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31. 23:03

《 국방부가 모든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이달 말부터 다음 달까지 육해공군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 사례를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최근 육군 17사단장의 여부사관 성추행 사건이 계기가 된 거지요. 이번 국정감사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28사단 윤 일병 구타사망사건.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1심 재판의 마지막 공판이 1주일 뒤인 24일 열립니다. 육군은 4단계인 병사 계급체계를 2단계로 줄이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지만 병영문화개선 효과가 클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국방개혁 일환으로 모병(募兵)제를 도입해 군대 문화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징병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강합니다. 모병제 찬반 의견을 통해 국방개혁문제를 함께 고민해봅니다. 》      

       
▼ 모병제, 아직은 시기상조다 ▼


박용옥 대통령국가안보자문위원 전 국방부 차관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문제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병력충원제도에 관한 것이다. 징병제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남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이스라엘, 터키 등 70여 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모병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국가와의 계약에 의해 군에 복무하는 제도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100여 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원래 징병제는 19세기 들어 전쟁이 국민 전체의 안위와 직결되는 양상이 되면서 돈 받고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애국심과 국민 총동원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국민개병(國民皆兵)’의 개념으로 도입된 제도다. 유럽에서는 18, 19세기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의 유산으로 확립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보편적인 병력충원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는 1948년 건국과 함께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부과한 ‘국방의 의무’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복무기간 단축, 병역특례제도 도입 등으로 징병제에 따른 문제점들을 보완해 왔는데 이제는 아예 모병제로 전환하자고 주장하는 여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성추행 문제 등 흐트러진 군 기강과 관련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모병제 문제는 섣부르게 거론할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징병제 유지냐, 모병제 전환이냐에 대한 왈가왈부는 국민 개개인의 희망과 편익에 따라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병력 충원 문제는 현재의 안보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도 앞으로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북한지역 안정화(安定化) 작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비한다는 넓은 안목에서 생각해야 한다. 

먼저, 우리가 벤치마킹해 볼 수 있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전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국가들의 예를 살펴보자. 이들은 모두 인접 국가와의 무력충돌 가능성이 희박하고, 자주국방 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이 탄탄한 나라들이다. 국민 개인소득은 연평균 3만∼4만 달러 이상이고 병력 1인당 소요 국방비는 연평균 20만∼40만 달러에 달한다. 대표적인 이들 모병제 국가는 역사적으로 상무정신(尙武精神)의 전통을 갖고 있고, 군복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환경이다. 

우리의 경우 안보, 경제 모든 면에서 모병제는 아직은 시기상조다. 무엇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현재 우리의 병력 1인당 소요 국방비는 연 4만 달러 수준으로, 선진 모병제 국가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의 안보상황은 아직 전쟁 재발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모병제를 위해 보수(報酬) 등 병력 1인당 소요 국방예산을 지금보다 몇 배로 대폭 증액한다 하더라도 양질의 병력 자원을 필요한 만큼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또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증액 자체가 정치·경제·사회 여건상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모병제 도입 시 군복무 지원이 ‘없는 자’의 불가피한 생계수단으로 인식되는 풍조가 나타나는 등 더 심각한 사회 계층적 갈등요인으로 작용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현재 세계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아주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나라다. 무엇보다 국민 단합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 일각에서는 최근 다시 징병제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는 9월 1일자로 다시 징병제로 전환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군내 폭력 등 병영문화 개선은 시급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병제로 풀 일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안보다. 우리의 안보 문제는 범국민적 관심과 총동원 체제로 대처할 문제이지 섣부른 모병제 논란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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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방대학원 교수, 국방부 군비통제관, 주미대사관 국방무관, 국방정책실장, ‘남북비핵화공동선언’ 협상대표, ‘남북고위급회담’ 군사대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대표 등을 역임했다.

박용옥 대통령국가안보자문위원 전 국방부 차관


        
▼ 정예 모병제로 가면 된다 ▼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윤모 일병 폭행 사망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했다. 군대폭력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졌고,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만든다는 발표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경우를 보면, 이런 대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고 만다. 물론 군대에서 배곯는 일은 사라졌고, 사망자 수가 줄기는 했다. 그러나 한국 군대는 여전히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다. 이젠 임시변통이 아닌 근본적인 국방개혁, 특히 징병제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의 징병제에는 긍정적 기능도 없지 않았다. ‘빡빡 기는’ 군대생활과 그에 따라 사회전반에 파급된 군사문화가 고도성장의 촉진제였다. 열악한 작업환경하의 장시간 노동을 견뎌내는 힘이 거기서 길러졌던 것이다. 1970년대 중동 사막에서의 건설현장을 생각해보라. “군대 가야 사람 된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끝났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1. 모방이 아닌 이노베이션으로 승부해야 하고, 그러려면 창의적 사고를 억압하는 군사문화는 극복돼야 한다.2. 군대로 인한 경력 단절로 숙련 축적이 어려운 현재상황에서 벗어나야 중소중견기업도 튼튼해진다. 3. 대개의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공군과 대치하는 대만에서조차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인권문제와 더불어 바로 이런 경제적 고려 때문이다.

징병제 폐지에 대해 엄중한 분단현실 운운하지만, 인해전술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첨단무기와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예병 중심으로 안보를 굳건히 해야 할 세상이 되었다. 뭔가 좀 알 만하면 제대하는 지금의 징병제로는 전쟁기술도 잘 축적되지 않는다. 

4. 재정부담의 급증을 우려하기도 한다. 물론 군인들에게 어엿한 직장인 월급을 지급하는 모병제에선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군인 수를 줄이고 정예로만 뽑는 모병제를 고려한다면 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인건비만이 아니라 군을 운영하는 의식주 등 각종 부대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모병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인력활용을 한다면 오히려 국방비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다고 본다.

모병제를 하면 결국 가난한 집 자식들만 군에 가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에선 이미 힘 있고 돈 있는 집안 자식들은 요리조리 징병에서 많이 빠진다. 가더라도 주로 편한 자리에 배치받는다. 이런 형편에선 가난뱅이가 간다 하더라도 그 군대가 괜찮은 직장이 되도록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모병제가 군대폭력을 곧바로 일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으로 군을 선택한 사람들이니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감은 커질 것이니 병영문화가 개선될 것이다. 덴마크처럼 징병제에서도 높은 사회문화 덕분에 군대폭력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사회문화수준이 낮은 한국에선 역으로 징병제 폐지라는 파격적인 제도 변화를 통해 병영문화 나아가 사회문화를 바로잡는 길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만난 적지 않은 군 간부들조차 모병제가 불가피한 대세고 시기와 방법만이 문제라고 한다. 모병제를 도입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행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징병제 속에서 모병제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종교적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즉각 도입해야 하며, 군대를 선택하지 않는 남녀 모두 일정 기간 공적 서비스에 종사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예 모병제로 가슴 졸이는 병사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나라경제를 격상시킬 정치세력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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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했다.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베를린 자유대 객원연구원으로 현재 독일에 머물고 있다. 블로그 

Posted by 겟업
2014. 10. 30. 07:27

《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마련하기 위한 공청회가 오늘(12일) 열립니다. 교육계의 주요 이슈임을 반영하듯 교사와 전문가 등 무려 7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교의 경우 사회 과목은 ‘통합사회’로, 과학 과목은 ‘통합과학’으로 개편되고 한국사는 6단위(1단위는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1시간씩)를 배워야 하는 필수과목이 됩니다. 교육부는 크게 3가지의 안을 내놨지만 과학계는 과학 교육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에 대한 역행이라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교육 당국은 그동안 과학 수업이 충분히 확대돼 왔으며 개정이 되더라도 과학 교육이 축소될 우려는 없다고 반박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두 전문가의 말을 듣다 보면 역시 이번 개정에도 ‘소통’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동아쟁론을 계기로 더욱더 많은 쟁점들이 노출되어 원만한 합의를 이뤄내길 빌어봅니다. <오피니언팀> 》

        
       
▼ 과학수업 축소는 미래인재 육성에 역행한다 ▼


정진수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대책위원

합리적인 교육과정 개정을 바라는 과학계의 요구가 밥그릇 챙기기로 곡해당하고 있다. 과학계가 초중등 과학 교육에서 챙기는 이익은 없다. 다만 개정의 절차 방향 내용 모두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할 뿐이다. 개정 절차는 독점화 권력화되어 있고, 개정의 방향에는 미래사회의 인재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새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맞춤형 교육도 학생들에게는 허울뿐이고, 기초소양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1. 지식정보화시대인 21세기에 학생들은 기본적인 개념뿐 아니라 첨단지식의 변화도 어느 정도 알고 그 지식을 생활에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박제화된 지식만 남아 있다. 첨단 지식의 변화와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배제하고, 소수의 교육학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개정 작업을 맡겨온 결과다. 

누구나 자기 분야가 중요하다고 요구하고 있으니, ‘이해관계’ 조정이 우선이라는 교육부의 주장은 궤변이다. 과목별 시간은 인재상과 교육의 방향을 정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2. 각 과목에 배정되는 시간에 따라 사범대 졸업생의 취업률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교육과정 개정을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시킨 것은 시간 배정을 권력화한 교육부인 셈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이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제대로 학습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임무다. 교육과정을 수능 체제에 맞추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수능 체제가 결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에 맞추어 교육과정의 틀을 정하겠다는 것은 ‘있지도 않은 꼬리(수능)’가 ‘몸통(교육과정)’을 흔드는 격이다. 

인재상은 교육과정 문서가 이것으로 시작할 만큼 중요하다. 민주화 다원화 선진화된 사회에서 미래의 인재상을 설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사회 여러 분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방향도 정하지 않고 시간 배정부터 하겠다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땅부터 고르겠다고 덤비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의 교육내용은 학생들의 기초 소양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한다.3.  일제가 교육비용을 절감하려고 만든 문·이과 구분 교육은 한쪽을 선택한 아이에게서 다른 반쪽의 학습권을 모두 빼앗는다. 선택권을 빌미로 지나치게 쪼개놓은 과목은 지식의 편식을 가중시킨다.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과목의 무려 6배를 제공하는 현 교육과정에는 반드시 배워야 할 것과 배워두면 좋은 것이 마구 섞여 있다.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채, 입맛에 맞는 것만 고르라는 것을 맞춤형 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 

최소한 가르쳐야 할 필수시간을 모든 과목에서 같이 줄이고, 진로에 따른 선택이 가능하도록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발상이다. 공식적 시간표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학교는 자율시간을 입시 과목에 쏟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개정작업은 적체된 문제는 버려둔 채 시간 배정에만 매달리고 있다. 과학계는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부터 정립하고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과학계가 과학에 시간을 더 배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과학 교육과정 하나만 만드는 데에도 철학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 수백 명이 모여서 안을 만들고 수천 명의 검토를 거쳤다. 최근의 지식도 소개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역량도 강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부는 미래를 위한 방향 설정도 없이 10명의 교육학자에게 반년 만에 틀을 정하라고 한다. 이제 우리도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게 놔둘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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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속한 기초과학학회협의체는 대한수학회, 한국물리학회, 대한 화학회, 한국 분자·세포생물학회, 한국지구과학학회 연합회가 모여 기초과학의 발전을 모색하는 단체다.

정진수 충북대 물리학과 교수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대책위원

       
       
▼ 모든 과목 가르친다고 통합교육 되진 않는다 ▼


황규호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정 개정 연구위원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개정은 일차적으로 현행 수능 체제에 의해 야기된 문·이과 칸막이 문제를 없애는 데 취지가 있다. 문과생은 과학 교과를 소홀히 하고, 이과생은 인문·사회 교과를 소홀히 하는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것이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 인재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고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이과 통합이 문과와 이과 등 계열을 폐지하고 모든 학생이 동일한 과목들을 똑같이 이수하는 획일적 교육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기초소양에 충실하되 자신의 진로에 따라 여러 과목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이과 통합교육의 기본 방향이다. 핵심은 ‘맞춤형 교육’이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등학교 공통과목이나 교과별 필수 이수단위는 학생들의 진로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과학계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과학 기초소양 함양을 위해서는 과학 교과 시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예를 들어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6단위를 배정했으니 과학에도 총 16단위(국어, 수학, 영어, 사회는 각 10단위)를 배정하라는 식이다. 또는 모든 교과에 15단위를 배정하되 도덕을 포함하는 사회교과군의 경우 이미 한국사에 6단위를 배정했기에 이를 차감한 9단위만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문·이과 ‘균형학습’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는 1970년대부터 공통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었다. 한국사 필수 지정이 곧 과학교육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학생들에게 과학적 기초소양을 반드시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모든 학생을 위한 ‘기초소양’의 범위와 수준을 어느 정도로 규정해야 할 것인가이다. 

1. 지난번 교육과정 개정에서 일부 과학계 인사가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이라며 제시한 내용에는 전문 과학자들조차도 생소해하는 현대과학 지식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과학교사들이 당황했음은 물론이요, 학생들 또한 난해한 용어들과 씨름하느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 과학지식의 기본 개념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의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이해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셈이다. 세부적인 과학지식을 더 많이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한다는 개발자의 과도한 의욕과, 학교교육 및 학생에 대한 이해 부족이 낳은 결과다. 

2. 다른 한편으로, 기초소양 교육에서는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접근을 넘어서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국제 평가에서의 높은 시험 성적에도 불구하고 교과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이 왜 떨어지겠는가.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낱낱의 지식들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교과별 핵심 원리와 탐구능력을 엄선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조직하여 사회 및 자연 현상에 대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은 지식을 얕게 가르치기보다 적은 내용을 깊이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전 세계 교육계가 받아들이는 상식적인 경구다. 서울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했던 수학 천재들의 공통적인 조언도 더 많은 문제풀이보다는 기초 개념과 기본 원리의 이해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해 그동안 교과교육 전문가 및 학교 현장 교사들이 함께 참여하여 서로의 생각을 협의하고 조율해 왔다. 학습경험의 양보다 질을 개선하여 ‘배움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교육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학생과 학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두가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이화여대 입학처장과 교무처장, 한국교육과정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구성 방안 연구’의 책임을 맡고 있다.

황규호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과정 개정 연구위원 

Posted by 겟업
2014. 10. 29. 22:20

《 경기도에서 ‘9시 등교제’가 시행(1일)된 지 딱 1주일을 맞았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한 이 제도에 도내 2250개 학교 중 2001개교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94%, 중학교 91.1%, 고등학교 72.7%의 높은 참여율입니다. 학생들에게 수면권과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이 정책에 대해 찬성도 있지만 반발도 거셉니다. 등교시간은 학교장 고유 권한인데 도교육청이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여론에서부터 맞벌이 부부의 고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 고3 수험생이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도 나옵니다. 통학버스 운송 종사자들이 9시 등교 철회 시위를 하는 등 학교 담장을 넘어 사회적 논란까지 된 오전 9시 등교에 대한 두 전문가의 시각을 소개합니다. 》

▼학생-학부모-교육자 등과의 약속… 쉽게 바꿀 일 아냐▼

이대영 서초고 교장

경기도교육청이 2학기를 앞두고 ‘건강한 성장·활기찬 학습을 위한 9시 등교 추진계획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과 교육감 서한문을 산하 교육지원청을 통해 도내 전체 초중고교로 발송했다. 서한문에는 아침에 부모와 식사를 함께하면서 가족 간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가정화목과 가정교육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도 곁들였다. 이재정 교육감이 만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기에 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지역의 초중고교는 1일부터 ‘9시 등교’를 시작했다. 그런데 9시 등교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은 본격 시행과 함께 불만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할 때는 그 정책이 유리하게 작용할 사람들과 그로 인해 불리함과 불편을 겪을 수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오전 9시 등교에 대해서도 학생의 나이, 지역, 등교 거리, 부모님의 직업 등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바로 이 점이 9시 등교가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학교 등교시간은 학생들 입장에서 이른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만을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등교시간은 학생, 학부모와 가족, 교육자, 운송수단, 학생을 관리 보호하는 사람 등과 합의된 하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시행 첫날부터 9시 등교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족들의 생활패턴이 깨져 버렸다”는 불만부터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1시간이나 혼자 집에 있다 등교를 해야 한다”는 맞벌이 엄마의 걱정까지, 목소리는 다양하다. 부모들의 출근시간은 그대로인 채 아이들의 등교시간만 늦춰진 탓이다. 일찍 출근하는 부모를 대신할 돌봄 대책도 마련돼 있지 않다.

그러면 이런 불편과 부작용을 차치할 만큼 9시 등교가 학생들에게 유리할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9시 등교는 청소년의 수면권과 건강권, 원거리 통학생을 위한 배려, 가족과의 아침식사를 통한 정서적 안정 등을 근거로 추진됐다. 일견 30분 늦게 등교하면 잠이 부족한 학생들이 30분 더 잘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등교가 늦어지니 그 시간에 TV를 본다” “더 늦게 잠들어 아침에 허둥대는 건 마찬가지”라는 부모들의 불만은 그래서 나온다. 청소년들의 수면부족 문제는 단순히 수면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치게 늦게 잠드는 시간과 잠자는 중에도 스마트폰에 반응하는 등의 질적인 문제가 더 크다. 청소년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써야 할 점은 수면 습관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아침식사도 여전히 힘들다. 부모들은 예전처럼 일찍 출근하는데 단란한 아침식사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9시 등교의 본의(本意)가 폄훼돼서는 안 되지만 9시 등교가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여유를 줄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

더 큰 문제는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9시 등교로 당장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학생들은 지금까지 8시 등교에 적응해 왔고, 여기에 맞춰 대학수학능력시험도 8시 20분에 시작한다. 경기도내 수험생들이 9시 등교에 적응하더라도 수능시험 당일에는 8시에 등교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촌극은 벌어졌다. 수능 시험 전 마지막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경기도내 고3 학생들은 9시 등교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다시 8시에 등교해 시험을 치렀다. 경기도의 고3 학생들은 그래서 걱정이 태산이다. “‘9시 등교’ 때문에 1교시 시험을 망쳤어요”라는 원망도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장 적합성을 따져야 한다. 특히나 교육정책은 수요자 입장에서 예측 가능해야 하며 안정적이어야 한다. 사전에 충분히 소통하면서 이해와 설득의 과정을 거치고, 강요가 아닌 권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감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오랜 관습이 한순간에 바뀐다면 당초의 좋은 취지도 묻히고 부정적인 여론만 형성돼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될 수 있다. 교육정책을 바꿀 때는 충분한 시간과 적응 기간을 두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천천히 시행해야 한다. 9시 등교가 무엇이 그리 급한 일인가?


