으로써 생명·신체·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심장 장애가 있는 사람이 큰 개를 보면 놀라는 게 당연하다.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만 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법이 잘못되었거나 판결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에 하나다. 재판부는 “골든 리트리버 종은 덩치가 크고 중량이 많이 나가기는 하지만 충성심과 인내심이 강하고 유순해 안내견이나 인명구조견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김씨가 낸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는데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아파트에서 소도 키울 수 있다. 소만큼 사람에게 충성하고 인내심 강하며 유순한 동물이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은 애완견을 포함해서 가축을 사육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공동체 생활을 위해서 일정한 제약을 둔다. 국립공원의 애완견 출입 금지가 좋은 예다. 국립공원만 금지하는 게 아니다. 서울 서초구청도 몇년 전부터 애완견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휴가철 휴양지에서도 애완견을 데리고 가면 호텔을 잡기가 불가능하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관리규약에 15㎏ 이상 큰 개를 키우지 못하게 규정한 것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의 비중이 높지만 그에 따른 법 규정과 제도가 미비하다. 결국 입주민들의 성숙한 자세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큰 개를 키우고 싶다면 이웃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법과 제도가 미비한 이웃간의 갈등과 분쟁의 영역에서 우리의 성숙한 공동체 의식과 시민정신을 발휘하자.



김대중 서울시아파트입주자 대표연합회 사무국장



도시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파트도 단점 극복하며 진화중
‘대형견 무조건 안돼’ 인식 바꿔야
반려동물도 보호자와 있어야 행복
법규보다 이해·배려로 해결하자


아파트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논란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와 아파트의 비율이 나란히 증가하면서 예견된 갈등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이제는 아파트에서도 개나 고양이 등을 키우는 집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특히 대형견일수록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대형견이 주는 위화감이나 공포감,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에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대형견은 아파트보다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키우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은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 넓은 부지를 확보해 산책로를 개발하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주거형태로 자리잡으면서 공간침해와 층간소음이 빈번했던 특유의 단점을 극복하고, 생활의 질을 높이려는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울 수 없다’는 전제는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며 가족의 일원으로 살던 반려동물이 유기되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아파트로의 이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키우던 반려동물을 다른 곳에 맡기거나 유기해야 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차치하고라도 이렇게 유기되는 동물이 한해 수십만마리입니다. 그 비용과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가 떠안아야 합니다. 유기동물에 드는 비용은 연간 100억원에 이릅니다.


대형견이 위협적일 것이라는 편견도 대형견에 대한 지식 부족과 개인의 주관적인 공포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4호선에 오른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향해 승객이 ‘누가 이렇게 큰 개를 지하철에 태우느냐, 더럽다’고 윽박지르며 시각장애인에게 사과를 요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승객은 비상전화를 들고 역무원을 불러 끝내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승객의 처지에서는 안내견의 큰 몸집에 공포감을 느꼈을지 모르나 안내견인 골든 리트리버나 래브라도 리트리버 견종은 성품이 워낙 유순하고 잘 짖지 않으며 인간과 친화적입니다. 개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충성스러운 안내견의 모습에서 모든 대형견이 무섭거나 번거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 특별히 위험하게 여겨지는 대형견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소유와 사육이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견종을 떠나 행동 성향이 위험한 개에 대해서는 따로 분류하여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여 감독하기도 합니다.


서울 도곡동 아파트 타워팰리스에서 대형견을 키울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을 받았던 견종도 안내견과 같은 골든 리트리버입니다. 이 골든 리트리버의 보호자는 산책을 시킬 때도 화물승강기를 이용하는 등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으며 가까운 이웃도 대형견에 의한 소음은 없었고 위협감도 느끼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대형견이 아파트에서 키워질 때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반려동물은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야생의 습성을 버리고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 함께 적응해 왔습니다. 특히 개와 고양이는 보호자와 같이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성품이 온순한 대형견을 키우는 가구가 늘어나고 대중의 인식이 바뀌면서 대형견을 키우는 보호자 스스로 배설물 처리와 소음에 신경 쓰는 등 반려동물 문화를 성장시켜 나간다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이웃과의 갈등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대형견을 키우면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법규가 아닌 이웃간의 이해와 배려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나날이 도시가 거대해지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결코 사람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살고 있음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전지영 동물보호단체 ‘카라’ 팀장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