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10. 15:17

불과 몇십 년 전까지 뭐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던 나라. 기술도, 자원도 없어 머리카락이나 주워 모아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던 나라. 외화 벌이를 위해 간호사·광부·군인들을 해외로 파견하던 나라. 대한민국 이야기다.

그러던 나라가 어느덧 세계인 절반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만들고 반도체를 생산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감독과 배우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를 보려고 듣지도 못한 먼 나라 국민이 저녁마다 TV에 시선을 집중한다. 참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 기업들이 만든 최신 제품들. 얼마 전부터 세계시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나쁘지 않다고. 많이 노력한 게 보인다고. 하지만 뭔가 부족하고 실망스럽다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실망스럽다는 걸까? 바로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대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답 또는 질문이다. 배가 고프기에 사냥을 해야 하고, 발이 아프기에 튼튼한 신발이 필요하다. 최첨단 스마트폰은 더 빨라야 하고, 고급 TV는 지금보다 더 좋은 화질을 가져야 한다. 모두 이미 주어진 질문에 찾아야 하는 정답들이다. 전쟁, 배고픔,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렇게 험한 세상이 우리에게 던져준 수많은 문제의 정답을 찾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갑이고, 우리는 항상 을이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사실 간단하다. 우리의 미래는 세계인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질문들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IT 기계들을 '입고'다녀야 할까? 왜 기계들에 인공지능을 주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일까?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젊은이들이 밤새워 공부하는 순간. 드디어 우리나라, 우리 기업들, 우리나라 국민이 이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던진 문제에 답을 찾던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라면, 우리가 던진 문제를 세상이 풀도록 하는 게 창조경제일 수도 있다.

김대식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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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