※ 필자는 교육과학기술부 대변인과 서울시 교육감 권한대행을 지냈다.

이대영 서초고 교장



▼양에서 질, 속도전서 여유있는 학습으로 가는 첫걸음▼


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2008년 내가 근무했던 고교에서는 오전 7시 40분 등교, 8시 10분 수업, 오후 보충수업 2시간을 강행했다. 아이들과 교사들이 힘겨워했다. 학교운영위원이었던 나는 등교시간과 수업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자는 문제제기를 했다. 토론을 하던 중에 화가 난 선배 교사가 내게 외쳤다. “우리 학교가 명문학교로 잘 발돋움하고 있는데 어디서 빨갱이 하나가 들어와서 학교를 망치고 있어!” 학생들이 아침밥이라도 먹고 올 수 있도록 등교시간을 늦추자는 제안은 ‘색깔론’과 ‘명문학교 망가뜨리기’라는 오해 속에 별 소득 없이 끝났다.

그로부터 6년 후, 경기도에서 88.9%의 학교들이 9시 등교를 실시한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9시 등교가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9시 등교가 입시를 망칠 것이라는 불안감을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고교에서는 강력한 생활지도, 많은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의 높은 참여율, 2학년 내 진도 마치기 및 3학년 반복 문제 풀이, 조기 등교라는 문법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런 양과 속도에 의한 학습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학습량과 속도 값을 대입하면 수능 점수가 팍팍 올라갈까? 

학교 현장을 가보라. 적지 않은 학생들이 아침부터 졸고 있다. 국영수 시간에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또한, 수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도 학교의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은 여전히 수능에 초점을 맞춘다.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은 달나라 이야기이다. 

9시 등교는 양에서 질로, 속도전에서 여유 있는 학습으로 학교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보다 정규 수업이 훨씬 중요하다. 내 아이가 속한 학교의 정규 수업의 질이 어떠한지, 수업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좋은 수업을 위해 선생님들은 모여서 학습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교육과정 특성화와 다양화가 이루어졌는지를 학부모들은 따져봐야 한다. 

좋은 입시 성과를 위해서는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줄여야 하고, 정규 수업과 교육과정의 질을 높여야 하며, 학생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도록 여유를 허락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가 최상위권이라고는 하지만 학습 시간량을 투입한 학습효율화 지수를 보면 하위권으로 전락한다. 즉, 공부는 많이 하는데 학습의 효율은 매우 떨어진다. 교과서 요약, 선행 수업, 반복적인 문제풀이 수업은 한계가 분명하다. 토론과 참여, 독서, 프로젝트 활동, 진로활동이 결합한 수업과 교육과정을 모색해야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심지어 입시 결과도 살 수 있다. 

9시 등교의 반대 주장을 보면 ①학교장의 권한 침해 ②지역과 여건 고려 ③고등학생들의 수능 생체 리듬의 훼손 ④맞벌이 부부의 고충 등을 들어 반대한다. 9시 등교는 학교 공동체의 논의를 통해 얼마든지 풀 수 있다. 설문조사라든지 주체별 토론회 등을 거쳐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다만 입시 경쟁 구조하에 있는 고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교가 조기 등교 하는데 특정 학교만 9시 등교를 결정할 수 없다. 결국 정책에 의해 학교장들이 등교시간을 늦출 수 있는 명분과 계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고교에서 9시 등교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들이 일찍 학교에 와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과 만족도 높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맞벌이 부부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 수능을 대비한 생체 리듬도 수능을 앞두고 탄력적으로 학사를 운영하면 된다. 

어느 공연장에서 앞좌석의 관객이 무대 장면을 잘 보기 위해 일어나면 결국 모두가 일어나야 한다. 누가 용기를 내어 일어선 관객들을 다시 앉게 만들 것인가? 경기도에는 9시 등교를 결정한 고교가 상당수 존재한다. 만약 경기도교육청을 넘어 타 시도교육청에서도 등교 시간 늦추기를 지금부터 준비해서 내년에 실시한다면 초중학교뿐만 아니라 고교에서도 9시 등교의 전면 실시가 불가능하지 않다. ‘아침이 있는 삶’이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열리기를 소망한다.

※ 필자는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김성천 좋은교사운동 정책위

Posted by 겟업
2014. 10. 27. 06:33

《 6·4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13명이 당선되었습니다. 대다수 진보 교육감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사고의 뿌리는 2002년 고교평준화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자립형사립고에 있습니다. 이를 강화한다면서 2010년 자사고로 전환한 것입니다. 전국 49개교 가운데 25개교에 대해 재지정 여부가 8, 9월에 결정됩니다. 지정 기한을 연장할지, 지정을 취소할지는 교육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자사고는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을 부추기고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어 사실상 학생 교육권을 침해하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육 소비자 입장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두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



▼우수학생 독점하는 자사고 없애야 일반고 산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자율형사립고 탄생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고교 평준화가 고등학교를 획일화시켰다. 평준화를 위해 사립학교 역시 통제가 불가피하다. 온갖 규제와 통제로 인해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죽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 사학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 대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는다. 등록금만으로 운영되는 자사고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궁극적으로 고교의 다양한 발전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처절히 실패했다. 이제는 자사고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일반고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사고 정책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사고는 계층 통합을 저해한다. 세간에는 ‘특목고는 성골, 자사고는 진골, 일반고는 육두품’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자사고의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2.5∼3배 이상 비싸다. 가난한 학생이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으로 자사고에 들어갔다고 해도 버티기란 쉽지 않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교육정보연구원의 서울교육종단연구 1, 2차 연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고의 경우 가구소득이 400만 원 미만이 48.1%, 600만 원 이상이 23.2%인 반면 자사고는 400만 원 미만은 27.2%, 600만 원 이상은 44.8%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교를 결정짓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 통합은 점점 달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둘째,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유기홍 국회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자사고가 도입되기 전인 2009년 서울지역 일반고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20% 학생 비율은 21.9%였으나 2012년에는 18.1%로 감소했다. 반면 내신성적 하위 20%인 학생 비율은 2009년 14.1%에서 2012년 18.5%로 늘어났다. 특성화고 진학에 실패한 중하위권, 특목고나 자사고 진학에 실패한 상위권 학생이 막차처럼 일반고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자사고는 학생 선발권을 갖는다. 정부가 일반고 살리기의 일환으로 학교당 몇 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지만 근본적인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는 한 자사고를 따라잡기란 요원하다.

셋째, 자사고는 공교육을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모델이 될 수 없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국영수의 강화로 이어졌다. 자사고의 건학이념은 결국 입시 명문고이다. 일반고가 교육과정을 정함에 있어 모델로 삼을 만한 자사고도 극히 적다. 자사고의 입시 성과가 좋게 나오는 것은 애초에 일반고보다 우수한 학생을 받았기에 나타난 결과다. 그러니 일반고에선 자사고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사고 정책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대신 일반고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의 분산 효과를 바탕으로 일반고 혁신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승산은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들어온 학생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 효과’ 모델이 필요하다. 

자사고가 일반고를 견인하는 모델로서 기능하려면 ‘선발 효과’를 포기하고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혁신학교는 선발권에 집착하지 않는다.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혁신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에 노력을 기울인다. 단위학교 실천성과를 인근의 학교와 나눈다. 상생과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고등학교를 살릴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교육과정 클러스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준화 A지역 내 학교들은 로봇기초, 국제정치, 스페인어 교과목을 한 개씩 개설한다. 해당 분야의 진로나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가 아니더라도 인근의 학교에 가서 개설된 정규 교과목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개별 학교가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여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를 지역에서 연계한다면 특목고나 자사고를 만들지 않아도 진로 교육과정 잔치를 열 수 있다. 단위학교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대학교에서 의미 있게 평가한다면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 수 있다.

정책을 쏟는 에너지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다. 에너지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걸음마 단계인 자사고 폐지 주장은 시기상조


1973년 시행된 고교평준화정책은 학생들의 입시 지옥을 해소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장점이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획일화로 경쟁의 원리를 없앰으로써 전체적으로 고교가 하향평준화하는 문제점이 생겼다. 

역대 정부들은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고교평준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학생들의 다양한 학업능력, 장래희망, 적성, 취미 등에 따라서 직업학교인 특성화고나 예술고, 체육고, 과학고, 외고 등을 선택하여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MB정부가 자율형학교제도를 도입한 첫째 이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이유는 사립학교의 설립 취지와 건학이념을 존중해주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학교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모든 사립학교는 대부분 학생선발권, 교육과정운영권, 수업료 책정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정부가 사립학교에 교원인건비 등을 지원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교평준화정책으로 공립학교와 차이가 없다. 지난 정부에서 자율형학교제도를 도입한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학교에 사립학교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허용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자율형사립학교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일반고의 3배 범위에서 수업료를 받는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로부터 귀족학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사고의 내부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청으로부터 교원의 인건비 등을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정적 압박을 더 받는다. 그럼에도 자사고를 유지하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나마 학교선택권과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학교를 잠자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고교평준화정책으로 학업능력과 적성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아 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잘하는 학생들 모두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학교를 마친 후 자신의 학업능력에 따라 학원에서 공부한다. 학교가 잠자는 곳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얼마 전 강북에 있는 한 자사고를 방문하였다. 스스로 학교를 선택하여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교사들도 밤늦게까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를 함께 의논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고 했을 때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형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소위 진보 교육감들은 한결같이 전국 고등학교의 2.1%에 불과한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 같다. 자사고가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을 싹쓸이해가서 일반고가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다. 

서울의 자사고는 지난해까지 중학교 내신 50% 이내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했다. 그러나 대부분 자사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은 일반고에 진학한 학생들과 비교해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자사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교사들도 의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 뿐이다. 굳이 좋은 학교를 찾아 강남이나 목동으로 이사를 가는 강북 학생의 비율도 훨씬 줄었다고 한다. 

자사고는 생긴 지 3,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평가를 통하여 자사고의 성공 여부와 존폐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시일이 짧다. 어떤 학교이든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여 성과를 내는 데에는 보통 10여 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고교평준화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신장하고 학부형과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넓혀주며, 학교를 잠자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도입되었다. 교육정책이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이나 일부 사람의 반대 때문에 바뀌거나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은 여당이나 야당 혹은 보수와 진보 등의 정치적 성향이나 교육감의 개인적 소신에 좌우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된다.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면서 국민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일관성 있게 추진해가야 한다. 자사고도 마찬가지다. 폐지하지 말고 존속시켜야 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필자는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단 부위원장과 이명박 정부 대통령교육과학 문화수석비서관을 지냈다
.


Posted by 겟업
2014. 10. 24. 07:00

《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에 빵집이나 두부, 간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같은 100여 개 품목을 취급하지 말라고 지정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3년 시행 기간이 끝납니다. 이 중 82개 품목에 대해 재지정을 할 것인지(9월 결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했다가 폐지됐으나 동반성장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다시 시행된 제도입니다. 대기업들은 “국내 기업들이 빠진 자리에 외국계 기업만 들어와 이득을 보고 있다.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대표적인 규제”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시장에 마구 진출하는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대기업 떠난 자리에 외국기업만 이익, 폐지해야”▼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가 주요 품목 재지정 시한이 다가오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의 자구 노력을 조건으로 일정 품목에 대해 대기업의 진입을 제한하거나 기존 기업이 더이상 설비투자 등을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과거 실패한 정책으로 폐기되었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 대기업이 시장에서 불공정거래를 했는지 묻지 않고 단지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사업을 못하게 하는 강력한 규제라는 점이 지적되면서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3년 시한으로 도입되었고, 필요시 3년 재지정이라는 타협점을 모색하였다. 소위 ‘일몰 규제’적 성격으로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일몰 규제가 그렇듯 원칙적으로 시한이 도래하면 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연장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제한적인 수준에서 예외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적합업종 지정 시 중소기업들이 약속했던 자구 노력을 충실히 이행했지만 시간이 모자라 자생력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이 입증될 때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제도 유지에 따른 효과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다면 재지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당 시장이 줄어들었다거나 대기업이 빠진 자리에 외국계 기업이 파고들었다거나, 혜택이 골고루 가지 않고 몇몇 중소기업에만 돌아가 독점력이 오히려 증가했다거나 하는 경우다. 또 가격 상승을 초래하여 소비자 후생이 감소했다거나 하는 등의 부작용은 없었는지 같은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기회에 적합업종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호를 위한 칸막이, 체급 나누기가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1. 해당 기업이 어떻게, 어떤 노력으로 성장했는지 묻지 않고 규모가 크다고 일단 사업 활동부터 제한하는 적합업종제도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을 수 있다. 성장억제제 혹은 성장한계선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실례로 샘표식품은 간장업종 전문기업으로 성장하여 소위 대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간장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풀무원 역시 지난 30여 년간 두부사업으로 식품전문 대기업이 되었으나 적합업종 지정으로 사업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

또한 칸막이를 통한 보호가 오히려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 우리나라 자영업은 일부 업종에 지나치게 많은 사업자가 몰려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국내 자영업자 비중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인 16.1%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미국 7%에 비하면 최대 4배나 많은 상황이다. 과당 업종에 대한 정책적 보호는 종사자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할 우려가 크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9.1%만이 적합업종제도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보호정책이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 새로운 직업 등으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 될 것이다.

3. 중소기업들이 세계적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세계 시장은 새로운 기회가 된다. 국내 시장에서 대기업과의 경쟁은 글로벌 경쟁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전초전에서 이긴 중소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보호에 안주할 경우 외국 시장은커녕 우리 시장마저 외국에 뺏길 우려가 커진다. 과거 조명 시장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오스람, 필립스 등 외국 대기업이 우리 안방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나아가 경쟁력의 저하는 소비자 외면으로 이어져 시장 자체가 축소될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시행되었던 1991∼2001년 중 고유업종이 속한 산업의 사업체 수 비중은 1.3%포인트 감소했고, 생산액과 종사자 수 비중은 각각 4.3%포인트, 2%포인트 감소했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 증명한다. 중소기업 보호 목적으로 도입, 운영되었던 고유업종제도가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키고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폐기되었다는 역사적 경험을 되새길 시점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 탐욕 계속되는한 中企보호 위해 필요”▼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해주던 고유업종제도가 2006년에 폐지된 이후 우리의 산업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제도가 폐지된 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이 일어나 중소기업과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지금은 언론의 지탄을 받고 주춤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기업은 제빵·제과업 및 음식점으로 진출했음은 물론이고 하청업체의 사업영역이나 영세한 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 분야로의 진출도 두드러졌다.

1. 기업의 사업영역은 경쟁질서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기업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기존 기업과의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기업들의 사업 영역 확대를 더이상 사업 다각화라는 명분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민간 자율 합의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들은 3년간 보호를 받는다. 올 하반기가 되면 보호기간 3년이 지나 두부, 재생타이어, 김치, 어묵 등 82개 품목이 재지정을 앞두고 있다.

최근 적합업종 품목의 재지정을 앞두고 대·중소기업 간 힘겨루기가 치열하다. 문제는 대기업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내용이 사실관계를 벗어나 ‘흠집 내기’ 수준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적합업종에 대한 찬반 의견 개진은 바람직하지만 있지도 않은 일을 부풀려서 얘기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커피, 단체급식 등 적합업종이 아닌 품목을 적합업종으로 잘못 인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외국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커졌다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등이나 재생타이어의 경우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내 시장 규모 및 구매 특성을 무시하고 일부 내용을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국내 음식점이 사라지자 초밥집 같은 일본계 음식점 수가 늘어났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상을 보면 국내 대기업이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를 일본계로 오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식품 전문기업에 두부를 만들지 못하게 하자 이 기업에 콩을 납품하던 농민들이 도산 위기에 몰렸다고 하는데 이는 작년에 콩 작황이 풍작을 기록하면서 콩 생산 농가들의 어려움이 가중된 탓이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적합업종 탓으로 돌리고 있다. 대기업 두부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의 두부 시장 점유율은 2010년 79.8%에서 2012년 81.8%로 높아졌다. 이는 두부는 팔지 못하되 포장두부는 팔게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포장두부 시장은 전체 두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대기업은 별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

적합업종제도는 과거 고유업종제도와는 달리 법으로 정하지 않고 민간 자율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제도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줄이기 위해 3년간의 운영 성과를 평가하여 재지정 여부를 정하도록 ‘일몰제’를 도입하였으며 중소기업에도 자구 노력을 부여하였다.

대기업과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적합업종이 부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인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2. 이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는 복수의 연구기관을 지정하여 3년간의 운영 성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재지정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라 재지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유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06년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이후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중소기업 사업 영역을 보호하거나 사업 이양을 추진했더라면 적합업종제도를 도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3년 전 상황을 망각한 채 적합업종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앞서 양쪽이 역동적인 기업생태계를 이루어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해법은 교섭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대기업이 쥐고 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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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22. 06:24

비트코인, 화폐로 볼수 있나?

《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 후보로 올릴 정도라고 하네요. 국내에도 최근에 인천의 한 빵집이 처음으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하면서 문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은행은 “현행법상 화폐로도, 금융상품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격 폭락으로 손실을 봐도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과연 비트코인은 ‘새로운 화폐’가 될 수 없을까요? 전문가 두 분의 찬반을 들어봤습니다. 》

▼ “비트코인은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 ▼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공동설립자·이사

비트코인은 2009년 등장한 가상화폐이자 글로벌 전자지불네트워크의 이름이다.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그해 가을, 온라인상의 암호학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비트코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이듬해 1월 3일 홀로 그 시스템을 시동했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식 가명을 사용했던 인물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난해하고 낯선 시스템에 초기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암호학 전문가나 해커들이 전부였다. 비트코인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요즘도, 이 새로운 발명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유럽중앙은행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상화폐”라고 평가한 바 있고 타임지는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화폐”라고 했으며, 얼마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벤 버냉키 의장까지 나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제도금융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하지만 필자는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이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비트코인 열풍에 투기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급격한 가치변동이 회계의 척도라는 화폐의 기능성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가 신기루에 불과하다거나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튤립버블’(14세기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투기광풍)과 유사하다는 등의 지적은 악의적이거나 순진한 오해, 둘 중 하나다.

