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을 보면, 주한미군이 한강으로 흘려보낸 포름알데히드 탓에 괴물이 만들어진다. 영화 속 괴물은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숙주이기도 하다. 실제 주한미군이 저지른 한강 오염 사건에 바탕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환경오염이 초래할 수 있는 끔찍한 결과에 대한 경고다.
겉으로 보면, 현재 서부 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에볼라는 환경적인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기니 등지에서 14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이번 사태는 지난해 기니 동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한 어린아이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과일박쥐에게 물리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감염자 발생 뒤 에볼라는 급속도로 도시 지역으로 퍼졌고, 이어 국경을 넘었다.
출혈열의 일종인 에볼라는 치사율이 매우 높다. 아직까지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고, 일부 실험단계 치료제가 시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도 에볼라가 창궐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엔 한적한 시골 지역에서만 퍼졌다. 1976년 콩고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에볼라로 인한 사망자는 약 3000명 정도다.
언론은 에볼라에만 관심을 쏟지만,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에볼라가 아니다. 매일 2000명가량의 아프리카 어린이가 설사로 인한 탈수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1분마다 아프리카 어린이 1명이 말라리아로 숨을 거둔다. 2011년에만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인해 사망한 아프리카인은 120만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이미 효과적인 예방·치료법이 개발돼 있다는 점이 더욱 비극적이다. 설사는 깨끗한 마실 물과 화장실 등 위생시설만 제대로 갖추면 된다. 말라리아는 모기장과 처방약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에이즈도 치료제가 개발돼 있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필요한 자금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아 목숨을 잃고 있다.
설사·말라리아·에이즈는 선진 개발국에서 더 이상 목숨을 위협하는 유행병이 아니다. 반면, 에볼라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탓에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에볼라가 아프리카 이외 지역으로 확산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기댄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감염자의 침·땀·혈액 등 체액과 직접 접촉해야 전염되는 에볼라가 지구촌 차원에서 대유행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언론이 에볼라를 대서특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프리카는 들짐승의 고기를 먹는 따위 야만적인 관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시각인데, 이번 에볼라 사태는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신식민주의적 관점’에 딱 들어맞는다. 과거 에볼라가 유행으로 번졌을 때도 감염된 침팬지나 박쥐 고기를 섭취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슴, 멧돼지, 다람쥐 따위를 사냥해 재미삼아 먹는다. 이들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물론 최근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가 퍼지는 속도는 위협적이다. 의료진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환경적인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 이번 에볼라 사태는 과거와 달리 한적한 시골에서 대도시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는 산림 파괴에 기인한 바 크다. 서부 아프리카 일대는 지구촌에서 산림 파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해마다 약 100만㏊에 이르는 숲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인간들이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서부 아프리카 주민들이 에볼라 바이러스 보균 생물과 직접 접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주민들 간 접촉 기회도 많아졌다. 환경 파괴가 어떤 치명적 전염병을 몰고 올 것인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영화 <괴물>은 괴물이 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서부 아프리카에서 창궐하고 있는 에볼라도 조만간 사그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곳쯤으로 숲과 환경을 대한다면, 언젠가 그 쓰레기가 돌아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서의 괴물 모습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전염병은 괴물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35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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