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10:06

예전에 비디오 영화 앞에 모 그룹의 기업광고가 있었다. 무당벌레가 풀잎을 오르고, 청개구리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거위가 홰를 치고, 민들레가 날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업의 이미지로 차용한 광고다.


난 그 광고의 조감독이었다. 내 선임조감독은 어디서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구해야 하냐며 걱정이 태산같았다. 나는 선임조감독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친 뒤 1990년 6월 어느 일요일 경기도 양평 근처에 있는 ‘국수역’에 갔다. 그곳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 뒤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이 형이 다음주 일요일에 올 테니 그때까지 너희들은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잡아놓아라. 그러면 청개구리는 한 마리당 200원, 무당벌레는 한 마리당 100원씩 주겠다”라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난 선임조감독과 함께 아이들을 만나러 국수역으로 갔다. 국수역에는 예닐곱명의 그 지역 초등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뒤에는 서너명의 어머니들이 잔뜩 화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 계셨다. 아이들 앞에 내가 나타나자 한 아주머니가 레이저급의 안광을 쏘아대면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아이들에게 청개구리하고, 무당벌레 잡으라고 시킨 사람입니까” 난 영문을 몰라서 “왜 그게 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하고 되물었다. 아주머니는 바닥에 펴놓은 우산을 치우셨다. 그 안에 과실주를 담그는 커다란 유리병이 무려 세 개나 놓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내 제의를 받고 아이들은 지난 일주일간 들로 산으로 물가로 다니면서 무당벌레 한 병, 그리고 청개구리를 두 병 가득 잡아놓았다. 몇몇 아이들은 학교도 안가고 청개구리와 무당벌레를 잡으러 다녔으니 어머니들로서는 화가 단단히 날 만도 했다. 아이들은 무려 청개구리 300여 마리, 무당벌레 500여 마리를 잡아놓았다. 어머니들은 무섭게 나를 바라보시면서 어서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계셨다.


난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10만원이 넘게(90년에 10만원이면 꽤 큰돈이었다) 필요한데 지갑을 탈탈 털어도 돈은 5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난 어머니들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가진 돈이 5만원 밖에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어머니들은 당신들 때문에 애들이 학교도 안가고 고생했는데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냐며 화를 내셨다.


난 솔직히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잡아 놓을 줄 예상하지 못했다. 5만원은 드리지만 청개구리 50마리 무당벌레 50마리만 가져가겠다고 제안하는 순간 선임조감독이 어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아주머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희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잡아 놓을 줄 몰랐고 아이들과의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청개구리 10여 마리 무당벌레 10여 마리면 충분하니 나머지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오늘 모자란 돈은 다음주 일요일에 다시 찾아와 꼭 드리고 주민등록증을 되찾아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때서야 아주머니들은 화를 푸시곤 아이들과 함께 돌아가셨다.


난 선임조감독에게 따져 물었다. “형, 5만원도 엄청 큰돈인데 뭐하러 그런 약속을 해요? 우리가 뭐 대단히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아요?”그때 선임조감독이 말했다 “야, 저 아이들은 어쩌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처음 약속한 것일수도 있어. 그런 아이들에게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되겠니?” 순간 난 그 형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얼마 전 우리는 우리지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많은 분들의 약속을 들었다. 이제 앞으로 4년간 우리는 그분들이 우리에게 하셨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국수역 앞마당에서 내 선임조감독이 초등학생들에게 보여줬던 약속의 중요성을 그분들이 절대 모르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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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