1. 비트코인은 화폐이기 이전에 역사상 가장 고효율의 글로벌 금융네트워크다. 금융기관의 개입이 없고, 중앙집중적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속도는 빠르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이 평가했던 ‘장래성’은 바로 이런 글로벌 지불시스템적인 특성에서 비롯한다.

2. 비트코인은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혁신적 금융플랫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오지에 가면 금융시스템이 미비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금융시스템 없이도 양자간의 거래가 가능하다. 장소의 구애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는 네트워크적이며 생태계적인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단순히 화폐로만 바라보면 거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실체는 매우 중층적이다.

왜 사람들은 사람들의 수다를 이어주는 네트워크(페이스북, 트위터)나 정보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구글)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정작 아프리카 오지까지 금융적 수요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지닌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인색한 것일까? 

3.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보안 문제에서도 비트코인은 훨씬 안전하다. 금융기관 보안망이 뚫리고 금융사기가 빈발하는 동안에도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는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 이유는 인터넷뱅킹 등 기존 금융시스템과 달리 해커들의 표적이 될, 단 하나 또는 소수의 데이터베이스 서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수백만의 똑같은 데이터베이스가 산재해 있고 그것을 대략 10분에 한 번꼴로 동기화하는 획기적인 분산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가 알려지자 해커와 보안전문가들이 초기에 열혈 이용자가 된 것이다. 

국가와 금융기관이 보증하지 않아 취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달러의 구매력이 무려 95%나 하락해 왔다는 점,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개인의 구매력과 자산가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4.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12조 달러 상당의 통화가 발행돼 신용버블이 지구를 뒤덮은 동안에도 비트코인의 구매력과 가치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시대를 앞서간 기술적 혁신은 처음에는 언제나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1845년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던 철제 증기선 그레이트브리튼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과연 바다에 뜰 수나 있겠냐는 식이었다. 필자는 지금 비트코인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을 보면서 당시를 생각해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혁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 많은 사람은 그것에 열광하거나 조롱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그 혼란의 와중에 혁신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꿔왔다는 것이다.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공동설립자·이사


:: 필자 소개 ::

2013년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코빗(Korbit)’을 공동 설립했다. 사회혁신 및 디지털 트렌드 전문가로 비영리법인인 타이드인스티튜트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 “신기한 것에 쏠리는 일시적 유행일 뿐” ▼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발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폐 발행을 독점하면서 필요에 따라 통화증발을 일삼는 중앙권력, 고객이 맡긴 자금을 잘못 운용하여 대규모 손실을 입고도 멀쩡하게 되살아나는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불만이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시점이 리먼 쇼크 이후 세계경제가 한창 혼란을 겪던 2009년 초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화폐시스템을 추구하는 비트코인은 인터넷과 컴퓨터, 암호 등 여러 정보기술(IT)의 발전 덕에 출현이 가능했다. 파일공유 시스템과 유사하게 P2P 네트워크 내에서 시스템에 내재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새로운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중앙은행 없이도 화폐 발행이 가능하므로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롭다. 신규 발행 규모는 4년마다 절반씩으로 줄어들고 최종적으로 2100만 단위까지만 발행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예 통화 남발에 따른 통화가치의 저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금융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 간에 직접 자금 이전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자금 거래에 대한 인증도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수의 가입자들에 의해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기관에 지불되는 수수료가 크게 절약될 수 있는 구조다. 개인의 자금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또는 웹에 설치된 전자지갑에 보관해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 비트코인은 개인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고도 자금 거래가 가능하기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장점과 매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비트코인이 화폐 또는 화폐시스템으로 기능하는 데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1. 무엇보다 비트코인 화폐시스템 내에서는 통화 발행을 하는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에 통화량 변화를 통한 경기조절 수단이 없다. 

발행 규모 제한은 구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최종 발행량이 고정되어 있어 비트코인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면 비트코인을 사용하려 하기보다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축적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또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상품가격은 점점 낮아진다. 비트코인은 소수점 8단위까지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가도 결제가 불가능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품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소비와 투자를 뒤로 미루게 되어 극심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유발된다. 경제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통화량 증가가 원활하지 않아 경기침체가 야기되곤 했던 금본위제와 유사한 것이다.

2. 비트코인이 지닌 익명성은 범죄자들에게 큰 이점이다. 불법거래와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미 미국에서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는 마약거래 사이트가 적발돼 폐쇄한 바 있다.

3. 비트코인을 담는 전자지갑도 파일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항상 분실과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비트코인 전자지갑에 대한 해킹이 여러 차례 발생해 대량의 비트코인을 분실 당한 사례가 있다. 금융기관의 실패로 인해 예금 손실을 볼 위험이 없는 대신 자신의 책임하에 자신의 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그 자체로서 내재가치가 없고 정부 권위에 의해 보증되지도 않는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가치가 불안정하여 안정적인 결제수단으로 기능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4. 여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투자 또는 투기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정부규제, 시스템 불안 등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단숨에 가치가 급락할 위험성이 있다.

통화당국과 정부, 금융기관에 대한 비트코인 지지자들의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 현재의 화폐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화폐시스템은 나름의 혼란과 경쟁, 진화를 거쳐 오늘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이고 장점도 많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현재 화폐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5.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사용과 거래가 확산될수록 단점이 드러나고 한계가 부각될 뿐만 아니라 정부 규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미래의 잠재적인 경쟁자인 비트코인의 성장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비트코인은 성공할수록 실패할 운명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필자 소개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1991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금융재무담당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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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21. 23:42

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낮은 편입니다. 사법부의 신뢰도를 묻는 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대상 1106명 중 77.2%인 854명이 ‘사법부가 불공정한 판결을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사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6.5%(182명)에 그쳤습니다. 이 때문인지 법조계 안에서도 재판 과정을 TV와 인터넷으로 중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재판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반면 반대쪽은 피해자 및 피의자의 인권 훼손과 옐로 저널리즘에 의한 피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또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전문가 두 분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 국민 알권리 위해 재판 공개는 당연히 필요 ▼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3월 대법원은 사법사상 최초로 공개변론의 재판 전 과정을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도록 했다. ‘열린 법원’을 위한 이런 노력에 대해 여론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급심 재판까지 전부 생중계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당장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중요 사건의 경우 빠른 시일 내에 1심부터 TV나 인터넷을 통하여 생중계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 알권리 충족을 위해서 재판 과정은 그대로 공개될 필요성이 있다.


그동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의 보도를 보면 취재진에 둘러싸여 법원 정문을 통과하는 소송 당사자의 모습이나 재판 시작 전까지 문틈으로 보이는 법정 모습이 전부였다. 법정 문이 닫히면 오로지 말이나 글로써만 재판 과정에 대한 정보가 제공될 뿐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하물며 말을 요약해서 글로 남기게 되면 의미의 변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판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은 알권리가 충족되지 못해 답답했다. 직접 보고 듣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방법은 없다. 

재판공개가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공개재판주의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서이다. 

공개재판이란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판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도 방청하게 하는 제도이다. 국민은 누구라도 관심이 있는 재판에 대해 법정을 방문하지 않아도 재판의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개재판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TV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법정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재판을 공개하는 것으로 공개재판주의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셋째,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서도 재판 공개는 필요하다.

판사가 여론재판을 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재판의 중계를 반대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판사들의 능력과 양심을 모욕하는 주장이다. 물론 판사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판을 할 수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3심제를 두고 있다. 상급심에서 파기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론에 휘둘려 오판을 내릴 판사는 없다. 재판이 공개되면 판사들은 전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예우보다 지켜보는 국민의 눈을 의식해 더욱더 신중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넷째,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

판사의 부적절하고 고압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된 경우가 많다. 필자는 법정에 수없이 출입하는 변호사로서 단언하건대 막말 판사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일부’라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막말 판사’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법정이 사실상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 때문이다. 만약 재판 절차를 모두 녹음·녹화한다면 막말 판사는 사라질 것이다.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에 침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있지만 이 역시 이미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하여는 피고인의 얼굴이나 재판의 중요 내용이 전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대의 흐름은 재판의 방송과 중계를 바라고 있다. 

일부에서는 재판의 방송과 중계는 영미법계 국가들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구별이 절대적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이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 보장과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서로 융합되고 있는 현상을 무시하는 견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재판에서 배심원제도 같은 맥락의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대법원 역시 공개변론을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는 결단을 하였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하여는 하급심까지도 중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시대의 흐름보다 다소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법원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 필자 소개 ::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과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법무법인 정률의 변호사와 가천대 법대 겸임교수,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알권리 이전에 국민 사생활이 침해된다 ▼


윤배경 변호사

재판을 TV 등으로 방송·중계하자는 의견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웠지만 ‘사법부를 믿지 못 하겠다’는 게 속내다.

그동안은 대개 사법부가 이런 주장을 일축해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작금의 동향을 보면 오히려 법원이 더 적극적인 듯하다. 최근 김태형 성남지원 판사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재판 과정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방송을 금지하고 있는 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우선 재판 과정을 방송·중계함으로써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은 이미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이해관계인은 물론 누구든 재판의 진행상황을 참관할 수 있다. 올 1월부터는 형사판결문을 비롯한 소송기록도 공개되고 있다. 재판의 투명성은 현행 공개재판과 기록 접근 등으로 충분히 확보된다. ‘재판 과정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난립’은 오히려 재판이 일반에 공개되므로 가능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재판이 공개되면 막을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방송국의 카메라를 의식해 판사가 언행을 조심할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사법부의 자정 능력을 시험하는 말이다. 이는 폐쇄회로(CC)TV를 장착해 판사의 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하겠다는 생각만큼이나 유치하다. 

재판 과정을 방송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도 의문이다. 재판의 방송·중계를 허용하는 나라는 미국, 호주 등 일부 영미법계 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을 채택하는 국가가 법정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하급심 재판을 방송·중계하면서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심인 하급심은 대법원의 공개변론을 중계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상고심에서는 법률적인 쟁점을 다루기에 소송 당사자의 사적 영역이 문제될 여지가 최소한에 그친다. 반면 하급심에서는 당사자의 전 인격과 생활상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고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할 것인가? 

2. 하급심 재판에 대한 중계를 허용하면 ‘옐로 저널리즘’이 판칠 염려가 있다. 이는 미디어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재판을 방송·중계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상업화한 게 미국의 코트TV(Court TV·현재의 트루TV)였다. 코트TV가 가장 재미를 본 것은 O J 심프슨 사건 때였다. 전직 프로축구선수였던 그는 전처와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미국 3대 방송사와 CNN이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재판을 생중계한 코트TV였다. 8개월의 심리 끝에 배심원단은 심프슨이 무죄라고 평결했다. 피고인이 무죄로 풀려나자 일부 비판론자들은 재판의 법정 중계를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재판을 심리한 판사마저도 법정에 들어찬 녹화와 방송용 카메라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다소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 법정 중계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을 위협한다. CNN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낸시 그레이스’다. 코트TV로 잔뼈가 굵은 앵커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범죄자의 악행을 고발하고 피고인(피의자)의 법적 주장을 탄핵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특유의 시사성과 탐사보도성이 결합되는지라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이 쇼는 피고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피고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방송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우리 현실에서 미국과 같은 미디어 산업이 하급심 재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단언컨대, 재판이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윤배경 변호사

:: 필자 소개 ::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장&리 법률사무소, 법률사무소 진리,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 율현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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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20. 23:11

《 원전 불안이 심각합니다. 원전에 쓰인 부품 납품비리로 영광 원전 5, 6호기가 가동 정지된다는 소식이 나오고 월성 1호기도 20일로 30년의 설계수명을 다하고 정지됩니다.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에서도 원전을 둘러싼 사건 사고에 예민해진 상황입니다. 올 들어 고장에 따른 가동 중단이나 오작동 등에 따른 자동 정지 등이 시운전까지 포함하면 10건이 넘습니다. 안전 불감증을 질타하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사소한 결함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원전의 안전 수준은 세계적”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 원전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어떻든 월성 1호기에 이어 영광 5, 6호기까지 정지돼 자칫 올해 최악의 전력난이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혹한이 닥치는 내년 1, 2월엔 예비전력도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하니 지난여름과 같은 비상상황으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할 때인 것 같습니다. 》

▼ “원전은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 안된다” ▼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요즘 부쩍 잦아진 원전 고장은 국민이 보기엔 어딘가 구멍이라도 뚫리지 않았나 걱정된다. 10월 2일 멈춘 영광 5호기는 증기발생기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가 고장 났고 역시 같은 날 멈춘 신고리 1호기는 원자로 출력을 조절하는 제어봉에 문제가 있었던 걸로 판명됐다. 뒤이어 울진 2호기, 월성 1호기가 멈춰 서더니 그것도 모자라 이젠 미검증 부품 납품으로 영광 5, 6호기가 가동 정지됐다.

이번에 터진 납품비리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얼마나 안일한 운영을 해 왔는지 보여 준다. 237개 품목, 7680여 개의 부품이 10년 동안 위조된 검증서로 아무런 제재 없이 원전에 납품됐다. 외부 제보가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니 납품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 준다. 검증서가 위조됐다는 것은 서류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현장에서 제품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원전의 잦은 고장과 비리, 은폐, 거기에 마약사건까지 터져 30년 넘게 값싼 전기를 국민에게 공급한 한국 원자력은 그야말로 풍전등화다. 올 들어 불시 고장으로 가동을 멈춘 것은 일곱 번째, 시운전까지 포함하면 열두 번째다. 원전 고장률은 초기에는 높다가 점차 안정된 후 노후화하면서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원전 고장률 면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낮다. 우리나라가 1기당 연평균 0.39건인 데 비해 원전 강국인 프랑스 3.36건, 캐나다 2.04건, 미국 0.96건이다. 전체 원전 기수 대비 프랑스는 이틀에 한 번, 미국은 나흘에 한 번, 캐나다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고장이 난 데 비해 우리나라는 한 달 반에 한 번꼴로 원전이 섰다. 더욱이 재작년엔 6개월에 한 번 멈췄을 뿐이다.

실제 고장 건수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인데 짧은 기간에 몇 건이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고장이 자주 나는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1년 동안 100% 가동하는 것도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우수한 운영실적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이다. 우리는 높은 이용률과 낮은 고장률에 익숙하다 보니 요즘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 5호기와 신고리 1호기의 고장은 2002년과 2011년 각각 상업운전에 들어간 원전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영광 5호기는 냉각 계통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등 그간 잦은 고장에 시달렸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신고리 1호기는 개선형 한국표준원전의 효시다. 경제성은 물론이고 안전성을 크게 높였고 앞으로 수출산업의 기둥이 될 신형 경수로의 모태이기도 하다. 

원전 고장이 사고와는 다르고, 자동 정지는 오히려 안전의 징표이기도 하다. 다만 고장이 잦다 보면 언젠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되풀이되는 고장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으면 원자력은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다행히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30년 이상 원전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 원전에서 방사선 피해가 보고된 바는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 원전사고 이후 운영 중인 원전에 대해 정밀 안전점검을 했다. 유럽연합 안전진단과 비슷하게 지진, 침수, 중대사고 평가와 함께 비상대응도 포함해 주요 항목 50개를 도출해 개선하고 있다. 

문제는 작은 나뭇가지는 보되 넓은 숲을 보지 못한다면 안전대책은 탁상공론이나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1979년 스리마일,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던진 교훈은 원전에 안전신화는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다. 원자로심 손상빈도 10만 년에 한 번, 격납건물 손상빈도 100만 년에 한 번은 나뭇가지였을 뿐 숲엔 10년에 한 번꼴로 불이 난 것이다.

한편 올해 국내 원전 몇 곳이 100% 운전한 데 따른 피로가 쌓이고 있다. 세계 평균이 80%를 밑도는 걸 감안하면 가히 경이로운 실적이다. 우리나라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데 원전 외에 현재로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은 일단 사고로 이어지면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단 한 번의 실수나 방심도 용납할 수 없다. 원전 안전에는 영향이 없으며 방사능 누출도 없었다고 강변할 일이 아니다. 운영 실적이 높다고 자만하거나 과신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30년 넘게 쌓아온 공든 탑을 지킬 수 있다.

전기는 기계가 만들지만 기계는 사람이 움직인다. 사람이나 기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혹사당하거나 최적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사고는 작은 나사못이나 두꺼비집에서 비롯된다. 환경단체 시민단체 원전당국 규제당국이 한 언어로 소통하고, 체감온도를 같이할 때 우리 원전은 진정한 국민의 것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믿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전력 방문연구원, 미국 웨스팅하우스 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 “사소한 고장일뿐 심각한 결함 아니다” ▼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지난달 26일 경북 울진발전소에 다녀왔다. 최근 원전 고장 및 사고와 관련해 보도가 잇따르면서 현장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침울했다. 스물네 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들의 고충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원전 전문가들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과 위험성에 대해 비전문가인 일반 국민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발전소 현장에서 근무하는 전문가가 느끼는 위험의 강도가 1이라면 일반인이 느끼는 위험의 강도는 100보다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옳은 비유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친 바다에서 선원과 승객이 느끼는 차이와 같다고 할까. 

