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앞을 오간 지 몇 년은 됐다. 차 두 대가 겨우 비키는 골목에서 커피와 직접 담근 유자차 등을 파는 곳이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동네 카페다.
근데 평범치가 않다. 우선 간판이 없다. 유리문 안쪽에 걸린 ‘open’ 표식이 영업점이라는 걸 알릴 뿐이다.
출퇴근 길목이라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풍경들. 어떤 날 저녁엔 카페의 큰 테이블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강의를 들었고, 다른 날엔 아주머니들이 바느질 수업을 받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만들기 수업도 있는 듯했다. 여느 카페와 달리 동네 아이들까지 그렇게 쉬이 그 가게 문턱을 넘나들었다. 카페가 아니라 시골의 마을회관을 더 닮았다.
판은 점점 커졌다. 한 해 전 요맘때는 점심 식사 메뉴가 등장했다. 카페 앞에 안내문을 붙여 둬서 알게 된 사정인데, 솜씨 있는 이웃들이 ‘1일 사장’이 돼 자신만의 메뉴를 판매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 카페는 동네 축제까지 연다. ‘같은 동네에 사는데, 우리 서로 친하게 지내요’라고 인사하는 듯한 축제다. 축제가 열리면 도예공방 주인이나 수녀님 같은 이웃에 계신 분들이 두 손을 걷어붙이고 돕는다.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동네 분들이 짜 준다.
모두 수익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다. 또박또박 이런 일을 벌여온 카페 주인은 30대와 20대로 보이는 처자 A와 B. “저희는 카페를 사무실이라고 여겨요, 커피는 손님이 오면 파는 거고요. 헤헤.”
카페 안에는 책상 두 개가 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엔 ‘하고 싶은 일’을 궁리한다. 동네의 근현대 생활사를 수집하는 계획을 세우거나 특정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기획서를 만드는 식이다.
기획서를 제출해 용역사업을 수주 받곤 하지만 잘 버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지난해 겨울 어느 날에는 임대료 걱정이 한창이었다. 돈 안 되는 ‘문화 기획’을 하며 동네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그들, 1970, 80년대 같았으면 간첩으로 오인받지 않았을까.
왜 할까. “문화 행사를 기획하면서 뭔가 똑 떨어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을 못 잘 정도예요. 이 일이 좋아서 은행까지 그만둔 걸요.” A가 안면을 익힌 지 2년여가 지난 어제에야 들려줬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갈 정도로 일 그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재밌어요. 5년을 그렇게 산 적도 있는걸요.” B가 거들었다.
자기 일이 너무 좋아 ‘긍정의 신열’을 앓는다는 그들. 일을 이렇게 좋아해야 직분에 따른 책임감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시민단체 직원 중에도 월급 그 자체 때문에 일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취직하기 힘들어서인지 공직 입문자의 소명 의식도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다. 이런 일이 확산되면 우리 공동체의 체질은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 번뿐인 인생, 일을 좇는가, 돈을 좇는가. 우리 동네 카페의 물음이다.
허진석 채널A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40417/62829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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