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한국 사람한테 좀처럼 듣지 못했던 속담 중 하나다. 오히려 외국인한테 더 많이 들었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보는 방식을 그들이 설명할 때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많은 한국인은 정말로 자기 나라를 새우에 견준다. 이게 과연 적절하고 정확한 비유일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들의 그런 인식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영원히 다른 나라에 휘둘리는 힘없는 희생자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체로 그런 시각에는 한국이 ‘작다’ ‘약하다’ ‘여전한 개발도상국이다’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개발도상국’은 불편할 정도로 자주 듣는다.
거슬리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한국 친구 한 명이 미국 유수의 MBA 스쿨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한 말이 “나 들어갔다. 난 그냥 한국 사람인데 말이야”였다. 미국의 엘리트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 중 한국인이 불균형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에는 대체로 부정적이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얘기들이 만연해 있다. 서울 특파원 시절 결론 낸 바로는 이런 얘기의 주창자들은 정치인과 재계 지도자를 비롯한 엘리트였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한국이 한국 같지 않기를 바라고, 미국 등 외국 같기를 바라는 듯이 보인다. 그들에게 한국은 ‘약하고’ ‘여전한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자기 회의적인 그런 얘기들은 변화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평등주의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논의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라는 인식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성장과 진보를 위해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지 않겠는가.
오늘 왜 이 얘기를 꺼낸 것일까. 나는 현재 여러분이 겪고 있는 한국의 추위와 산성눈(산성눈이 존재하는지 몰랐으나 산성비가 있으면 산성눈도 있을 법하다)을 피해 말레이시아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에 대해 쓴 내 책과 관련해 현지 언론인들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여기 있는 동안 한국이 약하고, 작고,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한국을 언급할 때마다 현지인들은 부러움과 존경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인들은 1987년 이후 한국의 정치적 발전을 부러워한다. 부(富)에 대해서는 한국을 서구나 일본과 같은 범주로 인식한다. 한국인에 대한 다른 반응이라면 “하지만 한국인은 우리를 깔보지 않나요?”였다. 말레이시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얘기는 한국인들의 자기인식과는 정반대이다.
내 책은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나도 유명 인사가 아니다. 하지만 동남아 여행 중에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언론인들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수없이 받았다. 그들은 한국의 비결이 뭔지와 더불어 도대체 왜 한국은 휴식을 취하지 않고, 지금의 성공을 조금이라도 즐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느냐고 물었다. 또한 자신들의 TV 스케줄이 왜 한국 드라마로 채워지는지도 알고 싶어 했다. 나의 책 중국어판 표지에 ‘세계가 김치에 목이 막히다’라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중국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가끔 전화를 걸어와 한국에 대해 읽거나 TV를 통해 들은 것을 얘기해준다. 그런 전화는 더 잦아지고 있다. 어머니는 “요즘 맨날 한국 소식을 듣고 있단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 맞는 것 같구나”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머니만이 아니다. K팝을 비롯한 한류가 런던이나 파리에서 대박 날 것이라는 데는 회의적이지만 한국이 세계 도처로 발을 뻗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동료 외국 특파원이 한국을 새우로 비유하는 것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은 더 이상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했다.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고래는 아니지만 스마트하고, 민첩하며 꽤 인기가 많은 돌고래 말이다. 돌고래는 때때로 포식자들을 조심해야 하지만, 먹이사슬에서 그의 전반적 순위는 선망의 대상이다. 돌고래가 알거나 말거나.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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