10월 초에 발생한 신 고리원전 1호기와 영광원전 5호기가 1시간 간격으로 전기 생산이 멈췄다는 뉴스가 나와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니 신고리원전 정지는 제어봉 제어계통에서 일부 전자부품 불량으로, 영광원전은 발전소제어계통의 통신카드 고장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원전 설계 시 부품이 고장이 나면 안전을 위해서 발전소가 정지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두 곳의 발전 정지는 모두 부품 고장 이상이 일어날 때 설계된 대로 동작한 것으로, 가끔 발생하는 원전 발전 정지 현상과 같이 안전했으며 방사능 누출 등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우려하고 있는 사고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일반 국민은 고장과 사고 개념이 완전히 다른데도 고장이 곧 사고라고 생각하며, 그 고장이 사고로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원전 관리와 유지 보수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원전 이용률이 단연 세계 제일이라는 사실을 국민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장과 사고는 다르다.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는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원자로가 높은 온도와 압력의 환경에서 가동되고, 방사선도 함께 발생하는 아주 열악한 조건 속에 있기 때문에, 발전소의 유지 보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고리원전(1978년)이 전기를 생산한 지 불과 30여 년 만에 23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갖게 됐고,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이 기간에 큰 사고 한번 없이 원자력 발전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은 요즘 전 세계에 부는 한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영광원전 5, 6호기 납품 비리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방만한 운영은 충분히 지적해야 하지만 사실 납품된 부품들은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같은 일반 기기류에 통상 사용되는 품목으로 원전 운영 보조설비에만 들어가는, 즉 원전 가동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부품들이다. 비리 액수도 10년간에 걸쳐 총 8억2000만 원이다. 1년에 8000만 원 꼴이다. 원전 1기 건설에 4조 원가량 들어가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액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단 한 건의 비리도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사태를 과대 해석하는 것도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데 원전 가동을 중단시켜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전 가동 중단은 한국전력과 한수원의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떻든 한수원은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우려도 되지만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피드백한다면 30∼40년 이상 가동을 해야 하는 원전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수원은 고장난 부품의 교체 및 정밀점검을 완료하고, 지속적인 설비 개선과 신뢰도가 높은 제품을 사용해 향후 동일한 원인에 의한 발전 정지를 방지하기 위해 제작사와 협의함으로써 부품의 신뢰도를 한층 더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과 언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과 어려움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나친 질책은 고장의 원인 규명보다는 오히려 고장 자체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도록 만들 수 있기에 정확히 규명하고 현장 근로자들의 노고에 따뜻한 격려를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원자력인으로 살아온 사람으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일련의 사태로 원전 폐기 정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북한 핵실험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작은 고장 정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그동안 척박한 이 땅에서 기술 식민지의 과학자가 받아야 하는 온갖 수모와 굴욕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가슴 아파해 본 일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 필자 소개 ::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원자력에너지 자문위원, 원자력국제협력재단 이사장, 한국원자력연구소 고문을 지냈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21116/50885824/1



Posted by 겟업
2014. 10. 20. 17:07

“백년 이상 먹고살 수 있는 한반도 설계가 내 마지막 業”

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가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에게는 무궁무진한 보물섬이다. “DMZ 희망도시, 세종시의 물류 세계도시화…미래와 세계를 내다본 한반도 국토인프라 설계가 내 마지막 업입니다.” 칠순의 김 위원장은 보물섬 탐험에 나선 소년처럼 벅찬 포부를 펼쳤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 한 달 전쯤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70·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가 전화를 걸어 왔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다들 하지 말라고 해요. 김 기자(그는 20년째 필자를 이렇게 부른다) 얘기 듣고 결정하려고 전화했어요.” 김 교수는 12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암세포들을 미운 친구처럼 끼고 산다. 작년 여름 또 다른 암이 발견돼 넉 달밖에 못 산다는 선고까지 받았다. 독한 진통제를 밥 먹듯 먹으며 불같이 일하고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숨쉬기도 괴로워한다. 그 고통을 목격했던 필자는 순간 목이 메었다. “죄송해요. 선생님 (건강을) 위해선 안 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를 위해서 맡았으면 좋겠어요.” 전화통 저편에서 빙그레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작년 12월 27일 박근혜 정부의 건축정책을 수립하고 주도할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 신임 위원장에 김석철 교수가 선임됐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국건위는 국토환경 디자인 개선 및 건축문화 진흥을 위해 2008년 1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

서울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2km 구간을 ‘국가상징거리 1단계 사업’ 구간으로 정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건립하는 기본 방향이 1기 국건위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의 국토 인프라 설계보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개별 사업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DMZ내 에덴도시 건설 제안할 것

11일 동아일보 사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작년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면서 마음이 급했는데 국건위 연락을 받았다”며 “비무장지대(DMZ)에 에덴동산 같은 21세기형 소도시 건설을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큰 그림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세대에 백년은 먹고살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답이 나올 수 있다. DMZ에 에덴동산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분단돼 있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전된 DMZ야말로 인류역사에 공헌할 공간이다. 여기에 농업과 소프트산업을 결합한 인구 5000∼1만 명 규모의 소도시를 남북 합작으로 건설하면 통일을 내다보는, 또 세계가 보러 오는 희망의 도시가 될 수 있다.”

경기고교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서일까, 금강산 입구 석왕사 앞에서 태어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르기 때문일까. 김 위원장의 인문학적, 지경학적(地經學的) 상상력은 보통 사람의 생각 범위를 초월한다.

동북아 끄트머리의 이 작은 땅덩어리가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보물섬이다. 바다 공항을 끼고 있는 인천은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를 능가할 ‘아시아의 진주’이고, 한반도 허리를 관통해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서횡단 운하는 수에즈 운하의 경제성도 뛰어넘는 황금광이다.

하지만 국민도 마음이 급한 판국이다.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장기계획 말고 1년 안에 국민이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국건위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한반도 전체가 무궁무진한 보물섬

“행복한 부동산, 창조적 재건축, 도시 수출의 3개 프로젝트가 있다. 쉽게 예를 들겠다. 10년 전 서울 북촌에 자그마한 한옥을 사서 건축사무실로 개조를 하려는데 한옥 목수가 없더라. 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한옥에 물받이 홈통은 다 있으니까 홈통 가게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 찾았더니 정말 홈통 수리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북촌이 한옥촌이 됐고 목수는 300명이 넘고 외국인 관광명소로 떴다. 미국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부인 순이를 위해 한옥촌 드라마를 만들지 모를 일이다.”

그는 국민 재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므로 발상을 바꾸면 부동산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에도 개발할 곳은 얼마든지 있다. 4대강 주변도 한강변처럼 살릴 수 있다. 부동산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되고, 개·보수를 통해 일자리도 끊임없이 나올 수 있다. 선진국에선 신축보다 재건축 수요가 많다. DMZ 에덴도시 같은 소도시를 설계해 시공까지 통째로 ‘도시 수출’을 하면 청년 일자리 문제도 풀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건설을 해냈다. 이제 위원장을 맡았으니 ‘아버지 대통령 때 사람’이라는 소리가 또 나오지 않을까.

김 위원장은 일에 눈멀어 그 생각을 못 했다며 한방 맞은 시늉을 했다.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중동의 도시설계 진출을 시도해 내가 쿠웨이트 신도시를 설계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한번 결정하면 밀고 나가는 힘이 있었다. 내 느낌에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힘이 있다. 아버지가 못 이룬 도시 수출의 꿈을 박 대통령이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서울∼세종시 지하 초고속철도 뚫자

―한번 정하면 밀고 나가는 스타일을 권위주의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국익에 좋은 일을 선택해 밀고 나간다면 아름다운 독재가 될 수도 있다. 하하.”

김 위원장한테도 독재적 면모가 없지 않다. 여의도를 보행중심 도시로 설계했는데 가로축 한복판에 5·16광장이 생기고,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과천까지 이어진 연구중심 대학도시로 계획했는데 반쪽이 된 것을 지금도 유감스러워 한다.

정치에선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두루 듣고 양보와 타협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건축과 도시설계에서 그는 자신의 원안이 옳다고 믿는 모습이다. 암에 걸린 뒤 그곳에 사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 100년 뒤 주변에 살 사람과 구경올 사람까지 좀더 생각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세종시가 현재 모습으로 굳어진 데는 박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장차관부터 불편과 불만이 쏟아지는데 해결방안이 있나.

“정운찬(김 위원장의 가까운 후배)이 총리가 됐을 때 세종시 원안을 수정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상대가 여자’라고 대답하더라. 당시 박근혜 의원이 미생지신(尾生之信·미생이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애인을 빗속에서 기다리다 익사했다는 고사성어) 속의 미생인 걸 몰랐던 거지. 2004년 수도 이전 지역으로 충남 연기군이 발표되던 날 수도 이전 불가론을 주장했던 사람이 나다. 요즘은 ‘길에서 사는 사람들’이 내게 세종시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세종시를 중부권의 수도로 만들어내야 한다.”

김 위원장은 금강변과 한강변의 한 지점을 지하터널로 연결해 15분 안에 초고속철도로 달리는 꿈같은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필자가 입을 딱 벌리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120km이지만 지하 직선코스를 뚫으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도버해협 유로터널(50.5km)보다 짧고 공사도 쉽다”는 거다.

초고속철도 유로스타로 20분 만에 도버해협을 건너 보면 누구나 절감할 수 있지 않던가. 영국이 더는 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세종시에서 서울을 눈 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게 되면 한강변과 금강변 아파트값이 차이 날 이유가 없어진다. 그래도 세종시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새만금 안바다를 활용하면 금강-새만금-세종시-대덕연구단지로 연결되는 물류 서비스산업 어번 클러스터가 가능하다. 금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는 강이다. 당나라 소정방이 5만 대군을 몰고 백제로 쳐들어 올 때 배를 타고 금강을 거슬러 왔다. 사람과 물류가 유라시아철도의 출발점인 중국 동부 연안의 롄윈 강에서 서해를 통해 금강으로 이어지면 세종시는 세계도시로 도약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동남권 신공항 같은 지역공약이 쏟아질지 모른다. 국건위에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이 국토 인프라를 놓고 장난하는 것은 역적질이나 다름없다. 지방 신공항은 최소한 인천공항과 경쟁할 만한 스케일이어야지 내 고장 살리기 정도로는 안 된다. 거제도와 여수 사이에 21세기 신공항을 만들어 항만과 접붙이면 ‘아시아 크루즈 루트’가 탄생한다. 중국에서 급속히 늘어날 크루즈 인구를 생각하면 백년은 먹고살 일자리가 나오는 거다. 천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영호남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정치인이라면 세계와 미래를 보고 신공항을 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집권 기간은 짧다. 국건위는 긴 안목으로 한반도를 설계해야 한다.”


국토로 장난치는 정치인은 역적이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한반도 전체가 보물단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4강에 낀 토끼 모양, 또는 새우 크기의 약소국가가 아니라 지정학적 강점을 타고난 세계의 중심국가다. 두만강 하구에 동북3성-시베리아-동해를 아우르는 항만과 공항을 만들면 북한 경제를 살리는 건 물론 파나마 운하보다 엄청난 유라시아 경제권역도 이룰 수 있다.

―말만 들어도 환상적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박차고 나오는 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정파가 없고’(?) 맑고 옛날식 애국심이 있다. 120년 전 갑오개혁은 실패했지만 3년 후인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다섯 철도망과 항만을 연결하는 한반도 인프라 구축을 선언했다. 나는 박 대통령이 큰 대(大)자 대한민국을 성공시킬 것으로 믿고 싶다.”

다른 대통령, 새로운 2013년 체제를 꿈꿨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평생 친구다. 김 위원장은 “백 교수 집을 설계할 때 진보가 좋은 집 짓는 것을 죄스러워 하더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김석동 씨는 그의 동생이다.

“가족들에게 남길 유산을 정리한 밤에 꾸란(이슬람 경전)을 보았다. ‘네가 죽은 뒤 가족이 너를 잊어도 네가 선행을 베푼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네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업(業)을 이룬다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게는 국건위가 마지막 업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40113/60120452/1

Posted by 겟업
2014. 10. 20. 16:35

[여성 1호를 만나다]<1>여상 출신 삼성전자 첫 임원 양향자 상무
“아부지,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무거운 약속을 평생 지켰다


양향자 삼성전자 상무가 14일 대전 충남대에서 열린 ‘열정樂서’ 토크콘서트에서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캠프에 참가한 중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전=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대한민국에서 새해 벽두부터 여성 은행장, 여성 검사장 등 여성 진출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던 유리천장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습니다. 

본보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총 6부 34회에 걸친 장기 시리즈 ‘신 여성시대’ 기획을 통해 대한민국 일하는 여성들의 현주소를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보았습니다. 새해에도 바통을 이어받아 ‘여성 1호를 만나다’라는 간판으로 여풍(女風)의 현주소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인사 소식으로만 짧게 접했던 사람들을 포함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여성 1호’들을 발굴해 심층 인터뷰한 뒤 매주 오피니언면 기획란을 통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열심히 살고 있는 생활인들의 이야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1호를 만나다’ 첫 회 주인공은 삼성전자에서 여상 출신으로 최초로 상무가 된 양향자 씨(사진)입니다. 》

지난해 12월 발표된 삼성그룹 임원 승진 인사에서 유독 빛나는 이름이 있었다. 양향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상무.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출신으로 광주여상을 졸업해 삼성그룹 설립 이래 최초로 여상 출신 임원이 된 인물이다.

세간의 관심에도 나서기를 꺼렸던 양 상무가 14일 오후 대전 충남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 상무는 이날 ‘삼성 드림클래스’ 겨울캠프에 참가한 중학생들의 멘토가 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만난 양 상무는 “강연 요청을 받고 이틀 밤을 지새우며 인생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남들에겐 평범한 강연일지 몰라도 자신에겐 누구보다 절실했고, 그래서 치열하게 살았던 날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이날 초대된 중학생들은 모두 지방 중소도시나 산골, 섬 등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 그는 30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더 고민했다고 했다.

“제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제 고향은 전남 화순군 쌍봉리예요. 혹시 아세요?” 양 상무는 그렇게 산골소녀 시절의 향자로 돌아가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꺼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는 봉우리가 두 개인 산자락에 양씨와 정씨 20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누나, 아부지가 얼른 안방으로 건너오란다.” 남동생이 불렀다. 폐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평생을 안방 이부자리에 누워만 계셨다.

“향자야, 이제 나는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더 기력이 없었다. 퀭한 눈 때문에 별명이 ‘소 눈’이었던 아버지는 큰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동생들 잘 부탁한다.”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 광주 시내에서 장사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두 명의 오빠와 두 명의 남동생을 챙기는 건 어릴 적부터 나의 몫이었다. “아부지. 제가 알아서 할게.” 1982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와 했던 나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열다섯 살 때 일이다.

아버지를 떠올린 양 상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따 무대 위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기자님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 해본 적 있죠? 보통 사춘기 때는 선생님 잔소리 피하려고, 부모님한테 짜증이 날 때 하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이 말이 내 인생, 그리고 우리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무거운 약속이었어요.”

한때 대학교수가 돼 강단에 오르는 꿈을 꿨던 소녀 향자는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일주일 전 꼬박꼬박 눌러쓴 인문계고 입학 원서를 반으로 접어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다음 날 광주여상 입학원서를 새로 썼다. 

특별할 것 없었던 여상 시절이 지나갔고 1985년 겨울 또 한 번의 갈림길에 섰다. 대학을 갈 것인가, 취업을 할 것인가. 사실 대학에 정말 가고 싶었다. 가서 제대로 영어도 공부하고 싶었고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교수라는 사람들도 직접 보고 싶었다. 현실은 취업뿐이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겠다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경기 기흥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메모리설계팀에 입사했다. 대졸 연구원들의 업무를 돕는 보조, 이른바 ‘시다바리’였다. 매일 오전 7시 출근해 복사 일부터 연구원이 던져주는 반도체 회로를 도면에 그려내는 단순 업무를 반복했다. 손은 주어진 대로 움직였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욕망했다. ‘회로를 왜 저렇게 그리는지 알아야겠다. 더 배워야겠다, 더 공부해야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이 반도체 업계 1위였다. 회사에는 일본 선진업체들이 일본어로 출판한 기술서적이 많았다. 기술을 알려면 일본어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8세 말단 직원은 겁도 없이 사내(社內) 일본어 학습반에 들어갔다. “고졸인 네가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는 강사의 비아냥거림과 대졸 연구원들의 텃세를 견뎌가며 매일 3시간씩 공부했다. 주말에도 기숙사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공부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가장 먼저 일본어 자격증을 땄다.

‘일본어를 기가 막히게 하는 여사원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연구원들이 번역이 필요한 일본 서적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술 자료를 밤새워 번역하다 보니 반도체 설계 업무에 대한 이해는 덤으로 따라왔다. 어느덧 반도체 설계 업무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1990년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임신했다.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첫 임신부였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회사 관두지 않느냐’는 말도 수시로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그리고 나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내가 알아서 잘하자.’

아이를 낳고 나니 바람은 더 커졌다. 부산 시댁에 맡겨놓고 한 달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훗날 부끄럽지 않을 엄마가 돼야 했다.

1993년 인사팀에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사내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 입학원서였다. 여상을 졸업할 때 그토록 써보고 싶었던 대학 원서였다. “여사원은 사규상 뽑을 수 없다”는 인사팀 과장에게 ‘시험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었기에 매일 오후 4시 퇴근 직후부터 오후 9시까지 수업을 들으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3년 뒤엔 함께 입학한 남자 직원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입사 22년 만인 2007년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 수석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성균관대에서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도 땄다. 대학도 못 갈 줄 알았던 내가 석사라니….
양 상무는 조직의 일부를 책임지는 수석 자리에 오른 후 여성 리더로서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후배들 사이 그의 별명은 ‘이모’. 든든한 이모처럼 후배들의 뒤를 지켜준다는 의미에서다. ‘열혈 부장’ 시절 그의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결혼하는 중국인 직원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휴가를 내고 비행기에 오른 것.

“중국 사람이니 당연히 외동아들일 거 아녜요. 이왕 간 김에 돌아가신 직원 아버님을 대신해서 축사도 직접 읽었어요. 축사 준비하면서 덤으로 중국어 자격증도 땄으니 일석이조죠.”

그리고 부장 6년차이던 지난해 12월 5일, 아버지 30주기 제삿날이었던 그날 아침 그는 당시 상사였던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양 상무, 축하해.”

