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10:04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하는 선장과 선원의 모습을 보며 분노한다. 동시에 의문스러워한다. 그래서 ‘악마’라는 답을 떠올린다. 그들이 아예 다른 종류, 가령 악마라면 분노가 치밀긴 해도 이해가 어렵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심각한 상태를 예시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명치끝에 뭔가 걸린 듯이 답답해진다.

“가만히 있으라.” 짐작건대 이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승객들 모두가 갑판으로 뛰쳐나오고 그러면 자신들이 구조될 확률이 낮아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해경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탈출할 때 그들은 아주 태연하다. 이들이 ‘악마’가 아니라면 이 태연함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경이 도착했으니 그들이 승객들을 구하겠지”라고 믿었다고 보는 것이다. 선원들은 해경이 ‘자신들과 달리’ 선의를 가지고 직무에 충실할 것이라 믿었으며, 또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승객 수백명이 죽게 될 것을 예상했다면 구조 직후 전화나 걸며 한갓지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통을 넘겨받은 해경 역시 선원과 같았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123정 함장은 인터뷰에서 세월호 가까이 배를 대면 함께 침몰할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안전이 우선이었고, 장비도 훈련도 없었기에 사태에 대처할 방법도 몰랐던 것 같다. 이들은 다시, 자신과 가까운 언딘마린인더스트리는 ‘자신들과 달리’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은 것 같다. 구조작업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잘못도 잘 덮어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언딘은 독점적 사업권에서 얻을 이익에는 관심이 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구조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이런 연쇄는 반대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회사는 불법 개조와 과적으로 사고 위험을 잔뜩 높여 놓고는, 선원들은 비상사태를 잘 처리할 것이고, 구조는 해경이 잘 해주리라 믿은 것 같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은 업무는 태만하게 처리하고 이권을 누리는 데 더 신경을 썼지만, 선사가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도 배를 침몰시킬 수준의 어리석음을 저지르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런 추론이 맞는다면, 우리가 사는 생태계는 부패와 배임의 연쇄로 심각하게 얼룩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부패나 배임은 사회적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익이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은 신의와 협동의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섰을 때, 새치기하는 사람을 생각해보라. 만일 모든 사람이 새치기를 시도하고 있다면, 그는 새치기에 성공할 수 없다. 사기꾼을 생각해보라.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속는 사람 그러니까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사기꾼인 세계에서는 사기로 이익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는 이유는, 신뢰를 배반하고 선의를 약탈하는 일이 계속된 결과 그런 배반을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타자의 선의와 유대감이 이제 심하게 고갈되었고, 우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직관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신뢰 약탈자들의 이익 추구를 가능하게 할지언정 그들이 내던진 공익적 가치를 지키는 ‘순수기업인’, ‘순수관료’, ‘순수대변인,’, ‘순수대통령’이 사라진 세상을 보여준다. 이런 악덕의 연쇄가 마침내 어린아이들을 수장시킨 것이며, 이제 그들은 ‘자신과 다르리라 믿었던’ 집단에 대해, 말단 해경에서 청와대까지 책임을 전가하는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760.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