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 최고 인기 스포츠
노예·포로 외 일반인도 돈·인기 위해 검투사로
佛 검투사 클럽 30여개 검투 클럽에 수강생 몰리고 클럽 대항전도 열려
스파르타쿠스의 향수 이탈리아 중부도시 카푸아 이곳에서 동료 70명과 반란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지난달 14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작은 도시 '아를'의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 서기 1세기 때 세워진 것으로 한 번에 2만명을 수용했던 이 대형 건축물 바깥에는 여름휴가철을 맞아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30분에 투우 경기가 열린다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경기장 안에 들어서자 '깜짝 반전'이 펼쳐졌다. 2000년 전 이 경기장이 건설됐을 때나 볼 수 있었을 법한 검투사들의 시합이 눈앞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에 등장한 검투사 두 명의 경기는 순간 격렬하게 달아올랐다. 옛날처럼 상대방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 뿐 상대방 몸과 방패를 향해 돌격하고 뭉뚝한 무기로 급소를 공격하는 모습은 로마 시대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검투사 양성·공연 전문회사인 악타아케오 소속의 전문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로페즈 브리스 대표는 "회사에는 모두 16명의 검투사가 소속돼 있는데 여름휴가나 지방 축제 기간에는 매일, 그리고 하루에 여러 차례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 같은 시범 경기를 펼친다"고 말했다. 검투사들은 경기가 끝나자 어린이 관광객 20여명을 경기장 안으로 불러내 기본자세를 가르쳐주는 팬서비스도 진행했다.
인구 5만3000여명의 아를은 여름휴가 때가 되면 50만명 이상 관광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 포인트는 네덜란드 출신 후기 인상파 화가 반 고흐의 체취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들이다. 고흐는 이 도시에 머문 15개월 동안 자신의 작품 중 3분의 1을 그릴 정도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카페테라스'(1888년작) 그림 속 카페는 외벽에 '반 고흐 카페'라는 글씨를 써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원형 경기장은 고흐 카페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이장석 재불 몽펠리에 한인회장은 "아를은 님 등과 함께 남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로마형 도시"라며 "로마풍으로 도시를 건설했고 그때 만든 여러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에 등장한 검투사 두 명의 경기는 순간 격렬하게 달아올랐다. 옛날처럼 상대방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 뿐 상대방 몸과 방패를 향해 돌격하고 뭉뚝한 무기로 급소를 공격하는 모습은 로마 시대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검투사 양성·공연 전문회사인 악타아케오 소속의 전문 글래디에이터(검투사)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로페즈 브리스 대표는 "회사에는 모두 16명의 검투사가 소속돼 있는데 여름휴가나 지방 축제 기간에는 매일, 그리고 하루에 여러 차례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 같은 시범 경기를 펼친다"고 말했다. 검투사들은 경기가 끝나자 어린이 관광객 20여명을 경기장 안으로 불러내 기본자세를 가르쳐주는 팬서비스도 진행했다.
인구 5만3000여명의 아를은 여름휴가 때가 되면 50만명 이상 관광객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 포인트는 네덜란드 출신 후기 인상파 화가 반 고흐의 체취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들이다. 고흐는 이 도시에 머문 15개월 동안 자신의 작품 중 3분의 1을 그릴 정도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카페테라스'(1888년작) 그림 속 카페는 외벽에 '반 고흐 카페'라는 글씨를 써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원형 경기장은 고흐 카페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이장석 재불 몽펠리에 한인회장은 "아를은 님 등과 함께 남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로마형 도시"라며 "로마풍으로 도시를 건설했고 그때 만든 여러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검투 자세 배우는 관광객들 지난달 14일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 시내에 있는 원형경기장에서 청소년 관광객들이 검투 기본자세 등을 배우고 있다. 이 경기장은 로마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한 번에 2만명을 수용했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9/12/2014091202667_0.jpg)
검투는 로마 시대를 풍미했던 인기 스포츠였다. 로마 이전에 이미 이탈리아 중·남부에서 벌어졌던 전통적 풍습이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중적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황제들은 시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이 경기를 이용했다. 검투사들은 무기를 들고 맹수와 싸우거나 상대방 검투사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다. 노예나 전쟁포로, 범죄자 출신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반 자유민들이 돈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 검투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남프랑스에서는 검투사 경기를 현대적 시각에서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프랑스 전역에는 현재 약 30여개의 검투사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각 클럽에는 검투를 배우는 수강생들도 줄을 잇고 있다. 브리스 악타아케오 대표는 "우리 회사에만 검투사 과정을 수강하는 사람이 200여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중남부 도시 카푸아에 있는 원형 경기장. 이 경기장은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100년 이상 먼저 지어졌다. 카푸아는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킨 곳이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409/12/2014091202667_1.jpg)
카푸아는 로마에서 남쪽으로 200㎞, 나폴리에서 북쪽으로 25㎞ 정도 떨어졌다. 이곳 원형 경기장은 로마 최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31년 악티움해전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건설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부 이탈리아 학자들은 이미 스파르타쿠스(?~BC 71) 시대에 경기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경기장 입구에는 '스파르타쿠스 시대 때 원형 경기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꽂혀 있었다. 현장 관리인은 "이 경기장을 찾아온 한국인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카푸아 지역에서도 최근 들어서야 스파르타쿠스의 역사적 가치와 상품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경기장 주변엔 검투사 학원 등도 생겨났다. 2년 전에는 경기장 입구 쪽에 입장권 판매소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관리 건물도 지었다. 관리소 여직원 안나 디글리오씨는 "그가 유명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존재이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 만한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했었다"며 "지금은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하루 50~60명 정도가 꾸준히 이곳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12/2014091202739.html?cont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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