30년 전 아버지가 하늘의 별이 됐던 그날, 그는 삼성의 별이 됐다. 그는 삼성그룹 역사상 최초의 여상 출신 임원이다.

별을 달던 순간 아버지 얼굴부터 떠올랐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려고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 세월을 보상받은 거겠죠?” 아버지가 당부했던 대로 양 상무는 두 동생도 자랑스럽게 잘 키워냈다. 막냇동생은 누나를 따라 입사해 삼성맨이 됐다.

가족은 양 상무가 ‘지키기 위해’ 애써 온 존재이자, 입사 후 28년간 그의 삶에서 필요한 순간 가장 먼저 손길을 내어 준 은인들이다. “승진하고 나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드렸어요. 이미 양씨 문중에서 고향에 플래카드를 걸었더라고요. 열혈 시부모님 생각도 났어요. 아이 둘 대신 키워 주시느라 부산에서 결국 제 회사 옆인 수원으로 짐 싸들고 올라와 주셨거든요.”
떨리는 목소리로 무대에 올랐던 양 상무는 이날 강연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제가 여러분의 30년 후 미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미리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의 30년 후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저는 여러분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2000명의 학생이 보내는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우자 양 상무 눈에서는 끝내 참았던 눈물이 또 한 번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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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0. 09:51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는 올 한 해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이 될 듯하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영국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최근 완공한 DDP는 “수작은 아니지만 이름값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초 예산(2274억 원)의 배 이상(4840억 원)을 투자한 곡선의 DDP가 네모난 건축물로 상징되는 효율 만능의 시대에서 잉여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는 “DDP 운영으로 20년간 13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이라며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건축개념사전에 따르면 빌바오 효과란 수명이 다한 스페인의 산업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얻은 경제적 효과를 뜻한다. 빌바오 시는 1997년 개관한 미술관 덕분에 매년 관광객 100만 명이 몰려들어 3000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빌바오 시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도시들엔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러나 빌바오 효과를 분석한 책과 논문을 살펴보면 ‘튀는 건물 하나로 죽어가던 도시가 벌떡 일어섰다’는 식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빌바오의 오늘은 구겐하임이 들어서기 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할 때 빌바오는 쇠퇴한 산업도시가 아니었다. 1980년대 산업위기를 거친 뒤 서비스 중심의 도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고, 수백 년간 쌓아올린 경제와 문화 기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빌바오 효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미술관 건립에 공공예산을 몽땅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른 문화활동은 홀대받았고, 미술관의 경제적 효과엔 테러 조직의 휴전 효과가 포함돼 있으며, 고용률도 임시직이 많아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콧대 높은 유럽의 문화강국에 명함도 못 내밀던 구겐하임에 도시의 랜드마크 자리를 내준 것은 바스크 민족문화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이은해 논문 ‘유럽의 전통산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의 변모’).

빌바오 효과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미술관만 보지 말고 수많은 사회기반시설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보행자 전용 다리, 주변 산책로, 공원, 놀이터, 편리한 교통시설 등은 빌바오가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도시임을 말해준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미술관 옆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빌바오 효과의 교훈은 헛된 것이다. 도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공간이 아니고 차분하게 오늘을 사는 시민의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DDP는 여러모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닮았다. 구겐하임을 설계한 미국의 프랭크 게리와 자하 하디드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다. 티타늄 조각 수만 개를 이어 붙인 비정형의 구겐하임만큼 알루미늄 패널 4만5000장을 붙여 만든 DDP의 외관도 화끈하다. 하지만 건축물이 관광객을 자석처럼 끌어들여 떼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전에 자문해야 한다. DDP는 동대문을 생활 터전으로 하는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DDP는, 그리고 서울은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도시인가.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없다면 서울은 세계적인 브랜드 건축을 들여와도 빌바오가 되려다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뿐이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40128/60445056/1



Posted by 겟업
2014. 10. 19. 22:41


《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성특법)이 23일 시행 8주년을 맞습니다. 일각에서는 집창촌이 없어져 우리 사회가 갈수록 건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 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성매매의 수요와 공급이 줄기는커녕 ‘전국의 음성적 유곽화’를 불러왔다는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전국 곳곳에서 흉악한 성범죄가 잇따르자 성특법 강행과 성범죄 급증의 연관관계에 주목하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기대한 효과보다 부작용이 큰 위선적 성특법을 폐지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나서 “성매매방지법과 성폭력 증가는 증명된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성매매 불법화 정책과 성범죄의 증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가격만 높여 성범죄 늘어, 재검토해야” ▼

김상권 한라대 경영학과 교수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났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던 집창촌이 있던 곳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밤거리 풍경은 변한 것이 없다. 오히려 더 혼잡해졌다. 밤거리는 성매매 전단지로 어지럽혀져 있고, 룸살롱 간판과 퇴폐 안마시술소의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삐끼’로 불리는 호객꾼들은 손님을 유혹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특별법은 성매매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성 매수자와 성 매도자에 대한 처벌이 과거보다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가 가장 먼저 가시화된 곳은 집창촌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일 정도로 특별법 이후 그곳의 손님은 급감했다. 그러나 단속이 어려운 집창촌 밖 성매매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택가까지 유사 성매매업소가 침투해 있을 정도다. 강력한 단속이 없다면 특별법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2008년 1만5468건이었던 성매매 적발 건수가 대대적인 단속을 편 2009년에는 2만4329건으로 늘었다. 단속 강도에 따라 1만 건 차가 날 정도로 특별법의 실효성은 단속에 달려 있다.

1. 특별법 이후 집창촌 밖에서의 성매매 가격은 높아졌을 개연성이 높다. 평범한 업소로 위장하기 위해 비밀시설을 갖추어야 하고, 홍보를 위해 전단을 뿌리거나 호객꾼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높아진 사업비용은 결국 가격 상승으로 귀결된다. 높은 가격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의 출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본능적 욕구는 변함이 없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게리 베커 교수는 범죄를 저질러 얻는 수익이 범죄 행위로 인해 지불하게 될 비용보다 크다면 범죄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범죄도 범죄를 통해 얻어지는 만족이 지불해야 할 비용보다 크다면 발생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검거될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은 수감 생활에 따른 정신적 물질적 피해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이 낮기 때문에 수감으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은 매우 낮다. 이를 성범죄에 적용해 보면 결국 저소득층이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성년자 대상 성 폭력범이 대부분 무직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2007년 인구 10만 명당 27.6건에서 2011년에는 39.2건으로 증가했다. 아동 대상 성폭력은 같은 기간 6.4%에서 10.5%로 4.1%포인트 증가했다. 특별법 시행 이전 6년(1999∼2004년)과 이후 6년(2005∼2010년)을 비교하면 생활수준 상·중·하 구분에서 하류 저소득층이 성폭력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5%에서 73.5%로 3%포인트나 증가했다. 반면 동일한 기간에 저소득층 절도범은 73.8%에서 72.6%로 1.2%포인트 감소했고, 강도범은 76.6%에서 78%로 1.4%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결국 특별법 시행 이후 저소득층에서 성폭력범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뜻이다.

최근 성폭력이 빈발하자 범죄자들에게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화학적 거세, 사형, 무기징역… 듣기만 해도 섬뜩하다.

그러나 전자발찌를 차고도 범죄를 자행하는 악마들 앞에서 처벌을 강화해 봐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처벌 강화는 성범죄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2010년 김길태 사건, 올해 오원춘 사건 등을 비롯해 잇따르고 있는 잔혹한 성범죄는 현재의 처벌 강도하에서도 범행 은폐를 위해 살인이 쉽게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벌만 강화한다면 오히려 ‘성폭력 후=살인’이 공식화될 가능성이 높다. 성폭력 억제 효과보다는 범죄를 더욱 흉포하게 만들 뿐이다.

성매매특별법 이후 집창촌이 있던 자리에는 첨단 오피스텔, 아파트, 상업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으며 일부는 남아 생존권 보장을 외치고 있다. 그곳을 찾던 손님들은 주택가 퇴폐업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저소득층은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 성매매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성범죄는 점점 더 흉포화되고 있다. 단속을 강력히 하면 특별법의 고귀한 입법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을 감내할 만큼 성매매특별법이 가치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김상권 한라대 경영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5년간 재직했다. 산업조직학회 이사를 지냈다.

▼ “성매매 합법화하는 건 또다른 폭력” ▼

정재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강사

여성을 성산업에 묶어 놓으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나왔다. 성매매를 금지하면 이에 종사하는 여성의 생존권 문제, 풍선효과에 따른 전국의 유곽화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매매를 금지해 성폭력이 증가했다’면서 성매매 합법화나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법이 무색할 정도로 성폭력과 성매매가 동시에 증가 일로에 있는 현실을 숨기는 잘못된 주장이다.

성매매를 합법화한 일부 서구 국가의 경우 특정 구역과 시간대로 성매매를 한정하되 이 공간 너머 비합법적 구역의 성매매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렸다. 성매매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중간 알선 집단을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실패했다. 1. 네덜란드의 경우 철저한 규제를 가해야 할 합법 구역 바깥에서도 불법 성매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얼마든지 성을 살 수 있는데도 미성년 여성들에게 강제로 성매매를 시키는 범죄도 늘고 있으며 일상에서의 성폭행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 성매매 합법화를 택한 독일, 미국과 호주의 일부 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 성매매를 금지해 성폭력이 늘고 있다는 논리가 맞는다면, 성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성폭행이 만연했어야 했다. 또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현재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수천 명에 불과한데, 이렇게 공급자가 없다면 성폭행은 상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수원 여성 토막 살해범인 오원춘은 일상적으로 성매매를 했으면서도 다른 여성을 상대로 강간을 시도했다. 3. 결국 성이라는 특성상 주변에 성매매 업소가 많아 여성을 사는 행위가 쉬울수록 성폭력이 줄고,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곳이 적어 이를 사고파는 것이 불편할수록 성폭력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성매매 문제는 현재 특정 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정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모든 여성들의 문제다. 성매매는 대부분의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구매하고 여성은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성적 자기 결정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폭력이다. 이런 4. 반인간적 범죄를 축소하거나 근절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사회의 노력이 요구되는 데도 당장 별로 효과가 없다는 논리로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5. 성매매 업소를 쉽게 허가해 주고 이 업소들은 또 불법 업소들과 결탁한다. 성매매를 접대 관행으로 여기는 사회 문화 속에서는 법이 제대로 집행될 수 없다. 성 접대 유흥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남성은 거의 없으며, 권력과 부가 몰려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산업을 사실상 지지하는 집단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한 성매매 특별법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성매매가 줄지 않고 주택가로 번지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성매매 여성들은 대개 청소년기부터 성매매를 시작한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거나 처음부터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빈곤, 가정불화 등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못해 평생 주변적 삶을 살아가기 쉽다. 6. 이런 현실을 두고 ‘자발적 매춘’ 운운하는 주장은 궤변 중의 궤변이다. 

7. 많은 사람은 또 성매매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며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어디 성매매뿐인가. 빈곤과 전쟁, 마약과 범죄 역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인류는 그것들을 축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성매매도 마찬가지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여성이 된 마당에 수많은 여성이 각종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다. 여성의 일자리를 늘리고 의료, 교육 등의 복지를 대폭 확충해 여성들이 성매매로 빠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성 접대비를 생산적인 복지비용으로 돌리고 여성 접대 제도를 없애야 하며, 성매매 업소를 지역 복지시설로 업종 전환할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정재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강사


:: 필자 소개 ::

고려대 노문과를 졸업하고 러시아학술원 사회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인권연대 강사, 한국여성인권중앙진흥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20920/49565231/1
 

Posted by 겟업
2014. 10. 19. 22:19

책을 많이 읽는 사람치고 이른바 블록버스터형 영화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 단순하고 섬세하지 못한 스토리 전개에 감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의 촉수가 예민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허진석 채널A 차장



완전 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닌듯.


책 더 읽어야겠다.



Posted by 겟업
2014. 10. 18. 18:29

1996년 미국 프로미식축구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는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때 영입된 감독이 토니 던지다. 그는 1년 만에 이 팀을 최강으로 바꿔 놓았다. 비결은 무엇이었나. 미식축구에서는 1000분의 1초가 중요하다. 공을 던지는 짧은 순간에 선수들이 어떤 전략을 취할까 머뭇거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몇 개의 동작 패턴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신체반응을 자동화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아시아나항공의 여객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상착륙하다가 추락했다. 항공기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간 엄청난 사고였지만 중국 소녀 2명의 희생자 외에 대부분 무사했다.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피한 데는 이윤혜 최선임 두 여승무원의 힘이 컸다. 이들은 자신들도 부상당한 몸으로 승객을 모두 내보낸 뒤 마지막에야 빠져나왔다. 두렵다는 본능을 이기고 이들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결과였다.


▷영원한 여왕 김연아도 마찬가지다. 19일 쇼트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그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경기 직전 워밍업 시간에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습 때 편하게 뛴 점프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김연아가 실전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마리 노랑나비처럼 가볍고 우아한 점프를 선보였다. 김연아의 말을 들으면 왜 운동선수들이 “실수도 실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 같다. 어떤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김연아는 하루 8시간씩 줄잡아 3만 시간을 연습했다.


▷골프선수들에게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을 물으면 그냥 힘을 빼고 툭 친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는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이 음표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훌륭한 배우는 몸에 자세와 몸짓이 저장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꺼내서 쓰는 듯하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몸은 자신의 지성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평소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했겠는가. 평범한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40224/61148081/1

Posted by 겟업
2014. 10. 18. 17:45

中, 끊임없이 동북공정 주장… 日, 한반도 분쟁시 개입 노골화 
美는 日의도 용인하는 움직임 
한반도 둘러싼 냉엄한 국제정치, 제국주의 날뛰던 구한말과 비슷 
복지논쟁으로 국방예산 줄어 필요한 전투기도 못산대서야…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출했을 때 프랑스신문 삽화에 묘사된 베트남을 보면 조선과 유사한 관복을 입은 관리와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총통 같은 공용화기를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강토를 침입하는 외적에게 대포를 쏘며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몇 개쯤 존재했을까? 임진왜란이 있었던 16세기 말에는 몇 나라가 자체 기술로 만든 대포를 보유했을까? 2차방정식 ‘근의 공식’을 알았던 조선의 수학 수준은 세계 몇 위의 실력이었을까? 개성상인이 사용했던 회계장부(송도사개치부법)는 서구의 회계장부(복식부기)와 같은 방식인데 어느 것이 앞선 것이었을까?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니 형편없는 꼴찌 국가였을까? 한국은 21세기 들어 주요 20개국(G20)이 됨으로써 역사상 최고의 시절을 맞이한 것일까?

한 가지 추론할 수 있는 것은 16세기 말 조선은 세계 20위 이내에 드는 국가였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보다 큰 나라는 중국 인도 터키와 유럽의 몇 개 국가에 불과했으니 20위 안에 확실히 들었고, 10위권에 근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 전쟁사학자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 육군이 오랜 내전 경험과 최신식 소총으로 무장돼 있어 당시 세계 최강이었다고 평가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접전을 벌이던 동양 3국의 무력 수준이 세계 수준이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제독이 이끌던 조선해군은 산탄포(조란탄), 로켓화살(신기전) 등 세계 최첨단을 달리는 해상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역사 얘기를 하는 이유는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세계 순위로는 결코 우스운 나라가 아니었음에도 식민지가 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강한 주변 국가들이 제국주의를 실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가 중국의 한 지방정권이었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 권력진공 상태가 올 때 군대를 진주시킬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 문자판 표준화를 주도할 뜻을 비친 중국을 곱게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계기로 한반도 분쟁에 적극 개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미국이 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부담이다. 현재 상황이 구한말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언급이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고 식자(識者)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국방능력 평가는 북한을 상대로 하는 비교평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비교해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태평양전쟁의 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이 이어도를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킨 가운데 한국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 답답해 보인다. 

미군의 화력에 국방을 의존하는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부국강병 자주국방을 외친 이유를 오늘에 새겨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과 재산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자주국방’의 깃발이 왜 사라졌는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먹고살 만하게 되고 G20이니, 세계 7위의 수출대국이니 하니까 무력도 세계 수준인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하다. 세계 2위 국가라도 바로 옆에 있는 세계 1위 국가가 제국주의 야욕에 휩싸이면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국내 상황을 보면 걱정이 태산이다. 복지논쟁으로 국방예산의 운신 폭이 좁아져 제대로 된 신형 전투기를 필요한 만큼 사기 어려운 것은 개탄할 일이다. 적이 코앞까지 진격해 와도 잔치는 해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점점 꼬이는 환경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방책을 내놓는 일에 모두 나서야 한다.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지만 발등 위의 안보불씨가 연기를 피워내는 형국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부국강병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세워야 한다. 지난 50년의 경제적 성취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번영의 반석’ 위에 오르려면 갈 길이 멀다.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반도 주변을 돌아보고 숨을 고를 때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복지국가’는 의미가 없다. 날지 못하는 때깔 좋은 메추리는 사냥감이 되기 쉽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40228/61265487/1#replyLayer



Posted by 겟업
2014. 10. 18. 16:26

251억원 생산유발, 107억원 부가가치, 외국인 관광객 62만명 증가, 876억원 수익창출, 300여명의 고용, 지역경제 활성화, 더 나아가 4000억원 규모의 직접 홍보, 국가브랜드 상승 등 총 2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

정부가 역대 세 번째 흥행기록을 보유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2'의 국내 촬영으로 기대되는 성과로 제시한 수치들이다. 오는 30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곳곳의 교통을 통제하며 촬영할 예정인 이 영화에 국무총리까지 나서 한국의 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며 격려하고 서울시장도 협력을 다짐했다. 범 국가차원에서 국가홍보의 대박이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을 불어넣는 모양새다.

