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부가 모든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이달 말부터 다음 달까지 육해공군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 사례를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최근 육군 17사단장의 여부사관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된 거지요.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28사단 윤 일병 구타사망사건.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1심 재판의 마지막 공판이 1주일 뒤인 24일 열립니다. 육군은 4단계인 병사 계급체계를 2단계로 줄이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지만 병영문화개선 효과가 클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국방개혁 일환으로 모병(募兵)제를 도입해 군대 문화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징병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강합니다. 모병제 찬반 의견을 통해 국방개혁문제를 함께 고민해봅니다. 》
▼ 모병제, 아직은 시기상조다 ▼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문제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병력충원제도에 관한 것이다. 징병제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남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이스라엘, 터키 등 70여 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국가와의 계약에 의해 군에 복무하는 제도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100여 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원래 징병제는 19세기 들어 전쟁이 국민 전체의 안위와 직결되는 양상이 되면서 돈 받고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애국심과 국민 총동원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국민개병(國民皆兵)’의 개념으로 도입된 제도다. 유럽에서는 18, 19세기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의 유산으로 확립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보편적인 병력충원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는 1948년 건국과 함께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부과한 ‘국방의 의무’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복무기간 단축, 병역특례제도 도입 등으로 징병제에 따른 문제점들을 보완해 왔는데 이제는 아예 모병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여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성추행 문제 등 흐트러진 군 기강과 관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모병제 문제는 섣부르게 거론할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징병제 유지냐, 모병제 전환이냐에 대한 왈가왈부는 국민 개개인의 희망과 편익에 따라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병력 충원 문제는 현재의 안보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도 앞으로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북한지역 안정화(安定化) 작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비한다는 넓은 안목에서 생각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벤치마킹해 볼 수 있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전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국가들의 예를 살펴보자. 이들은 모두 인접 국가와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희박하고, 자주국방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탄탄한 나라들이다. 국민 개인소득은 연평균 3만∼4만 달러 이상이고 병력 1인당 소요 국방비는 연평균 20만∼40만 달러에 달한다. 대표적인 이들 모병제 국가는 역사적으로 상무정신(尙武精神)의 전통을 갖고 있고, 군복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환경이다.
우리의 경우 안보, 경제 모든 면에서 모병제는 아직은 시기상조다. 무엇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현재 우리의 병력 1인당 소요 국방비는 연 4만 달러 수준으로, 선진 모병제 국가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의 안보상황은 아직 전쟁 재발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모병제를 위해 보수(報酬) 등 병력 1인당 소요 국방예산을 지금보다 몇 배로 대폭 증액한다 하더라도 양질의 병력 자원을 필요한 만큼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 자체가 정치·경제·사회 여건상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모병제 도입 시 군복무 지원이 ‘없는 자’의 불가피한 생계수단으로 인식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등 더 심각한 사회 계층적 갈등요인으로 작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현재 세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아주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나라다. 무엇보다 국민 단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최근 다시 징병제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는 9월 1일자로 다시 징병제로 전환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군내 폭력 등 병영문화 개선은 시급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병제로 풀 일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안보다. 우리의 안보 문제는 범국민적 관심과 총동원 체제로 대처할 문제이지 섣부른 모병제 논란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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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방대학원 교수, 국방부 군비통제관, 주미대사관 국방무관, 국방정책실장, ‘남북비핵화공동선언’ 협상대표,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대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대표 등을 역임했다.
박용옥 대통령국가안보자문위원 전 국방부 차관
▼ 정예 모병제로 가면 된다 ▼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군대폭력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졌고,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만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경우를 보면, 이런 대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만다. 물론 군대에서 배곯는 일은 사라졌고, 사망자 수가 줄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 군대는 여전히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다. 이젠 임시변통이 아닌 근본적인 국방개혁, 특히 징병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의 징병제에는 긍정적 기능도 없지 않았다. ‘빡빡 기는’ 군대생활과 그에 따라 사회전반에 파급된 군사문화가 고도성장의 촉진제였다. 열악한 작업환경하의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는 힘이 거기서 길러졌던 것이다. 1970년대 중동 사막에서의 건설현장을 생각해보라.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1. 모방이 아닌 이노베이션으로 승부해야 하고, 그러려면 창의적 사고를 억압하는 군사문화는 극복돼야 한다. 또 2. 군대로 인한 경력 단절로 숙련 축적이 어려운 현재상황에서 벗어나야 중소중견기업도 튼튼해진다. 3. 대개의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공군과 대치하는 대만에서조차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인권문제와 더불어 바로 이런 경제적 고려 때문이다.
징병제 폐지에 대해 엄중한 분단현실 운운하지만, 인해전술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첨단무기와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예병 중심으로 안보를 굳건히 해야 할 세상이 되었다. 뭔가 좀 알 만하면 제대하는 지금의 징병제로는 전쟁기술도 잘 축적되지 않는다.
4. 재정부담의 급증을 우려하기도 한다. 물론 군인들에게 어엿한 직장인 월급을 지급하는 모병제에선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군인 수를 줄이고 정예로만 뽑는 모병제를 고려한다면 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인건비만이 아니라 군을 운영하는 의식주 등 각종 부대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모병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인력활용을 한다면 오히려 국방비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다고 본다.
모병제를 하면 결국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에 가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에선 이미 힘 있고 돈 있는 집안 자식들은 요리조리 징병에서 많이 빠진다. 가더라도 주로 편한 자리에 배치받는다. 이런 형편에선 가난뱅이가 간다 하더라도 그 군대가 괜찮은 직장이 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모병제가 군대폭력을 곧바로 일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으로 군을 선택한 사람들이니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감은 커질 것이니 병영문화가 개선될 것이다. 덴마크처럼 징병제에서도 높은 사회문화 덕분에 군대폭력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사회문화수준이 낮은 한국에선 역으로 징병제 폐지라는 파격적인 제도 변화를 통해 병영문화 나아가 사회문화를 바로잡는 길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만난 적지 않은 군 간부들조차 모병제가 불가피한 대세고 시기와 방법만이 문제라고 한다. 모병제를 도입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행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징병제 속에서 모병제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종교적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하며, 군대를 선택하지 않는 남녀 모두 일정 기간 공적 서비스에 종사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예 모병제로 가슴 졸이는 병사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나라경제를 격상시킬 정치세력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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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했다.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베를린 자유대 객원연구원으로 현재 독일에 머물고 있다.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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