정부 주장대로 전 세계 관객들에게 대한민국 호감도를 높이고 스크린 투어리즘 즉 국내 관광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현실화시키려면 국가의 해외 홍보 매체로 할리우드 영화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첫째 해당 영화의 전편을 관람했던 국내외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에 등장한 도시를 기억하고 있는지, 둘째 영화 스토리 상 배경이 된 도시에 대한 호감정도, 셋째 영화에 등장한 도시가 실제 존재한다면 방문할 의도가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다. 검증 후 확신이 생기면 수십억을 투자하고 전폭적 지원을 해도 문제될 것 없다. 그런데 매번 국가홍보를 논할 때 경제효과는 제시하면서 현 상황인식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해외에서 한국을 잘 모른다는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소통인지, 아니면 한국을 아는 외국인들이 많아진 상태에서 그들의 호기심에 답하는 방식의 소통을 할 것인지 국가홍보의 출발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홍보가 지향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핵심적으로 공략하려는 대상과 전달해야 할 홍보 자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첨단 IT 도시국가의 이미지를 보여 주겠다는 논리도 좀 궁색하다. 지금 우리가 세계에 알려야 하는 서울의 모습은 첨단 IT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첨단이 작은 골목까지도 묻어나는 융합형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벤져스2'에서 대한민국을 어느 정도 분량으로 어떤 영상에 담아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양해각서를 체결한 정부가 지향한 목적, 진행 과정과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 향후 국가홍보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도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과 창조경제를 주창하는 이 때 배급과 상영이 제작편수를 소화하지 못하는 우리 독립영화 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칫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겠다는 정부의 좋은 의도가 시민의 불편만 초래한 것으로 왜곡되고 국가홍보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국내 마케팅 효과만 극대화시켜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융합의 도시 서울을 알리는 홍보 전술로는 한편의 할리우드 영화보다 대한민국 창조경제의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독립영화가 더 유효할 수 있다. 국가홍보에 있어 우리만의 방식과 콘텐츠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할리우드발 문화콘텐츠 '어벤져스2' 영상 일부를 활용해 국가 홍보영상을 만들겠다는 발상도 그래서 좀 어색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위상에 걸맞은 해외홍보의 틀을 갖춰야 할 때다. 따라서 국민에게 아리랑국제방송원법과 같은 해외 홍보 지원법이 빨리 통과되어 국가홍보에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는 여론의 지지를 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방송에 대한 지원과 관련 제도를 보완해 국격에 맞는 해외홍보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대한민국 콘텐츠 크레에이터들의 다양한 결과물을 축적시켜 나가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한건주의 국가홍보로 단기적 성과만 좇는 데 급급했다. 또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국내에 특정 조직이나 개인을 알리기 위해 대한민국을 활용하는 조악한 국가홍보가 만연한 현실이었기에 이제 정부만이라도 중심을 잡아달라는 간언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http://www.hankookilbo.com/v/185926b044f34557ae35442e6900061c

Posted by 겟업
2014. 10. 18. 08:11


《최근 들어 ‘묻지 마 범죄’와 ‘성폭력 범죄’가 잇따라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피해를 당해 평화로운 가정이 무너진 피해자와 유족들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갈가리 찢기는 듯합니다. 

약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강간살인범, 인면수심의 연쇄살인범과 성폭행범을 줄이려면 사형 집행을 서둘러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형 집행이야말로 또 하나의 인권 침해라고 반발합니다. 

동아쟁론 6회의 주제는 ‘사형 집행을 둘러싼 찬반’입니다. 국가의 역할, 법의 역할 그리고 인권의 문제를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나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유족이 보는 앞에서 사형집행 ”▼

이영란 숙명여대 법대 교수

이론적으로나 이상적으로 사형제는 폐지가 바람직하다. 궁극적으로 범죄 없는 사회가 된다면 사형제는 불필요하다. 더구나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선성(善性)과 악성(惡性)이 공존하는데, 생명은 고귀하고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1. 무참히 살해된 피해자 가족의 억울함과 분노, 고통과 슬픔을 국가가 대신해서 좀 더 현명하고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형벌권 행사이다. 우리 형법에는 형벌의 한 종류로 사형이 규정돼 있고 법원에서도 실제로 아주 드물게 사형 선고를 하고 있다. 법무부가 현재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는 형법 개정안에도 사형 제도는 존치시키되 가능한 한 신중하게 선고하도록 했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도 33개 주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수에 대해 총살형과 독살형을 병행하다가 2004년 이후부터는 피해자 가족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독극물을 주입해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사형제도가 야만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2.법(法)은 국민의 약속이다. 그 약속에 따라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야만적인지, 야만적 행각으로 다수의 생명을 박탈한 범죄자들의 생명권을 보장해 대다수 국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야만적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1997년 말 사형이 마지막으로 집행된 후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사형수 60여 명의 집행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14년 동안 사형 집행이 안 되어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됐다. 

형사소송법 제463조에 따르면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의해 집행한다. 확정판결 이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하고 집행의 명령이 있으면 5일 이내에 집행하게 되어 있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규정이 아니라 해야 하는 강제 규정이다. 

그런데 국가의 최고 법집행기관인 법무부 장관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 1998년 47대 법무부 장관부터 현재 62대 장관까지 16대에 걸쳐 장관 15인이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공무원이 공무를 수행할 때는 특정 종교적 신념, 사적 감정이나 편견은 배제해야 하며 복지부동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사이 살인범죄로 인해 살해된 사람은 1만 명이 넘는다. 잘못한 만큼 처벌받는 것이 형사 책임주의 원칙이며 이러한 원칙 아래 사형제도는 형벌의 경고 기능과 범죄예방 기능을 무시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그 중한 불법 정도와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다. 다수의 인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범죄자에게 한정적으로 부과하는 사형이 과도한 형벌이라고 볼 수 없다. 20명을 무참히 살해하고도 자신의 목숨만은 보장받는다는 게 사형 폐지론자들의 파생논리이다. 

헌법재판소도 사형제 존폐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입법부가 결정할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한 바 있다. 즉 국민의 생각과 상식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3. 실제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형제에 찬성하니 폐지 주장은 일반 국민의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생명이 이념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는 가능하며 생명권의 박탈이 곧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건 헌재의 판단이다. 국민의 기본권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게 헌법정신이다. 

가장 중한 형벌인 사형을 논할 때 형벌의 기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응보보다는 교화 개선, 일반예방보다는 특별예방이 현대 형벌의 기능이자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누가 뭐래도 형벌의 기능에서 응보기능과 경고기능을 부정할 수 없다. 엄정한 처벌만큼 최선의 예방책도 없다. 

사형제가 있다고 해서 선진국이 못되고 인권국가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 집행이 제대로 안 돼 법치국가적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교정정책이 잘못돼 재범률이 높아 범죄공포지수가 높아지고, 일상생활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선진국 진입을 앞둔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 일리노이 법대 교환교수,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경찰위원회 위원, 교원징계재심위원회 위원,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현재 법무부 형사소송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살인기계들 사형해봐야 효과없다”▼

김형태 변호사

‘추적자’라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사람을 토막 내서 정육점 쇠고기, 돼지고기처럼 죽 걸어 놓았다. 범인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살인기계로 행동한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귀신보다 더 무섭다. 귀신은 그래도 원한을 풀기 위해서라거나, 뭐, 나름 이유가 있다. 저 악당을 어쩔꼬. 그래, 저런 인간도 아닌 놈은 그저 잡아 죽여야 돼.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저 괴물은 어디 하늘에서 혼자 뚝 떨어진 게 아니다. 그 부모가 있고, 친·외조부모가 있고,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2명, 4명, 8명, 16명…. 2의 제곱의 비율로 저 괴물에게 유전자를 넘겨준 사람들 수가 늘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같은 유전자 풀을 공유하는 친척들이다. 자손으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내 10대손에서 저런 자가 나올 수 있다. 불가에선 이를 연기(緣起), 만물이 서로 기대어 생겨났다고 하던가.

이런 살인 기계들에겐 사형도, 심지어 영원한 형벌인 지옥도 전혀 두렵지 않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순간’에 나오는 살인자도 평범한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순간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관객들은 그의 사형 집행을 슬퍼한다.

얼마 전 경기 의정부와 서울 여의도에서 아무에게나 흉기를 마구 휘두른 이들은 또 다르다. 우리 사회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 지배한다. 중하층은 거기서 벗어날 희망이 거의 없다. 1인 가구가 제일 많다. 궁핍의 고통을 같이 나누고 위로해 줄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다. 20, 30대의 절대적 빈곤층이 16만 명이나 된다. 취직은커녕 당장 한 끼가 버겁다. 

외톨이 은둔자가 된 이들은 자신도 그냥 죽고 싶거나, 아무나 죽이고 싶어진다. 살인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특정인을 죽이고자 하는 구체적 원한관계도 없다. 그저 능력이 좀 ‘모자라는’ 사람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이리된 거다.

이들에게 사형시키겠다고 을러 보았자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살도 수없이 생각해 본 터다. 오히려 의정부나 여의도 사건 모두 되도록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보란 듯이 사람을 찔렀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형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유형의 살인자들은 지금 같은 사회체제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1. 살인기계, 복수를 위해 살인하는 사람, 경제·사회적으로 떠밀려 자기를 죽이거나 반대로 아무나 죽이고 싶은 은둔형 외톨이…. 어느 경우에도 사형제는 억제수단이 되지 못한다. 유엔의 연구결과도 사형제와 범죄억제력은 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2. ‘살인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은 그저 사형으로 한 방에 제거해 버리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사고요, 일종의 사회적 약자인 은둔형 외톨이 살인자들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토대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러한 응보감정은 정의 관념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그 범죄의 대가가 꼭 사형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감형 없는 종신형도 충분히 대가가 될 수 있다.

흉악범이 사람을 죽였다 해서 이성의 결집체인 국가도 그와 똑같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모든 국민’은 착하고 모범적인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걸 누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모든 국민’이라고 했으니, 모자란 이도, 악당도, 사이코패스도 모두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나 불경의 가르침과 같은 차원의 헌법적 고백이다.

흉악범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도 감형 없는 종신형은 충분하다.

베네수엘라는 150년 전에 이미 사형을 폐지했다. 유럽연합도 사형이 완전히 없어졌다. 세계 102개 나라가 법률상 폐지, 38개국이 10년 이상 집행이 없었다. 유엔도 사형 폐지다. 왜 그럴까. 인류가 다 착해졌나? 우리보다 흉악범이 적은가? 아니다.

모든 인간의 존엄을 믿고, 또 모든 인간이 존엄하게 되도록 사회를 바꾸자는 뜻이다.


::필자 소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09년 사형제 위헌제청신청 대리인을 맡는 등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해왔다. 현재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이며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Posted by 겟업
2014. 10. 17. 06:45

《 여풍(女風)이 거셉니다. 교사 약사는 말할 것도 없고 법조인 군인 외교관 등 금녀(禁女)의 영역은 사라졌습니다. 대학 진학률은 2009년부터 여학생이 남학생을 앞질렀습니다. 가정에서도 경제권 교육권을 쥐고 있는 이는 대부분 아내와 어머니입니다. 이제는 여성들의 지위가 남자보다 높아져 남자들이 역차별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겉만 그렇지 도처에 ‘유리천장’이 있는 한국의 남녀평등 현실은 후진국 수준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135개 국 중 108위입니다. 차기정부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까지 여성이 등장한 한국 사회, 진정한 성 평등이 이뤄지고 있는 걸까요,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

▼ “여성은 더이상 약자가 아니다” ▼

김지원 자유경제원 법무실장 변호사

양성 평등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헌법이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가치 중 하나다. 적어도 외관상으로 우리 여성의 권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비단 정치나 국가고시와 같은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1. 가정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산층 여성의 경우 이미 상당수는 자녀 교육권과 경제권을 쥐고 있다. 주부로서, 어머니로서의 권리 역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종래 ‘약자’인 여성이 당하던 가정폭력 피해를 이제는 남편이 입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에서는 아들이 아닌 딸을 낳기 위한 비법을 공유하며 딸이 아닌 아들이어서 슬프다는 글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런 상황인데 아직도 여성이 보호받아야 될 대상에 불과한, 사회적 ‘약자’인지 의문이다. 

2. 객관적 수치를 보더라도 문해율(文解率·글을 깨친 사람의 비율), 취학률, 남녀 소득 차, 피임·이혼·외출의 자유, 상속의 평등, 소비·지출에 대한 아내의 결정권, 여성에 대한 폭력 수준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여성개발지수(GID)에 있어 우리나라는 2008년을 기준으로 전체 109개국 중 26위이다. 순위는 점차 상승할 것으로 믿는다. 

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 이렇게 변화된 여성의 지위에 걸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무조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비용과 부담을 증가시켜 여성의 일에 한계를 지어 주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남자들도 변해야 하지만 여자들도 변해야 한다. 스스로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국가적 책무를 외면하여 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참에 여성가족부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1년 출범한 여성부는 기본적으로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여성 정책 전담 기구를 운영하고 있지만 최소한 문명국에서 우리나라처럼 독립된 여성부나 여성 부처 형태를 두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영국의 경우에는 1997년 우리와 비슷한 WU(Women′s Unit)를 만든 후 2001년 WEU(Women′s Equality Unit)로 바꾼 뒤 2008년에는 양성 평등을 의미하는 GEO(Gender Equalities Office)로 바꿨다. 여타 선진국들도 행정 부처가 아닌 위원회 차원에서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현재 여성부에서 시행하는 정책들도 실효성이 없거나 비현실적이다. 11일 예고한 ‘게임물 평가 계획안’을 보면 중독성이나 폭력성과 관계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게임물을 평가하고 있다.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팡’ 게임조차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싸이의 ‘라잇 나우’에 19금 판정을 했다가 ‘강남 스타일’이 뜨자 해제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4.현실성이 없고 설득력과 일관성도 없이 여성의 권익 향상과 무관한 사업을 추진해 온 게 여성부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여성부 폐지 서명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는가, 이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5. 혹자는 최근 터지고 있는 끔찍한 범죄를 들며 여성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여성 안전과 성차별은 범주가 다른 문제다. 범죄자가 성차별을 하려는 의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가. 여성 안전을 위해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면 법무부에서 해야 한다. 굳이 이중으로 예산을 사용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동안 여성부에서 여성 대상 성범죄 증가에 대비해 무슨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존폐가 문제될 때만 성범죄 증가 논리를 끌어다 쓴다.

단언컨대 여성이 약자라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또 여성의 지위 향상만 이야기하는 시대도 이미 지났다.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혜택을 바라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치 데이트 비용을 남성에게만 부담하도록 하는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분법적 논리로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 구도로 전제하고, 남성이니까 여성을 배려해야 하고, 여성만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인 나로서도 “아니올시다”일 수밖에 없다.

김지원 자유경제원 법무실장 변호사


:: 필자 소개 ::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4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무법인 동문을 거쳐 변호사 생활을 한 뒤 2012년 8월부터 자유경제원 법무실장을 맡고 있다.

▼ “남녀 평등 아직 멀었다” ▼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

주변 사람들, 특히 남성들로부터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들을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만약 성차별이 문제라면 이제 남성이 받는 차별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래서 일부 남성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요구하고 이에 일부 여성까지 “남성부도 만들라”라고 ‘공평’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여성 문제를 매일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으로서 심히 우려되는 현실이다. 

성차별은 구조적이고 공적인 문제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경험을 통해 인식하면서 이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차별은 관습과 관행 속에 섞여 짜여져 있어 사람들이 이를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렇다면 정말 한국 사회에 더는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는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제적으로 적용되는 성차별성 측정 지수들을 사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불행히도 1. 한국은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와 성별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 있어 모두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2009년이 가장 최근 조사인 여성권한척도에서는 109개국 중 61위, 2012년 자료가 있는 성별격차지수에서는 135개국 중 108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 하위 지표의 내용이다. 한국은 남녀의 경제 활동 참여 격차에서 83위, 임금 격차에서 117위, 소득에서 112위, 고위직 비율에서 104위, 여성 국회의원 비율에서 81위다. 한국이 높은 점수를 받는 부분은 평균수명, 문해율, 취학률 등이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한국 여성의 경제, 정치 활동의 실적은 지극히 미약하다. 

2. 경제, 정치 영역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여성의 인권과 안전에 관련된 상황이다. 이 부분은 순위로 나와 있지 않지만 최근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반인륜적 사건들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까지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은 그저 일반적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성을 자신의 욕망 추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성차별적 의식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성의 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하고, 필요하면 살 수 있고, 사지 못한다면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인격과 성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가 이러한 범죄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성폭력이 이러한 극단적 사례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업무 관계나 친분 관계가 여성이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로 미끄러져 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여성에게 술을 먹인 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사한 성폭력을 여성 정복 사례로 간주하는 일부 남성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단지 이러한 성폭력을 신고해서 법적 처벌 절차를 밟는 과정이 여성에게는 너무 힘들고 또한 유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좁은 의미의 성폭력을 범죄로 인정하고 있지만 성폭력이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도 권력 혹은 친분 관계에 기반한 강요와 회유를 통해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은 아직 전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성적 권리에 대한 차별적 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적은 남자가 아니고 성차별이다. 여성과 남성을 서로 대치시키는 것은 성차별 해소 방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의식과 관습이 남성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성차별 해소는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남성의 성차별 해소도 여성부의 업무이다. 남성이 가족 부양의 과중한 의무감에 시달리고 이 때문에 일에만 매달리고 자녀양육이라는 보람 있는 부모 역할로부터 스스로 소외되는 것은 남성이 겪는 성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부는 현재도 부자(父子)로 이루어진 한부모 가정, 미혼부, 조손 가정 등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2013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 포함할 남성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센터장



:: 필자 소개 ::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학회 이사, 여성커뮤니케이션연구회 연구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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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6. 06:52

《 ‘삶과 죽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웰다잉(Well-dying) 문제를 연재하는 칼럼니스트 최철주 씨에 따르면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하다 죽어 가는 사람들이 한 해 3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주 1회 실리는 그의 칼럼은 매회 동아닷컴 조회 수가 적을 땐 수만 건, 많을 땐 수십만 건에 달할 정도여서 웰다잉에 대한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원하지 않을 경우 작성해 병원에 내는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관심도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본보 8일자 A14면에는 이계조 전 한미문화교육원장이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지인들을 초대해 삶과의 작별 파티를 열었다는 기사가 실려 잔잔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9년 5월 대법원 판결로 불이 붙었던 존엄사 논쟁은 국민의 관심이 높아가지만 정부가 공론화를 미루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 죽는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잘 사는 문제에 대한 성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자기 죽음에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 ▼

고윤석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집보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더 흔하게 됐다. 그리고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이 발전되어 말기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이 더 복잡해졌다. 현대 의료는 환자의 사망에 이르는 시간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는 환자나 의사도 신중히 결정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누구나 죽음의 과정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면 인위적으로 연장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이는 삶의 마무리가 좀 더 바람직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전 세계적인 사회의 요구로서 ‘존엄사’ 요청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는 ‘존엄사’라는 말 자체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존엄사라고 말할 때에는 의사가 직간접으로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적극적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은 포함시키지 않아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존엄사’의 정확한 범위는 ‘말기 환자의 경우 사망에 이르는 시간만을 연장시키는 집중치료를 미루거나 혹은 중지시켜 죽음의 과정이 환자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되는 경우’로 한정시켜야 한다. 내가 존엄사를 지지하는 이유는 1. 죽음의 과정에 대한 환자의 선택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가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환자 뜻을 잘 아는 가족에 의한 대리 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한 개인의 평생 의료비 중 약 25%가 죽기 마지막 1년, 그리고 20%가 사망 직전에 쓰인다. 이런 상황이니 합리적 생명연장치료를 통하여 말기 환자의 고통과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에 반대하는 여론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다 보니 우리도 제도 측면에서 이미 존엄사 관련 지침을 준비해 놓고 있다. 2009년 대한의학회가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 그 가족과 의료진이 합의해 환자에게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생명연장 특수치료는 미루거나 중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명치료중지지침’을 마련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 몇몇 병원 의사들은 이 지침을 참조해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환자나 가족이 내리는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만약 가족과 의료진 간에 의견 차가 클 경우 병원 내에 병원윤리위원회를 설치해 제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 시행되고 있지 않다. 2011년 내과 4년차 수련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56%)정도만 이 지침을 알고 있었고 지침을 안다 해도 실행하는 것은 11%에 불과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생명연장치료 중지를 결정하도록 권고했을 경우 의사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국회에서 발의된 존엄사 관련 법들도 좀 더 치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법에서는 환자의 ‘사전의료의향서’를 치료 중지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죽어가는 과정에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중환자의 경우 사전의료의향서를 통한 자기결정권 행사는 서구에서도 잘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생명에 관한 것들이라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더구나 우리는 서구에 비해 ‘가족 속의 나’라는 문화가 강하다. 환자 혼자 주장을 펴기보다 가족이 뜻을 대변해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다. 따라서 만약 환자가 직접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없다면 연명치료를 중지하지 못한다고 법에서 규정한다면 의료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매우 커질 것이고 임종 환자의 고통은 연장될 수 있다. 

나는 이의 대안으로 보건의료 기본법 제12조(보건의료 서비스에 관한 자기결정권) “…장기이식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와 거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문장에 생명연장치료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그리고 연장치료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지는 의료계에서 제안한 지침을 참고로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합의에 따르게 하는 것이 의료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이나 혹은 환자 뜻에 반해 필요한 치료가 강제로 중지되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죽음의 과정에 대한 논의가 생명 경시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3.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당사자의 뜻이 반영된다는 것은 생명경시가 아니라 생명존중이다. 웰다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날로 높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시민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관련 정책들을 만들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또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학교 교육이 보완돼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죽음의 과정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회 문화도 필요하다.

고윤석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

:: 필자 소개 ::

한양대 의대를 나와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내과학 전공)를 받았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실장을 맡고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 “결국 돈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말하자” ▼

신동일 한경대 법학부 교수

나는 우선  ‘존엄사’란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란 말은 ‘품격 있는 죽음’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흔히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죽음은 고통스럽고 비극적이다. 치료 불가능한 질병과 오랜 투쟁을 겪은 중환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선 존엄사는 관련자들에게 자살 방조 또는 살인 공모 등의 법률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존엄사란 말이 처음부터 위와 같은 범죄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진 장식적 표현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더욱이 2.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존엄사의 배경에는 어차피 죽을 사람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더는 투자하지 말자는 물질숭배 생명경시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결국 ‘돈 문제’라는 것이다. 생명연장치료를 계속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고민은 그 과정에서 지출되는 과다한 의료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로 해당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 과다한 의료비 지출은 그다지 문제된 적이 없다. 

그런데 말로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존엄사를 찬성한다’고 하지만 ‘돈’이 핵심 문제라는 생각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동원되는 논리가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즉 환자가 생명연장치료를 거부하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렇다면 자살은 어떤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은 중환자보다 훨씬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결정권의 실질적인 행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명시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행동을 보장해야 하는가? 아마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모순이 생긴다. 죽음을 앞둔 중환자의 자발적인 생명 포기 의사는 존중하면서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의사는 왜 존중하지 않는가?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죽음의 문제는 겉으로 말하는 그럴듯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삶의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나 평등은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다. 우리 헌법은 시민의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다. 생명은 그 자체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2009년 대법원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할머니의 생명연장치료 중단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최초의 존엄사 판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판결을 통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에 대해 거부권이 인정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오해다. 판결문에서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판단하라’고 했다. 아울러 당시 대법관들의 소수의견으로 생명이 대상이 되는 경우는 처음부터 자기결정권이 적용될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었다. 모든 인간 생명의 보호 원칙은 분명하게 헌법과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존엄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는 본인 동의에 의한 생명 포기를 법률로 허용하고 있으며 스위스의 ‘디그니타스’같은 단체는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법적 의료적으로 조언해 주고 실제 안락사 과정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런 외국의 사례들은 마치 존엄사가 그 사회에서는 논란의 여지없이 합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여전히 존엄사가 생명윤리법 분야에서 핵심 쟁점이며,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지속적으로 범죄 유사 단체로 비난받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률을 가진 국가들의 의료 및 사회보장 시스템과 우리 시스템의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인구는 1600만 명으로 우리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국가 예산(2010년 기준)은 우리보다 무려 150조 원을 더 쓴다. 그중 사회복지 예산 비율은 46% 정도여서 우리 복지예산 비율 27%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생명연장치료를 포함한 거의 모든 진료비는 국가 부담이다(그럼에도 존엄사가 발생하는거보면 돈 문제가 아닌듯?). 

의료혜택을 받을 때 개인 부담이 거의 없는 나라들과 우리처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나라와는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해 앞서 예로 든 나라들에서는 최소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해야할지를 고민할 때 경제적인 고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3.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 중단 논란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가 강조되기보다 자기 부담이라는 의무가 강조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존엄사를 법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 생명의 문제가 사회적 비용 계산에 의해 결정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예외의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입법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신동일 한경대 법학부 교수


:: 필자 소개 ::

인천대 법학과를 나와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괴팅겐대에서 형법 및 의료법연구소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을 지냈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21012/500479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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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4. 10. 15. 11:45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복지 재원 등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增稅), 특히 대기업 및 고소득층에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른바 ‘부자 증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하 계층에 비해 세금을 더 부담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이 옳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근로소득자나 자영업자의 절반 안팎이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 왜곡된 세제(稅制) 구조를 개혁하지 않은 채 일부 대기업과 계층을 타깃으로 ‘세금 폭탄’을 던지는 정책은 국가적으로 많은 후유증을 불러올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동아쟁론 4회는 ‘대기업 및 고소득층 증세’에 관한 찬반입니다. 》


▼ “부자증세는 새로운 성장동력” ▼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증세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경제의 사정을 살펴보아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1. 동안 신자유주의 감세정책의 혜택이 부자들과 기업에 집중되었으므로 이제부터는 부자들과 기업들로부터 우선적으로 세금을 걷는 이른바 ‘부자 증세’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 세 부담을 나눠지는 ‘보편 증세’가 바람직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성장기반과 소득기반이 확충된 이후에나 시행할 수 있다. 지금 중하층은 일자리 불안과 과다한 부채로 세금을 추가 부담할 여력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경제위기의 뿌리는 부동산 거품 붕괴와 그것이 남긴 민간의 과다채무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면할 수 없는 이유는 민간과 정부의 재무상태가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친부자, 친기업 편향 정책으로 소득분배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하층민의 소비여력은 바닥났고 중산층은 빚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없는 상태이다. 기업도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경제주체가 지속적으로 지출을 줄여 경제규모가 계속 쪼그라드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다. 바람직한 새로운 성장의 방식은 더이상 금융과 부동산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과 지출이 늘어 기업도 투자를 늘리는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구조를 갖추는 데 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바로 국가부채를 핑계로 정부지출을 줄이는 이른바 긴축(austerity)을 멈추고 부자 증세에 이어 과감한 확장재정 기조로 가는 것이다. 소비성 복지지출로 일부 분배를 개선하는 것도 해야 하지만 성장친화적인 정책, 기업투자촉진적인 정부사업으로 디플레 위험을 막으면서 전체 경제시스템을 금융주도 경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경제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대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쥐어짜기, 정부의 고환율정책 등에 따라 대기업 위주로 수출이 워낙 잘되어 이러한 세계적 조류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럽경제 위기와 미국, 중국 경제의 무기력에 직면하여 수출주도 성장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하고 부동산 시장 불황이 장기화하자 그동안 잠재된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 직전에 와 있다.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신성장체제를 구축하는 데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2.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약 9%포인트 낮은 복지후진국이다. 따라서 한국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대적인 증세와 복지지출 증대로 복지국가를 구축할 뿐 아니라 경제위기의 파고도 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에서 조만간 40%까지 끌어올리고 주로 중상층에 돌아가는 소득세 감면혜택은 줄여나가야 한다. 중상층에 대한 공공복지가 거의 없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각종 소득세 감면혜택(2010년 기준 총소득대비 공제율 21.7%)을 주고 있는데 그 결과 미국의 명목 소득세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지만 실효세율은 15.3%로 형편없이 낮다.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공제율이 45.3%에 달하고 실효세율은 4.1%에 불과하다. 그 혜택이 중상위 소득계층에 집중된다. 금융소득 분리과세도 세율을 현행 14%에서 더 높이거나 종합과세 해야 한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법인세 감면혜택도 줄이고 세율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서서히 끌어올려야 한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도 증대 여지가 있으나 이는 보편 증세에 해당하므로 앞서 말한 대로 국민의 소득기반이 충실화된 뒤에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부자 증세와 탈루소득 포착률의 증대 등을 통해 마련되는 신규 재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서민생활을 위해 투입되어야 한다. 보편복지의 정신에 따라 무상급식, 무상보육, 청년고용, 실업부조, 직업훈련, 기초노령연금 인상, 탁아소, 유치원 같은 공공 인프라 투자 등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분배(복지)와 성장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유럽, 예를 들어 스웨덴은 2008년 위기 이전에도 유럽에서 가장 경제성과가 높았을 뿐 아니라 위기 이후 대응능력에서도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우리가 앞장서서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 경제학 석사를 거쳐 영국 런던대 버벡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전문가네트워크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사단법인 금융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 “대기업 때리기 희생자는 서민” ▼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대선이 가까워지며 정치가들의 포퓰리즘 행태가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1% 고소득자와 슈퍼 대기업에 증세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기업 출자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을 발의했다. 

이 제안들의 본심은 ‘경제적 승자(勝者)를 때려 표를 얻자’는 네거티브 포퓰리즘이다. 정치가들이 대기업을 악(惡)으로 지목하면 국민은 대기업을 타도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저주받는 땅에서 대기업은 결국 고사(枯死)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가의 ‘왕따’를 받는 기업들이 국내에 남아 세금을 낼 이유도 없다. 1. 대기업들이 사라지면 일자리 투자 복지재원 등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대기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얻어맞는 존재지만 세계 어디서나 투자, 고용 및 세수 창출의 견인차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와 정부가 법인세 인하, 인센티브 제공, 기타 갖은 유인수단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는 이유다. 우리 정치가들이 부자·대기업 징벌까지 득표수단으로 삼는 것은 경제상식 부족은 물론 리더십 자질까지 얼마나 저급한 수준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선 판은 지금 여당 야당 가릴 것 없는 복지공약 살포 향연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이제 유럽형 ‘복지대국의 길’에 확실히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이 ‘따뜻한 의도’는 세금이 걷히고 재정이 건전해지는 경제에서나 가능하다. 우리 정치가들의 문제는 이들이 과연 이런 상식의 바탕 위에 복지문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복지재정에는 하나의 철칙(鐵則)이 존재한다. 증가를 거듭해 거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한번 내준 복지는 ‘국민의 권리’가 된다는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성격에 연유한다. 미국에서도 복지제도는 ‘권리(entitlements)’로 통칭되는데, 이는 ‘사유재산권’과 같이 국민이 취득한 권리임을 의미한다. 국민들로부터 이 권리를 다시 회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복지재정회계에는 새 청구서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 우리처럼 정치의 위세가 등등한 나라에서 이런 상식이나 재정의 기율(紀律) 따위가 존립하겠는가. 

오늘날 재정지출이 무한대로 늘어나 국가 파탄과 국민 타락의 양상을 보이는 사례가 그리스 스페인 등이다. 이 두 나라는 금년 봄 똑같이 52.1%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국가경제가 추락해 실업이 늘고 복지재원이 고갈되면 최대 희생자는 이처럼 복지의 대상인 서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된다. 복지주의가 스스로 제 눈을 찌르는 모습 아닌가. 

정치가들의 호의로 만들어진 복지 국가가 실제로 국민에게 만족한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아닌지는 각종 사실이 판단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년 27%에서 1996년 48%로 증가했다. 이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6.6%였지만, 30∼40%일 경우 3.8%, 60% 이상은 1.6%로 낮아진다. 즉 정부가 커질수록 성장률은 낮아졌다. 

조사를 시행한 미국 상원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이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난 것은 거의 복지지출 때문이며, 복지지출 증가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간부문에서의 생산성 성장을 잠식했다고 밝혔다. 2. 과도한 복지지출이 민간기업의 투자, 고용 역량을 파괴시켜 성장률 하락에 따른 빈곤 및 실업증대를 가져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요즘 무역규모가 연 1조 달러를 넘는 대한민국 호의 앞날도 먹구름에 쌓여있다. 국민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얼마나 몰아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은 오직 나라의 곳간뿐인데 복지 및 민생 재정 수요는 앞으로 확대일로를 걷는 반면 경제성장 잠재력 하락으로 기업과 국민의 담세능력은 점차 낮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적자재정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선후보나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호소할 것은 첫째도 성장, 둘째도 성장이지 무책임한 기업 때리기나 복지 살포의 약속이 아니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 필자 소개 ::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30여 년을 재직했다. 현재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20810/48515246/1



Posted by 겟업
2014. 10. 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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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심심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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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게임, 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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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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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머 '태사자'님 글 펌>


Posted by 겟업
2014. 10. 14. 11:25

《 대학 수시모집을 앞두고 자기소개서 대필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를 토대로 학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도입 초기부터 찬반 논란이 치열했지만 이제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취지와 방향성을 살려 제대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근본적인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섭니다. 어느 편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제도를 둘러싼 솔직한 문제 제기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동아쟁론 5회의 주제는 ‘다시 생각해보는 입학사정관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 “입학사정관제 폐지해야” ▼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

입학사정관제는 크게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 면접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바로 제도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자기소개서가 대필되고 교사의 추천서도 거짓으로 포장되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일어났던 일인가. 대한민국 입학사정관제는 엉망진창 일보 직전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도입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점에 있다. 1. 강력한 신뢰가 우선되어야 할 입학사정관제는 학연·지연·혈연 등의 온정주의가 깊이 뿌리 내린 우리 실정에는 애초부터 맞는 것이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자에게 추천서를 써 줄 때 제자의 있는 그대로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써 줄 교사가 몇이나 있겠는가. 애초부터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정직한 추천서와 자기소개서가 힘들다고 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에 가 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대입전형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라고 설명해 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도입 당시 40개 대학이 채택했던 이 제도를 여러 가지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밀어붙여 내년 입시에서는 무려 125개 대학이 정원의 13.5%인 약 4만8000명의 학생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선진화’란 게 과연 무엇일까? 

십중팔구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의 추천서 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우리 국민만 모르고 알 사람은 다 안다. 강력한 신뢰에 의한 추천서 제도가 한때 미국에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퇴색했다. 특히 대학 입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9년 명문 일리노이주립대 어배나-섐페인 캠퍼스의 부정 입학 사건이다. 이 학교는 학생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데 학생들은 거짓으로 작성된 추천서나 자기소개서, 에세이(우리식으로 치면 논술)를 제출했고 돈과 권력을 쥔 주내 유명 재력가들은 입학사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청탁을 해 빚어진 대형 부정 입학이었다. 

시카고트리뷴이 특종 보도한 이 사건에는 무려 800여 명의 학생이 연루되었으며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일리노이 주 유력 인사의 자녀와 대입 관련자들이었다. 그 전해에는 일리노이 주의 한 고등학교 입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더는 선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우리는 미국이 하면 무조건 ‘선진 제도’인 양 따라한다. 어떤 제도든 그냥 좋아만 보인다고 무리하게 도입만 하면 안 된다. 그 나라만의 문화와 특수성을 감안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고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입학사정관제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학생의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취지가 겉으로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실제로 실천이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3. 평가자의 자의성과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고 평가자의 전문성도 아직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것을 피한답시고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모든 포트폴리오(봉사활동 수상경력 등)를 면밀히 검토하기보다 “이건 몇 점”, “저건 몇 점” 하는 식으로 점수화하는 극단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계량화의 토대가 되는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원래 취지 중 하나인 공교육 정상화도 무력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입시 준비에 고달픈 학생들의 짐을 덜어 주는 게 아니라 스펙 쌓기를 위해 학원으로 달려가도록 만들고 있으니 그들의 어깨를 더 짓누르는 꼴이 돼 버린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를 흔드는 반칙 플레이와 부정직을 공식화 의례화하고 당연시하는 분위기까지 있는데 여기엔 어떠한 교육적 효과도 없다. 허위와 은폐 그리고 대필이 난무하는 대입 부정 분탕질 종합세트는 원래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그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보류해야 하거나 접는 것이 순리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

:: 필자 소개 ::

미국 보스턴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사회학 이론, 지식사회학, 종교사회학, 현상학이다. 주요 저서로 ‘정신차려 대한민국’, ‘뒤르켐&베버: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Order And Agency In Modernity’, ‘Interaction and Everyday Life’ 등이 있다.



▼ “운용의 묘 살리면 문제없어” ▼

백성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전 포스텍 총장

도입 5년째를 맞고 있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도입 초기부터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것보다는 비교적 큰 부작용 없이 여러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면서 꾸준하게 확대되어 왔다.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사교육이 줄었다는 보도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1.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험 점수만 올려서 대학을 선택하고 학과를 결정하는 비교육적 비인간적 대학입시를 과감하게 청산해야만 공교육을 다시 세우고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인식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2. 입학사정관제는 세계 대부분의 유명 대학이 채택하고 있는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그 합리성이 입증된 입시 제도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소개서나 추천서가 중시되는 이유는 이른바 ‘점수 기계’들이 대학에 들어온 뒤 자기 적성과 맞지 않아 학업에 소홀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 해당 학생이나 학교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3.과거에 점수로만 학생을 뽑을 때에는 학생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후에는 응시생의 내면적 스토리를 알 수 있어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번에 사회 문제화된 것처럼 자기소개서 허위 작성이나 대필 같은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잘못된 서류로 인한 일차 피해자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서류위조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실제로 대필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대학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학생의 진면목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작성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레알?). 자기소개서로 학생의 자질을 ‘검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학생의 적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면접이다. 

국내외 많은 대학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토대로 다각도로 질문을 해 진위를 가리려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이상 배출한 캘리포니아공대(일명 칼텍) 등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자기소개서 진위 판독을 위해 졸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까지 나서 학생을 면접해 자기소개서 내용을 확인한다.

필자 역시 실제로 입시 현장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면접을 중시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특정 과목은 우수했는데 다른 과목 성적이 떨어져 입학사정관들조차도 어렵다고 한 학생을 심층 면접을 통해 입학시킨 적이 있다. 담임교사가 조금 부정적으로 추천서를 쓴 학생이 있었는데 심층 면접을 통해 단지 교사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 그의 개성 때문이었으리라고 보고 또 다른 잠재력에 점수를 줘 입학시켰다. 모두 성공적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앞의 글 온정주의 반론). 

일각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들에게 점수 외에 더 많은 입학 기준을 제시해 학생들을 다양하게 뽑을 수 있으므로 그렇지 않아도 많이 몰리는 (일류) 대학만을 위한 제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4.오히려 명문대가 아닌 대학들이 점수가 아니라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대학 발전의 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른바 ‘개천의 용’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입학사정관제의 방향과 취지는 전적으로 옳다. 작은 부작용이 있다고 제도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느 제도나 아무리 취지와 방향이 옳다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정직성과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 

대학에서 공부할 사람은 학원 강사나 학부모, 교사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다. 학생의 진솔한 모습이 입학전형 중에 가감없이 대학에 전달되어 평가를 받아야 학생도 학교도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언젠가는 입학사정관제도가 모든 대학에 도입되고 정착되어 우리 입시제도의 근간으로 자리 잡아 가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번 일은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로 삼고 제도적 보완과 정책적 지원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백성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전 포스텍 총장


:: 필자 소개 ::

미국 코넬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장, 포스텍 5대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세라믹학회 회장(2009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위원장(2011년)을 지냈다. 현재 세계세라믹학술원 종신회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원자력진흥위원, 광주과기원 이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19/3/70040100000119/20120823/48839415/1


Posted by 겟업
2014. 10. 14. 11:09

http://blog.naver.com/haebaba21/220125134075





로즈님 블로그




타고난 리더는 없다.


훌륭한 리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공부해보도록 하자.

Posted by 겟업
2014. 10. 13. 07:19

《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을 통한 공무원 충원을 대폭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관피아’ 피해를 줄이기 위해 5급 공채 인력과 민간 경력자 채용 비율을 반반으로 맞추겠다는 겁니다. 사실 현재도 개방형 공무원 충원제도를 통해 민간에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무늬만 개방형’이란 비판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이 제도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행정고시의 갑작스러운 축소나 폐지 주장은 성급하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없을 경우, 또 다른 ‘있는 집 자제 낙하산 태워 보내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두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

▼관피아 단절 위해 행정고시 단계적 폐지해야▼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에 관한 은유는 시대를 읽는 눈, 즉 철학이나 진리 탐구정신이 시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일이 다 끝날 무렵에서야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다는 의미로 유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잘나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오만해져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하고 안주한 것은 아닐까. 세월호 사태 이후에도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 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 어느 구석이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의구심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맞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때 시대정신과 발전을 이끌었던 관료가 썩었으며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행정시스템에 대하여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강의와 연구를 해온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번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황망하고 수치스럽다.

이런 점에서 19일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공직사회에 대한 처방, 특히 고위직 관료를 행정고시라는 5급 공채와 민간 출신을 각각 50%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에 기본적으로 대찬성이다.

 지금의 공무원 부패와 무능의 형태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현장 집행을 하는 일선 공무원들이나 고위직이나 이권 개입을 통한 부패가 심했다면 1. 지금은 고위직들이나 하위직을 막론하고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복지부동의 철밥통 자체가 부패와 무능이다. 특히 2.행정고시 출신의 전직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줄’로 퇴직 이후에도 끊임없이 관련 이익단체들로 자리를 옮겨가며 연명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트러스트(신뢰)’라는 저서에서 한국과 중국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로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이 신뢰라는 규범으로써 움직이지 않고 한국은 ‘연고주의’, 중국은 ‘관시(關係·관계)’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귀에 거슬리고 거친 분석이지만 일면 타당하다. 그가 지적한 신뢰가 낮은 사회인 한국, 중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그리고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까지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이 공무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실제로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법률은 행정부 관료, 즉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며 심의·의결하는 국회의원 상당수 역시 행정고시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더군다나 이 고위직들이 일부 대학과 지역 출신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20년 장기불황의 처방의 하나로 관료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일본을 보더라도 관료사회를 일시에 개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우리 관료사회의 저항 또한 집요하게 이어지리라고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관료는 이번의 세월호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련 업계와 매우 밀착되어 있다. 정책은 현직 고위직이 만들고 집행은 퇴직한 고위직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간 조직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또한 국회에서 행정고시 출신 의원들이 백업을 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관계-업계-국회 간의 ‘철의 삼각동맹’이다.

이제는 법규와 집행 권한에 이어 예산 권한까지 무한정으로 누리는 행정고시 출신의 철밥통 공무원을 우리의 젊은 엘리트들이 그리워하지 않도록 바꾸어야 한다. 암기 위주의 지식 시험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식에 대한 검증을 하기 위해 문제은행식으로 시험제도를 바꾸어야 하며 창의력을 판별할 수 있도록 심층면접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선발하여야 한다. 또한, 철저하게 지역대학에 할당제를 실시하여야 하며 고위직 공무원들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켜 민간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야 한다.

그러나 행정고시 폐지가 단순히 지금까지 준비하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체 시장으로서도 규모가 크므로 매년 선발 인원수를 조금씩 줄여 완전 폐지까지는 5년 이상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그래야 여론을 등에 업고 관피아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 필자는 한국외국어대 및 대학원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대에서 사회과학(행정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으며 한국지방 행정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을 거쳤다.


▼고시 없애면 서민자녀들 공직 진출 힘들어져▼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로 공직사회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질적인 적폐(積弊)인 관료 마피아 문제가 부각되면서 행정고시(5급 공채) 폐지가 공론화되고 있다.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 참사 대책으로 “관료 카르텔이 발붙일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료 카르텔의 입구라 할 수 있는 행정고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행정고시 폐지론의 근거는 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선후배 간에 서로 끌어주고, 퇴직 후에는 낙하산으로 산하 기관이나 단체의 요직을 차지해 이권에 개입하거나 비리를 묵인 또는 방조하는 고질적인 적폐를 양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 행정고시를 폐지한다고 해서 ‘관료 마피아’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에는 퇴직 공무원의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기 위해 부처의 개별적 알선을 금지한다. 재취업은 내각부에 신설한 ‘국가공무원 인재뱅크’를 통해 일원 관리하며 신설된 중앙감시위원회가 개별 심사 및 승인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공무원 충원 방식은 그 나라 공직제도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공개채용시험이 기본적인 공무원 충원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행정고시는 고위공무원 채용을 위한 시험제도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2. 행정고시는 서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 입신양명의 꿈을 키워주는 ‘신분 사다리’ 역할을 하였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직한 공무원들은 국가 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는 공직사회의 사기와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광범위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경제성장은 비약적이었고, 사회의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행정의 내용도 복잡해지고 양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전문화의 수준이 높아져서 공직도 전문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민간의 유능한 전문가를 유치하여 공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고시 외에 공무원 충원 경로를 다양화하였다. 우수한 전문 인력이나 유경험자를 채용하는 경력경쟁채용제도(특별채용제도)와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거나 효율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 공직 내외부의 경쟁’을 통해 적격자를 뽑는 개방형 직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효율적인 정책 수립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직위에 공직 내 공무원들의 경쟁을 통해 적격자를 선발하는 공모직위제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개방형 충원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우수한 민간 경력자를 공직에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민간 부문에 비해 낮은 보수, 공직 적응의 문제, 신분 불안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 만약 행정고시가 폐지되고 민간 경력자 특채 방식으로 선발하게 되면 학위나 자격증과 같은 소위 ‘스펙’이 화려한 사람들만이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유층 자녀들은 석·박사 학위나 해외 유학 등의 스펙을 쌓기가 쉽지만 서민 자녀들은 이런 스펙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공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점유물’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또한 현재와 같은 계급제 중심의 공직분류체제하에서는 각 직위에 필요한 자격 요건과 선발 기준 및 절차를 단시일 안에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몇 년 전 발생한 ‘장관 딸 특채’와 같이 정실이 개입되어 자칫 ‘현대판 음서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에 비해 고시제도는 국민에게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전문가 채용을 위해 학위, 자격증, 경력과 같은 응시요건에 제한을 두게 되면 국민의 공무담임권과 평등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물론 고시제도가 최선은 아니다. 현행 고시제도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시제도의 개편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기존의 Ⅰ·Ⅱ·Ⅲ종 공무원 시험제도를 종합직·일반직·전문직 시험으로 재편하였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


※ 필자는 미국 애크런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인사행정학회장, 공무원 채용시험 선진화 추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Posted by 겟업
2014. 10. 12. 08:39

《 최근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두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이달 16일 새누리당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의원이 “5·16은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아쟁론 3회 주제는 ‘한국사에서 5·16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상반된 견해입니다. 긍정적 관점과 부정적 관점을 피력한 두 분의 글을 읽다 보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지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안목을 갖게 됩니다. 동일한 사안을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

▼ “5·16은 위로부터의 혁명” ▼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한마디로 5·16은 쿠데타로 시작되었지만, 혁명으로 종결된 정치현상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변화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 변화다.

한때 쿠데타는 세계 곳곳을 휩쓴 유행병과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속 가능성을 획득할 정도로 국민들 삶의 일부가 된 쿠데타는 거의 없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수많은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얼마 안 돼 신기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 그러나 5·16은 다르다. 5·16은 쿠데타지만, 시종일관 쿠데타의 범주에만 가두어 둘 수 없다. 5·16을 민주질서를 정지시킨 범인으로 지목해 철창에만 가두어 둔다면, 독수리를 새장에 가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지금 누가 ‘보릿고개’, ‘절량농가’란 말을 알아듣는가. 이런 말들은 잊혀진 언어가 되었고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은 더이상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더욱이 너나 할 것 없이 ‘앵그리(angry) 사회’의 신드롬을 곱씹고 있는 요즈음 ‘헝그리(hungry) 사회’를 극복했다는 것이 큰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기적을 만들고 있다는 소명의식을 가졌고 경제적인 성취만이 아니라 잠자던 민족역량이 깨어났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신감은 자기 확장성을 가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도처에서 모든 것에 도전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5·16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왜 혁명이라고 부르는 데 인색한가.

혁명이란 명실공히 큰 변화다. 혁명에는 밑으로부터 분출되는 대중혁명이 있다. 4·19혁명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나 밑으로부터의 혁명만이 다는 아니다. 위로부터의 혁명도 있다. 나세르의 이집트 혁명을 보라. 쿠데타로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그가 이집트에서 이끈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혁명이라고 부른다. 5·16은 그런 점에서 혁명이고 위로부터의 혁명이다.

5·16을 정당화하면 다른 모든 쿠데타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일리는 있지만, 진실을 비켜 간 기우다. 쿠데타가 혁명이 된 사례는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했지만, 5·16이 그런 것이다.

2. 5·16의 특이성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점에 있다. 5·16은 절대빈곤의 종결자가 됨으로써 중산층을 두껍게 했다. 이 중산층은 한국 민주주의의 등뼈가 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해 꺼질 줄 모르는 열망을 가진 중산층을 배출함으로써 5·16은 민주주의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서슴없이 12·12사태를 단순 쿠데타로 단죄할 수 있게 됐고 6·10민주항쟁도 성공할 수 있었다. 만일 권력 탐욕만으로 민주정부를 무너뜨리는 속물형 쿠데타로 5·16을 평가한다면, 5·16에 대한 모욕이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민주질서를 훼손한 것, 인권을 탄압한 것은 결코 작은 허물이 아니다. 성취가 있다고 해서 눈물과 고통을 상쇄할 수 있겠는가. 인권 침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5·16이 혁명이라고 해서 잘못된 것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5·16으로 시작된 박정희 시대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밝은 면만 보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도 안 되지만, 시종일관 쿠데타로 비하하면서 을씨년스러운 모습만 떠올리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공과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정직한 태도다. 이 공과를 평가하는 데 의미 있는 자료가 있다. 

우리 국민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할 때마다 박정희를 항상 1위에 놓는다. 왜일까. 쿠데타의 주역으로 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근대화 혁명의 주역으로 보기 때문인가. 만일 박정희를 민주주의를 파괴한 쿠데타의 주모자로만 보았다면 민주화시대에도 이 시들지 않는 인기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공과를 가늠한다면 박정희는 ‘공(功) 7, 과(過) 3’의 정치인이다. 원래 이 말은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을 평가할 때 사용했다. 그러나 마오의 경우 문화대혁명을 통해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고 고통을 강요받았다. 박정희는 그런 정도로 잘못을 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보다는 좀 더 나은 평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4·19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5·16은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 4·19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분출했다면 5·16은 근대화에 대한 국민적 염원을 분출했다. 이 두 개의 혁명이 어우러져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근대화를 성공시켰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 새삼 중요해지는 이유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 석사를 거쳐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 공동대표이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이며 현재 박근혜 의원 대선경선캠프인 ‘국민행복캠프’ 정치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 “민주주의 짓밟은 쿠데타”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무릇 모든 정권은 정통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고, 어머니가 용왕의 딸이었기 때문에 왕의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있었다. 근대 이전의 왕들은 이런 신비로운 이야기를 통해 최고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합리적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은 이런 이야기들이 단지 합리화를 위해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정권의 정통성은 국민의 선택 위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근대 정치의 꽃이면서, 근대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적 수단을 통해 수립된 정부라고 해서 모두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는 않았다. 독일의 나치주의자들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모두 민주주의적 선거를 거쳐 집권했지만,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켰고, 독일과 일본은 패망의 길을 걸었다. 

이와 반대로 민주주의가 아닌 방법으로 집권하는 사례도 있다. 바로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정부다. 한국의 5·16쿠데타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가에서 소수의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것은 쿠데타 당시의 정부가 국가를 통치할 능력이 없었으며, 국민이 원하는 바를 빨리 달성하기 위해 쿠데타라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5·16쿠데타로 수립된 군사정부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에서 불법적 쿠데타로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낸 다른 나라의 사례를 제시했다. 특히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이집트의 나세르 쿠데타는 박정희에게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선례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지만 단기간에 걸쳐 국력을 배양하고, 일본과 이집트가 세계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세르는 얼마 전 실권한 리비아의 카다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메이지 유신과 이집트의 나세르,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한국의 박정희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쿠데타라는 불법적인 과정을 거쳐 집권했기 때문이었다.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지지를 얻지 못하면 또 다른 쿠데타에 의해 실각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맞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후 2년 사이에 군사정부를 다시 전복하려는 또 다른 쿠데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1964년 6·3사태 때에도 또 다른 쿠데타 정보가 보고됐다. 

메이지 정부는 급속한 성장으로 나타난 부작용을 미봉하기 위해 외부로의 팽창을 시도했다. 오키나와를 합병하고, 대만과 한국을 식민지화했다. 그리고 쇼와 시대에는 결국 아시아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이집트는 사다트와 무바라크로 이어지는 전체주의 기간을 거치며 한 사람은 암살당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집트 시민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1. 한국의 5·16쿠데타 세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20여 년 동안 급속한 성장을 밀어붙인 결과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1969년의 외환위기와 부실기업 문제는 1972년 8·3조치로 미봉되었지만, 1970년대 중화학공업에 대한 중복·과잉투자로 1970년대 말 한국 사회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허약한 금융기관과 정부의 보조금으로 연명한 재벌은 개방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또 박정희 정부 시대 20년 동안 한국 사람들은 항상 안보위기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안보위기는 민주주의 대신 국민을 억지로 통합하기 위한 무기였다. 역설적이게도 그 결과는 안보불감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정희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2. 그가 했던 쿠데타가 다른 쿠데타를 부르는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며,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1963년 군복을 벗으면서 다시는 자신과 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정희의 후배들은 쿠데타를 하면 쉽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단과 과정이 잘못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난다. 또 수단과 과정을 중요시하지 않고 결과만을 평가할 때 또 다른 불법적 수단과 과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불법적 수단이 합법적 수단보다 더 쉽게 결과를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만약 수단과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잘살기 위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더 좋다는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퍼시픽 어페어스(Pacific Affairs)’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 국제한국학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